이혼 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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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7.06 0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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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자는 전쟁 영웅 - 1

DUMMY

당시 세자께서는 고민이 있었던 것 같다. 비록 천인공노할 짓을 많이 저지른 왜적이었으나, 궁지에 몰아넣은 쥐보다 못한 처지를 불쌍히 여기셨다.

나도 이해했다. 한 번의 명령에 모두 물귀신으로 만든다는 것, 그만큼 업을 쌓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결국, 세자께서는 이덕형을 왜군에 사신으로 보냈다. 하지만 끝내 왜장 유키나가와 기요마사는 항복 권유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어쩔 수 없다는 듯, 세자께서는 무거운 심정을 억누르며 신립에게 명했다.


“지금이 바로 우리가 기다려 온 순간이오. 저들에게 지옥을 보여주시오.”


(중략)


권주를 마다하고 벌주를 받은 두 왜장을 향해, 세자의 호통이 이어졌다.


“첫째, 너희는 항복 권유를 받고도 고집을 부려 수많은 부하의 목숨을 헛되이 희생시켰다. 장수로서 부하의 생명을 소중히 여기지 않은 죄가 크다.”


임진년에 들어와서, 가장 속이 시원한 순간이었다.


- 서애 류성룡의 징비록 중에서


* * *


싸움은 경험이다. 또한, 용기와 배짱이다.

아무도 모르지만, 이혼은 그 모든 걸 잘 갖추고 있었다.

언제부터? 당연히 조선 시대에서부터다.

조선의 왕이 되려면 절대 문약해서는 안 된다.

그건 용상에 앉아서 신하들과 말만 주고받던 영상 등이 주는 편견이었다.

실제로는 새벽부터 일어나 글을 읽고, 칼과 활을 포함해서 무기도 다룰 줄 알아야 했다.

하물며, 광해는 임진왜란도 겪었다. 무력하게 짓밟힌 조선 팔도를 보며, 즉위 후에 틈틈이 힘쓰는 기술을 갈고닦았다.

그래서 고려 최고 무장 이성계의 DNA가 녹아있다는 증명을 종종 하곤 했었다.

자기도 모르는 사이, 전생이 현생에 영향을 미쳤다. 그리고······.


턱.


이혼은 훅으로 들어오는 상대의 주먹을 왼손 가드로 빗겨냈다. 곧바로 오른손 스트레이트. 주먹은 상대의 얼굴에 그대로 꽂혔다.


쾅!


주먹으로 들어오는 작열감이 장난 아니었다.

느낌뿐만이 아니라, 눈으로도 직접 확인했다. 상대는 코뼈가 주저앉은 걸 걱정해야 할 정도로 두둑 소리에 충격을 받고 휘청댔다.


“다음, 덤벼.”


이혼은 나직하게 또 다른 녀석을 보았다.

무리 중 몇몇이 움찔했으나, 인간은 예상보다 훨씬 더 멍청했다.

좀 전에 당한 놈과 어쩌면 그렇게 비슷한 공격을 하는 건지.


턱. 쾅! 두둑!


또 당했고,


턱. 쾅! 두둑!


또 당했다.


“다음!”


세 명이 쓰러지자, 나머지가 뒷걸음친다.

그들도 아는 것이다.

이혼의 한방, 그 묵직한 펀치에 당한다면? 자기들도 지금 쓰러진 세 사람처럼 된다는 것을.

그렇다고 체면이 있었기에 바로 꼬리를 내릴 수는 없었는데, 다행히 누군가 외쳤다.


“선생님 오신다!”


그러자 이들의 입에서 뒤늦게 나오는 허세.


“너, 이 새끼, 이따 봐.”

“죽었어.”


몇몇은 험한 욕설도 내뱉었으나, 이혼은 무심한 표정으로 자기 자리에 돌아가 앉았다.


‘역시, 통하네.’


왠지 모르게, 싸우기 전부터 놈들을 이길 것 같았다.

붙어 보니, 예상보다 더 상대가 안 된다.

하긴 그럴 수밖에 없었다. 삶과 죽음의 경계선에서 목숨을 걸고 싸워왔던 이혼이었으니.

그렇다고 우쭐한 마음도 없다.

그저, 전날부터 세우고 계산한 전략, 즉, 다시 돌아가서 임진왜란을 조기에 종식할 시나리오를 다듬고 또 다듬었다.

