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 찢는 북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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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7.14 1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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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29 1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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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

DUMMY

* * *


차원문을 통과해서 나온 샬릭이 윽 소리를 냈다.


“어울리지도 않게 차원문 멀미를 하네. 괜찮아?”


제리얀이 등을 두드려주자 샬릭이 고개를 끄덕였다.


“괜찮아. 바람 쐬니까 좀 낫다.”


“그런데 여긴 참 으스스하네. 무너진 옛 성이라더니, 용이 왜 이런 데 살지?”


제리얀이 주변을 둘러보았다. 성벽은 반쯤 무너져서 곳곳에 구멍이 뚫려 있고 첨탑 역시 부서지고 없어 흔적만 남았다.


길을 가다 보면 뼈만 남은 시체들이 보였다. 이 땅을 지키던 병사들이거나 아니면 이곳에서 살던 주민들의 시체이리라.


“여길 자기 둥지로 삼기로 한 모양이지 뭘. 용이라고 해서 꼭 동굴에 살아야 한다는 법이 있는 것도 아니고. 일단 안으로 들어가 보자.”


두 사람이 성안으로 향했다. 안개가 껴서 주변 시야가 나빴는데 당장 뭔가가 튀어나오더라도 이상하지 않은 분위기였다.


이런 곳에 용이 산다고? 제리얀은 혼자서 고개를 갸웃거리며 샬릭의 뒤를 따랐다.


“그런데 샬릭, 불사공의 편지는 또 언제 받은 거야?”


문득 내뱉은 질문에 샬릭이 고개를 돌렸다.


“편지라니?”


“아까 네가 무적공에게 뒷배가 어쩌고 했던 거 말이야. 혹시나 배신할 마음이 들면 편지를 읽어보라고 줬잖아.”


“아, 그거?”


샬릭이 어깨를 으쓱이더니 말했다.


“내가 테레모 그 친구랑 친한 건 맞는데, 우리가 서로 편지 나누고 그러는 사이는 아니야.”


“그럼 아까 그 편지는?”


“내가 쓴 거지. 며칠 전에 내가 종이 필요하다고 했던 거 기억 안 나나?”


제리얀이 아 소리를 냈다. 그때 갑자기 웬 종이 타령을 하나 했더니만.


“그럼 그 편지는 불사공이 쓴 게 아니라는 소리네? 뒷배 어쩌고 했던 것도 다 거짓말이고?”


“거짓말이라니, 말이 심하시군. 그건 거짓말이 아니라 진실에 대한 유보야.”


“그건 또 뭔 헛소리야?”


“그러니까 지금 당장 테레모가 내 뒷배가 아닌 건 맞아. 하지만 나중에라도 내 뒷배가 되면 내가 했던 말이 거짓이 아닌 게 되잖아.”


그럼 지금은 거짓말인 게 맞잖아. 제리얀이 어이없어했다.


“그런데 불사공이 네 뒤를 봐주려고 할까? 내 입으로 말하긴 좀 그런데, 너 매번 사고만 치고 다니잖아.”


“내가 뭘 어쨌다고? 그리고 테레모도 이 매력적인 제안을 거절하진 않을걸. 무려 용 사냥꾼의 뒷배가 될 수 있는 기회잖아. 그리고 난 테레모의 이름만 빌려 쓸 뿐, 뒤처리는 깨끗하게 잘해. 그 친구한테 피해갈 일은 없어.”


정말 그럴까? 제리얀이 흐음 소리를 냈다.


“그런데 안개가 너무 심한데. 유독 이 성안만 그런 것 같아.”


원래부터 짙었던 안개가 성안으로 들어가면 들어갈수록 점점 더 짙어졌다. 시야는 더욱 나빠졌고 이젠 자기 발밑조차 제대로 보이지 않을 지경이었다.


“일반적인 안개 같진 않은데.”


“내 생각도 그래. 이건 마법사로서의 입장인데, 이건 자연적으로 발생한 안개가 아니야.”


“그럼 이게 마법이다?”


“그럴 가능성이 커. 용이 침입자를 막기 위해 마법을 썼나? 그게 아니면 다른 부하가 있을지도 모르지. 네 생각은 어때, 샬릭?”


샬릭이 성큼성큼 걸으며 답했다.


“둘 다 아닐 것 같은데.”


“둘 다 아니라고? 그럴 리가. 아까도 말했지만 이건 자연적으로 발생한 안개가 아니야. 분명 누군가 마법을 쓴 거라니까.”


“그래, 누군가 마법을 썼을 거야. 그런데 그 마법을 쓴 게 용도 아니고, 그 부하도 아닐걸.”


둘 다 아니라면 누가 했다는 말인가? 설마 우리 말고 여기 들어온 사람이 또 있나? 제리얀이 흠 소리를 냈다.


