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 찢는 북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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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7.14 1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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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

DUMMY

“지금 그따위로 말하는데 내가 네 부탁을 들어줄 것 같나?”


샬릭이 고개를 삐딱하게 기울인 채 노려보자 무적공이 말했다.


“왜 안 들어주지? 네놈한테 손해 볼 것 없는 일 아닌가? 너는 용을 죽여야 하고 나는 용의 심장이 필요해. 여기서 대체 무슨 문제가 있나?”


무적공은 정말 뭐가 문제인지 모르겠다는 태도였다. 샬릭은 물론이고 지켜보던 제리얀조차 어이가 없었지만 두 사람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제리얀이야 감히 무적공을 상대로 그게 뭔 개소리냐고 외칠 자신이 없어서 그랬지만 샬릭까지 조용히 있는 건 뭔가 생각이 있어서일 터다.


잠깐 생각에 잠겨 있던 샬릭이 입을 열었다.


“용을 죽이는 거야 별로 어려운 일도 아니지. 그런데 용이 어디 있는지 알아야 죽이러 갈 것 아니냐. 혹시 그에 대한 정보도 있나?”


무적공이 이를 드러내며 씩 웃었다.


“물론 알고 있지. 내 부하들이 대륙 각지를 돌아다니며 용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고 있거든.”


“만약 내가 용을 죽이고 돌아와 그 심장을 네게 바치면 넌 나에게 뭘 줄 거냐?”


“원하는 것이라면 전부. 물론 제국공 자리를 내달라고 하면 그건 좀 어렵겠지만 말이야.”


샬릭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 의뢰를 받아들이지.”


무적공이 환하게 웃었다.


“그게 정말이냐? 고맙다, 정말 고마워! 하기야 미안한 줄 알면 당연히 그래야지. 북부인은 양심도 없는 줄 알았더니 그 정도 수준은 아니었군.”


왜 사람들은 북부인에 대한 악담을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하는 걸까? 그게 지역 차별이라는 걸 모르는 건가.


샬릭이 흠 소리를 냈다.


“그래서 보수 말인데, 그건 선금으로 받아야겠다. 솔직히 말해서 우리 사이에 믿음이라는 게 없지 않나.”


“보수를 선금으로? 웃기는 소리를 하는군. 우리 사이에 믿음이 없어? 그럼 그 말대로라면 네가 선금만 받고 도망칠 수도 있는데 내가 뭘 믿고 미리 보수를 내주지?”


“그래서 선금은 못 주시겠다? 그러면 이야기는 여기서 끝이야. 난 이 의뢰를 안 받아들여도 그만이지만 넌 아닐 텐데. 누가 손해인지 잘 생각해보라고.”


무적공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주먹을 꽉 쥐고 있는 걸 보니 분노를 참는 듯한 모양새였는데 반대로 샬릭의 태도는 여유롭기 그지없었다.


사실 이 협상에서 유리한 고지에 있는 건 샬릭이었다. 그는 무적공의 도움이 없어도 용을 죽일 수 있었으나 무적공은 샬릭의 도움이 없으면 용의 심장을 얻을 수 없었으니까.


두 사람의 눈싸움이 이어졌고 방 안의 공기가 무거워졌다. 용 사냥꾼과 제국공, 두 강자가 내뿜는 기운에 제리얀은 숨쉬기가 힘들어졌다.


그가 작게 켁켁 소리를 내고 있을 때, 갑작스레 공기가 누그러졌다. 먼저 백기를 든 건 무적공이었다.


“······그래, 아쉬운 건 나지. 선금을 주겠다. 그래서 뭘 원하지? 황금이냐?”


“황금으로 용의 심장을 사려면 그 양이 엄청 많아야 할 텐데. 그만한 양의 황금을 받아봤자 들고 다니기 어려울 것 같다.”


“하기야 그럴 테지. 그럼 다른 걸 주마.”


무적공이 손가락을 튕기자 아까 그 용병이 다시 안으로 들어왔다. 그에게 속삭이듯 뭔가를 지시하자 잠시 뒤에 상자 하나를 들고 돌아왔다.


용병은 자신의 임무를 마치고 조용히 자리를 떠났다. 무적공이 상자를 열자 그 안에는 반쪽으로 부러진 칼날이 있었다. 언뜻 보면 은처럼 빛나는 듯하나 자세히 보면 묵직한 회색이었다.


칼에 대해 잘 모르는 제리얀이 보기에도 범상치 않은 물건이었다. 잘은 몰라도 대단한 명검이었던 것 같은데 저게 왜 부러졌을까.


“이건···?”


샬릭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무적공이 흐흐 웃더니 말했다.


“알아보겠나? 운철로 만든 칼이다. 내가 용 잡겠답시고 북부를 돌아다니던 적에 찾은 거야. 내가 찾았을 때부터 이미 반으로 부러져 있더군. 이걸 녹여서 새롭게 칼을 벼려도 되겠지만 아쉽게도 운철을 다룰 수 있는 대장장이는 북부에만 있다더군. 하지만 난 그가 어디 있는지도 모르고, 설령 찾더라도 외지인인 내 부탁을 들어줄 것 같지 않아서 그냥 들고 돌아왔다.”