재밌는 건, 1교시 수업이 끝난 잠시 뒤에는 이따 보자는 놈과 죽이겠다고 한 놈도 사라졌다는 점.

그걸 보더니, 다른 아이들이 침을 튀기며 보고한다.


“아까 1교시 끝나고 나갔어. 아마 다시 안 들어올 거 같아.”

“근데, 이혼 몰랐다. 너, 공부만 잘한 게 아니었잖아?”

“힘을 숨기고 살았네. 너무 멋있어.”


수업이 다 끝나고 집에 가는 길에는 김류가 고마움을 표시했다.


“도와줘서, 땡큐. 너 아니었으면, 정말 신나게 맞았을 거 같아.”


그 말을 듣자마자, 이혼이 희미하게 미소 지었다.


“네가 용기를 내지 않았다면, 나도 참견 안 하려고 했지.”


진심이었다. 악동들이 폭력을 행사하기 일보 직전에 김류가 찌질했다면 그대로 둘 생각이었다.


“그냥, 맞아도 죽자. 이런 생각이 들었어. 예전에 없던 용기가 나도 모르게 생긴 거지.”

“그보다는 너도, 나도 전생에 영향을 받는 거 같아.”

“전생에 영향을 받아?”

“그래. 조선의 김류는 목에 칼이 들어와도, 뒤로 물러서는 놈은 아니었잖아? 두 번 과거에 갔다 오니, 전생의 용기 있는 김류의 성격이 너한테 물들기 시작한 거지.”

“아······.”


이혼의 말은 사실이었다. 고집불통이었지만, 김류는 자기가 믿는 신념을 지키기 위해서 목숨을 거는 사람이었다.


“그러네. 나는 그런 사람이었지.”


김류는 전생의 자신을 떠올렸다. 괜히 기분이 좋아지고 자신감도 생긴다.

단, 한 번에 전생의 김류가 될 순 없을 듯싶었다.


“그러니까 다음에는 네가 한 번 애들이랑 붙어봐.”

“헐, 그건 아니지. 현생의 김류가 18년 이상 살아온 찐따 같은 인생을 벗어던질 시간이 좀 더 필요하단 말이지.”

“그럼, 내일은 어쩔 건데? 그다음 날은? 그리고 그다음 날은? 언제까지 내가 대신 싸워줄 순 없잖아.”

“그, 그렇지.”


곰곰이 생각하던 김류가 대안을 떠올렸다.


“안 되겠다. 오늘부터 검도를 배워야겠어. 이거, 잘하면 과거로 돌아가서 써먹을 수도 있잖아?”

“굿. 좋아.”

“야, 너 좀 재수 없다? 설마 나만 이렇게 노력해야 하는 거야?”

“아니지. 나는 네 수준의 밀덕이 되기 위해서 오늘부터 잠도 줄이고 공부하려고.”

“뭐, 그렇게까지······.”

“해야 할 거 같아. 우리가 알고 있는 역사, 그렇게 많이 변하지 않았잖아?”


다른 건 몰라도, 광해는 여전히 혼군으로 남았다. 성군으로 남을 기록을 위해서, 당장은 전쟁 영웅이 되어보려고 한다.

김류도 마음을 굳게 먹고 고개를 끄덕인다.


“알았다. 나는 검도, 너는 역덕이나 밀덕 수준이 되면, 그때 가자.”

“틈틈이 스터디도 하자. 플랜 A만 짜서는 왠지 모르게, 역사가 반복될 거 같단 말이야.”

“맞아. 그것도 좋은 생각이네.”


어차피 정지된 과거다. 다시 가는 방법을 알았으니, 굳이 서두를 필요까지는 없었다.

그보다는 더 철저히 준비하는 게 나을 듯했다.

결국, 두 사람은 석 달이나 더 지나서, 과거로 갈 준비가 완료되었다.

실은 완벽하게 다 된 것도 아니었다.

어느 날, 김류가 풀이 죽은 목소리로 제안했다. 자기는 격투 실력과 담을 쌓은 것 같다고.

석 달 동안, 검도 실력이 하나도 늘지 않았다고.

그래서 몸이 아닌, 정신적으로 지쳐간다고.


“차라리 나는 그냥 조선의 제갈량이 될게······.”


그사이 이혼은 한국 최고의 대학교에서 역사학과에 다니는 신입생으로, 김류는 무늬만 재수생인 백수의 신분으로 과거를 공부하고 준비해 왔다.

