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혼 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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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7.06 0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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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자는 전쟁 영웅 - 4

DUMMY

조방장 변기의 유인에 걸려든 가장 앞쪽의 병력은 대략 3백 기마대. 그들은 여기까지 오는 동안, 승승장구했기에 오늘도 승리를 의심하지 않았다.

하지만 협곡이 끝나는 곳. 그들을 기다리는 병력을 보며 화들짝 놀랐다.


“뭐, 뭐냐?”

“저, 적이다!”


일본의 기마병을 이끄는 장수 몇은 당황했다.


‘이, 이런······.’

‘함정이다.’


하지만 늦었다. 이미 기호지세. 즉, 호랑이 등에 올라탄 형국이었다. 어쩔 수 없이, 아니, 얼떨결에 조선의 기마대를 들이받으라고 명령했다.


“그대로 뚫고 간다!”

“전군, 돌격!”


이것은 최악의 선택이었다. 하필이면, 이들 앞에 조선 최고의 무장 신립이 딱 버티고 있었다.

오래 참았다. 몸이 근질근질했다. 이에 신립은 검을 높이 올리며, 말의 옆구리에 힘을 가했다.


“전군 돌격!”


비록 여기가 신립이 맞붙길 바란 평원은 아니었으나, 좁은 곳에서 넓은 곳으로 튀어나오는 상대 기마병을 보고 온몸의 투지가 들끓는다.


두두두두!


함께 달려가는 부하 장수들과 병사들도 같은 기분이었을 것이다.

사실 오늘은 그동안 당했던 아군의 복수를 하는 날이라고 여겼을까? 단 한 명도 일본의 기마대와 충돌을 두려워하는 이가 없었다.

물론 그 누구보다도 앞에 나선 이는 용장 신립이었다.


“비켜라!”


촤아아아악!


신립의 검이 사위를 휩쓸었다. 여진을 벌벌 떨게 했던 북방의 전투 이후에도 그는 연마를 게을리하지 않았다. 장수로써 정점을 지나고는 있지만, 아직은 힘을 쓸 수 있는 마흔다섯.

힘과 기교, 용기와 배짱이 어우러졌다.

그렇게 휘두른 장검.


휙! 촤악!


어쩌면 가장 앞에 선 왜장의 목이 즉각 몸과 분리된 건 당연지사였다.


“컥!”

“와아아아!”


이것이 시작이었다. 도 순변사 신립도, 조방장 변기도, 그 밖에 장수들도, 그리고 조선 팔도에서 모인 기마 병력도 신이 나서 무기를 휘두르며, 적을 해치웠다.


“죽어라!”

“이쪽이다!”

“어딜 도망가느냐!”


기마전이 그렇듯, 초반이 중요했다. 이미 함정에 빠졌다는 걸 안 순간, 적은 당황했다. 다시 말해, 준비도 하지 않은 상황에서 맞부딪치는 것 자체가 자살 행위였다.

그렇지만 일본 기마대의 정신적인 회복력은 놀라웠다. 왜장들이 계속 죽어 나가고, 지휘관의 공백이 이루어졌는데도 잘 싸운다.


‘이놈들, 독하다!’


실상, 숫자도, 사기도, 준비도, 조선이 우위에 있었다. 패배는 일본이 응당 맞이해야 하는 결과였다. 그런데도 너무나 잘 버티고 있었다.

얼핏 봐도, 거의 하나가 몇을 상대할 수 있는 전투력이었다. 이에 신립은 속으로 적잖이 놀랐다.

물론 그뿐이다. 다른 건 몰라도, 숫자에서 중과부적이었다.


촤아아아악!


결국, 신립이 마지막으로 검을 휘두른다.


“컥!”


그리고 적의 목을 날리며 아군의 사기를 북돋웠다.


“이겼다!”

“와아아아!”


다만 싸움이 끝난 게 아니었다.


“어?”

“또 온다!”


곧바로 기마 부대를 뒤늦게 좇아온 일본의 보병이 발견되었다.


‘이번에는 압도적으로 쓸어버린다!’


신립의 입꼬리가 위로 올라가며 다시 한번 명령을 내린다.


“포로는 필요 없다! 단 한 놈도 놓치지 말고, 모두 죽여라!”

“와아아아!”


이들은 이미 왜적의 만행을 들었다.

항복을 거부하면, 성안에 있는 양민을 전부 죽였다고 했다.

조선 병력은 물론 백성의 코와 귀를 베어, 전공을 자랑한다고 했다.

