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 찢는 북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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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7.14 1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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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

DUMMY

“으아악, 석판이!”


상황을 지켜보고 있던 성기사가 비명을 내지르며 달려왔다. 데르마는 이게 대체 뭔 상황이 이해하지 못해 멍하니 있었고 정작 사고를 친 샬릭은 태평했다.


“천상의 신은 아무것도 해결해주지 않는다.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건 오로지 자신의 두 주먹뿐이야.”


분명 칼록은 뭔가 알려주려 했던 것 같은데. 오히려 샬릭이 주먹으로 석판을 부순 탓에 문제가 더 복잡해졌는데 대체 뭔 자신감으로 저딴 소리를 하는 걸까.


제리얀이 절레절레 고개를 젓고 있을 때였다.


“석판이!”


석판이야 이미 부서졌는데 자꾸 소리만 지른다고 부서진 게 다시 붙기라도 하나? 제리얀이 쯧즛 혀를 차다가 어 소리를 냈다.


부서졌던 석판 조각들이 공중으로 떠오르고 있었다. 그것들은 가장 큰 조각을 중심으로 다시 제자리를 찾아가기 시작했다.


“······다시 붙었네?”


제리얀의 멍청한 목소리와 함께 석판에서 희미한 빛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석판은 언제 부서졌냐는 듯 완벽한 모양으로 돌아왔다.


“아아, 칼록의 기적이다!”


“칼록이시여!”


저 석판은 칼록의 힘이 담긴 성물일 테니 저걸 수리한 것도 칼록일 것이다. 본의 아니게 신의 기적을 직접 목도하게 된 샬릭이 불만스럽게 칫 소리를 냈다.


“다들 조용히!”


정신을 차린 데르마가 말하자 성기사들이 입을 다물었다. 그들 모두가 석판을 향해 시선을 옮겼다. 거기에 다시 칼록의 말씀이 적히고 있었다.


북으로 가라.


“북으로 가라? 그건 좀······.”


샬릭이 또 헛소리를 중얼거리자 데르마가 조용히 하라는 듯 눈을 부라렸다. 그 시선을 받은 샬릭은 억울해졌다.


애초에 신의 목소리를 듣는 게 아니라 석판에 써진 글씨를 읽는 것뿐인데 왜 조용히 해야 해?


물론 그런 말을 했다가는 불경한 짓을 한다고서 또 욕을 먹었을 테니 조용히 입을 다물었다.


사각사각, 지금도 석판에는 칼록의 말씀이 적히고 있었다.


“눈보라가 불기 시작했다······?”


데르마는 그게 뭔 소리인지 모르겠다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는 반사적으로 샬릭을 쳐다봤는데 얼굴에 쓴 투구 때문에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 수가 없었다.


북부로 가라, 그리고 눈보라가 불기 시작했다. 전부 다 북부와 관련된 신탁일 텐데 여기서 북부인은 샬릭 외엔 없었다.


그러나 유일한 북부인인 샬릭은 입을 꾹 다물고서 아무 말이 없었다. 단순히 신탁을 이해하지 못해서가 아니라 오히려 이해했기 때문에 생각에 잠긴 모양새였다.


“칼록께서······.”


희미한 빛을 뿜어내던 석판이 다시 제단 위로 내려왔다. 석판 위에 쓰였던 문장이 전부 사라지는 걸 보고서 데르마가 말했다.


“이보시오.”


샬릭은 여전히 아무 말도 없었다. 보다못한 제리얀이 그 어깨를 흔들었다.


“어어, 왜?”


“대신관이 부르잖아.”


“아아······.”


샬릭이 데르마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왜?”


“당신은 저 신탁에 대해 아는 게 있소?”


“글쎄, 저게 뭐 따로 해석이 필요한 말인가. 북부로 가라, 말 그대로 북부로 가라는 소리지. 눈보라가 불기 시작했다, 미안한데 북부는 심심하면 부는 게 눈보라야.”


성의 없다 못해 놀리는 듯한 태도에 성기사 하나가 발끈했다. 그가 몸을 움찔거리자 데르마가 얼른 손으로 막았다.


“그러니까 당신도 신탁이 무슨 뜻인지는 모른다는 거요?”


“모른다니까. 하여튼 신이라는 작자들은 이게 문제야. 신탁을 내렸다는 건 뭔가 도움을 주려고 했다는 건데, 그런 거면 알아듣게 알려줘야 하는 거 아니냐고. 꼭 뭔 소린지 모를 말만 잔뜩 지껄이고는 막상 일이 터지면 난 미리 경고했다고 그런다니까.”


역시나 불경한 소리다. 데르마가 한숨을 내뱉었다.


“정작 중요한 건 묻지도 못했군. 당신이 정말 멸망의 인도자인지 아닌지에 대한 것 말이오.”


“내가 만약 멸망의 인도자였다면 칼록이 진작 말했을걸. 북부가 어쩌고 할 게 아니라 석판에 저놈 당장 죽이라고 썼을 거란 말이야.”


일리 있는 말이다. 데르마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소. 설령 당신이 멸망의 인도자가 맞다고 한들, 우리로서는 어쩔 도리가 없으니 그냥 보내드려야겠지.”