이혼도 더는 못 기다릴 것 같아서, 웃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그럼, 나는 조선의 무엇이 되어야 하나?’


반복된 질문이지만, 답은 변함없다.

성군이 되겠다. 세종대왕과 비견될 수 있는.

이혼은 주먹을 꽉 쥐었다.


* * *


다음 날, 세시. 둘은 각자의 묘 앞에 섰다. 그리고 시간 여행에 들어갔다.

이미 해본 거라, 문제는 없었다.

다만 도착하자마자 이혼은 기다리던 게 없어졌다는 걸 깨달았다.


‘타이머가 없다?’


진짜 본 게임이 시작되면, 다시는 현실로 못 돌아간다는 걸까?

이걸 따져보기도 전에 신료들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저하, 좀 쉬어갈까요?”


어렴풋이 지난번 기억이 떠오른다. 현재 광해 일행은 충주성까지 가다가 역참에서 잠시 멈췄다.

그리고 지난번에 이순신의 승전보를 듣다가, 이혼이 졸며 현실로 의식이 이동했다.

즉, 지금 신하들은 자신을 걱정해서 쉬자고 한다. 당연히 광해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럴 수 없소! 지금 왜적에 짓밟히며 고통을 호소하는 백성들의 울부짖음이 내 귓가에 들려오는 것 같소!”


이순신의 승리는 두 가지 심리 상태를 불러올 수 있었다.

하나는 드디어 첫 번째 승리로 인해 사기 진작이 되었다는 점, 다른 하나는 그것이 주는 느슨함이었다.

광해는 그 부분을 입에 올렸다.


“더구나 우리 수군의 승리가 길게 보면 좋을 수 있으나, 단기적으로는 적의 북진 속도에 영향을 줄 수 있소. 만약 보급선에 문제가 생겼다면, 한양을 서둘러 점령하고자 할 거요. 이는 우리가 원하는 장소에서 적과 싸울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하오.”

“아······.”

“그렇지요······.”


광해의 말을 인정하면서도, 몸이 피곤한 것은 어쩔 수 없는 법.

신료들의 대답하는 목소리도 작았으며, 태도도 미온적이었다.

그러나 신립은 아니었다.


“지당하신 말씀입니다. 지금 왜적들에게 핍박받는 백성들한테는 일각이 여삼추요, 충주에 빨리 당도한 병력은 혼란스러울 수도 있습니다. 그러니, 휴식 시간을 최소화하며 한시바삐 움직이는 게 나을 듯싶사옵니다.”


지금 여기에서 가장 높은 사람은 세자 광해요, 병력을 직접 지휘할 자는 삼도 순변사 신립이다.

둘이 고삐를 조이니, 신료들은 어쩔 수 없이 허둥지둥 요기한 다음 바꿔탈 말에 올라탔다.


“휴······.”

“하아······.”


원래 사람이란 고된 것을 멈춘 뒤에 다시 시작할 때 힘이 든다.

지금 신료들의 마음이 그러해서, 자기들도 모르게 한숨이 튀어나온다.

그 심정도 모른 채, 신립이 재촉했다.


“자, 그럼 출발하겠습니다!”


그 후에도 종종 쉬어가긴 했으나, 빠르게 말을 달린 덕분에 이날 밤 충주에 도착할 수 있었다.

힘들었지만, 광해의 얼굴에 잔잔한 미소가 흘렀다.


‘반나절 빨리 당도했다.’


현실에서 본 광해의 조일전기에 따르면 4월 25일 아침에 도착했던 충주성.

오늘이 4월 24일 밤이었으니, 이 작은 차이가 큰 결과를 만들 수 있을 듯싶었다.

그게 바로 광해가 제안한 전술 회의였다.


* * *


만약 현대였다면, 광해가 밀어붙여도 회의를 미루자는 의견이 속출했을 것이다.

그만큼 지금 신료들은 피곤했다. 심지어 신립마저 얼굴에 피로한 그늘이 드리워질 지경이었다.

그걸 알고도 광해는 반드시 회의에 들어가야 한다고 말했고, 그 첫 마디는 신료들의 어안을 벙벙하게 하는 일기예보였다.


“오는 길에 하늘을 보니, 내일부터 흐리고 하루 이틀 정도 지나서 비가 올 것 같소.”


