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 찢는 북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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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7.14 1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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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

DUMMY

“그러니까 죽여도 되는 놈이라 이거지? 휘유, 난 또 대단한 성군이면 어쩌나 하고 걱정했지 뭐야. 만약 착한 놈이었다면 죽이기 껄끄러웠을 테니까.”


제리얀이 보기에 샬릭이라면 북부의 왕이 성군이었다고 한들 죽였을 것 같다. 북부의 왕쯤 되면 죽일 만한 가치가 있다는 소리를 지껄이면서.


어쨌든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다. 제리얀이 다급히 말했다.


“너무 축약한 것 아닙니까? 그걸로 전혀 설명이 안 되는데요.”


“설명이 안 된다고요? 어째서입니까? 중요한 부분은 다 설명했는데?”


제리얀이 어이없다는 듯 허 소리를 냈다.


“중요한 부분은 다 설명했다니, 그게 대체 뭔 소리입니까? 내가 들은 말이라고는 어마어마한 씹새끼라는 것뿐인데?”


“그러니까 북부의 왕은 어마어마한 씹새끼라는 뜻입니다. 사람 죽이는데 그 이상의 이유가 필요합니까?”


제리얀이 아 소리를 냈다. 결국 이놈도 북부인이라는 걸 잊고 있었다. 고드릭이 말을 이었다.


“애초에 그놈이 무슨 가문의 누구인지가 중요합니까? 그냥 죽일 만하니까 죽이는 거지.”


“아, 그래요······.”


제리얀이 떨떠름한 목소리를 내자 고드릭이 이상한 사람 쳐다보듯 했다. 그는 제리얀이 왜 저런 반응을 보이는지 이해하지 못하는 듯했다.


샬릭이 말했다.


“이 친구는 북부인이 아니야. 명예 북부인이긴 한데 아무리 그래도 진짜배기 북부인에 비할 바는 아니지.”


“아, 그런 겁니까? 어쩐지. 북부인이라면 제 설명을 이해 못 할 리가 없는데 뭔가 이상하다 했습니다.”


어쩌면 북부인이라는 생물은 3줄 이상의 설명은 이해할 수 없는 게 아닐까? 그게 아니고서야 그딴 설명에 만족할 리가 없다.


제리얀은 역시나 북부인의 길은 멀고도 험하다고 생각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 말대로입니다. 전 북부인이 아닙니다. 물론 명예 북부인도 아니고요. 그러니 자세한 설명이 필요할 것 같군요.”


“그거라면 그리 어려울 것 없지요. 다만 자리를 좀 옮겨야겠습니다. 아이들이 들어서요.”


그래도 고아원장이라고 아이들 생각을 하는 모양이지? 제리얀이 고개를 끄덕이더니 말했다.


“하기야 한창 자라는 중의 아이들이 들을 만한 이야기는 아니지요. 누굴 죽이고 어쩌고 하는 이야기는 아이들 정서에 악영향을 끼칠 테니까요.”


“네? 그게 아니라 저 친구들이 한창 혈기 넘칠 때라 북부의 왕 이야기를 듣고 뛰쳐나갈까 봐 자리를 옮기는 겁니다.”


“아, 그래요······.”


제기랄, 역시 난 죽어다 깨어나도 북부인은 못 되겠군. 제리얀이 한숨을 내뱉었다.


“자, 다들 오늘 훈련은 여기까지다! 이제부터는 자유 시간을 가질 수 있도록!”


고드릭의 외침에 아이들이 환호성을 질렀다. 훈련 중에는 덩치만 작을 뿐, 잘 단련된 전사의 느낌이 물씬 났지만 훈련이 끝나고 나니 그저 노는 걸 좋아하는 아이들처럼 보였다.


아이들이 저들끼리 깔깔 웃으며 달려가는 걸 흐뭇하게 보다가 고드릭이 고개를 돌려 말했다.


“그럼 두 분은 이쪽으로.”


샬릭과 제리얀은 고드릭을 따라 걸음을 옮겼다. 동굴 속에 자리 잡은 고아원은 생각보다 잘 꾸며져 있어서 내부에는 훈련장 외에도 식당이나 도서관 따위의 시설이 있었다.


“잠깐, 도서관? 북부인이 책도 읽나?”


“입만 열면 지역 혐오가 나오는군. 당연히 읽지. 잠 안 올 때 읽으면 효과가 죽여줘.”


그러니까 안 읽는다는 소리군. 제리얀이 그럼 그렇지 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여기가 제 방입니다.”


두 사람은 고드릭의 안내를 받아 방 안으로 들어갔다. 바닥에는 냉기를 막기 위해 가죽이 깔려 있었고 벽에는 횃불이 걸려 있었다.


보온 대책이 제법 잘 되어 있어서 동굴 안임에도 춥다는 느낌은 들지 않았다. 샬릭이 말했다.


“여기 들어오는 것도 오랜만이군. 그래서 요즘 고아원 운영은 좀 어때?”