“그럼 무적공의 부하인가? 그럴 리는 없을 텐데. 우리가 여기 온다는 걸 뻔히 알고 있을 텐데 부하들이 용 사냥을 하고 있을 리가 없지. 그러면 우연히 다른 북부인이 여길 찾아왔나? 만약 그런 거라면 서둘러야겠는데.”


“글쎄, 서두를 필요는 없을걸.”


“왜? 어차피 놈들은 용 사냥에 실패할 테니까?”


“애초에 용 같은 건 없을 테니까.”


뜬금없는 소리에 제리얀이 당황했다.


“용이 없다고? 하지만 무적공이 여기 용이 있다며?”


“무적공 입장에선 용이나 용 사냥꾼이나 별 차이가 없거든.”


“뭐? 그게 대체 무슨······.”


제리얀의 말은 끝까지 이어지지 않았다. 갑자기 샬릭이 그의 옷자락을 잡고 휙 당겼기 때문이다.


너무 강한 힘에 옷이 찢어질 듯했다. 제리얀은 이게 무슨 짓이냐고 물을 수 없었다. 방금까지 그가 있던 자리에 화살이 꽂혀 있었기 때문이다.


“화살? 용이 활도 쏘나?”


자기가 했지만 참 바보 같은 질문이라고 생각했다. 용이 활을 쏠 리가 없는데.


“이거 마법으로 만든 안개라고 했지? 없앨 수 있나?”


샬릭의 질문에 제리얀이 낮은 목소리로 답했다.


“할 수야 있는데 금방 없앨 수는 없어. 보아하니 이 성터 전체에 마법진을 그려 날씨를 조작한 것 같아. 그러니까 안개 없애는 것보다 그냥 가서 다 죽여버리는 게 더 빠를걸.”


샬릭이 만족스러운 대답을 들었다는 듯 껄껄 웃었다.


“그래야겠군. 제리얀, 보호막으로 몸 지켜.”


샬릭이 칼을 손에 들고서 안개 속으로 달려갔다. 안개 너머에서 칼 부딪치는 소리가 연달아 나더니 짧은 비명이 울렸다.


제리얀도 가만히 있진 않았다. 그는 보호막으로 제 몸을 감싸더니 화살이 날아왔던 곳으로 마법을 날렸다.


불새가 안개를 찢으며 날아가 적습이 있던 곳을 불태웠다. 곧장 반격이 날아왔지만 화살은 보호막을 부수지 못했다.


“제기랄 후퇴······.”


안개 속에서 다급한 소리가 울렸다. 일이 잘못됐음을 알고 도망치려는 모양이다. 그러나 샬릭은 그들을 쫓아고 기어코 전부 죽여버렸다.


제리얀은 안개 너머에서 울리는 처절한 비명에 얼굴을 약간 찡그렸다. 죽어가는 자들이 불쌍해서 그러는 건 아니었다. 단지 이 상황이 불만스러워서 그랬을 뿐이다.


‘매복이 있었다니, 대체 누구의 지시로?’


사실 오래 생각해 볼 것도 없는 문제였다. 그들이 이곳에 온다는 걸 알고 있는 사람은 한 명 외에 없지 않은가.


무적공의 짓이다. 하지만 왜 이런 멍청한 짓을? 가만히 기다리고 있으면 샬릭이 용의 심장을 가져다줄 텐데, 대체 왜?


‘아, 물론 샬릭은 무적공에게 용의 심장을 바칠 생각이 없긴 했지.’


무적공이 거기까지 생각했다고 해도 이상하다. 배신을 하더라도 용 사냥이 끝난 뒤에 해야지, 왜 용 사냥도 시작하기 전에 배신을 하나?


‘설마······.’


제리얀이 내릴 수 있는 답은 하나뿐이었다. 너무나 바보 같고 어처구니없어서 믿기지도 않는 정답 단 하나뿐.


“살려주세요, 제발······.”


어디선가 흐느끼는 소리가 난다 했더니 샬릭이 남자 하나를 끌고 왔다. 그는 팔 한 짝은 어디다 버리고 왔는지 외팔이었다.


“난 그냥 시키는 대로 했을 뿐이야, 제발······.”


남자는 할 수만 있다면 손을 싹싹 빌며 목숨을 구걸할 기세였다. 물론 팔 한 짝으로는 그럴 수 없지만.


“시키는 대로 했다 이거지. 그래서 누가 시켰나?”


샬릭이라고 이번 일의 범인을 몰랐을 리는 없다. 그런데도 물은 건 확증을 얻기 위해서였다.


남자가 기다렸다는 듯 말했다.


“무, 무적공 전하.”


“내 그럴 줄 알았다. 하여튼 그 친구도 참 멍청해. 용병들 좀 보냈다고 날 죽일 수 있을 리가 없는데 왜 이런 짓을 하는 거야?”


남자도 동의한다는 듯 세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용이 있는 곳으로 바로 보내주는 게 아니라 며칠 기다리라고 할 때부터 뭔가 이상하더라니. 뒤에서 이런 지저분한 일을 꾸미고 있었군.”