처음 들었을 때는 알 수 없는 두려움에 휩싸였으나, 지금 순간은 가슴 깊은 곳에서 타오르는 분노가 불길이 되었다.


촤아아아악! 촤아아아악! 푹! 푹! 푹!


다시 달리는 인마. 대부분 검과 창을 들고, 적을 베고 찔렀다.

그런데 여기서도 신립은 살짝 놀랐다. 보병인데도, 왜적이 잘 버텼기 때문이다.


‘허······.’


기습에 걸렸다는 걸 알고 당황했다. 병종의 우열로 인해서 밀리기도 했다. 하지만 왜놈들은 전투를 위해 태어난 이들 같았다.

끝내는 패색이 짙어진다. 그러면서 저항이 사라지고, 무기를 버리고 엎드리는 적들이 생겨났지만.


‘이런 놈들이 15만이라고?’


신립은 살짝 질리는 기분이 들었다. 그나마 비굴하게 두 손으로 싹싹 비는 왜적들을 보면서, 승리감이 생기기 시작했다.


“살려주시오!”

“제발, 목숨만은······.”


비록 포로를 남기지 말고 다 죽이라고 명령했지만, 신립은 슬슬 공격을 멈추게 했다.


“그만!”


주변 종사관들이 복명복창했다.


“멈춰라!”

“공격 중지!”


신립이 다시 명령을 내렸다.


“항복한 놈들을 즉시 포박하라!”


그런 다음, 남쪽으로 뻗은 절벽을 향해 눈길을 던졌다. 마치 그곳에 있는 누군가를 떠올리듯. 그 사람이 바로 광해였다.


‘저하께서는 진정 제갈공명의 화신이신가?’


충주성에서 나눴던 광해와의 대화도 머릿속에서 계속 부유한다.


- 문경새재에서 가장 좁고 깊은 협곡이 있소. 도 순변사는 그곳이 끝나는 곳에서 나의 신호를 받으면, 일단의 병력을 보내서 적을 유인하시오. 그런 다음, 공이 원하는 기마전으로 적을 궤멸시키면 되오.

- 하면, 저하께서는······.

- 좀 전에 말했던 그곳에서 적이 유인되는 순간 허리를 끊을 것이오. 일이 성공하면, 아마도 이만이 넘는 적의 병력을 절반 이상으로 줄일 수 있을 것 같소.


너무 확신하듯이 말하는 광해의 말을 듣고 의문이 없진 않았다. 하나, 놀랍게도 광해의 전술은 한 치의 어긋남 없이 다 맞아떨어졌다.

오히려 세자의 말을 듣지 않았으면 큰일 날뻔했다.


‘이놈들, 만만치 않다.’


왜적은 어떤 의미에서는 북방의 여진보다 더 싸움에 도가 튼 놈들이었다. 만약 좀 전에 전투가 기습이 아닌, 정면 승부였다면?


‘과연 우리가 승리할 수나 있었을까?’


신립은 장담할 수 없다고 여겼다. 그랬기에 광해한테 더 탄복했다.

이제 광해의 전략을 마지막 한 가지만 더 확인하면 된다. 이는 잠시 후에 협곡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직접 눈으로 볼 수 있었다.

그나마 화살에 꿰뚫려 죽은 이들의 상태는 양호했다. 하나, 파편에 갈가리 찢기고 뚫린 참혹한 시산혈해를 보고 저절로 눈살이 찌푸려졌다.

끝도 없이 펼쳐진 사체의 숫자를 대충 헤아려 봐도, 수천이 넘는 듯했다.

생지옥이 따로 없었으나, 전장의 참상을 느끼기도 전에 저 앞에서 누군가가 달려왔다.

자세히 보니, 권율이었다.


“아니, 왜 혼자 오십니까?”

“도 순변사! 서둘러 아래쪽으로 이동해야겠소!”

“그게 무슨?”

“저하께서 패퇴한 왜적을 쫓아, 끝장을 보려고 하오. 하여, 도 순변사에게 기마대를 끌고 뒤를 따르라 명하셨소이다.”


오늘, 그야말로 대승을 거두었다. 한데, 광해의 욕심은 여기서 멈추지 않은 모양이다.


‘좋다. 이왕 이렇게 된 거, 내가 저하의 칼이 되리라.’


신립도 야심이 있다. 가만히 보니, 세자는 조만간 전쟁 영웅이 될 것 같다. 그렇다면, 모든 문무 대신과 만백성의 지지를 한 몸에 받을 수밖에 없다.

그땐, 전공을 가장 많이 세운 이를 중용하겠지. 이런 각오로 신립이 앞으로 나아간다.


