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 찢는 북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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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7.14 1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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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

DUMMY

* * *


용은 있는 힘껏 날갯짓했다. 그건 먹잇감을 사냥하기 위한 당당한 비행이 아니라 목숨을 건지기 위한 필사적 도주였다.


내가 왜 이토록 추하게 도망이나 치고 있어야 할까. 위대한 존재라 불리는 용인 내가 대체 왜?


아무리 머리를 굴려봐도 나오는 답은 하나였다. 북부인 때문이다.


‘빌어먹을 북부인 놈!’


본래 북부에서 태어나고 자랐던 용이 정든 고향을 떠나 이곳에 정착한 이유가 무엇이던가. 전부 다 북부인들 때문이다.


저들은 바글거리는 개미 떼와 같아서 죽이고 또 죽여도 지칠 줄 모르고 덤벼댄다. 용 사냥이랍시고 매년 수많은 사람이 죽어나가는데 대체 왜 멸종하지 않는지 의아할 정도다.


‘언젠가 북부인들의 괴롭힘에 지친 용이 그들을 멸종시키려 한 적이 있었지······.’


그건 먼 옛날의 일이다. 어떤 용이 귀찮게 구는 북부인들을 싹 쓸어버리려 했었다. 용의 강력함을 생각하면 별로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북부인이 개미라면 용은 사람이다. 개미가 아무리 떼로 몰려들어 사람을 깨문다고 해도 사람을 죽일 수 있을 리가 없지 않은가?


그에 비해 사람은 발길질 한 번으로 개미집을 무너트리고 수많은 개미를 짓밟을 수 있다.


체급 차이를 생각하면 애초부터 성립될 수 없는 싸움이었다. 용은 당연히 자신의 승리를 장담했고 당당하게 북부인들을 멸종시키러 떠났다.


그 결과가 어찌 됐는가? 놀랍게도 용이 죽었다. 용은 수많은 북부인을 죽였으나 결국 한 북부인의 손에 죽었다.


그자가 처음으로 용을 죽이고 북부를 통일한 자라고 하던가? 아마 첫 왕이 어쩌고 했던 것 같은데······.


‘그 뒤로도 북부인들을 멸종시키려는 용들이 나타났지. 그때마다 용을 죽일 만큼 강력한 전사가 나타나 역으로 용을 죽여버렸고.’


긴 세월 동안 여러 마리의 용이 죽고 나서 용들은 비로소 깨달았다. 북부인은 용을 죽이기 위해 태어난 종족으로 결코 그들을 멸종시키려 들어선 안 된다고. 그랬다간 되려 용이 멸망해버리고 말 것이라고.


‘진짜배기 용 사냥꾼이야. 진짜배기 용 사냥꾼이라고······.’


용은 정신이 혼미해졌다. 몸 곳곳에 상처가 즐비한데다가 피까지 너무 많이 흘렸다. 거기에 꼭꼭 숨겨두었던 약점까지 찔리고 말았다.


‘빌어먹을 자식 놈 같으니라고. 감히 부모의 약점을 까발려?’


용은 극심한 분노를 느꼈다. 걀라토르스, 그 덜떨어진 놈. 하여튼 제 애비를 닮아서 멍청하기 짝이 없다.


이럴 줄 알았으면 부화하기 전에 알을 깨버렸어야 했는데.


용은 크르릉 소리를 내며 날갯짓했다. 잠깐 죽은 척을 했다가 방심한 틈을 노려 도망치긴 했지만 이대로 싸움이 끝난 건 아니다.


북부인이라면 반드시 쫓아온다. 인간의 몸으로 하늘을 나는 용을 쫓아오는 게 가능하냐고 묻는다면 가능하다. 북부인이라면, 심지어 그게 진짜배기 용 사냥꾼이라면 분명히 가능하다.


그러니 놈이 쫓아오기 전에 조금이라도 힘을 회복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다른 생물을 잡아먹고 영적인 힘을 얻어야 하고.


‘멀지 않은 곳에 마을이 있다. 일단 거기까지만 가면······.’


용은 날고 또 날았다. 점차 힘이 빠져 고도가 낮아지고 있지만 그래도 날았다. 저 멀리 마을이 보였다. 이제 살았다는 안도감에 입맛을 다셨다. 이대로 입을 쩍 벌리고 날아가 있는 대로 집어삼키기만 하면 된다.


“찾―았―다!”


이런 제기랄. 용은 뒤쪽에서 들려오는 커다란 목소리에 극심한 분노를 느꼈다.


빌어먹을 북부인 놈, 기어코 따라왔나?


용은 대체 그 먼 거리를 뭔 수로 따라잡았는지 묻지 않았다. 어떻게 따라잡았냐고? 용 사냥꾼인데 알아서 했겠지.


중요한 건 따라잡혔다는 사실이다. 용은 마지막 힘을 짜내 마을을 향해 날아갔다.


“제리얀!”


그러나 그보다 샬릭이 더 빨랐다. 놈은 마법사의 도움을 받아 공중으로 이동하더니 곧장 용의 몸 위로 떨어졌다.