샬릭은 말이 없었다. 제리얀은 그가 생각에 잠겨 있다는 걸 알았다. 아무래도 저 반쪽짜리 칼날이 그에게 뭔가 중요한 의미가 있지 않을까.


무적공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내가 알기로 운철은 같은 무게의 황금보다도 배는 비싸다던데, 그만하면 보상으로 충분한 것 같군.”


“그래, 이 정도면 나도 받아들일 수 있지.”


샬릭이 손을 내밀어 칼날을 받아들였다. 그는 그걸 천으로 싸서 자신의 가방 안에 보관했다.


무적공이 말했다.


“그럼 이걸로 거래는 성립된 건가?”


“그래. 그래서 용은 어디에 있지? 위치를 알려주면 바로 가겠다.”


“성미가 급하군. 의욕이 넘치는 건 칭찬할 만한 일이지만 당장 떠날 필요는 없어.”


한시라도 빨리 용의 심장을 얻길 원했던 것 아닌가. 무적공은 이상할 정도로 여유로워 보였다.


“용은 여기서 말을 타고 가더라도 2주는 걸리는 곳에 있다. 왕복한다고 생각하면 한 달은 넘게 걸리는 여정이야. 내 누누이 말했지만 시간은 금이다. 한 달이나 되는 시간을 낭비할 수는 없지.”


“그럼?”


“차원문을 열어주겠다. 내 부하 중엔 유능한 마법사들이 많거든. 너는 그저 용과 싸우기만 하면 돼. 다만 이것저것 준비할 게 많아서 그러니 출발은 나흘 뒤로 하자고.”


용이 있는 곳까지 곧장 보내주겠다니 거절할 이유는 없다. 샬릭이 순순히 고개를 끄덕이자 무적공이 말했다.


“먼 길 오느라 수고했다. 내가 다시 부를 때까지 마음껏 쉬도록. 원하는 게 있다면 뭐든 말해라. 난 이 땅의 대영주요, 용병들의 군주로서 손님을 대접할 의무가 있으니.”


샬릭은 알겠다고 말한 뒤에 제리얀과 함께 방을 나갔다. 그들은 아까 그 용병의 안내를 받아 손님용 방에 도착했다.


그 안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던 중에 제리얀이 말했다.


“샬릭, 진심으로 저놈의 의뢰를 받아들일 거야?”


“받을 것 다 받았는데 인제 와서 안 하겠다고 하는 건 북부인이나 할 법한 짓이야.”


제리얀이 잠깐 생각하다가 말했다.


“너 북부인이잖아.”


“그걸 알면서 그런 질문을 하나?”


아, 그러니까 먹을 것만 먹고 입 씻겠다는 소리군. 하기야 고생해서 용을 죽였는데 그 심장을 왜 남한테 바치겠는가.


“그보다 혹시 종이 있나? 뭣 좀 쓸 게 있어서.”


갑자기 웬 종이? 제리얀이 탁자 위를 가리켰다.


“저기 있네. 그런데 글 알아? 내가 대신 써줄까?”


“넌 대체 북부인이 뭐라고 생각하는 거냐?”


“아, 미안.”


제리얀이 괜히 미안해져서 뒤로 물러났다. 샬릭이 탁자 위에서 뭔가를 끄적거리기 시작했다.


“다 됐다. 그런데 여기 몸 좀 씻을 데 없나? 용 몸속에서 그 난리를 쳤더니 굉장히 찝찝한데.”


확실히 샬릭의 모습은 끔찍했다. 몸 곳곳에 용의 피와 살점이 달라붙어 있었으니까. 솔직하게 말해서 악취도 났다.


제리얀이 바깥으로 나가 용병에게 물어보니 다행스럽게도 씻을 곳이 있었다.


“대욕탕이 있습니다. 특별히 두 분께서 전부 쓸 수 있게 해드리지요.”


샬릭과 제리얀은 용병의 안내를 받아 대욕탕으로 향했다. 대욕탕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거대한 목욕탕이었는데 이곳에서 몸을 씻으면 그간의 피로가 확 풀릴 것 같았다.


“갑옷은 제가 벗겨드리겠습니다. 손질도 해드릴 테니 이쪽으로.”


용병이 샬릭을 도와 갑옷을 벗기기 시작했다. 잠시 뒤에 맨몸이 된 샬릭을 보고서 제리얀이 감탄했다.


“이야, 몸이 무슨 조각상 같네. 근육이 무슨······.”


“그러는 넌 운동 좀 해야 할 것 같은데.”


“아니, 나도 어디 가서 몸 별로라는 소리 들을 정도는 아닌데.”


제리얀은 요정답게 균형 잡힌 체형이었다. 그러나 샬릭은 그야말로 거친 전사와 같은 몸을 가지고 있었고 그와 비교하면 제리얀은 왜소하게 보일 지경이었다.


“그런데 투구는······?”


용병이 묻자 샬릭이 고개를 저었다.


“이건 됐어. 댁 눈을 멀게 할 수는 없잖아? 난 말이야, 엄청 잘생겨서 함부로 투구를 벗으면 안 돼.”


