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 찢는 북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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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

DUMMY

“헛소리는 거기까지만 하지.”


혈석공이 한 걸음 움직이자 쿵 소리가 났다. 그것만 봐도 저 몸이 얼마나 무거울지 알 수 있었다.


샬릭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혈석공을 향해 겨누고 있던 칼을 빠르게 내질렀다. 결투 개시 신호도 없이 기습적으로 행한 공격이었지만 혈석공은 당황하지 않았다.


그는 북부인이라면 당연히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침착하게 손을 들어 급소를 보호했을 뿐이다. 칼과 혈석이 부딪치자 쨍 하는 소리가 울렸다.


순간 샬릭은 입으로 쯧 소리를 냈다. 생각보다 단단하다. 물론 방금 그 공격으로 혈석공을 쓰러트릴 수 있으리라 생각하진 않았지만 설마 흠집조차 나지 않을 줄은 몰랐다.


흑철로 만든 칼은 용의 비늘조차 자를 수 있는 법이다. 그럼 저 혈석이라는 물질이 용의 비늘보다 단단하다는 걸까?


“재미있군. 넌 용이냐?”


뜬금없는 질문에 혈석공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내가 용이냐고? 난 난쟁이인데.”


“내 칼은 용의 비늘조차 자를 수 있다. 그런데 내 칼을 맞고도 네 몸은 흠집조차 나지 않았지. 그건 네가 용이라는 증거 아닌가?”


혈석은 단단하다. 어지간한 강철보다도 훨씬 더. 혈석공은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었기에 샬릭의 공격을 대충 막았다.


그런데 그게 용이라는 증거가 되나? 애초에 난쟁이가 제일 싫어하는 게 용인데 내가 용일리가?


“용과 난쟁이의 사이가 어떤지 모르나? 용은 탐욕스러운 생물이라 난쟁이 장인들을 납치해서 자신의 둥지를 꾸미게 하지. 내가 제국공 자리에 오른 뒤부터는 그런 일이 없어졌지만 먼 옛날엔 수많은 난쟁이가 용의 부하로서 부려졌다. 그런데 내가 용일리가 있나?”


“용은 난쟁이를 부하로 부렸다. 그리고 넌 제국공으로서 난쟁이를 지배하지. 그게 바로 네가 용이라는 강력한 증거야!”


그런가? 혈석공이 생각지도 못한 진실을 알게 됐다는 듯 몸을 떨었다.


“내가 실은 난쟁이가 아니라······ 용이었다고?”


“정체를 드러내라, 이 사악한 용!”


“어쩐지 자꾸만 북부에 대한 이유 모를 혐오감이 샘솟더니 그것도 내가 용이라서 그런 거였나······.”


샬릭이 내 그럴 줄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는 순간이었다. 갑작스레 혈석공이 땅을 박차고 뛰었고 거대한 주먹으로 샬릭의 몸을 힘껏 내리쳤다.


“······같은 헛소리는 꿈속에서나 해라! 내가 용일리가 있나, 이 멍청한 놈!”


주먹에 맞은 샬릭이 충격을 이기지 못하고 바닥을 몇 바퀴 굴렀다. 갑옷 덕분에 크게 다치진 않았다.


재빨리 몸을 일으킨 샬릭이 당황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용이 아니었다고?”


제정신이 아니군. 혈석공이 쯧쯧 혀를 차더니 다시 한번 샬릭을 향해 돌진했다. 거대한 몸이 쿵쿵 소리를 내며 달려오는 모습은 마치 성난 황소와 같았다.


혈석을 몸에 두른 난쟁이 대전사는 지금 샬릭보다도 덩치가 크다. 주먹은 단단하고 묵직해서 제대로 맞으면 아무리 샬릭이라도 멀쩡할 수는 없다.


샬릭은 자신을 향해 날아오는 주먹을 칼로 막았다. 덩치 차이 때문에 혈석공이 위에서 힘으로 찍어누르는 형태가 됐는데 샬릭은 그럭저럭 버텨냈다.


위에서 누르는 쪽은 체중을 실을 수 있어 훨씬 더 유리하다는 걸 생각하면 샬릭의 괴력 역시 어마어마하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단순히 버티기만 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혈석공의 주먹이 점차 밀리기 시작했다.


혈석공은 미련하게 힘겨루기를 이어가지 않았다. 자신의 주먹이 밀리는 것처럼 보이자 재빨리 반대쪽 주먹을 휘둘러 샬릭의 몸을 후려치려 했다.


그러나 샬릭 역시 그 공격을 눈치채고 있었다. 그는 재빨리 칼을 거두고 어깨로 혈석공의 주먹을 막아냈다. 혈석공의 주먹은 묵직하지만 샬릭이 입고 있는 갑옷은 그 충격을 견딜 만큼 단단했다.


공격이 무위로 돌아가자 혈석공의 반대쪽 주먹이 다시 날아왔다. 샬릭은 뒤로 물러나는 대신에 오히려 안쪽으로 뛰어들었다.


