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법 못 쓰는 마법사에게 드래곤이 찾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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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7.06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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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10 2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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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7.29 2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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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화 수학여행 (2)

DUMMY

마니또가 시작되고, 각자의 숙소 문 앞에 종이로 만든 작은 우편함을 설치했다.


거창하게 말해서 우편함이지, 편지봉투 하나 갖다 놓은 정도였다.


유치하지 않아야 한다.

내가 범인임이 적나라해선 안 된다.

그러면서도, 영국에서 시작된 행운의 편지처럼 신경을 거슬릴만한 일.


내가 원한 건 딱 그 정도다.


나는 김주혁에게 쪽지를 썼다.


마니또는 다른 사람에게 들켜선 안 된다.


따라서 취침 시간 직전, 모두가 방에 들어가 같은 방 친구들과 하하호호 놀고 있을 때 복도를 걸었다.

문 앞의 우편함들을 몇 개쯤 지나치자, ‘김주혁’이라는 이름이 적힌 우편함을 발견할 수 있었다.


나는 은밀하게 쪽지를 넣었다.


지금껏 날 괴롭힌 하찮은 녀석에게 내 진심을 전했다.


<적당히 깝쳐>


김주혁에게 내 마음을 고백한 뒤 방으로 돌아온 심정은 그냥 그랬다.

사실 뭐 김주혁한테 그렇게 큰 원한이 있는 것도 아니고.

유민혁에 비하면 김주혁은 귀여운 수준이었으니까.


사실 내가 썼다는 것이 밝혀져도 상관없다.

뭐 어쩔 건데. 니가 뭘 할 수 있는데.


따위의 생각을 하며 침대에 누워 잠을 청했다.


[아르르..]


아르는 낯선 곳에서 잔다는 사실이 어색했는지, 괜히 침대 위를 서성거렸다.


그런 아르를 가만히 지켜보다 보니, 나도 모르게 잠에 들었던 것 같다.


눈을 뜨자 새벽이었다. 화장실이 가고 싶어서였는지, 무슨 소리가 들려서 인지는 잘 모르겠다.


확실한 건 모두가 잠든 새벽에 깼다는 사실이고,


아르가 보이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아르야?”


아르가 없다.


침대 위는 물론, 침대 아래와 화장실, 심지어 냉장고까지 열어봤는데 아르가 보이지 않았다.


“아르???”


다들 자는 시간에 큰 소리를 내는 것이 실례임을 알았지만, 그런 것을 생각할 겨를이 없어 큰 소리로 아르를 불렀다.


대체 어디 간 거지?


문을 열고 나갔을 리는 없다. 아르는 잠금장치를 열 줄 모른다.


..모르나?


방문을 벌컥 열자 호텔 복도 특유의 냄새가 느껴졌다.


조용한 새벽의 호텔 복도였다. 영화에서나 봤을 법한.


“아르?”


나는 이성을 찾아 조용한 목소리로 아르를 부르며 복도를 돌아다녔다.


중앙 엘리베이터가 있는 복도쯤에 다다르자, 선생님 한 분이 불침번을 서고 계신 게 보였다.


선생님께 걸리면 이 새벽에 왜 나왔냐고 한 소리 들을 게 뻔하다.


그리고 만약 아르가 여기를 지나쳤다면, 그리고 선생님이 보셨다면 이렇게 평화로운 분위기가 아니었을 테지.


아르가 복도에 없음을 확인한 나는 방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창문 한 틈이 열려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아.


창문으로 나간 건가.


아니 이 자식 창문을 대체 어떻게 연 거야?


창문 앞 테라스에 나오자 어두운 바다가 보였다.


철썩이는 파도 소리가 감성을 자극했지만, 지금은 분위기에 젖어 있을 때가 아니었다.


주위를 둘러보자 밝게 빛나는 호텔 정문과 바다만 보일 뿐이었다.


아르는 많이 날지 못한다. 아직 어린애라 오랜 비행을 할 수는 없다.


가끔 새벽에 사람 없는 공원에서 산책하곤 하면 아르는 가볍게 날아다니는데, 5분 이상 나는 것을 본 적이 없다.


즉, 멀리 가지 못했다.


기껏해야 옆 방 베란다에 침투해 있을 가능성이 크다.


나는 양옆의 베란다를 살폈다.


그러나 베란다에는 윙윙거리며 돌아가는 에어컨 실외기만 있을 뿐, 푸른 짐승은 보이지 않았다.


“하.”


나는 한숨을 푹 쉬며 바닥에 주저앉았다.


큰일이다.


아르는 지능이 낮지 않다. 흔히 키우는 반려동물과는 궤를 달리한다.


하지만 자신의 정체가 들켜선 안 된다는 사실까지는 알지 못한다.


그러니까 민지아랑 카페에 있을 때 가방에서 튀어나왔지.


...민지아?


나는 다시 복도로 뛰쳐나와 옆 방문을 두들겼다.


행여나 자고 있으면 민폐일까, 손가락으로 톡톡톡 두들겼다.


그러자 편한 반팔티와 반바지를 입은 민지아가 문을 열었다.


