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 찢는 북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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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7.14 1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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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

DUMMY

“너······.”


샬릭은 두 자루의 칼에 맺힌 오러를 보고서 잠깐 주춤했다. 그래, 그 정도로 열심히 했다 이거지.


정말 죽긴 싫었던 모양이군. 참으로 아쉬운 일이다. 저 정도로 노력했다면 차라리 용을 노려보는 게 더 나았을 텐데.


“왜, 갑자기 덜컥 겁이라도 나나? 그래봤자 안 살려줘, 이 자식아. 덤벼!”


무적공이 뛰쳐나갈 자세를 잡았다. 그건 지극히 실전적이며 야생적인 동작이었다. 책으로는 배울 수 없고 목숨을 건 투쟁에서만 배우고 익힐 수 있는 자세.


샬릭이 북부인이 아니라 용 사냥꾼으로서 이 싸움에 임한 것처럼, 무적공 역시 제국공이 아니라 용병왕으로서 이 자리에 섰다.


이 싸움에서 둘 중 하나는 죽는다. 이건 그런 싸움이다.


“간다.”


먼저 움직인 건 샬릭이었다. 그가 불타는 칼을 휘두르자 그 경로를 따라 거대한 불길이 일었다. 마치 용이 뱉어낸 화염 숨결처럼 거세게 날뛰는 불꽃이 무적공의 몸을 집어삼키려 했다.


피할 수도 있었다. 도망칠 수도 있었다. 저만한 공격을 상대로 정면에서 맞서려는 게 오히려 미련한 짓이다.


그러나 무적공은 피하지 않았다. 도망치지도 않았다. 그는 두 자루의 칼을 들고서 불꽃을 향해 달려들었다.


물살을 거스르며 상류로 향하는 물고기처럼, 무적공은 거칠게 밀고 들어오는 불꽃을 두 자루의 칼로 베어가며 샬릭을 향해 달려갔다.


입고 있던 갑옷에 불씨가 튀었다. 몸 곳곳에서 가죽 타는 냄새가 났다. 머리와 수염에 불이 붙어 희끄무레한 연기가 피어올랐다.


그래도 무적공은 도망치지 않았다. 그는 그저 칼을 휘두르고 또 휘두르며 저 위를 향할 뿐이었다.


그는 언제나 위를 향했다. 밑바닥 용병에서 시작해서 제국공의 자리를 움켜쥐었던 것처럼, 지금도 불꽃을 거슬러 용의 심장을 쟁취하려 했다.


“샬―릭!”


무적공은 기어코 불꽃을 거슬러 샬릭에 도달했다. 그 꼴이 말이 아니었지만 기세만큼은 흉흉했다.


샬릭조차 그 기백에 놀라 잠깐 몸을 움찔했다. 그러나 그는 당황하지 않고서 다시 칼을 휘둘렀다. 칼을 휘두른 불꽃과 오러가 서로 어지럽게 얽혔다.


아까와 달리 샬릭은 무적공의 공격을 맞아주지 않았다. 정확히 말해서 맞아줄 수 없었다. 칼에 맺힌 오러가 너무나도 날카롭고 공격적이어서 자칫 잘못했다가는 갑옷이 잘려나갈 수 있었다.


“좀 더!”


두 자루의 칼로 펼치는 검술은 지나칠 정도로 공격적이었다. 샬릭조차 칼 한 자루만으로 모두 막아내기 어려울 정도로.


그는 때때로 공격을 피하거나 불꽃으로 몸을 감싸 공격을 막았다. 그러나 그럴 때마다 무적공은 끈질기게 따라붙었다. 여기서 거리를 벌렸다간, 한 번이라도 공격 기회를 내줬다간 자신에게 승산이 없다는 걸 잘 알고 있었으므로.


지금도 무적공의 쌍칼이 어지럽게 빛나며 여러 각도에서 샬릭의 목숨을 노리고 달려들었다.


어찌나 격렬하게 움직이는지 그의 얼굴에선 땀이 비오듯 흐르고 있었다. 그러나 그 몸은 전혀 젖지 않았다. 땀이 흐르자마자 샬릭이 내뿜는 열기가 수분을 전부 증발시킨 탓이다.


“좀 더 할 수 있다!”


샬릭이 보기에 무적공의 몸은 점차 지치고 있었다. 당연한 일이었다. 아무리 제국공이라 할지라도 그는 일흔의 노인이 아닌가.


어떠한 꽃도 영원할 수는 없다. 제아무리 떨어지지 않고 끈질기게 가지에 달라붙어 있다고 하더라도 겨울이 오면 결국 저버리고 만다. 그게 세상의 이치다. 그 누구도 죽음으로부터 도망칠 수는 없다.


그럴 터다.


“······아.”


무적공의 몸은 분명 지쳤을 텐데, 이미 뼈가 삐걱거리고 근육이 비명을 지르고 있을 텐데, 그런데도 그는 여전히 움직이고 있었다.