이야기를 듣고 있던 성기사들이 큭 소리를 냈다. 분하지만 그들의 실력으로는 샬릭의 상대가 되지 않는다.


샬릭은 칼을 뽑지도 않고 수많은 성기사를 쓰러트렸는데 만약 그가 칼을 뽑는다면? 여기 있는 전부가 덤벼도 이길 수 없을 게 분명하다.


“그래서 북부로 가실 거요?”


“글쎄.”


“글쎄? 그럼 북부로 안 가겠다는 거요? 신탁이 내려왔는데?”


샬릭이 그게 뭔 상관이냐는 듯한 태도로 답했다.


“난 칼록 신자가 아닌데, 칼록이 북부로 가라고 하면 내가 가야 하나?”


“아니, 그게 대체 무슨? 무려 신의 말씀이오, 신의 말씀! 지금 그걸 무시하겠다는 거요?”


“무시하겠다는 게 아니라, 내가 그 말을 왜 들어야 하냐는 거지.”


그게 무시하는 거야, 이 인간아. 제리얀이 쯧쯧 혀를 찼다.


데르마와 성기사들은 샬릭의 태도를 이해하지 못했다. 샬릭은 북부인이고, 그가 칼록 신자가 아니라는 것까지는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지금 여기서 신의 기적을 직접 두 눈으로 보지 않았나. 신앙심은 없더라도 신을 경외하는 마음 정도는 생길 법도 한데 그걸 무시하겠다고?


아무리 신을 믿지 않더라도 저런 태도는 무슨 자신감에서 나오는 건지 모를 일이다.


“잠깐, 잠깐만요.”


이대로 있으면 서로 쓸데없는 입씨름이나 할 것 같아서 제리얀이 끼어들었다.


“이 친구가 북부인인 건 맞는데, 안 좋은 일로 고향을 떠나게 돼서 이러는 겁니다. 나쁜 뜻은 없으니까 너무 그러진 마세요.”


줄곧 조용히 있던 제리얀이 끼어들자 데르마가 그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안 좋은 일이라니?”


“자세한 건 말씀드리기 어렵고, 다만 이 친구도 신탁을 무시할 생각은 없을 겁니다. 북부로 가는 건 제가 잘 설득해볼 테니 걱정하지 마시고요.”


샬릭과 반대로 제리얀의 태도가 공손했기 때문에 데르마도 선선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우리는 이만 가보겠습니다. 북부로 가려면 많이 바쁠 테니까요.”


샬릭은 내가 왜 북부로 가야 하느냐며 불만스럽게 툴툴댔지만 제리얀이 얼른 그 등을 떠밀었다.


두 사람이 도망치듯 자리를 떠나자 남겨진 데르마가 그 뒤를 가만히 쳐다봤다. 성기사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저들을 그냥 보내도 괜찮겠습니까? 무슨 짓을 저지를지 모르는데 감시라도 하나 붙이는 게······.”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달자는 건가? 그럴 용기는 있고?”


성기사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 어려운 임무에 감히 자원할 자신은 없었으므로.


“그냥 둬. 칼록께서 무슨 뜻이 있으시겠지. 저들은 북부로 갈 거다. 칼록이 그걸 원하시니까.”


성기사는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칼록이 저들을 정의로운 길로 이끌길 간절히 기원했다.


그 시각, 제리얀에게 등 떠밀려 바깥으로 나가던 샬릭이 짜증을 냈다.


“제기랄, 내가 왜 북부로 가야 하는 거야? 거기 살기 싫어서 도망쳐 나온 건데.”


“어쨌건 칼록의 신탁이 있었는데 무시할 순 없잖아.”


“내가 봤을 땐 무시해도 돼. 그 양반 말씀 무시한다고 천벌이라도 떨어질 줄 알아? 그랬으면 이 세상 어지럽히는 나쁜 놈들부터 다 천벌 받았지.”


하기야 그런가. 제리얀이 고개를 끄덕이다가 아차 소리를 냈다. 저놈 말에 동의하면 안 되지.


“북부에 가기 싫은 거 알아. 칼이며 갑옷이며 전부 훔쳤으니까 가기 껄끄러울 만도 하지.”


“말 똑바로 해. 훔친 게 아니라 뺏은 거야.”


“어쨌든. 그것 때문에 북부에 가면 뭔 사고 생길까 봐 가기 싫은 거 아니야?”


“그런 것도 있지만 그냥 북부가 싫어.”


자기 고향 싫어하는 놈도 있군. 하기야 나만 해도······.


제리얀이 고개를 흔들었다.


“그래도 가야지. 신탁을 무시할 순 없잖아.”


의외로 샬릭은 선선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가긴 가야지. 언젠가 한 번 가보긴 해야겠다고 생각했는데 칼록 덕분에 고향도 다 가보는군.”


“그럼 하루 쉬었다가 바로 출발해볼까? 북부까지 가려면 제법 걸릴 테니까.”


“그거라면 걱정 안 해도 돼.”


샬릭이 주머니에서 두루마리 한 장을 꺼냈다.


“그건?”


