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 찢는 북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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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7.14 1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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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26 1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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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

DUMMY

제리얀이 눈썹을 꿈틀거렸다. 용병왕이라면 그도 들어서 아는 이름이다.


고리의 설명대로 용병왕은 일곱 제국공 중 한 명인데, 고귀한 혈통을 타고난 다른 제국공들과 달리 일개 용병으로 시작해 제국공의 자리를 쟁취해낸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그런 존재와 샬릭이 싸운 적이 있다고? 제리얀이 감탄한 목소리로 말했다.


“너랑 싸웠는데 안 죽고 살아남았다고? 무적공이라더니, 과연 강한 모양이야······.”


감탄하는 부분이 좀 이상한데. 샬릭이 어깨를 으쓱이곤 말했다.


“별 대단한 놈은 아니었어. 내가 알기로 그놈이 제국공 중 제일 약할걸. 그때 둘 다 무기를 안 가지고 있었는데, 만약 서로 칼 들고 싸웠으면 놈은 금방 반 토막 났을 거다.”


무기도 없이 제국공을 때려눕힌 샬릭에게 감탄해야 하나, 아니면 무기도 없이 샬릭을 상대로 살아남은 무적공에게 감탄해야 하나?


제리얀이 고민하고 있을 때, 고리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무, 무슨 소리를 하는 거냐? 네놈이 무적공 전하와 싸웠다고?”


“왜, 네 주인이 나한테 얻어맞았다고 하니 믿기질 않나?”


당연한 소리 아닌가? 고리가 고개를 세차게 흔들었다.


“물론 네가 강한 건 맞지만, 용도 죽일 만큼 강한 것도 맞지만, 아무리 그래도 제국공을 상대로?”


“넌 네 주인에 대해 이상한 환상을 가지고 있는 것 같군. 내가 아까도 말했지만 네 주인은 강하긴 해도 제국공 중에선 그저 그런 수준이야. 왜인 줄 아나?”


고리는 감히 그런 소리를 듣는 게 민망스럽다는 얼굴이었다. 그러나 호기심을 이기진 못했는지 듣기 싫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샬릭이 가볍게 웃더니 말했다.


“네 주인은 인간이거든. 불사공은 시체 마법사요, 흑암공은 대악마다. 요정공은 이름 그대로 요정이고. 그 외의 다른 제국공 역시 특별한 혈통을 타고났지. 그에 비해 무적공은? 그냥 인간 용병이야. 물론 물려받은 혈통의 힘이 없는데도 그 자리까지 오른 건 확실히 대단한 일이지만 그래봤자 고작 인간 아닌가.”


무적공은 유일한 인간 출신 제국공이다. 일개 인간 따위가 시체 마법사와 대악마, 요정, 용 등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다는 건 분명 대단한 일이다.


그러나 인간의 고점은 명확하다. 아무리 강해진다고 하더라도 결국 오를 수 있는 위치는 정해져 있다는 소리다.


“네 주인이 왜 용의 심장을 탐내는지 가르쳐줄까. 열등감 때문이야. 놈은 항상 자기 출신을 저주했지. 자신이 요정이었다면, 악마였다면, 용이였다면, 지금보다 훨씬 더 강해질 수 있으리라 생각했으니까.”


샬릭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놈은 용의 심장을 먹으면 더 강한 힘을 얻을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그래서 용의 심장에 집착하는 거야.”


용의 심장을 먹으면 용과 같은 힘을 얻을 수 있다는 건 익히 알려진 이야기다. 당장 샬릭만 봐도 엄청난 힘을 얻지 않았는가.


“그런데 이상하네. 제국공 정도 되는 인물이 왜 직접 용 사냥에 나서지 않고?”


제리얀의 의문에 답한 건 샬릭이었다.


“다른 제국공들의 눈치가 보였던 거지. 제국이 멸망한 이후로 모든 제국공들은 제위를 노리는 경쟁자가 됐는데, 한 명이 치고 나가려고 하면 당연히 그쪽부터 견제할 것 아니야? 그런데 놈이 딱 한 번 위험을 무릅쓰고 용 사냥에 나선 적이 있었지.”


그래서 과연 무적공이 용 사냥에 성공했을까? 그 답은 이미 나와 있었다. 그때 성공했다면 왜 지금까지 용의 심장을 노리고 있겠는가?


샬릭이 말했다.


“그때 나랑 시비가 붙어서 흠씬 두들겨 맞았지. 난 그놈이 왜 무적공이라 불리는지 모르겠어. 나한테 졌는데 왜 무적이야? 설마 자기가 붙인 이름은 아니겠지. 그럼 너무 추한데.”


“그때 왜 때렸는데?”