사람 한 명의 무게라고 해봤자 별로 무겁지도 않으니 고작 그 정도로 용이 추락할 일은 없다. 그러나 샬릭에겐 용을 땅에 떨어트릴 만한 능력이 있었다.


“네 자식 놈한테도 내가 말했지. 용 사냥을 하려면 제일 먼저 해야 하는 일이 뭔지 아냐고.”


그 정답은 용도 알고 있다. 날개를 찢는 것.


박쥐의 것을 닮은 용의 날개는 얇은 피막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물론 얇다고 해도 그 강도는 강철에 버금갈 정도라 어지간해서는 찢어지지 않는다.


그러나 흑철을 상대론 종잇장처럼 쉽게 갈라질 뿐이다. 비행하는 용의 등허리를 재빠르게 달려 나간 샬릭이 기어코 날갯죽지 위에 올라탔다.


용이 몸을 뒤집어 놈을 떨어트리려 했지만 너무 지친 탓에 그러지 못했다. 찌이익. 결국 샬릭의 칼이 날개 피막을 죽 그었다.


피막이 갈라졌는데 제 아무리 용이라도 똑바로 비행할 수 있을 리가 없다. 용의 몸이 기우뚱하더니 곧장 바닥으로 추락했다.


육체가 거대한 만큼 그 일대에 미치는 영향도 어마어마했다. 땅이 흔들리고 용의 몸에 부딪힌 나무가 전부 부러졌다.


물론 용은 이 정도로 죽지 않는다. 여러 마리의 용을 죽여본 샬릭은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너 같은 놈들 죽이는 법은 내가 잘 알지.”


거꾸로 땅에 처박힌 용이 몸을 일으키려고 버둥거렸다. 어찌어찌 몸을 일으키고 보니 이미 땅으로 내려간 샬릭이 보였다.


그 모습을 보자마자 용은 분노가 치솟았다. 놈을 삼키기 위해 입을 쩍 벌리니 샬릭의 모습이 사라졌다. 이번에도 또 몸 위로 올라갔나 했으나 그게 아니었다.


샬릭은 어째선지 용의 입 안에 들어가 있었다. 드디어 공격이 성공하다니? 용은 어리둥절하면서도 반사적으로 딱 소리가 나게 입을 닫았다.

놈이 나오지 못하도록 얼른 꿀꺽 삼켜버리니 대단히 만족스러웠다. 놈은 용 사냥꾼이니 분명 가지고 있는 영적인 힘도 많을······.


“컥!”


용은 사악한 웃음을 흘리다가 컥 소리를 냈다. 속이 메스껍다. 아니, 메스꺼운 정도가 아니라 끔찍할 정도로 속이 나쁜데.


어째서? 답은 그 배 속에 있었다.


“용 사냥꾼! 이 빌어먹을 놈이!”


용의 처절한 외침은 체내에서도 크게 울렸다. 샬릭은 그 목소리를 듣고 히죽 웃었더랬다.


그는 지금 용의 목구멍을 지나 위까지 내려왔다. 용도 생물인지라 당연히 위 속에는 소화를 위한 산이 마구 분비돼 있었는데 보통의 사람이라면 여기 들어오고 얼마 되지 않아 녹아버렸을 것이다.


샬릭이 알기로 용은 대개 화염 숨결을 내뿜지만 어떤 종은 체내의 산을 뱉어내기도 했다. 용의 위산이 그 정도로 유독하여 무기로서 충분한 위력을 내는 덕분이다.


하지만 샬릭은 용의 배 속에서도 끄떡없었다. 그의 몸은 녹아내리지 않았는데 그건 입고 있는 갑옷 덕분이었다.


그건 단단하기만 한 게 아니라 마법적인 보호가 걸려 있어 어지간한 공격은 전부 방어했다.


그래도 이곳에서 여유롭게 놀고 있을 수만은 없다. 샬릭은 칼을 들고 위벽을 잘랐다. 용의 비늘조차 자르는 칼인데 위벽이라고 못 자를 리는 없었다.


그는 용의 위벽에 커다란 구멍을 내고서 바깥으로 탈출했다. 그와 함께 위 속에 가득 차 있던 위산도 바깥으로 흘러나왔는데 잘은 몰라도 용은 지금 몹시 고통스러워하고 있을 것이다.


“압사당하기 전에 나가야겠는걸.”


위를 뚫고 나온 샬릭은 쉴 새 없이 칼을 휘두르며 용의 몸속을 난도질했다. 용의 몸속은 체온 때문에 몹시 더웠고 근육이 빽빽하게 들어차 있어 자칫 잘못하면 이곳에 갇혀 압사될 수도 있었다.


그러기 전에 샬릭은 탈출로를 만들기로 했다. 용을 확실하게 끝장내려면 심장을 찾아가서 찔러버리는 거겠지만 위치를 모르는 상황에서 그러긴 어렵다.


어찌어찌 심장을 찌르더라도 다시 바깥으로 나와야 할 텐데 그 전에 숨이 막혀 죽지 않을까.


그래서 샬릭은 아래로 내려가기로 했다. 내려가고 또 내려가다 보면 용의 배를 뚫고 탈출할 수 있겠지.


