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 찢는 북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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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7.14 1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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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

DUMMY

들어가냐니, 그게 대체 무슨? 제리얀이 경악한 얼굴이 되었으나 아콘드리엘은 뭔 소린지 모르겠다는 얼굴이 되었다.


“그게 뭔 소리지? 어딜 들어간다는 거냐?”


“아니, 어딜 들어가냐니······.”


샬릭은 그답지 않게 머뭇거렸다. 그걸 내 입으로 말하기엔 너무 상스러운데. 민감한 질문에 당황하지 않고 역으로 물어오니 되려 이쪽이 당황스럽다.


북부인은 성적으로 개방적인 성향이긴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상대가 용과 인간이라면 말이 조심스러워진다.


샬릭이 아콘드리엘의 얼굴을 쳐다보니 그의 얼굴에는 한 점의 부끄러움도 없었다. 일견 고고하게까지 느껴지는 얼굴에 샬릭이 한숨과 함께 말했다.


“그러니까 너희 아버지와 어머니가 서로 사랑했을 것 아니야? 그래서 하룻밤 사랑을 나눴을 테고 그 결과 네가 태어났을 거라는 말이지.”


“그래서?”


“난 너희 부모님이 사랑을 나눴던 그 방법에 대해서 묻는 거다. 용과 인간이라니, 서로 덩치 차이가 어마어마하게 날 텐데 대체 뭔 수로······.”


“뭔 소리인지 잘 모르겠군. 요컨대 너는 용과 인간은 서로 종이 다른데 내가 어떻게 태어났는지 묻는 건가?”


딱히 그걸 물은 건 아닌데 아주 틀린 질문도 아니다. 샬릭이 대충 고개를 끄덕였다.


“사랑만 있다면 종족의 차이는 아무런 장해가 되지 않는다. 그리고 아이야 용신께서 내려주시는 게 아닌가? 대체 덩치 차이가 뭔 상관인지 잘 모르겠군.”


“······방금 뭐라고?”


“귀가 잘 안 들리나? 아이는 용신께서 내려주시는 것이라고 했다.”


이럴 수가. 이 친구는 그 나이 먹도록 성교육을 못 받았나? 어쩌면 이놈은 남녀가 손을 잡고 자면 아이가 생긴다고 진지하게 믿고 있을지도 모른다.


백룡공 녀석, 생각보다 보수적이었군? 곱게 자란 아가씨도 아니고 털 수북한 사내놈이 저딴 소리나 하고 있으니 상당히 어처구니가 없다.


“샬릭 저놈······.”


제리얀이 뭔가 말하려고 하자 샬릭이 막았다. 그가 속삭이듯 말했다.


“아무래도 머리에 문제가 있는 놈 같은데. 백룡공이 자식 교육에는 별 소질이 없나 봐.”


샬릭이 아콘드리엘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래, 그 문제야 일단 넘어가자고. 당장 중요한 건 아니니까. 그래서 넌 여기 왜 온 거냐? 뭐 때문에 왔는지 대충 짐작이야 간다만······.”


아콘드리엘이 턱을 가볍게 치켜들었다.


“그거야 네놈 때문이지. 아버지께선 항상 네놈에 대해 말씀하곤 하셨다. 용 사냥꾼을 조심하라고. 모든 북부인은 정신병자지만 그중에서 놈은 특별히 더 정신이 이상하다고.”


백룡공 그 양반, 아들한테 하라는 성교육은 안 시키고 대체 뭔 교육을 시켰던 건가? 모든 북부인이 정신병자인 건 맞지만 내가 특별히 더 정신이 이상하다니?


나중에 만나면 따져야겠군. 물론 입으로만 따지진 않을 것이다. 샬릭이 칼자루를 매만졌다.


“네 아버지 말이 다 맞는 건 아니지만, 어쨌건 아버지 말은 잘 들어야지. 백룡공이 날 조심하라고 했다며? 그런데 왜 겁도 없이 날 만나러 왔나?”


“궁금했으니까. 아버지는 강하다. 일신의 강함은 일곱 제국공 중 제일이지. 불사공, 요정공, 무적공, 그 어떤 자도 감히 백룡공을 이길 수는 없다.”


그 사실에 이견은 없다. 제리얀의 말마따나 제국공의 강함은 단지 일신의 무력만으로 정해지는 게 아니라지만 그걸 감안해도 제일 강한 건 백룡공이다.


그도 그럴 것이 백룡공은 용이요, 용은 지상에서 가장 강력한 생물이 아닌가. 백룡공이 다른 곳도 아니고 무려 제국의 수도를 자신의 영지로 삼을 수 있었던 이유도 그 강함에서 나온다.


“그런데 그런 아버지가 널 조심하라고 말했다. 오직 네놈한테만 그랬지. 제위를 노리는 강력한 경쟁자인 불사공이나 요정공도 그리 신경 쓰지 않던 그분께서 오로지 너에게만.”


그건 백룡공과 용 사냥꾼, 두 존재의 태생 탓일 것이다. 백룡공은 용이요, 용 사냥꾼은 북부인이니까.