“모든 용의 심장은 내 건데 그놈이 훔쳐 가려 하잖아. 그래서 손 좀 봐줬지. 남의 물건에 손을 대면 안 된다는 걸 알려줬어.”


“무적공이 네가 가지고 있던 용의 심장을 훔치려고 했다고?”


“아니? 난 그냥 놈이 용을 죽이고 그 심장을 먹으려고 하길래 혼내줬을 뿐이야. 아까도 말했지만 모든 용의 심장은 내 건데, 그놈이 멋대로 내 걸 먹으려고 하잖아.”


그게 왜 네 거야? 제리얀이 그리 묻자 샬릭이 답했다.


모든 용은 늦든 빠르든 언젠가 제 손에 죽을 운명이므로 그 심장 역시 자신의 소유다, 그러니 남의 용을 죽여서 그 심장을 빼먹으려 한 무적공은 도둑놈이나 다름이 없다.


그 어처구니없는 대답에 제리얀의 말문이 막혔다.


“아니, 그게 대체 뭔······.”


줄곧 이야기를 듣고 있던 고리가 입술을 떨었다. 지금까지 들은 이야기가 전부 사실일까? 지어낸 말이라고 하기엔 너무나 매끄러운데.


샬릭은 혼란에 빠진 고리를 보며 말했다.


“생각이 많아 보이는 얼굴이군? 내 말이 거짓말 같나? 믿기 싫다면 안 믿어도 된다. 제발 믿어 달라고 하는 이야기는 아니니까. 그보다 하던 일이나 마저 하자고.”


샬릭이 칼자루를 고쳐 잡자 고리의 안색이 창백해졌다.


“나, 날 죽이려고? 아까도 말했지만······.”


“미안한데 난 네 주인 따위 하나도 무섭지 않아. 내 장담하는데 놈은 오히려 네가 여기서 죽길 바랄걸. 괜히 살아서 돌아와 내게 복수해야 한다고 어쩌고 지껄이길 원하지 않을 테니까.”


“그럴 리가 없어! 너 분명 후회할 거다! 후회한다고!”


고리는 발작적으로 외쳤다. 그러나 그 목소리는 공허하게 울릴 뿐, 샬릭의 칼을 막아주진 못했다. 빛이 번쩍이는가 하더니 고리의 머리가 스르륵 소리를 내며 아래로 떨어졌다.


깔끔하게 잘린 단면을 보고서 제리얀이 으 소리를 냈다.


“하여튼 멍청한 놈이라니까. 대체 뭔 자신감으로 덤빈 건지 모르겠어.”


샬릭이 주변에 쓰러진 시체들을 쳐다봤다. 참혹한 현장이지만 요즘 세상에선 그리 유별난 일도 아니다.


그는 바닥에 떨어진 고리의 머리를 발로 툭 차고선 말했다.


“그럼 하던 일이나 마저 해볼까.”


샬릭이 용의 머리를 향해 걸어갔다. 다행스럽게도 용의 머리는 무사한 터라 그 안에 있는 용의 심장을 무사히 꺼낼 수 있었다.


이번에 죽인 용은 걀라토로스보다 컸고 지니고 있는 용의 심장 역시 훨씬 더 컸다. 샬릭은 양손으로 용의 심장을 듣고서 가만히 섰다.


걀라토르스의 심장을 먹을 때 그랬던 것처럼 용의 심장이 빛나더니 그 힘이 샬릭의 몸 안으로 물 밀듯 쏟아져 들어오기 시작했다.


신비롭게 보이는 광경에 제리얀이 입을 벌리고 가만히 지켜봤다. 언뜻 보기에도 엄청난 양의 힘이었다. 만약 저 일부라도 얻을 수 있다면 자신 역시 훨씬 더 강해질 수 있을 텐데.


그런 생각을 하고 있자니 샬릭이 어느새 용의 심장을 다 먹어 치웠다. 그는 자신의 몸을 이리저리 훑어보다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덩치가 크니 먹을 것도 많군.”


“어, 되게 많은 힘을 흡수한 것 같았는데 감상은 그게 끝이야?”


“내가 지금까지 용을 한두 마리 죽인 것도 아닌데 호들갑 떨 이유가 있나.”


제리얀이 보기엔 호들갑 떨 필요가 있어 보였다. 저만한 힘을 흡수하고도 덤덤하다니, 자신이라면 기뻐서 방방 뛰었을 텐데.


“네가 얼마나 더 강해질지 점점 두려워지네. 이대로 이 땅의 모든 용을 사냥하면 황제가 되는 것도 꿈은 아니겠는데.”


농담처럼 내뱉은 말에 샬릭이 웃었다.


“설마 그러려고. 그리고 그건 하라고 해도 안 해. 황제라니? 내가 황제가 됐다가는 나라 금방 망할걸.”