몸이 지쳤는데 정신력으로 억지로 움직이는 모양새가 아니었다. 오히려 그 몸은 지치기 전보다 더 빠르고 날카롭게 움직이고 있었다.


이게 가능한 일인가? 샬릭은 무적공의 얼굴을 쳐다봤다가 흠칫 놀랐다.


동공이 지나칠 정도로 확장됐다. 눈은 어지러울 정도로 이리저리 움직이고 있었는데 그 모든 시선은 샬릭의 칼을 쫓고 있었다.


아무리 뛰어난 칼잡이라도 정신없이 싸우는 중에 적의 공격을 모두 눈으로 따라갈 수는 없다. 애초에 그럴 수 있어도 그래선 안 된다. 눈으로 공격을 따라가려 했다가는 되려 반응이 늦어질 테니.


그러니 일부는 그냥 맞아야 할 것이고 또 일부는 눈이 아니라 감각으로 반응해야 할 것이다.


정식으로 검술을 배운 게 아니라 전장에서 구르고 구르며 칼질을 익혔던 무적공이라면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 그는 눈으로 모든 공격을 따라가고 있었고 심지어 전부 반응하기까지 했다. 그럴 수가 있나? 그런 짓을 했다간 머리가 터져버릴 것 같은데······.


“보인다, 그래, 이건가······.”


무적공은 알아듣지 못할 혼잣말을 뇌까리며 칼을 휘둘렀다. 그러면서 눈은 샬릭의 움직임을 하나도 놓치지 않고 전부 쫓고 있었다.


물론 샬릭도 그냥 당하고 있지만은 않았다. 그는 불타는 칼을 휘둘렀고 그럴 때마다 뜨거운 열기가 주변을 불태웠다.


무적공의 공격이 그 몸을 베려고 하면 뜨거운 불꽃을 일으켜 제 몸을 감쌌다. 단순히 불꽃으로 몸을 보호하기만 하는 게 아니라 육신 자체가 불꽃으로 화했다.


불꽃으로 변한 그가 무적공의 뒤로 돌아가 칼을 휘둘렀다. 무적공의 갑옷이 열기를 이기지 못하고 녹아내렸으나 그는 신경 쓰지 않았다.


오히려 그걸 공격 기회로 삼아 더 저돌적으로 달려들었다. 두 자루의 칼에 맺힌 오러가 허공에 어지러운 잔상을 남겼다.


불꽃으로 화했던 샬릭이 큭 소리를 냈다. 본래 아무리 날카로운 칼도 불꽃을 벨 수는 없으나 오러가 맺힌 저 칼은 달랐다.


공격을 피해 도망친 샬릭이 다시 제 몸으로 돌아왔다. 그가 바닥을 박차고 뛰어 칼을 휘두르자 무적공이 두 칼을 교차해서 공격을 막으려 했다.


그러나 엄청난 속도가 더해진 공격은 막는다고 해서 견딜 수 있는 게 아니었다. 무적공의 몸이 뒤로 넘어갔다가 바닥을 데구르르 굴렀다. 그러나 곧장 바닥을 박차고 뛰어올라 샬릭을 향해 달려들었다.


벼락과 같은 공격이 내리쳤다. 샬릭이 칼을 들어 공격을 막아냈으나 반대쪽 손에 들려 있던 칼이 갑옷을 긁었다. 본래라면 흠집조차 나지 않아야 할 갑옷에 긴 상처가 생겼다.


감히 이 귀한 물건에 상처를 내느냐고 화낼 시간은 없었다. 무적공이 처음으로 샬릭에 상처를 냈다는 것은 다음에도 그럴 수 있다는 증거였으므로.


피 맛을 본 짐승은 그 어떤 것보다 잔혹해질 수 있다. 무적공은 괴성 같은 함성을 내지르며 샬릭을 향해 뛰었다.


“안타깝군.”


샬릭은 무적공이 시시각각으로 강해지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지금의 그는 하나의 경지를 뛰어넘었다.


노력과 재능, 그 모든 것을 가지고 있더라도 뛰어넘을 수 있을지 없을지 모를 경지. 들불처럼 짧디짧은 삶을 살고 가는 인간으로서는 감히 쳐다볼 수도 없는 경지.


무적공은 그 경지에 도달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었나. 샬릭은 무적공의 두 눈에서 불꽃을 발견했다.


그 눈에서 타오르고 있는 불꽃은 단순히 주변의 불꽃이 눈에 비친 게 아니었다. 무적공은 자기 자신을 태우고 있었다. 자신의 생명을 태우고 몸을 불살라 저 위에 도달했다.


“그만한 경지를 지금에서야 도달하다니. 적이기 이전에 한 명의 전사로서 너무나 안타깝다.”


