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법 못 쓰는 마법사에게 드래곤이 찾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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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등록일 :
2024.07.06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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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10 2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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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10 2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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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화 이서하 (1)

DUMMY

차가웠다.


살아 있는 사람이라고 보기 어려울 정도로 차가웠다.


큰 식당에서나 쓰는 거대한 냉장고에 들어갔다 나오면 이런 느낌일까.


‘온기가 느껴진다’ 정도가 아니었다.


‘차갑다’였다.


서하의 온몸은 차갑게 식어 있었다.


“아으... 아...”


나는 서하의 팔을 문지르다가, 서하의 심장에 귀를 갖다 댔다.


“...”


희미하게..


희미하게 맥박이 뛰고 있었다.


“살아.. 살아 있어요! 살아 있어요!”


“아는 사이냐?”


“네. 제 친구예요. 제 친구. 어떡해..”


나는 계속해서 서하의 팔다리를 문질렀다.


이게 무슨 효과가 있는지는 모른다.


그저 너무나도 차가운 서하의 몸에 조금의 온기라도 담겼으면 하는 마음에 손을, 팔을, 다리를, 발을 문질렀다.


[끼잉...]


이로스의 손아귀에서 뛰어내린 아르도 바닥에 누운 서하의 몸을 이리저리 돌아다녔다.


“아아.. 으허엉..”


눈에서 뜨거운 눈물이 흘렀다.


짧은 인생을 살아오며 시체도, 죽어가는 사람도 본 적 없는 나였다.


하지만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서하는 죽어가고 있다.


이대로라면 반드시 죽는다.


“어떻게.. 어떻게 좀 해줄 수 없어요?”


나는 서하의 몸을 주물러대며 이로스에게 말했다.


“어떻게든 해줘요. 네? 드래곤이잖아. 뭐 안 돼요? 아무것도 못 해?”


눈물이 얼굴을 타고 뚝뚝 흘렀다.


서하의 회색 티셔츠에 물방울 자국이 맺혀갔다.


“..비켜봐.”


이로스가 쓰러진 서하의 머리에 손을 갖다 대자 화한 빛이 뿜어져 나왔다.


그리고.


움찔-


서하의 손가락이 살짝 움직였다.


“이서하!!!!”


나는 사후경직이라 오해할 수 있을 만큼의 작은 움직임을 보인 손가락을 붙잡았다.


서하의 손은 여기저기 굳은살이 박여 딱딱했다.


그 딱딱한 굳은살 사이로,


온기가 돌아오는 게 느껴졌다.


“구속 마법이네.”


이로스가 한 발치 뒤로 물러서서 말했다.


“구속 마법이요?”


“응. 시전자가 정해둔 구속에 따라 행동해야만 하는 마법.”


처음 들어봤다.


지금껏 인간들의 마법은 물리력을 행사하는 정도에 그쳤다.


대부분 자연의 힘을 끌어다 쓰는 물리력이었으며, 중력이나 염력을 사용하는 사람들은 재능 있는 자들로 여겨졌다.


그런데 구속 마법.


대상의 행동을 억제하는 마법이라니.


“그런 마법이 있나요?”


“응. 이건 레아놈들 특유의 마법인데, 좀 까다로워. 시전자가 아니면 어지간해서 풀기 어렵거든.”


“그럼 지금 서하가 구속 마법에 걸려있다는 말인거죠?”


“그렇지.”


“..무슨 구속인데요? 조건이 뭐에요?”


“그거야..”


이로스가 흥-하는 콧방귀를 뀌며 말했다.


“나도 모르지. 일단 구속의 진행을 살짝 늦춰뒀어.”


그때, 차갑게 식어가던 서하의 신음이 들려왔다.


“아으.. 아..”


“이서하!! 괜찮아?”


“너.. 왜 여기..”


[아르르르!!]


“넌.. 왜 여기..”


서하는 나와 아르를 번갈아 보며 말했다.