제리얀이 진지하게 동의했다.


“확실히, 그 말이 맞아.”


“맞는 말이긴 한데 기분이 나쁘네. 어쨌든 시답잖은 소리는 여기까지만 하자. 용 죽이는 것도 생각보다 빨리 끝났네. 어디 가서 휴식하면서 다음 목적지를 정해보자고.”


제리얀이 고개를 끄덕였다. 사방에 시체가 즐비한 곳에서 쉴 수는 없었으므로 두 사람이 적당히 쉴 곳을 찾아 이동하려 할 때였다.


갑작스레 목 없는 시체 하나가 벌떡 일어났다. 놈은 더듬거리며 걷다가 바닥에 떨어진 제 머리를 주워 목 위에 올렸다.


대체 뭐 하는 놈인가 하고 봤더니 고리였다. 죽은 줄 알았더니 아니었나? 샬릭이 가만히 쳐다보고 있으니 고리가 말했다.


“아, 이쪽 방향이 아니군.”


머리를 거꾸로 꽂았던 고리가 머리를 뽑아 다시 꽂았다. 그가 초점 없는 눈으로 말했다.


“결국 이놈도 죽었군. 하여튼 쓸모없는 놈들. 용 죽이라고 보냈더니 죄 죽기만 해. 그런데 목이 잘려 죽은 걸 보니 이놈은 용한테 당한 것 같지 않은데.”


혼자서 주절거리던 고리가 샬릭을 보고서 음? 소리를 냈다.


“너는······?”


“이 목소리 들어본 적 있군. 나 기억하나? 샬릭이다. 옛날에 너 손 봐줬던 북부인 말이야.”


고리가 두 눈을 크게 뜨려 했다. 그러나 이미 죽은 몸이라 그런지 잘 되진 않았다.


“······쯧, 목소리를 들으니 알겠군. 저번에도 날 방해하더니 이번에도 날 방해하려는 거냐? 이 빌어먹을 놈, 대체 날 얼마나 괴롭히려고 그러는 건지.”


“아무래도 용병왕 양반이 맞는 것 같은데, 못본 새에 새로운 재주를 익혔군? 테레모한테 배운 건가?”


“테레모? 불사공 말인가? 내가 그 개뼈다귀 놈에게 배울 게 뭐 있겠어? 이건 내 부하의 능력이다. 덕분에 난 대륙 각지로 보낸 부하들과 정신적으로 연결돼 있지.”


“아하, 뭔 소린지 알겠어. 그러니까 넌 부하들에게 용의 심장을 구해 오라고 보냈는데 부하 한 놈과 정신적 연결이 끊어졌으니 무슨 일인가 보러 온 거로군?”


“그래, 맞다. 애초에 용병 따위가 용을 죽일 수 있으리라 생각하진 않았지만 밑져야 본전이라고 보내봤던 건데······. 용에게 죽는 거야 별 특별한 일도 아니지만 설마 네놈한테 죽었을 줄이야? 대체 너와의 악연은 언제쯤 끝나는 거냐?”


샬릭이 웃었다.


“악연도 이만하면 인연인데, 이제 나 그만 미워하고 우리 친구 할까?”


“소름 끼치는 소리 좀 하지 마라. 북부인이랑 친구 하는 미친놈도 있나?”


아니, 북부인이 뭐 어때서? 샬릭이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그래서 나랑 만날 때마다 으르렁거리려고? 그래봤자 댁만 손해라는 걸 잘 알 텐데.”


무적공이 잠깐 침묵하다가 말했다.


“그럴 수야······ 없지. 그래, 그래선 안 될 일이야.”


저놈이 저토록 갑자기 생각을 바꾼 이유가 무엇인가? 뭔가 꿍꿍이가 있어 보인다. 샬릭이 가만히 있자 무적공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혹시 많이 바쁘나? 안 바쁘다면 내 영지에 잠깐 들려줬으면 하는데. 경우에 따라선 우리가 친구가 될 수도 있지.”


경우에 따라선 적이 될 수도 있을 테고. 샬릭이 혼자 속으로 뇌까렸다.


“그거야 뭐 별로 어려울 것도 없는 일이지. 그런데 내가 궁금한 게 하나 있어서 말이야. 뭣 좀 물어봐도 되나?”


“궁금한 것? 뭐가 궁금하지?”


샬릭이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너 나한테 졌잖아. 그럼 무적이 아닌 건데 왜 무적공이라고 그래?”


무적공이 뭘 당연한 걸 묻느냐는 듯 답했다.


“오해가 있는 모양인데, 난 지금까지 패배한 싸움을 제외하고는 전부 이겼어. 그러니 무적이지. 다 이겼잖아.”


가만히 듣고 있던 제리얀이 생각했다. 그걸 왜 제외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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