“그래서 이제 어쩔 거야? 무적공이 우릴 배신했다는 게 확실해졌으니 이대로 도망가야 하나? 아니면······.”


무적공과 싸워야 하나? 제리얀은 감히 그 말을 입 바깥으로 내지 못했다. 그게 얼마나 무거운 말인지 잘 알고 있었으니까.


단지 무적공과 싸우는 것 자체는 그리 두렵지 않다. 그는 이미 샬릭에게 한 번 졌던 경험이 있지 않은가.


진정으로 두려운 건 그가 거느리고 있는 세력이다. 단 두 명으로 그 많은 용병을 상대하며 무적공까지 쓰러트릴 수 있을까?


“저기······ 그래서 저는 살려주시나요?”


남자가 비굴한 웃음을 지으며 묻자 샬릭이 답했다.


“너는 날 죽이려고 했었지.”


“물론 그랬습니다만······.”


“자길 죽이려고 했던 자를 용서해주는 건 강자로서의 미덕이요, 또한 자비다. 난 강자로서 그래야 할 의무가 있어.”


남자의 얼굴이 환해졌다.


“그럼 절 살려주시는 겁니까?”


샬릭이 칼을 휘둘렀다.


“아니. 자기 죽이려고 했던 사람 그냥 살려주면 호구냐고 욕먹어. 난 내가 욕먹는 건 못 참아.”


남자의 얼굴이 바닥을 데굴데굴 굴렀다. 그는 죽기 전까지 자신에게 뭔 일이 일어났는지 몰랐다. 그만큼 샬릭의 칼이 빨랐던 탓이다.


“불쌍한 놈. 무적공 때문에 괜히 목숨만 잃었네.”


제리얀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래서 아까 하던 이야기 말인데, 뭔가 대책이 있는 거야?”


“그거라면 있지.”


“그게 뭔데?”


“뭐긴? 용병왕 그 양반 죽여야지. 아까 내가 말했지. 나 죽이려고 했던 사람 그냥 살려주면 호구라고 욕먹는다고.”


그러니까 기어코 무적공과 싸우겠다는 소리인가? 제리얀은 정신이 아찔해졌다.


“진심으로 하는 소리야?”


“내가 싸우기 싫어도 용병왕은 생각이 다를걸. 그 양반이 바보도 아니고 설마 용병들로 날 죽일 수 있을리라 생각했을까? 그럴 리 없지. 놈은 곧 날 죽이러 올 거야. 여긴 날 죽이기 위해 준비된 처형대라고.”


제리얀은 반박할 수 없었다. 샬릭이 싸우기 싫다고 해도 무적공은 기어코 그를 찾아내 죽이려 할 것이다.


아마도 무적공은 용 대신 용 사냥꾼을 죽이고 그 심장을 먹을 생각일 터다. 샬릭은 용을 죽이고 그 심장을 먹었으니 사실상 인간의 몸을 가진 용과 다를 게 없으니까.


어쩌면 무적공은 용을 죽이는 것보다 용 사냥꾼을 죽이는 게 더 쉽다고 생각하는지도 몰랐다.


옛날에 한 번 싸워봤으니 그 정도 수준이면 자신의 노력 여하에 따라 충분히 이길 수 있으리라 생각했던 걸까.


그게 얼마나 바보 같은 생각인지 알려주지 못한 게 너무나도 안타깝다. 제리얀이 쯧쯧 혀를 찰 때였다.


“잘 알고 있구나, 용 사냥꾼.”


공간이 일그러지며 차원문이 열렸다. 짙게 깔렸던 안개가 걷히며 그 속에서 한 남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나이에 맞지 않게 건장한 덩치를 가진 노인. 샬릭과 제리얀은 그가 누구인지 알고 있었다.


“난 옛날부터 네가 마음에 안 들었다. 오늘 널 죽이고 그 심장을 먹어주마. 넌 뒈졌다.”


샬릭이 웃었다. 확실히 저놈은 무적공이라는 이름보다 용병왕이 더 잘 어울리는군. 공작이라면서 말투가 저리 천박해서야.


“올 거면 빨리 올 것이지, 뭐 하다가 이제 와? 죽기 전에 유서라도 쓰고 왔나? 하기야 그건 중요하지. 제국공쯤 되면 유산 문제로 싸울 일이 많아지거든.”


샬릭의 빈정거림에 무적공이 답했다.


“편지 쓰느라 좀 늦었다. 불사공이 보낸 그 편지? 잘은 모르겠지만 일곱 통을 써서 보내지 않으면 불행한 일이 생긴다더군? 불사공은 강력한 시체 마법사인데, 그럼 그것도 일종의 저주 같은 건가? 하여튼 귀족 나리 생각은 잘 모르겠다니까······.”


투덜거리는 무적공을 보며 샬릭이 당황했다.


장난이었는데 그걸 또 편지를 썼어? 저 친구 어디 좀 모자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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