그리고,


“...당신은.”


이로스와 눈이 마주쳤다.


“너 뭐냐?”


“...”


“대답해.”


“왜.. 죽이지 않는 거지?”


“어차피 죽을 것 같길래.”


서하는 상체를 일으켜 주저앉은 상태로 말했다.

“하하... 맞는 말이긴 하지.”


“레아의 쥐새끼인가?”


“뭐..”


몇 번이고 들은 이름. 레아.


분명 아르의 행성과 전쟁 중인 행성이라 들었다.


그 말은 즉, 레아 행성에 있는 존재들은


드래곤이라는 말이다.


그 말은 즉, 서하가 레아에서 온 존재가 맞다면


서하가 드래곤이라는 말이다.


“그런 셈이지.”


중학생 때, 유민혁에게 맞고만 있을 수 없던 내가 교무실에 찾아간 적이 있었다.


선생님께 찾아가 자초지종을 설명하자 옆에서 듣던 옆 반 선생님도 거들러 왔는데, 그때 두 사람은 서로 학폭위니, 촉법 소년이니, 교장 선생님이니, 언론이니, 선거니, 중학생이 이해하기 어려운 얘기들을 나눴다.


나는 무엇인가 잘못돼가고 있음은 느꼈지만 끼어들 수 없었다.


감히 내가 끼어들 수 있는 대화가 아니라 느꼈으니까.


지금 상황도 그렇다.


두 사람의 대화에 따르면, 서하는 죽어가고 있으며 레아에서 온 드래곤이라고 한다.


“뭐.. 뭔가.”


두 선생의 대화에 끼어들고자 억지로 화두를 던진 그때처럼, 목소리를 냈다.


“뭔가 잘못된 거 같은데.. 서하가 죽어간다니.. 아니 레아.. 드래곤이라는..?”


서하와 이로스는 경악에 찬 눈빛으로 자신들을 쳐다보는 아르의 양아버지를 봤다.


두 사람, 아니 사람이라 할 수는 없나. 둘의 눈빛은 달라 보였다.


서하의 눈빛에는 미안함이 담겨 있었고,


이로스의 눈빛에는 놀람이 담겨 있었다.


그리고 둘의 눈빛은 같아 보였다.


둘의 눈빛에는 ‘안쓰러움’이 담겨 있었다.


“진짜 몰랐나 보군. 기구한 인연이구나.”


이로스가 말했다.


“...남하루.”


서하가 말했다.


“아니.. 이게 대체...”


내가 말했다.


이해가 되질 않는다.


보통 ‘이해가 안 되네’라는 말은 말다툼하던 상대에게 화를 표출하는 방식으로 쓰이곤 한다.


하지만 지금 나는 분노의 감정이 담긴 ‘이해되지 않음’이 아니다.


정말 이해가 되지 않는다.


이게 대체 무슨 일인지,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


서하가 드래곤이라니.


몇 년 동안 나의 유일한 친구였던 존재가 드래곤이라니.


“그럴 리가 없어요. 서하를 제가 몇 년이나 봤는데요. 얘가 어딜 봐서 드래곤..”


나는 서하의 외형을 가리키며 말했다.


하지만 이는 내 말을 듣는 청자를 보자 어리석은 생각이었음을 깨달았다.


“날 봐도 모르겠어?”


이로스도 분명 사람 형태를 하고 있었으니까.


“드래곤이 인간 형태를 하는 건 특이한 일이 아니야. 오히려 우리는 평소에도 인간 형태로 지내지. 나 같은 덩치들이 행성을 가득 채우면 발 디딜 틈이 어딨겠어?”


이로스는 비행기에서 내린 이후부터 사람 형태를 하고 있었다.


이에 별 의문을 품지 않았다.


드래곤이 폴리모프로 인간의 형태를 띠는 건, 드래곤이 나오는 어떤 이야기에서도 나타나는 일이었으니까.