“어머.”


그러나 내 시선은, 민지아에게 향하지 않았다.


“이런 시간에 숙녀 방에 찾아오는 건..”


“쟤 왜 여기 있어?”


시선이 향한 곳은 바닥에서 육포를 뜯어 먹는 아르였다.


“음.. 글쎄. 뭐가 창문을 자꾸 두들기길래 봤더니 아르던데?”


“아후.....”


나는 손으로 머리를 쓸어 넘기며 말했다.


“아르.”


[!?]


아르가 흠칫하는 표정으로 놀라며 나를 바라봤다.


[아르르!!]


속도 없는 녀석은 나를 보자 바바바 뛰어왔다.


그리곤 폴짝 뛰어 품 안에 날아들었다.


“너 누가 마음대로 돌아다니래.”


나는 싸늘한 표정으로 아르에게 말했다.

그제야 분위기를 눈치 챈 아르는 주눅 든 표정으로 내 품에 고개를 파묻었다.


[끼잉..]


“너무 혼내지 마. 배고팠나 봐.”


그러고 보니 정신이 없어서 아르 밥을 못 챙겨줬던 게 생각났다.


“아휴.. 그럼 날 깨우든가 하지. 마음대로 돌아다니면 어떡해?”


[끼잉..]


**


새벽의 해프닝은 다행히 별일 없이 지나갔다.


수학여행 둘째 날은 바빴다.

하루 종일 돌아다니고, 먹고, 구경하고.


“재밌다. 그치?”


[아르!]


종일 내 옆에 붙어있던 민지아와 에코백 속의 아르는 즐거워 보였다.

이 정도 여행은 특별한 게 아니라고들 한다.

어느 학교든 수학여행을 가면 이 정도 일정은 기본이라고.


하지만 나는 이런 여행이 처음이었다.


꽤.. 재밌었다. 설렜다.


혼자였다면 조금 외로웠을 수도 있지만, 민지아와 아르가 같이 있어 준 덕도 있는 것 같다.


“응. 재밌네.”


그렇게 시간은 순식간에 흘러 수학여행의 꽃. 장기 자랑 시간이 됐다.


강당에 모인 학생들은 무대에 오를 생각에, 혹은 무대를 구경할 생각에 설레 보였다.


한곳에 모여 자신들이 연습한 춤을 점검하는 무리도 있었고,

목을 푸는 건지 소리를 질러대는 학생도 있었다.

어떤 학생은 작은 파이어 볼 세 개를 만들어 저글링을 해대고 있었다.


하지만 이는 나와 상관없는 이야기다.


유민혁이 시켜서 반 아이들 앞에서 노래를 불렀던 기억이 있다.

평소 노래 부르는 걸 즐기지 않던 성격이라, 기억을 더듬어 어디선가 자주 들어봤던 노래를 불렀다.


그리고 학생들은, 조촐한 무대의 가수를 대차게 비웃어댔다.


그날 이후 그 노래가 들려오곤 하면 그날이 떠올라 괴로웠던 기억이 있다.


즉, 무대는 나와 상관없는 일이다.

강당 뒤편에 쪼그리고 앉아 학생들을 구경하는 중이었다.


“야. 나와봐.”


김주혁이 부르기 전까진.


김주혁은 나를 불러내 호텔 앞 조용한 곳으로 데려갔다.


“쪽지, 너지?”


아무래도 내가 적은 쪽지가 들킨 모양인데, 사실 상관없었다.

별로 무섭지도 않고, 심지어 혼자다.

덤벼들기라도 하면 에코백에 있는 아르가 눌러버리면 된다.


“응.”


“걱정 마라. 이제 안 건드릴 거니까.”


김주혁은 발끝으로 바닥을 톡톡 치며 말했다.


이 자식이 어쩐 일이지?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머뭇거리던 순간, 김주혁이 말했다.


“근데 너, 이서하랑 무슨 사이냐? 아니, 걔 뭐냐?”


김주혁의 입에서 나온 건, 생각지도 못한 이름이었다.


“서하? 왜?”


“걔가 나한테 와서 너 건드리지 말라더라. 그런데...”


김주혁은 잠깐의 텀을 두고 말했다.


“너, 걔에 대해서 얼마나 알아?”


나는 갑작스러운 친밀도 테스트에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서하를 얼마나 아냐고?


딸기맛 아이스크림을 좋아하고, 마법을 잘 쓰고, 운동도 잘하고, 재벌 집 딸내미고...


음..


..


이 정도밖에 모르나?


새삼 회의감이 들었다.

서하만큼 나를 챙겨준 사람도 없었고, 나도 왕따를 당하던 와중에 친구를 뽑으라면 서하밖에 없었다.


그런데 서하에 대해 아는 것이라곤, 누구나 알 법한 것들뿐이었다.


“왜?”


어쨌든. 니가 그게 왜 궁금한데?


“걔 좀.. 위험한 것 같더라. 아. 이런 말 해도 되나.”


“뭐가?”


“이서하가 학교 안 나온 지 좀 됐잖아? 근데 결석하기 전날 나를 찾아왔어. 그런데..”