“늘 똑같죠. 매년 몇 명의 아이가 나가고 새롭게 몇 명의 아이가 들어옵니다. 아이는 전사가 되고 전사는 싸움을 찾아 떠돌죠.”


“부족한 건 없나? 내가 보내는 돈만으로 고아원을 운영하긴 많이 빡빡할 텐데.”


“충분합니다. 가끔 부족한 게 있으면 아랫동네 약탈하면 되니까 괜찮아요.”


“그래도 부족한 게 있으면 말해. 나 요즘 돈 좀 번다. 이것도 좀 가져가고.”


샬릭이 돈 주머니를 꺼내자 고드릭이 웃었다.


“감사합니다. 사양하지 않고 받도록 하지요.”


두 사람은 몇 분 동안 잡다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러다가 제리얀이 큼 하고 헛기침을 몇 번 하자 원래 목적을 떠올렸다.


“미안합니다, 제리얀 씨. 북부의 왕에 대한 이야기를 하던 참이었지요. 그래서 어디부터 설명해야 할까. 아까 제가 갈로스 가문에 대해 말했었지요?”


“그랬었지. 그런데 그게 대체 어디 붙은 가문이냐? 내가 북부에 있을 때 들어본 적도 없는 걸 보면 별 대단치 않은 가문일 텐데.”


“맞습니다. 본래 갈로스 가문은 북부에 널리고 널린 한미한 가문 중 하나였을 뿐이었지요. 제가 알기로 본래 북부의 다섯 대가문 중 하나인 샨스 가문을 섬겼다고 하더군요.”


북부에는 왕이 없지만 영주라고 불릴 만한 존재는 있다. 그게 바로 다섯 대가문의 가주들인데 그들은 여러 군소 가문을 거느리며 각자의 지역을 다스리고 있다.


샬릭이 알기로 샨스 가문은 다섯 대가문 중에서 제일 강력한 세를 자랑하는 곳이었다. 샨스 가문은 귀중한 흑철 광산은 소유하고 있었으며 거기서 나오는 부를 바탕으로 가문의 세를 불려갔다.


만약 샨스 가문의 가주가 용을 죽이는 것에 성공했다면 북부의 모두가 그를 왕으로서 인정했을 것이다.


“북부의 왕이라고 자칭하는 그놈은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났습니다. 갈로스 가문을 순식간에 집어삼키더니 샨스 가문의 가주에게 결투를 신청했지요. 다들 터무니없는 짓이라고 비웃었지만 놈은 샨스 가문의 가주를 너무나도 쉽게 죽여버렸습니다.”


“샨스 가문의 가주라면······ 나이가 좀 있긴 해도 제법 강력한 전사였을 텐데.”


“그러니 놀라운 일이지요. 어쨌건 놈은 가주를 죽이고 나서 샨스 가문을 제 것으로 만들었습니다. 그리고는 곧장 전쟁을 일으켰지요. 놈은 다른 대가문들을 하나씩 격파하며 북부를 정복했습니다.”


“상당히 강력한 놈인 모양이군. 그런데 용도 안 죽인 놈이 그리 까부는데 왜 다들 가만히 있지? 북부의 첫 왕은 용을 죽인 진짜배기 용 사냥꾼이었다. 그런데 그놈은? 용도 죽인 적 없는데 왜 다들 놈을 북부의 왕으로 인정하는 거냐?”


고드릭이 한숨을 내뱉었다.


“북부의 전사들은 항상 강자에게 복종하지요. 어쨌건 놈이 북부에서 제일 강한 전사라는 것은 사실이지 않습니까? 용을 죽이는 거야 나중에라도 성공하면 그만이니까······.”


“그 말은 좀 거슬리는데. 놈이 북부에서 제일 강해?”


고드릭이 다급히 덧붙였다.


“지금 북부에는 있는 사람 중에서요. 물론 북부인 중에서 제일 강한 건 샬릭 님이지요.”


“그래. 그러면 놈이 자기가 북부의 왕이라고 주장하는 건 말도 안 되는 일이지 않나?”


“하지만 샬릭 님은 왕 하라니까 하기 싫다고 도망쳤지 않습니까? 그것도 그냥 도망친 게 아니라 북부의 보물까지 살뜰히 다 훔쳐서요.”


“훔친 게 아니라 뺏은 거야. 그리고 내가 왕 같은 걸 해본 적은 없지만 그게 몹시 귀찮은 일이라는 건 잘 알아. 심지어 그게 북부의 왕이라면 아주 끔찍하지. 이 정신 나간 놈들의 왕 노릇을 하라고? 차라리 혀 깨물고 죽지.”


“어쨌건 이번 일의 책임은 샬릭 님에게도 있습니다. 적법한 자가 왕위에 오르지 않으니 이런 일이 생긴 것 아닙니까? 그러니 책임지고 해결하시지요.”