벼락처럼 휘두른 칼날이 황금색 궤적을 그렸다. 불타는 칼날은 무엇이든 녹여버릴 듯 성난 기세를 뽐냈고 혈석에도 확실히 효과가 있었다.


칼날에 맞은 부위에 긴 상처가 남으며 사방으로 반짝거리는 조각이 날아갔다. 용의 불꽃을 두른 칼날은 혈석에도 통한다는 게 증명된 순간이었다.


그러나 샬릭은 만족스럽지 않았다. 칼날의 면적은 좁다. 그 덕분에 날카로운 공격을 할 수 있지만 대신 커다란 상처는 만들 수 없다.


일반적인 생물이라면 칼에 베인 순간 피와 장기를 쏟아낼 테니 그것만으로도 위협적이지만 상대는 혈석공이다.


그의 몸을 구성하고 있는 혈석은 생물의 살과 가죽이 아니요, 아무리 베어봤자 피를 쏟아내지 않는다.


게다가 칼에 베인 부위가 빠르게 재생하고 있다. 지금 이 순간 인정할 건 인정해야 했다. 저놈에게 칼은 통하지 않는다.


순식간에 수십 번을 베더라도 혈석공은 별다른 타격도 없으리라.


“싸움 방식을 바꿔야겠군.”


샬릭은 들고 있던 칼을 칼집에 꽂았다. 스스로 무기를 버리는 듯한 행동에 혈석공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설마 항복할 셈이냐?”


“그럴 리가. 내가 보니 칼이 안 통할 것 같아서 싸움 방식을 바꾸려고.”


“네놈은 칼잡이일 텐데, 칼도 없이 뭔 수로 싸우려고?”


“난 칼잡이가 아니다. 전사지.”


샬릭이 두 주먹을 꽉 쥐고서 격투 자세를 잡았다. 그걸 본 혈석공이 너털웃음을 터트렸다.


“훌륭하군! 그래, 진정한 전사라면 무기 따위에 매달릴 게 아니라 일신의 무위만으로 적을 쓰러트려야 하는 법! 그 마음가짐 하나만은 인정하겠다, 용 사냥꾼!”


샬릭도 마주 웃더니 손가락을 까딱거렸다.


“들어와.”


“그럼 사양하지 않고!”


혈석공이 샬릭을 향해 뛰었다. 샬릭 역시 혈석공을 향해 뛰었다. 두 사람의 거리가 충분히 가까워졌을 때, 서로를 향해 주먹이 날아갔다.


혈석공의 덩치가 더 컸기 때문에 팔 길이 역시 더 길었다. 당연히 길이가 긴 쪽의 주먹이 먼저 닿는 법이다.


혈석공의 주먹이 샬릭의 얼굴을 때렸으나 샬릭은 억지로 버티며 자신의 주먹 역시 혈석공의 얼굴에 때려 박았다.


서로 주먹을 날렸다고는 생각할 수 없을 만큼 둔탁한 소리가 났다. 그건 소란스러운 전장에서도 선명하게 잘 들렸다.


모두가 싸움을 하다 말고 고개를 돌려 혈석공과 샬릭의 싸움을 지켜봤다. 마치 보이지 않는 링이 존재하는 것처럼 전장의 한가운데서 격렬한 싸움이 이어지고 있었다.


그건 사실 싸움이라기보다는 혈투에 가까웠다. 두 사람은 서로 갑옷과 혈석의 단단함을 믿고서 방어는 도외시한 채로 상대의 몸에 주먹을 때려 박기 바빴다.


황금색 불꽃을 두른 샬릭의 주먹이 직격할 때마다 혈석공의 몸에서 혈석이 뭉텅이로 떨어져 나갔다. 순간적으로 혈석 아래에 묻힌 육신이 드러날 때도 있었다.


그러나 그 틈을 노려 맨몸에 직접적인 타격을 줄 수는 없었다. 그러기 전에 혈석이 빠르게 재생하며 제 주인을 보호했으니까.


반대로 혈석공 역시 샬릭의 몸을 자비 없이 두들겼다. 샬릭의 배에 주먹을 때려 박고서 그 몸이 기우뚱하자 깍지 낀 두 손으로 등을 망치처럼 찍어눌렀다.


샬릭이 컥 소리를 내며 바닥을 굴렀다가 다시 일어났다. 분명 큰 타격을 받았을 텐데 오히려 더 빠르게 움직이며 혈석공의 몸을 분쇄하기 바빴다.


혈투는 몇십 분 동안 쉬지 않고 이어졌고 사방에 불꽃과 혈석이 흩뿌려졌다. 규격 외의 강자들이 보이는 결투는 주변 모두의 시선을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여전히 전장에서는 격렬한 전투가 벌어지고 있었으나 일부는 두 사람의 싸움에 시선을 빼앗겨 멍하니 지켜만 보고 있었다.


“샬―릭!”


혈석공의 고함이 쩌렁쩌렁하게 울렸다. 그는 잠깐 비틀거리는 듯하더니 곧 자세를 똑바로 하고서 샬릭을 노려봤다.