사냥꾼과 사냥감, 길고 긴 세월 동안 이어져 온 악연을 생각하면 백룡공이 민감하게 구는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다.


심지어 샬릭은 용 사냥꾼으로서 용을 몇 마리나 죽이지 않았나.


“난 그저 궁금했다. 북부인이라는 건 대체 뭘까? 내 듣기로 북부인이라는 건 종족이 아니요, 그저 출신이지만 일반적으로 북부인이라 불리는 자들은 대개 인간이지. 그래, 고작해야 인간이다. 그런데 왜 용이 그들을 두려워해야 하나?”


아콘드리엘은 용이 아니라 반인반룡이지만 어쨌건 용의 피를 물려받긴 했다. 방금 저 질문은 젊은 용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했을 생각이다.


나는 용인데. 무려 용인데 왜 인간 따위에게 겁을 먹어야 하나? 놈들이 떼려 몰려와서 귀찮게 하기 때문에?


물론 북부인들이 자꾸만 찾아와서 싸움을 걸면 귀찮긴 할 것이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다 죽여버리면 될 일 아닌가? 오히려 사냥감을 찾아 나설 필요도 없이 제 발로 찾아와서 죽어주는 셈이지 않나.


그러나 그 생각은 긴 세월을 사는 사이에 교정된다. 그럴 수밖에 없다. 긴 세월 동안 북부인은 수십수백 번의 시도 끝에 기어코 용을 죽이는 것에 성공할 테니까.


용이 인간이라고 치면 북부인은 개미다. 개미 떼가 몰려오면 귀찮지만 크게 위험하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당연한 일이다. 인간이 왜 개미를 무서워하나?


그러나 그 개미가 기어코 인간을 물어 죽이면 그땐 무슨 감정을 느낄 것인가? 두려움이다. 그것은 형용할 수 없는 두려움이다.


“그딴 걸 묻는 걸 보니 아직 어리군. 네 아버지가 잘 설명해주지 않더냐? 하기야 안 그랬으니까 여기 왔겠지. 혹시 걀라토르스라는 용을 아나? 그 친구도 어머니한테 버려져서 북부인에 대한 교육을 못 받았지. 그래서 죽었고. 충고하는데, 함부로 덤비지 마. 너도 그 꼴 날 테니까.”


아콘드리엘이 선선히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난 너에게 덤빌 생각이 없다. 네놈이 두려워서가 아니라 아버지의 명령 때문이지. 그분께서 너와 싸우지 말라고 하셨으니. 그리고 난 궁금하다.”


이 자식은 뭐 이리 궁금한 게 많아? 백룡공이 아무런 교육도 안 시켰나? 부모가 너무 교육열에 불타도 문제인데 너무 안 가르쳐도 문제로군.


샬릭이 한숨을 쉬는 사이에 아콘드리엘이 말했다.


“샬릭, 북부인이라는 건 대체 뭐냐?”


“그것도 모르냐?”


“모른다.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았으니까. 아버지도, 가신들도 북부인에 대해 말하길 꺼린다. 물론 나도 북부인이 뭔지는 안다. 그들은 용 사냥꾼이지. 하지만 내가 궁금한 건 그게 아니야.”


“용 사냥꾼인 걸 알면 다 아는 건데 또 뭐가 궁금해?”


“내 어머니는 북부인이셨다.”


생각지 못한 소리에 샬릭이 입을 다물었다. 백룡공이 북부인을 아내로 맞았다고?


“출산 이후 돌아가신 탓에 난 그분에 대해 기억이 없다. 난 그저 내 어머니가 북부인이라는 걸 알뿐이다. 나는 내 어머니에 대해 궁금한 게 많다. 내 절반은 용이지만 나머지 절반은 북부인이기에 나는 내 절반에 대해 알아야 할 의무가 있다.”


샬릭이 쯧쯧 혀를 찼다. 어머니의 온기조차 느껴보지 못한 불쌍한 놈이었군. 그래서 제 반쪽에 대해 집착하는 거야.


“그게 궁금하다면 나한테 물을 게 아니라 북부에 가봐야지. 북부인이라는 건 태생이 아니야.”


아콘드리엘의 얼굴이 굳었다.


“그런가······. 충고는 기억하지.”


아콘드리엘이 이어서 말했다.


“그러면 나도 충고 하나 하마. 다시는 이러지 마라.”


“이러지 말라니, 뭘?”


“내가 오늘 여기 온 건 우연이었다. 난 아버지의 명령으로 무적공을 만나러 왔었지. 그런데 부하들에게 듣기로 무적공은 싸움을 하러 갔다더군. 그 말을 듣고서 여기 와보니 무적공은 네 손에 죽어 있다. 한 번은 그럴 수 있어. 하지만 두 번은 그래서 안 돼. 이해하겠나? 더는 제국공을 죽이지 마.”


샬릭이 잠깐 생각하다가 말했다.


“그건 백룡공의 뜻이냐?”


“그래, 아버지의 뜻이다. 그분께선 네가 제국공에게 손대는 걸 달갑게 여기지 않는다.”