“내게 그럴 책임은 없다만 어쨌건 문제는 해결해주지. 놈이 까불고 다니는 게 눈에 거슬리니까.”


고드릭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 너무나 감사하지요. 다만 시간이 없으니 서둘러야 할 겁니다. 놈이 뭔가 꾸미고 있거든요.”


“뭔가 꾸미고 있다니?”


“다섯 대가문은 수십 년 동안 서로 으르렁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북부의 왕의 이름 아래에 하나로 뭉쳤지요. 수십 년 동안 분열됐던 힘이 하나로 모이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잠자코 이야기를 듣고 있던 제리얀이 다급히 물었다.


“설마 전쟁?”


“북부인은 전장에서 죽어야 합니다. 그래야만 한다고 믿지요. 지금까지야 서로 치고받고 싸웠지만 이젠 그럴 수 없게 됐으니 그 넘치는 힘이 어디로 향하겠습니까?”


제리얀은 칼록이 뭘 우려했는지 알 것 같았다. 그러니까 북부인들이 밀고 내려오기 전에 막으라 이거지.


하기야 이미 제국공들의 다툼 때문에 혼란스러운 세상인데 북부까지 이 싸움에 끼어들면 어떻게 될지 뻔하다.


“그리고 전쟁도 문제지만 더 큰 문제는 이 고아원입니다.”


“고아원? 고아원이 왜요? 부모 잃은 아이들을 거두는 건 북부인답지 못한 행동이라고 하던가요?”


고드릭이 뭔 헛소리냐는 듯 얼굴을 찡그렸다.


“북부인을 뭐라고 생각하는 겁니까? 아무리 북부의 왕이 씹새끼라도 그런 말은 안 합니다.”


제기랄, 또 내 잘못이야? 제리얀이 혀를 찼다.


샬릭이 작게 웃다가 말했다.


“고아원이 왜?”


“고아원의 운영권을 내놓으라고 하더군요. 자기들이 아이들을 더 잘 키워줄 수 있다고 하면서. 정확히는 훨씬 더 훌륭한 전사로 만들어주겠다고 했습니다. 놈은 이 어린아이들까지 전쟁에 끌고 갈 생각인 겁니다.”


확실히 그런 생각을 하는 놈이면 어마어마한 씹새끼가 맞군. 제리얀이 고개를 끄덕이는 사이에 고드릭이 말했다.


“그리고······ ‘대장장이’에 대한 신변을 요구하더군요.”


“대장장이라면······.”


샬릭의 목소리가 심각해졌다. 제리얀이 물었다.


“대장장이가 누군데요?”


“모든 북부인이 전사인 건 아닙니다. 개중에는 전사들의 무기와 갑옷을 만들어주는 걸 생업으로 삼는 자들이 있지요. 그들도 직업적인 의미에서 대장장이가 맞지만 우리가 말하는 대장장이는 그게 아닙니다. 그건 일종의 별명이지요. 북부에서 흑철을 가장 잘 다루는 사람, 또한 유일하게 운철의 제련법을 아는 사람.”


제리얀이 아 소리를 냈다. 확실히 그런 사람이라면 북부의 왕이 탐낼 만한 인재다. 그런데 그 사람의 신변을 왜 고아원에 요구하나?


그 의문에 답한 건 샬릭이었다.


“대장장이는 이 고아원에 머물고 있다. 정확히는 여긴 원래 대장장이의 작업실이었고 내가 고아들을 하나씩 맡기다 보니 지금은 고아원이 돼버린 거야.”


“아, 그런 거였어? 그 대장장이라는 사람이 누구인지는 몰라도 인성이 대단한 모양이네. 아이들을 돌보는 게 쉬운 일은 아닐 텐데 말이야. 혹시 여기 있으신가? 누구신지 참 궁금한데······.”


제리얀의 목소리는 끝까지 이어지지 않았다. 갑작스럽게 문이 벌컥 열리며 누군가 안으로 들어왔기 때문이다.


누구지? 제리얀이 고개를 돌리니 거기엔 흰 수염을 길게 기르고 얼굴에 주름이 자글자글한 늙은 북부인이 있었다.


척 보기에도 눈이 이상했다. 초첨이 없어 보이는 눈은 어디를 보는지 알 수 없었고 꽉 쥔 주먹은 당장 뭔 짓을 저지를까 의심스러웠다.


제리얀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아니, 저분은 또 누구······.”


“첫 왕께서는 살아 계시다!”


귀가 아플 정도로 쩌렁쩌렁한 외침이었다. 다 늙어빠진 노인의 목소리가 대체 뭐 저리 크단 말인가?


제리얀이 당황한 채로 있자 고드릭이 한숨과 함께 말했다.


“저분이 대장장이입니다. 전에는 안 그랬는데, 요즘은 나이가 있어서 정신이 좀 오락가락하시지요······.”


북부, 과연 이대로 괜찮은 걸까? 제리얀은 슬슬 북부의 미래가 걱정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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