김주혁이 또 머뭇거렸다.

무슨 사춘기 여고생이 고백하는 것도 아니고, 자꾸 머뭇거리는 모습이 의아해 살짝 찡그린 채로 김주혁을 쳐다봤다.


“그때 너 건드리지 말라고 한 거거든. 근데 뭐랄까.. 어떻게 말해야 되지?”


“뭔데 그렇게 뜸 들여? 그냥 말해.”


“우선 평소에 알던 이서하의 모습이 아니었어. 마치 죽어가는 것 같았달까.”


“어?”


나는 눈을 크게 뜨고 김주혁을 노려봤다.


“그게 무슨 말이야. 똑바로 말해.”


“엄청 수척했어. 살이 많이 빠진 건지, 아니 며칠 사이에 살이 그렇게 빠질 수 있나? 거기다 머리색도 조금 희게 바뀐 것 같았고, 무엇보다 마력이 별로 느껴지지 않았어.”


서하가 학교에 결석하는 일은 자주 있었다.

언젠가 2주 만에 학교에 와선, “해외여행 다녀왔지롱”이라고 말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이번엔 결석하기 전부터 분위기가 묘했다. 나한테 말했던 이야기도 이상했고, 무언가 분명 이상함을 풍기고 있었다.


“무슨 일 있었대?”


김주혁은 갸우뚱하며 말했다.


“내가 알겠어? 나야 네가 알 줄 알았지. 그래서 물어본 거잖아. 아니 하여튼 그건 내 알 바가 아닌데, 이상한 기운이 느껴졌어.”


“이상한 기운?”


“응. 마치 사람이 아닌.. 괴물 같았어. 아우라? 카리스마? 뭔지 모르겠는데, 너 건드리지 말라고 하는 모습에서 압도감이 들었어. 감히 거역해선 안 된다는 느낌이 들었달까.”


“그냥 니가 쫄아서 그런 건 아니고?”


김주혁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아니야. 내가 일진들한테 많이 들러붙어봐서 아는데, 그런 애한테 쫄진 않아. 더구나 엄청 약해 보였다니까. 그런데도 불구하고 이상한 감정이 느껴져서 그래.”


김주혁은 자신의 비겁한 내력을 말하면서까지 서하에 대해 말했다.


근데,


“근데, 나한테 뭐 어쩌라고 이런 얘길 하는 거야?”


“뭐 어쩌라는 건 아니고. 그냥 알고 있나 싶기도 하고, 나도 걔가 좀 궁금해져서.”


그때, 강당 쪽에서 환호성이 들려왔다.


“장기 자랑 시작했나. 난 들어간다. 하여튼 안 건드릴 테니까 그렇게 알아라.”


김주혁은 말을 마치고 강당으로 향했다.


멍하다.


무슨 이야기를 들은 거지?


사실, 김주혁이 하는 말을 곧이곧대로 믿을 필요는 없다.


애초에 믿음직한 사람도 아니고, 더구나 나를 괴롭혀왔던 녀석인데.


그러나 서하에 관한 이야기는 흘려들을 수 없었다.


나는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내 서하에게 전화를 걸었다.


[뚜르르... 뚜르르...]


하지만 전화기에선 발신음만이 들려올 뿐이었다.


“하아.”


무슨 일이 있는 거지 대체.


왜 나한텐 말하지 않은 거지.


나도 도와주고 싶은데.


파도가 부서지는 바다를 한참 쳐다보며 서하 생각을 했다.


괴롭히는 녀석들로부터 나를 도와준 일,

유민혁에게 맞아서 생긴 상처를 치료해 줬던 일.

마법 쓰는 걸 알려주겠다며 쉬는 날 찾아왔던 일,

나와 아르를 위해 자기 집 한 켠을 기꺼이 내줬던 일,


많은 일들이 있었다. 그러나 그 일들은 모두, 서하에게 일방적으로 받은 도움이었다.


“서울로 돌아가면, 서하부터 찾아봐야겠네.”


서하를 찾겠다는 결심을 하고 강당으로 돌아온 난, 착잡한 심정임에도 놀랄 수밖에 없었다.


“안녕하세요! 저는 민지아라고 합니다!”


민지아가 무대 위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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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3화 수학여행 (2) 24.07.29 12 0 11쪽
12 12화 수학여행 (1) 24.07.27 16 0 12쪽
11 11화 민지아 24.07.26 19 0 11쪽
10 10화 전투 마법 시험 (4) 24.07.24 20 0 11쪽
9 9화 전투 마법 시험 (3) 24.07.23 21 0 11쪽
8 8화 전투 마법 시험 (2) 24.07.22 22 1 11쪽
7 7화 전투 마법 시험 (1) 24.07.21 28 1 11쪽
6 6화 파이어 크로스 24.07.21 27 0 11쪽
5 5화 유민혁 24.07.15 34 0 12쪽
4 4화 수행 평가 24.07.09 38 2 11쪽
3 3화 아르 (3) 24.07.08 48 3 11쪽
2 2화 아르 (2) 24.07.06 58 2 11쪽
1 1화 아르 (1) 24.07.06 69 3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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