“차원문 마법이 새겨진 스크롤이야. 북부와 곧장 이어져 있지. 쇠뿔도 단김에 빼랬다고, 바로 가볼까?”


이 녀석, 북부에 가기 싫어했던 것치고 갑자기 의욕이 넘치는군. 하기야 샬릭 성격상 정말 귀찮은 일은 빨리 해치우고 싶었던 것일 수도 있다.


제리얀이 고개를 끄덕이자 샬릭이 스크롤을 쭉 찢었다. 허공이 일그러지더니 차원문이 생겨났다.


북부와 연결된 탓인지 차원문 너머에서 서늘한 냉기가 흘러나왔다. 샬릭이 먼저 차원문을 통과하고 제리얀이 그 뒤를 따랐다.


몇 발자국 움직이지도 않고 곧장 북부로 이동한 그들은 거대한 설산과 마주했다. 가히 압도적이라고 할 만한 경관에 제리얀이 헉 하고 숨을 삼켰다.


그걸 본 샬릭이 말했다.


“숨 크게 쉬지 마.”


“왜?”


“찬바람에 기도 상해. 그리고 내가 말 안 했는데, 여기 정말 춥다. 겉옷이라도 하나 걸치지 않으면 얼어 죽을걸.”


제리얀이 어? 소리를 냈다. 생각해보니 여기 너무 추운데······.


“엣취! 아니, 그건 미리 말해야지!”


“숨 크게 쉬지 말라니까.”


“엣취! 엣취!”


제리얀이 연신 재채기를 하는 걸 보고서 샬릭이 쯧쯧 혀를 찼다.


“옷 얻을 곳이 있는지 한번 찾아보자고. 그런데 여기가 어딘지 나도 잘 모르겠네······.”


고향을 너무 오래 떠나 있던 탓일까. 샬릭도 이곳이 어디인지 잘 모르는 기색이었다. 두 사람은 눈밭 위를 이리저리 떠돌다가 저 멀리 불꽃이 반짝이는 걸 발견했다.


“누가 있군. 저 친구들한테 옷 좀 얻자고.”


“그, 그래······.”


발목이 푹 빠질 만큼 잔뜩 쌓인 눈길 위를 걷고 또 걸으니 점차 불꽃이 있는 곳과 가까워졌다.


아마 누가 모닥불을 피운 모양인데 가까이 다가가니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또한 고소한 기름 냄새가 코끝을 스쳐 지나갔다.


뭔가 먹고 있는 모양이군. 샬릭이 모닥불을 향해 다가갔다.


“어이.”


모닥불 주변으로 세 명의 사람이 있었다. 그들 모두는 갑옷을 입고 있었고 털로 된 망토를 몸에 두르고 있었다.


주변에는 뭔지 모를 괴물의 시체가 있었고 모닥불 위에선 그 고기가 익어가고 있었다.


북부인들은 갑자기 다가온 샬릭을 보고서 각자의 무기에 손을 올렸다.


“누구냐?”


“그건 너희가 알 것 없고. 혹시 남는 옷 있나? 내 친구가 얼어 죽으려고 해서 말이야. 먹을 것도 좀 나누어 주면 좋고.”


“친구? 저 귀쟁이 말인가?”


샬릭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혹시 도와줄 수 있나?”


“그거야 네가 누구인지에 따라 다르겠지. 어느 가문의 누구냐?”


“난 그런 거 없어.”


“가문이 없다고? 하, 보나 마나 가문에서 쫓겨난 떠돌이로군. 너 같은 놈에게 줄 건 없으니 썩 꺼져.”


“이상하군. 옷이 있는 것 같은데 왜 안 주겠다는 거지?”


샬릭이 성큼성큼 다가가더니 제일 가까이 있던 북부인 하나를 주먹으로 때려눕혔다. 워낙 빠른 공격이었던 데다가 설마 주먹 한 방에 뻗을 줄은 몰라서 다른 북부인들이 전부 조용해졌다.


그러거나 말거나 샬릭은 쓰러진 북부인의 몸에서 망토를 벗기기 시작했다.


“이게 무슨 짓이냐! 너 지금 누굴 건드린 건지 알기나 해!”


북부인들이 소리치자 샬릭이 쯧 하고 혀를 찼다.


“요즘 애새끼들은 버릇이 없군. 나 때는 그딴 소리 지껄일 시간에 당장 칼 들고 덤볐는데.”


제리얀은 샬릭에게 받은 망토를 몸에 두르면서 생각했다. 오히려 칼 들고 덤비는 게 버릇없는 일 아닌가?


“후회할 거다! 우린 갈로스 가문 소속이거든!”


“그게 뭔데.”


“갈로스 가문을 모른다고? 너 북부인이 맞는 거냐?”


북부인이 어이없어하자 샬릭이 어깨를 으쓱였다.


“알아야 하나?”


“어떻게 북부인이 갈로스 가문을 모르지? 얼마 전 갈로스 가문의 가주께서 길고 긴 전쟁을 끝내고 북부의 왕 자리에 오르셨는데?”


이번엔 샬릭이 어이없어해야 할 차례였다. 북부의······ 뭐?


작가의말

seng2006 님 후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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