그는 자기 생각을 곧장 행동으로 옮겼고 근육이며 혈관을 모두 자르고 아래로 내려갔다. 혈관을 자를 때마다 뜨거운 피가 왈칵 쏟아져 몸이 휘청거렸다. 용의 덩치가 큰 만큼 혈압도 강한 탓이다.


“그―만―해!”


용의 처절한 목소리가 뼈를 타고 몸속에서 울렸다. 샬릭은 그 비명 같은 외침을 들으면서도 조금도 멈추지 않았다.


자르고, 자르고 또 잘랐다. 그런 식으로 용의 몸속을 거침없이 헤집고 나가다 보니 웬 풍선 같은 장기 하나가 나타났다.


그걸 본 샬릭이 웃었다. 저게 뭔지 알 것 같다.


‘가스 주머니로군.’


용이 불을 뿜을 수 있는 이유는 간단하다. 체내에 가스 주머니가 있어 그곳에 가스를 저장했다가 필요할 때 뿜어내며 불을 붙이는 것이다.


지금은 이미 몇 번이고 가스를 뿜어낸 탓에 상당히 쪼그라들어 있다. 그래도 저 안에 가스가 없는 건 아니다. 샬릭이 보기에 저 정도면 화염 숨결을 한 번은 더 뱉어낼 수 있다.


그럼 만약 저기에 불을 붙이면?


“재밌겠군.”


샬릭이 손가락을 튕기자 불씨가 일었다. 그는 가스 주머니를 향해 불씨를 던졌고 커다란 굉음이 울리리라 기대했다.


그러나 그 기대와 반대로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게 됐다. 너무 큰 소음이 귀를 때린 탓에 순간적으로 귀가 먹어버린 것이다. 또한 엄청난 힘이 몸을 때렸고 억 소리를 낼 틈도 없이 그 힘에 밀려 바깥쪽으로 튕겨 나갔다.


그 순간 정확히 어떤 일이 있었는지 샬릭도 제대로 알지 못했다. 너무나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고, 또한 너무나 파괴적인 결과였기 때문이다.


다만 그는 자신을 덮쳐오는 거대한 불길을 보며 한 가지만은 확신했다. 아, 저기에 불을 붙여선 안 되는 거였군.


“······아.”


샬릭이 정신을 차렸을 때, 그는 피투성이가 된 채로 바닥을 나뒹굴고 있었다. 물론 그 피는 그의 것이 아니었으며 몸에 묻은 살점 역시 그의 것이 아니었다.


주변을 둘러보니 참으로 끔찍했다. 용이 산산조각이 난 채로 죽었고 사방에는 피와 살점이 어지럽게 흩뿌려져 있었다.


“샬릭!”


샬릭은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도 반응하지 않았다. 그저 멍하게 하늘을 바라보고 있다가 가까이 다가온 제리얀이 거칠게 몸을 흔들자 그제야 고개를 돌렸을 뿐이다.


“아, 제리얀. 그래, 왜?”


“왜긴 왜야, 이 미친놈아! 너 저 안에서 뭔 짓을 한 거야?”


“가스 주머니에 불을 붙였지.”


“진짜 제정신이 아니군······. 그랬다가 죽으면 어쩌려고?”


샬릭이 쓰게 웃으며 말했다.


“그래, 다음부터 이건 하지 말아야겠어.”


“처음부터 하지 말았어야지. 대체 머릿속에 뭐가 들었으면 용의 배 속에서 폭발을 일으킬 생각을 해?”


샬릭은 제리얀의 잔소리를 한 귀로 듣고 흘리며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제기랄, 설마 머리까지 다 날아가진 않았겠지.


다행히도 그런 일은 없었다. 머리는 가스 주머니가 있는 곳과 제법 멀리 떨어져 있어서 폭발로부터 피해를 덜 입은 모양이었다.


목 아래는 전부 날아가고 없지만 그래도 머리는 남아 있었다. 그럼 저기서 용의 심장을 꺼내 먹으면 되겠군.


샬릭이 으윽 소리를 내며 용의 머리를 향해 다가갔다.


“움직이지 마라.”


제리얀 이 간악한 요정 놈이 드디어 배신하는 건가? 미리 수첩에 이름을 적은 보람이 있군. 샬릭이 환히 웃으며 제리얀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뭘 봐?”


“네가 말한 거 아니야?”


“귀에 문제 있나? 하기야 폭발에 휘말렸으니 청력에 문제가 생겼어도 이상할 건 없지. 내가 아니야. 저쪽이라고.”


제리얀이 손으로 가리킨 곳을 따라 고개를 돌리니 거기엔 한 무리의 사람이 있었다. 전부 무장했다.


용병단인가? 아니면 마을을 지키기 위해 보내진 기사들? 샬릭이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으니 무리의 대장으로 보이는 자가 말했다.


“용의 심장을 놔두고 꺼져라. 그럼 목숨만은 살려주지.”


그 당당한 태도를 보고서 제리얀이 속삭였다.


“쟨 살기 싫어서 저러나?”


샬릭이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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