“아, 네······.”


용병이 대충 고개를 끄덕이고 자리에서 물러났다.


샬릭과 제리얀은 대욕탕에 안에 들어가서 몸을 씻었다. 따뜻한 몸에 몸을 녹이니 노곤해지는 기분이었다.


두 사람은 만족스러운 목욕을 마치고 바깥으로 나왔다. 샬릭은 때마침 갑옷 손질을 마친 용병의 도움을 받아 갑옷을 입었다.


제리얀 역시 새 옷을 받았는데 척 보기에도 비싼 옷감으로 만들었다는 게 느껴졌다.


“저녁 식사가 준비됐습니다. 이쪽으로.”


목욕을 마치고 나서는 저녁을 먹었다. 그야말로 진수성찬이라는 말이 아깝지 않은 식사였다. 잠자리 역시 훌륭했다.


제리얀은 살면서 자신이 이런 대접을 몇 번이나 받아봤는지 생각해봤다. 이게 꿈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자고 일어나면 다 꿈일지도 모르지.


그러나 이러한 융숭한 대접은 꿈이 아니었고 둘째 날에도 이어졌다. 샬릭과 제리얀은 무적공의 손님으로서 귀한 대접을 받았다.


이런 나날이 매일 이어지면 좋으련만, 좋은 시간은 항상 빨리 가는 법이라고 어느새 출발 날짜가 다가왔다.


무적공이 샬릭과 제리얀을 불렀다.


“떠날 준비가 끝났다. 여기 있는 차원문을 통과하면 무너진 옛 성터 안이다. 거기서 안쪽으로 쭉 들어가다 보면 잠들어 있는 용이 있을 테니 그걸 죽이고 내게 용의 심장을 가져와.”


“약속했으니 그래야지.”


“아주 믿음직스럽군······ 이라고 말하고 싶지만 도통 믿을 수가 없어. 혹시나 날 배신하진 않겠지?”


샬릭이 삐딱하게 고개를 기울이며 말했다.


“미안한데 나도 댁 못 믿어. 솔직히 말해서 용과의 싸움이 끝난 뒤에 갑자기 댁이 나타나서 날 죽이려 들지 어떻게 아나? 댁 부하들 하는 짓거리 보니 그러고도 남겠던데.”


무적공이 얼굴을 일그러트렸다.


“감히 날 의심해?”


“댁도 나 의심했잖아. 그래서 하는 말인데, 괜한 생각하지 마. 뒤통수칠 생각하지 말라고.”


“왜? 네가 나보다 강해서? 이 건방진 놈, 네가 날 한 번 이겼다고 해서 이번에도 그럴 줄 아느냐?”


무적공의 두 눈에 노기가 서렸다. 그 몸에선 흉흉한 살기가 뿜어져 나오고 있었는데 샬릭은 태연하게 말을 받았다.


“내 뒷배에 누가 있는지 알면 깜짝 놀랄걸. 네가 날 죽이면 그분께서 널 가만두지 않으실 거다.”


가만히 듣고 있던 제리얀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샬릭한테 뒷배가 있었나?


“뒷배라고? 네가 누구 밑으로 들어갔다는 소리냐? 그럴 리가······.”


“나도 정착할 곳이 있긴 해야지. 언제나 떠돌고 있을 수는 없잖아.”


“그래서 네 주인이 누구냐? 대체 누군데 그리 겁을 주는 게야?”


샬릭이 답했다.


“불사공 전하시다.”


“부, 불사공? 설마 아크툴의 대영주인 테레모 베르쟈를 말하는 게냐?”


무적공이 눈에 띄게 당황했다. 그는 테레모가 얼마나 강력한 존재인지 잘 알고 있었다.


“그래. 그러니까 나쁜 마음 먹지 마. 이건 충고야.”


“네가 불사공의 수하라고? 그럴 수가······. 아니, 정말로?”


“믿기 어렵다는 얼굴이군? 그럼 내 증거를 보여주지. 이건 내가 불사공 전하에게 받은 편지다. 만약 날 배신하고 싶어지면 그걸 열어봐.”


샬릭이 주머니에서 편지 한 장을 꺼냈다. 그걸 받은 무적공은 여전히 혼란스러운 얼굴이었다.


“우린 이만 간다.”


샬릭은 제리얀을 데리고 차원문을 통과했다. 무적공은 차원문과 편지를 번갈아 쳐다보다가 입술을 세게 깨물었다.


저놈이 한 말이 진짜일까? 하지만 거짓말이라고 하기엔 너무 당당하던데. 불사공의 이름은 거짓으로 말하기엔 너무나 무겁다. 그럼 정말로 저놈이 불사공의 부하라고?


어느 쪽이 정답인지 알 수가 없다. 샬릭은 배신할 마음이 들면 편지를 열어 보라고 했지만 미칠 듯한 궁금증 때문에 더는 참을 수가 없다.


무적공은 고민 끝에 편지를 열어봤다. 거기엔 이렇게 적혀 있었다.


‘이 편지는 아크툴에서 최초로 시작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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