“어째서? 내가 경쟁자들을 제거해주는데 오히려 고마워해야 하는 것 아닌가?”


아콘드리엘이 입술을 비뚜름하게 기울이며 웃었다. 명백한 비웃음이었다.


“용 사냥꾼인 너라면 용의 힘에 대해 알 텐데.”


무슨 말을 하는 건지 대충 알 것 같았다. 용의 힘, 정확히는 사냥감을 먹어치우고 영적인 힘을 얻는 능력.


그럼 백룡공이 다른 제국공에게 손대지 말라고 경고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 답은 간단하다. 자신의 먹잇감을 건드리지 말라는 뜻이다.


“백룡공은 제위를 노리는군.”


“안 그런 제국공도 있나? 하지만 놈들은 자격이 없어. 자격 있는 건 오로지 백룡공뿐이시다.”


이제 남은 제국공은 백룡공을 제외하고 다섯이다. 그들 모두를 쓰러트리면 백룡공은 진정한 황제로서 우뚝 서리라.


“다시 말하지만 이건 경고다. 더는 제국공들을 건드리지 마. 그들과 싸우지도 말고 얽히려 들지도 마.”


“내가 왜 그래야 하지? 백룡공이 까라면 까야 하나?”


“넌 그저 자기만족을 위해 사냥하지. 대의도 없이 그저 재미 삼아 사냥하지. 그래선 안 돼. 거대한 힘은 마땅히 쓰여야 할 곳에 쓰여야 한다.”


아콘드리엘이 쐐기를 박듯 쏘아붙였다.


“모든 일에는 책임이 따른다. 그리고 넌 그저 자기 멋대로 행동할 뿐, 그 행동에 대한 책임은 생각하지 않지. 그만한 힘을 가졌음에도 마땅히 감당해야 할 책임은 나몰라라 한다는 말이야.”


그 말에 샬릭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그는 자신의 책임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다. 책임, 내가 감당해야 할 책임이라······. 불현듯 북부가 떠올랐다.


“아버지께선 네가 누구인지 알고 있으시다. 용 사냥꾼 샬릭이 누구인지 말이야. 그러니 잘 생각해라.”


줄곧 조용히 있던 샬릭이 그제야 입을 열었다.


“너도 아나?”


아콘드리엘이 웃었다.


“아니? 난 그냥 아버지가 한 경고를 읊을 뿐이야.”


“그거 다행이군. 오늘 넌 목숨을 건졌다. 이제 그만 쫑알거리고 돌아가. 네 아버지 얼굴 봐서 살려주는 거야.”


아콘드리엘은 씩 웃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손가락을 튕기자 허공에 차원문이 생겨났다.


“그럼 여기서 작별하지. 다음에 또 볼 일 없었으면 하는군.”


“부디 그러길 빌어라. 다음에 또 만나면 넌 죽은 목숨일 테니까.”


아콘드리엘이 어깨를 으쓱이더니 차원문을 통해 사라졌다. 그가 사라지고 나서야 경직됐던 공기가 풀어졌다.


샬릭이 한숨을 내뱉었다.


“이거야 원, 이놈이고 저놈이고 왜 이리 깝죽거리는지 모르겠군. 칼 맞으면 다 살려달라고 빌 놈들이 말이야.”


제리얀의 대답은 없었다. 설마 아콘드리엘의 기세 때문에 기절이라도 했나? 진짜 용과 싸우기도 했던 놈이 그랬을 리는 없다.


샬릭이 제리얀을 향해 고개를 돌리니 그는 골똘히 생각에 잠겨 있었다.


“뭔 생각을 그렇게 해? 백룡공 때문에? 걱정하지 마. 그 양반 당장은 안 움직일 거야. 그래도 무서우면 테레모한테 보내줄까? 내가 부탁하면 분명 지켜줄걸.”


“음? 테레모? 불사공이 왜?”


제리얀은 샬릭의 말을 거의 듣지 않고 있었던 것 같다. 이놈이 왜 이러지? 샬릭이 물었다.


“뭔 생각을 그렇게 하냐니까?”


“아, 그게 말이지······.”


제리얀이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용은 알을 낳잖아.”


“그런데?”


“반대로 인간은 새끼를 낳거든? 그럼 아콘드리엘의 어머니는 알을 낳았을까, 새끼를 낳았을까?”


이건 정말 북부인도 안 할 헛소리로군.


“그거야 당연히 새끼를 낳았겠지. 그게 대체 뭔 헛소리야?”


샬릭의 타박에 제리얀이 그런가 하고 중얼거렸다.


“그런데 용과 북부인 사이에서 난 자식이라니, 모르긴 몰라도 엄청 강할 것 같은데. 저런 게 몇 명 더 있진 않겠지?”


“더 있으면 좋은 것 아닌가?”


“그게 왜 좋아?”


“더 많이 죽일 수 있잖아.”


이건 정말 북부인이나 할 헛소리인데. 샬릭과 제리얀은 서로 어이없어 했다.


작가의말

다시 태어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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