샬릭은 무적공을 쳐다봤다. 그의 정신은 여전히 또렷하고 날카로웠으나 그 육신은 아니었다. 몸은 이미 지칠 대로 지친데다가 상처까지 즐비했다.


사실 저 몸으로 지금까지 버틴 것은 물론이고 샬릭과 합을 나눈 것만으로도 말이 안 되는 전적이었다. 심지어 무적공은 샬릭의 갑옷에 상처까지 내지 않았나.


만약 무적공이 인간이 아니었다면, 또는 좀 더 젊었다면, 그랬다면 이 싸움의 행방은 조금 달라졌을지도 모른다.


무적공은 거칠게 숨을 헐떡이며 속으로 생각했다. 안타깝다고? 그래, 솔직히 억울하다. 요정이나 용과 달리 인간은 너무 약하고 보잘것없다. 그들과 같은 위치에 서려면 몇 배는 더 노력해야 한다.


제기랄, 내가 만약 용이나 요정이었다면 지금보다 훨씬 더 강해질 수 있었을 텐데. 수명 좀 늘리려고 이 미친 짓거리를 하지 않아도 됐을 거고.


하여튼 마음에 들지 않는 것투성이다. 마음 같아선 마구잡이로 칼을 휘두르며 분풀이를 하고 싶다.


그러나 그래선 안 되지.


‘끝을 내야 해.’


찬물에 들어간 것처럼 머리가 빠르게 식었다. 지금까진 과도한 흥분 때문에 몸의 피로가 느껴지지 않았지만 머리가 차분해진 지금은 몸이 천근처럼 무겁게 느껴졌다.


자신에게 기회가 얼마 남지 않았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러니 이제는 끝을 내야 했다. 내가 죽든, 저놈이 죽든, 어쨌든 누군가의 죽음으로서.


“쫑알쫑알 말이 많군. 새끼야, 네가 뭔데 날 동정해?”


무적공이 칼자루를 고쳐 잡았다. 생명력이 얼마 남지 않은 시점에도 두 자루의 칼에 맺힌 오러는 선명했다. 어쩌면 저놈들이 내 남은 수명을 전부 빨아먹고 있는 걸지도 모르겠군.


그래도 이 정도면 어디 가서 쪽팔리진 않겠지. 잘 싸웠다고 자랑할 만해. 그럼 끝까지 폼을 잡아야지. 구질구질하게 갈 수야······.


“덤벼, 새끼야. 확 죽여버리려니까.”


무적공은 자신에게 남은 기회가 단 한 번뿐이라는 걸 알았다. 거세게 불꽃을 태우던 장작이 결국 흰 재만 남기는 것처럼, 자신의 몸 역시 반쯤 부스러져 재로 변하기 일보직전이었다.


아까처럼 미친 듯이 날뛸 수는 없다. 남은 힘을 모든 짜낸 마지막 일격 한 번 외엔 칼을 더 휘두를 수도 없다.


그럼 정면 대결을 벌여야 하는데, 샬릭 저놈이 그 대결을 받아줄까? 놈은 그럴 것이다. 전사니까.


샬릭이 자세를 고치는 게 보였다. 과연, 전사로군. 무적공이 히죽 웃었다.


“간다······.”


일격으로 끝내야 한다. 자신 있게 썼던 자신의 인생에 마침표를 찍을 때가 왔다. 그 위에 줄 긋고 덧칠하는 건 추한 짓거리다.


그러니······.


“와라.”


안 그래도 갈 생각이었다, 이 건방진 놈아. 무적공이 두 자루의 칼을 휘두르며 샬릭을 향해 뛰었다.


샬릭 역시 불타는 칼을 휘두르며 무적공을 향해 뛰었다. 기교나 수 싸움 따윈 없다. 그저 각자가 보여줄 수 있는 일격만을 가지고 다툴 뿐이다.


두 사람이 서로 교차했다가 떨어졌다. 이제 둘 중 하나는 쓰러질 것이고 승자만이 남게 될 것이다.


“훌륭한 싸움이었다.”


샬릭이 휙 하고 칼을 털더니 칼집에 꽂았다. 그는 자세를 바로 했고 고개를 돌려 뒤를 쳐다봤다.


거기엔 무적공이 있었다. 갈라진 상처에서 피가 왈칵 쏟아지고 있건만 그는 끝까지 두 손에 잡은 칼을 놓지 않았다.


승부는 이미 났다. 샬릭이 이겼다. 그러나 무적공은 지지 않았다. 샬릭의 공격에 목숨을 잃었지만 그는 지지 않았다.


이 싸움은 먼저 바닥에 쓰러지는 자가 지는 것이다. 그러나 무적공은 죽을 때까지 쓰러지지 않았다. 선 채로 죽었을지언정 결코 쓰러지지 않았다.


샬릭은 인정했다. 자신이 용병왕을 이겼을지는 몰라도 무적공을 이기진 못했다고.


그러니 무적공은 죽을 때까지 무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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