* * *


그 시각, 퇴각한 기요마사의 병력을 쫓던 광해와 천여 명의 병력 앞에 일단의 부대가 모습을 드러냈다.


“이, 이런······. 하필, 여기서······?”

“아직, 도 순변사도 당도하지 않았는데······.”

“그만! 모두, 저하를 보호해라!”


수가 적긴 했으나, 누가 봐도 왜적의 모양새였다. 이 때문에 광해를 둘러싼 조방장들의 표정에 낭패감이 떠올랐다.

하긴, 매우 뜻밖일 수밖에 없었다. 적이 도주에 여념이 없을 줄 알았는데, 퇴각 중에 반격을 꾀한다?

더 의외인 것은 광해였다. 그는 자신을 둘러싼 조방장들 사이로 발을 내딛더니, 가만히 적을 들여다보면서 입꼬리를 들어 올렸다.


“걱정하지 마라. 저들은······, 항왜다.”


실제로 상대는 백기를 들고 있었다.

그렇다고 해도, 성큼성큼 걷는 광해를 보며 다른 신하들이 놀라서 그의 뒤를 따라붙었다.


“저, 저하!”

“위험하옵니다!”

“괜찮다. 저들은 항왜라도 그러는구나. 저 백기를 봐라. 항복을 뜻하는 것이다.”


호위 무관들도 소리를 질렀다.


“아무리 그래도······.”

“어찌 그렇게 믿으십니까? 저하, 조심하셔야 하옵니다.”


그들과 함께 따라붙은 류성룡 등도 노파심에 한 마디를 꺼냈다. 그렇지만 광해의 걸음걸이에는 거침이 없었다.

그리고 잠시 후, 상대를 확인하자 입꼬리를 들어올리며 말했다.


“나는 조선의 국본, 세자다.”


곧바로 정체를 밝힌 광해.

그러자 항왜를 끌고 온 자도, 그의 부하들도, 심지어 광해를 따라온 호위 무사와 류성룡도 눈을 치켜뜨고 말았다.

그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언어가 일본말이었기 때문이다.

어눌한 일본어였으나, 반응은 즉각적이었다.


털썩!


항왜 장수는 무릎을 꿇었으며, 그 부하들도 뒤를 이었다.


털썩! 털썩! 털썩!


그리고 곧바로 항왜 장수의 품속에서 흘러나오는 서찰.


“저하······.”


왜장 역시 조선말을 틈틈이 익혀왔다. 귀화하면, 언젠가 조선의 임금이나 왕족을 만나리라 생각했기에.

그 준비로 세자의 호칭을 부를 수 있었고, 늘 지니고 있던 서찰 또한 내밀 수 있었다.

다만 광해는 그가 내민 서찰을 보자마자, 묘한 미소를 내보였다.


‘사야가, 오랜만이다.’


원래의 역사에서 조선 이름인 김충선으로 더 알려진 사야가.

광해가 그를 모를 리 있겠는가.

사야가는 아버지의 조선에 귀화하여, 광해의 시대에도 중하게 쓰였으며, 심지어 인조 시절 병자호란에서도 활약했던 장수다.


‘임진왜란 때 더 대단했지.’


사야가는 귀순 초반부터 경상도에서 의병과 함께 일본군을 무찔렀으며, 곽재우, 이순신, 권율, 김덕령 등에게 적의 장수와 전략·전술 등을 알려주기도 하였다.

다른 건 몰라도, 일본 조총의 비기인 철포와 화약 제조법, 그리고 조총을 활용한 전술 등을 조정에 제출했다.

이를 기꺼이 여긴 선조가 조선 조총 부대를 신설하여, 사야가에게 맡긴 것은 물론이다.


‘이제 내가 앞으로 다스릴 조선에서, 너는 더 중하게 쓰일 것이다.’


광해는 현실에서 읽었던 사야가, 즉, 김충선의 모하당문집도 이미 읽은 후였다.

실상, 지금 자신에게 내민 문서는 밀양 부사 박진에게 가야 하는 것. 그러나 다시 과거로 돌아온 광해로 인해서 이렇게 만남의 역사가 틀어졌다.

역시나 서찰에 적힌 내용은 사야가의 항복 문서였다. 광해는 아예 그것을 낭랑한 목소리로 읽어주었다.


“임진년 4월, 일본국 선봉장 사야가는 백기를 들고, 삼가 머리 숙여 조선국 세자 저하께 말씀을 올리나이다.