더구나 마법을 써대고 차원을 이동하는 힘을 가진 드래곤에게 모습을 바꾸는 것쯤이야. 라는 무의식이 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서하는 죽기 직전임에도 인간이었잖아요. 변신이었다면 변신이 풀렸어야 정상 아니에요?”


“폴리모프는 시전할 때 마력이 들지, 유지하는 데는 마력이 들지 않는단다.”


이로스는 내 모든 의문을 봉쇄했다.


의문이라기보다, 서하가 인간이길 바라는 희망이었다고 말하는 게 정확한 표현인 것 같다.


이로스는 내 희망을 봉쇄했다.


할 말을 잃은 나를 지켜보던 이로스는 질문이 끝났음을 짐작했는지 본론으로 들어갔다.


“목적이 뭐지?”


서하가 잔뜩 쉰 목소리로 대답했다.


“목적이라... 내 임무를 말하는 건가?”


“그래. 목적이든 임무든. 왜 지구에 와있냐는 말이다.”


서하는 이로스의 질문에 대한 대답으로 고개를 살짝 돌려 아르를 쳐다봤다.


[아르르..?]


“..후아의 왕자를 찾으러 왔나.”


“...”


서하는 하아- 하는 한숨을 내쉬고 말했다.


“맞긴..해.”


“그런데 왜.”


이로스는 바닥에 쪼그리며 서하와 눈높이를 맞췄다.


“왜 여기서 이러고 있지?”


“그건..”


서하의 눈동자가 이리저리 흔들리더니, 이내 한곳에 정착했다.


그것은 나를 향하고 있었다.


“남하루? 저 녀석이 무슨 상관이지?”


“...”


서하는 말없이 나를 응시했다.


한참의 침묵을 깬 것은 질문이었다.


“남하루.”


“...응.”


“너한테 난 어떤 존재야?”


“..어?”


믿을 수 없는 일들이 일어나는 와중에 질문을 받자 사고가 작동하지 않았다.


하지만 서하가 나에게 어떤 존재냐는 질문에는, 많은 생각이 필요하지 않았다.


“소중한 존재지. 다들 외면하던 나를 지켜준 내 친구.”


“푸흐...”


서하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내 말을 믿어줄 수 있어?”


죽기 직전처럼 보이는 서하는 그 와중에 눈웃음과 입꼬리를 올린 채 말했다.


그런 미소에는, 미소로 응답하는 게 인지상정이다.


“그럼.”


**


세상엔 수많은 행성이 있고, 수많은 생명체가 산다.


세상은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이다. 이는 인(人)에만 해당하는 말이 아니다.


존재들은 싸웠다.


자신의 생존을 위해 목숨 걸고 싸우는 이도 있었고,


싸움을 걸어오는 놈들에게 대항하여 어쩔 수 없이 싸우는 이도 있었다.


그런 싸움이 계속되다 보니, 존재들은 단합하기 시작했다.


자신을 지키기 위해.


자신의 힘을 키우기 위해.


단합의 목적은 싸움의 근절이었다.


더 이상 싸우고 싶지 않은 존재들이 공동체를 이룬 것이었다.


하지만 현실은, 개인의 싸움이 공동체의 싸움으로 바뀌었을 뿐이었다.


달라진 것은 없었다.


공동체는 싸웠다.


자신들을 지키기 위해.


자신들의 힘을 키우기 위해.


살아남기 위해.


이러한 생존을 위한 투쟁들 가운데, 그저 ‘유희’를 위해 싸우는 존재들도 있었다.


“그게 우리, 레아의 전사들이다.”


유각은 자신의 까만 뿔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레아는 강하다. 생존을 위해 몸부림칠 필요가 없다.”


그리고 수백은 족히 될 것 같은 수의 드래곤이 유각의 말을 듣고 있었다.


유각은 자신을 쳐다보는 수백의 눈동자 앞에 일어섰다.


“죽여라.”