한 점 구름 없이 맑은 하늘이었다. 충청도에 들어선 후에는 저녁이었지만, 습한 기운이 하나도 느껴지지 않았고.

그런데 내일부터 흐리고 조만간 비가 내린다고?


‘그렇게 보지 마시오. 내가 쓴 일기에서 봤소이다.’


광해는 대신들의 황당한 눈빛을 무시한 뒤에, 이렇게 날씨라는 밑밥을 깐 이유를 풀어가기 시작했다.


“도 순변사.”

“네, 저하.”

“이곳 충주성에 이미 도착한 병력, 그리고 앞으로 가장 먼저 도착할 병력은 기병일 거요.”

“물론이옵니다.”


당연한 질문, 당연한 대답. 한양에서 내려오기 전에, 신립은 제승방략에 따라, 충주성에 소집 명령을 내렸다.

그래서 인근의 기병이 벌써 도착해 있었고, 앞으로도 속속 기병이 먼저 도착할 게 분명했다.


“그런데 만약에 우중에서 전투가 벌어진다면? 기병으로 가능하겠소?”

“그건······.”


바로 답하지 못하는 신립.

실은 기병전에 자신이 있었던 그라서, 이미 마음속에 전술을 그리고 있었다.

장소는 탄금대, 배수의 진을 쳐서 왜적을 맞이한다는 게, 그의 계획이었다.


“경험이 없는 나도, 비가 오면 진창에서 전투를 치르는 게 쉽지 않다고 아오. 도 순변사는 어떻게 생각하시오?”

“비가 온다면······, 저하의 말씀이 옳사옵니다.”

“해서, 오는 길에 내가 장소를 생각해 봤소.”

“그곳이 어디인지······?”

“문경새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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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 물속에서, 바다에서 - 5 +3 24.08.18 1,503 48 11쪽
45 물속에서, 바다에서 - 4 +2 24.08.17 1,515 49 12쪽
44 물속에서, 바다에서 - 3 +1 24.08.16 1,550 49 12쪽
43 물속에서, 바다에서 - 2 +2 24.08.15 1,593 48 12쪽
42 물속에서, 바다에서 - 1 +1 24.08.14 1,652 52 13쪽
41 미리 보는 화력 조선 - 8 +1 24.08.13 1,655 50 12쪽
40 미리 보는 화력 조선 – 7 +3 24.08.12 1,608 49 11쪽
39 미리 보는 화력 조선 - 6 +4 24.08.11 1,607 48 11쪽
38 미리 보는 화력 조선 - 5 +3 24.08.10 1,636 49 11쪽
37 미리 보는 화력 조선 – 4 +3 24.08.09 1,626 47 11쪽
36 미리 보는 화력 조선 - 3 +3 24.08.08 1,644 45 11쪽
35 미리 보는 화력 조선 - 2 +4 24.08.07 1,670 46 11쪽
34 미리 보는 화력 조선 - 1 +3 24.08.06 1,746 46 11쪽
33 전세 역전의 조짐 - 8 +4 24.08.05 1,729 46 12쪽
32 전세 역전의 조짐 - 7 +2 24.08.04 1,679 48 12쪽
31 전세 역전의 조짐 - 6 +2 24.08.03 1,662 48 11쪽
30 전세 역전의 조짐 - 5 +2 24.08.02 1,723 46 11쪽
29 전세 역전의 조짐 - 4 +3 24.08.01 1,690 48 11쪽
28 전세 역전의 조짐 - 3 +2 24.07.31 1,710 51 12쪽
27 전세 역전의 조짐 – 2 +4 24.07.30 1,758 50 12쪽
26 전세 역전의 조짐 – 1 +3 24.07.29 1,779 50 11쪽
25 세자는 전쟁 영웅 – 8 +2 24.07.28 1,795 46 12쪽
24 세자는 전쟁 영웅 - 7 +2 24.07.27 1,731 49 11쪽
23 세자는 전쟁 영웅 - 6 +3 24.07.26 1,733 48 10쪽
22 세자는 전쟁 영웅 - 5 +2 24.07.25 1,744 47 13쪽
21 세자는 전쟁 영웅 - 4 +3 24.07.24 1,760 49 12쪽
20 세자는 전쟁 영웅 - 3 +2 24.07.23 1,757 47 13쪽
19 세자는 전쟁 영웅 - 2 +2 24.07.22 1,761 45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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