반대쪽에 선 샬릭은 가볍게 손목을 털면서 답했다.


“소리 안 질러도 다 들린다.”


“너만 한 강자는 정말 오랜만이다! 나는 제국공 자리에 오른 이후로 이런 싸움을 해본 적이 없었지! 내가 아직 난쟁이 대전사였을 적엔 패배가 두렵지 않았으나 혈석공이 되었을 땐 패배가 두려웠기 때문이지! 내 동족의 미래를 짊어지게 된 순간부터 나는 절대 패배해선 안 되는 존재가 됐기에!”


어쩌라고. 샬릭이 후우 하고 더운 숨을 뱉어냈다. 몸이 뜨겁다. 갑옷을 입은 덕에 어디 뼈가 부러지거나 하진 않았지만 하도 두들겨 맞아서 관절 곳곳이 욱신거린다.


그래도 아직 할 만하다. 용의 심장을 먹은 뒤로 그의 재생력은 일반적인 인간을 아득히 초월했기에.


그러면 혈석공은 어떨까? 놈도 얻어맞을 때마다 혈석이 재생하며 제 몸을 지키고 있다. 하지만 아무리 혈석으로 몸을 보호해도 그 모든 충격을 없던 걸로 할 수는 없을 텐데.


“구구절절한 사연 따위는 관심 없으니까 닥치고 덤벼.”


“안 그래도 그럴 셈이다!”


혈석공이 다시 성난 황소처럼 달려왔다. 샬릭은 그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다가 순간적으로 어지럼증을 느꼈다.


머리를 너무 얻어맞았군. 이래선 안 되는데. 아 하고 소리를 냈지만 이미 늦고 말았다.


혈석공의 두 손이 샬릭의 허리를 붙잡았다. 그대로 바닥에 눕혀서 사정없이 주먹을 날릴 셈인가?


아마 그러려고 했을 것이다. 다만 문제는 혈석공도 너무 흥분한 탓에 힘 조절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샬릭과 혈석공은 격렬한 격투를 벌이면서 조금씩 움직이고 있었는데 어쩌다 보니 지금 있는 곳은 낭떠러지 근처였다.


본래 혈석공은 샬릭에게 달려들어 바닥에 눕힐 생각이었을 테지만 의외로 샬릭이 바로 넘어지지 않고 버텼고, 혈석공도 너무 빠르게 달려와서 제대로 멈추지 못했다.


그 탓에 두 사람은 그대로 낭떠러지 아래로 떨어지고 말았다. 어어 소리를 내고 있자니 당황한 건 혈석공 역시 마찬가지였던 것 같다.


하여튼 멍청한 놈, 전투의 흥분 때문에 주변도 확인 안 하나. 샬릭이 쯧 하고 혀를 차며 아래를 보니 그 밑엔 눈밭이었다.


샬릭이 잠깐 생각하다가 휙 하고 몸을 돌려 혈석공이 아래로 향하게 했다. 혈석공의 두 눈이 분노로 빛났지만 그보다 눈밭에 충돌하는 게 먼저였다.


다만 문제는 혈석공의 몸이 너무 무거워서 눈밭에 착지하는 게 아니라 바닥을 부숴버렸다는 것이다.


이건 생각도 못 했는데. 쾅 소리와 함께 바닥이 부서지고 두 사람은 더 아래로 떨어졌다.


“큭······.”


아무리 혈석공의 몸이 충격을 대부분 흡수했다고 해도 샬릭도 그냥 멀쩡할 수는 없었다. 그는 허리가 욱신거리는 걸 느끼며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고개를 돌려보니 혈석공도 비틀거리면서 몸을 일으키는 게 보였다. 징그러운 놈. 저 위에서 떨어졌는데도 멀쩡하다 이거지.


“샬릭!”


혈석공이 분노에 찬 함성을 토해냈다. 하기야 화가 날 법도 하지. 샬릭이 억지로 웃으며 말했다.


“몸 되게 튼튼하네.”


“널 죽이겠다! 끝장을 보자!”


“안 그래도 그럴 셈이다. 너나 나나 둘 다 몸이 튼튼하긴 하지만 무적인 건 아니지. 솔직히 이제 슬슬 힘에 부치지 않나?”


혈석공은 대답 대신 격투 자세를 잡았다. 샬릭도 마주 격투 자세를 잡는데 갑자기 머리 위로 거대한 그림자가 드리웠다.


또 뭐가 떨어지나? 두 사람이 반사적으로 고개를 들어 위를 쳐다봤다. 거기엔 크흥 하고 거센 콧김을 뿜어내는 존재가 있었다.


샬릭은 저게 무슨 생물인지 안다. 북부의 재앙, 모든 북부인의 숙원, 불 뿜는 도마뱀. 그 이름은 용이다.


설마 여긴 용의 둥지 속이었나? 샬릭이 당황하는 가운데 용이 한층 더 당황한 목소리로 물었다.


“누구세요?”


작가의말

어제 연재를 못해서 오늘은 좀 일찍 올립니다. 내일은 원래 시간에 연재됩니다. 추석 연휴 잘 보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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