그들은 경외심을 담아 유각을 쳐다봤다.


“눈앞에 보이는 적들을 모조리 죽여라.”


유각이 발로 지면을 쿵- 찍었다.


그러자 온 세상이 흔들리는 것 같은 진동이 느껴졌다.


“그들을 죽이는 목적은, 생존이 아니다.”


유각이 날개를 펼쳤다.


그러자 유각의 날개에서 거대한 광풍이 일었다.


흉흉한 기운이 맴도는 광풍이었다.


“우리가 강자이기 때문이다.”


“오오..”


여기저기서 작은 탄성이 터져 나왔다.


“우리는 강하다. 강한 자는 약한 자를 다스릴 수 있다. 심지어 목숨조차도.”


유각은 단상 위를 슬슬 걸으며 말했다.


“전율해라.”


“희열해라.”


“사무치도록 즐거워해라.”


단상을 한 바퀴 돈 유각은 다시금 단상의 가운데 서서 말했다.


“너희들이 강자인 것에.”


“우와아아!!!!”


조금씩 터져 나오던 탄성이 함성이 되었다.


유각의 연설은 성공적으로 마무리되었다.


수백의 청중 앞에서 연설한다는 것은 누구나 긴장할 만한 일이지만, 유각은 그렇지 않았다.


이번이 몇 번째 연설인지 기억조차 나지 않기 때문이다.


유각은 전투 교관이다.


그것도 수십번의 수료를 마친 베테랑 교관이다.


검은 뿔과 날개에서 뿜어져 나오는 특유의 흉흉한 바람은 유각에게 수련자들을 압도할 카리스마를 지니게 했다.


그러나 유각은 카리스마만 가진 껍데기가 아니었다.


수백 년을 살아오며 많은 전쟁을 치른 레아의 영웅이었기 때문이다.


유각은 어디서나 칭송받았다.


거리를 거닐면 모두가 유각을 쳐다봤고, 몇몇 식당에선 유각에게는 돈을 받지 않기도 했다.


유각은 이러한 관심들과 자신의 명성이 자랑스러웠다.


비록 ‘그저 즐겁기 때문에’ 행했던 전쟁과 살생들이었지만, 누군가 자신을 칭송한다는 것은 누구에게나 즐겁기 마련이다.


하지만 그런 유각의 시선을 사로잡은 이가 있었다.


누구도 그에게 보내지 않았던 시선을 보내는 드래곤.


‘경외’가 아닌 ‘경멸’.


‘존경’이 아닌 ‘혐오’.


그 드래곤의 이름은 유리.


유난히 딸기 향을 풍기는 드래곤이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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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 못 쓰는 마법사에게 드래곤이 찾아왔다 연재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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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7화 이서하 (1) 24.08.10 7 0 11쪽
16 16화 이로스 (2) 24.08.09 10 0 11쪽
15 15화 이로스 (1) 24.08.06 12 0 12쪽
14 14화 수학여행 (3) 24.08.05 14 0 12쪽
13 13화 수학여행 (2) 24.07.29 12 0 11쪽
12 12화 수학여행 (1) 24.07.27 16 0 12쪽
11 11화 민지아 24.07.26 20 0 11쪽
10 10화 전투 마법 시험 (4) 24.07.24 20 0 11쪽
9 9화 전투 마법 시험 (3) 24.07.23 22 0 11쪽
8 8화 전투 마법 시험 (2) 24.07.22 22 1 11쪽
7 7화 전투 마법 시험 (1) 24.07.21 28 1 11쪽
6 6화 파이어 크로스 24.07.21 28 0 11쪽
5 5화 유민혁 24.07.15 34 0 12쪽
4 4화 수행 평가 24.07.09 38 2 11쪽
3 3화 아르 (3) 24.07.08 49 3 11쪽
2 2화 아르 (2) 24.07.06 58 2 11쪽
1 1화 아르 (1) 24.07.06 70 3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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