지금 제가 귀화하려는 이유는 지혜가 부족해서도 아니요, 힘이 모자라서도 아니며, 용기가 없어서도 아니고, 무기가 날카롭지 않아서도 아닙니다.

저의 병사와 무기의 튼튼함은 백만의 군사를 당할 수 있고, 계획의 치밀함은 천 길의 성곽을 무너트릴 만합니다.

그저, 저의 소원은 예의의 나라, 조선에서 백성이 되고자 할 뿐이니, 세자 저하께서는 제 귀화를 받아주시기를 바랍니다.”


중간에 ‘조선국 세자 저하’란 호칭은 광해가 고의로 끼워 넣은 것이었다.

당연하게도, 그 호칭을 포함해서 전체 내용을 류성룡 등에게 알리려는 의도였다.

역시나 광해가 서찰을 읽는 동안, 주변 사람들의 반응은 다양했다.


“진짜 항복······? 믿을 수 있겠소?”

“일단, 저 무기를 보시오. 조총이요. 만약 숨어서 우리를 기습했다면, 큰 피해를 줬을 거요.”

“하긴······.”


이처럼 여러 신하의 반응을 본 후, 광해가 사야가를 보며 말했다.


“너는 이제 조선의 백성이다.”


현실에서 제2외국어로 일본어를 공부한 광해였다. 고등학교 3년 과정밖에 안 되었지만, 머리 좋은 이혼이 일본어를 습득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더구나 이번에 현실로 가서 석 달 동안 틈틈이 일본어를 더 훑었으니, 어눌하더라도 소통이 어렵지 않았다.


“사야가.”

“네, 저하.”

“너에게 새로운 이름도 하사한다. 성은 김이요, 이름은 충선이다.”


동시에 속으로 말했다.


‘내, 조선 최초의 철포대를 너에게 맡기겠다.’


현실에서의 3개월, 이혼은 조총 부대 전술 운용을 그렇게 많이도 공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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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 물속에서, 바다에서 - 4 +2 24.08.17 1,514 49 12쪽
44 물속에서, 바다에서 - 3 +1 24.08.16 1,549 49 12쪽
43 물속에서, 바다에서 - 2 +2 24.08.15 1,592 48 12쪽
42 물속에서, 바다에서 - 1 +1 24.08.14 1,651 52 13쪽
41 미리 보는 화력 조선 - 8 +1 24.08.13 1,655 50 12쪽
40 미리 보는 화력 조선 – 7 +3 24.08.12 1,608 49 11쪽
39 미리 보는 화력 조선 - 6 +4 24.08.11 1,607 48 11쪽
38 미리 보는 화력 조선 - 5 +3 24.08.10 1,636 49 11쪽
37 미리 보는 화력 조선 – 4 +3 24.08.09 1,625 47 11쪽
36 미리 보는 화력 조선 - 3 +3 24.08.08 1,644 45 11쪽
35 미리 보는 화력 조선 - 2 +4 24.08.07 1,670 46 11쪽
34 미리 보는 화력 조선 - 1 +3 24.08.06 1,746 46 11쪽
33 전세 역전의 조짐 - 8 +4 24.08.05 1,729 46 12쪽
32 전세 역전의 조짐 - 7 +2 24.08.04 1,679 48 12쪽
31 전세 역전의 조짐 - 6 +2 24.08.03 1,662 48 11쪽
30 전세 역전의 조짐 - 5 +2 24.08.02 1,723 46 11쪽
29 전세 역전의 조짐 - 4 +3 24.08.01 1,690 48 11쪽
28 전세 역전의 조짐 - 3 +2 24.07.31 1,710 51 12쪽
27 전세 역전의 조짐 – 2 +4 24.07.30 1,758 50 12쪽
26 전세 역전의 조짐 – 1 +3 24.07.29 1,778 50 11쪽
25 세자는 전쟁 영웅 – 8 +2 24.07.28 1,795 46 12쪽
24 세자는 전쟁 영웅 - 7 +2 24.07.27 1,731 49 11쪽
23 세자는 전쟁 영웅 - 6 +3 24.07.26 1,733 48 10쪽
22 세자는 전쟁 영웅 - 5 +2 24.07.25 1,743 47 13쪽
» 세자는 전쟁 영웅 - 4 +3 24.07.24 1,760 49 12쪽
20 세자는 전쟁 영웅 - 3 +2 24.07.23 1,757 47 13쪽
19 세자는 전쟁 영웅 - 2 +2 24.07.22 1,760 45 11쪽
18 세자는 전쟁 영웅 - 1 +2 24.07.21 1,823 49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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