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 찢는 북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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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7.14 1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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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04 1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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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

DUMMY

“제리얀, 너 찾는데?”


샬릭이 고개를 돌리자 제리얀이 한숨을 내뱉었다.


“상식적으로 나겠냐고······.”


“거기서 상식적이라는 말이 왜 나오지? 그럼 상식적으로 생각했을 때 내가 미친 살육자라는 뜻인가?”


“살육자인 건 모르겠는데 미친 건 맞지 않나? 북부인이잖아.”


천하의 샬릭도 그 말엔 반박할 수 없었다.


“이게 무슨 소란이야?”


젊은 사제가 워낙 크게 소리친 탓에 주변에 있던 사람들의 시선이 전부 이쪽으로 모였다. 개중에는 신전을 지키고 있던 성기사들도 있었다.


“미친 살육자입니다! 신탁에 나왔던 바로 그 살육자!”


젊은 사제의 외침에 성기사들의 얼굴이 심각해졌다.


“이 남자가?”


“오해가 있는 것 같은데 내가 아니라 이 친구야.”


샬릭이 손가락으로 제리얀을 가리켰지만 거기에 속는 사람은 없었다. 하기야 당연한 일이다. 신탁에 나온 건 갑옷 입은 전사였으니까.


“붙잡아라! 붙잡아서 대신관님께 데려가!”


성기사들이 하나둘씩 모여들자 그 숫자가 스무 명을 넘어갔다. 모두가 긴장한 채 샬릭을 노려봤지만 정작 샬릭과 제리얀은 별로 긴장한 기색이 아니었다.


“뭔가 작전이 있지, 샬릭?”


“있지. 칼부림이라고 내가 제일 잘하는 거 있어.”


“제기랄, 그럴 줄 알았어. 그런데 성기사들 죽여도 되는 거 맞아? 그랬다간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너게 될 것 같은데.”


“그럼 죽이지 말고 제압만 할까.”


샬릭이 칼자루 위에 올렸던 손을 뗐다. 그가 두 주먹을 꽉 쥐고서 격투 자세를 잡자 성기사 중 한 명이 눈을 가늘게 떴다.


“맨손으로 싸우려고?”


“그럼 안 되나?”


물론 성기사들 입장에서 안 될 건 없다. 적이 무기 없이 맨손으로 싸우겠다는데 구태여 칼 뽑으라고 할 이유는 없으니까.


그러나 왠지 모르게 저 여유로운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 자신들을 얼마나 우습게 보면 칼조차 뽑지 않는단 말인가.


“···후회할 거다.”


“보통 그런 말을 한 사람이 후회하더라고.”


성기사가 쯧 하고 혀를 차더니 칼을 뽑았다. 먼저 움직인 건 샬릭이었다.


그가 바닥을 박차고 뛰자 그 자리가 크게 금이 가며 갈라졌다. 엄청난 속도로 거리를 좁혀오는 샬릭을 보면서 성기사가 멍하니 생각했다.


‘어, 이거 위험······.’


생각은 끝까지 이어지지 않았다. 눈으로 따라가기도 벅찬 속도로 날아온 주먹이 그 얼굴을 힘껏 후려쳤으므로.


어찌나 세게 쳤는지 맞는 순간 정신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그 덕에 고통을 느낄 새도 없었으니 오히려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성기사 하나가 맥없이 쓰러지자 다른 성기사들이 함성을 내지르며 샬릭에게 달려들었다. 물론 그들이라고 해서 먼저 쓰러진 성기사와 다를 건 없었다.


양 떼 사이에서 날뛰는 늑대처럼, 샬릭은 자신을 둘러싼 성기사들을 무참히 쓰러트렸다. 주먹을 내지를 때마다 성기사 하나가 쓰러지고 또 쓰러졌다.


“협동해!”


성기사들이 양쪽에서 달려들었지만 샬릭은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그는 날렵한 움직임으로 공격을 피한 뒤에 성기사의 쭉 뻗은 팔을 손으로 붙잡았다.


샬릭의 악력은 갑옷을 우그러트릴 정도였다. 팔을 붙잡힌 성기사는 우드득 소리와 함께 구겨지는 갑옷을 보고서 두 눈을 크게 떴다.


“어어······.”


멍청한 목소리와 함께 성기사의 몸이 공중을 날았다. 몸이 붕 뜨는 감각과 함께 휙 하고 던져져 달려오던 다른 성기사와 부딪쳤다.


“크악!”


성기사들이 한데 얽혀 쓰러진 것을 보고서 샬릭은 반대쪽으로 뛰었다. 거기엔 또 다른 성기사들이 있었는데 쭉 뻗은 손이 성기사 한 명의 얼굴을 세게 붙잡았다.


뿌득 소리와 함께 투구가 우그러지더니 성기사가 비명을 내질렀다. 그가 칼을 휘두르며 반항하려 하자 샬릭은 그대로 얼굴을 잡고 바닥에 처박아버렸다.


쿵! 바닥이 부서지고 성기사가 그 안에 박혔다. 저게 인간의 근력으로 가능한 일인가? 싸움을 지켜보던 사람들의 얼굴이 점차 경악으로 물들어 갔다.


지금 이 장소에서 당황하지 않는 건 제리얀 한 명뿐이었다.


‘무적공도 이겨 먹은 놈인데 저 정도야 뭐······.’


제리얀이 보기에 샬릭은 대신전 안에 있는 성기사들을 혼자서 몰살할 수 있었다. 그는 어지간한 제국공보다도 강하니까.


“이쪽이다! 이쪽으로!”


샬릭이 성기사들을 차근차근 쓰러트리고 있을 때, 어디선가 성기사들이 또 나타났다. 그러나 그걸 보고 겁먹는 기색은 없었다.


샬릭은 그저 해야 할 일을 하는 것처럼 묵묵히 치고, 때리고, 차고, 일련의 행동을 무미건조하게 반복했을 뿐이다.


“붙잡았다!”


성기사 세 명이 달려들어 샬릭의 몸을 붙들었다. 세 명이나 달라붙었으니 충분히 움직임을 제약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그러나 그건 확실한 오산이었다. 샬릭이 왼쪽 어깨에 달라붙은 성기사를 향해 박치기를 날렸다. 코뼈가 부러지고 이가 무더기로 쏟아져 내리는 게 보였다. 그 뒤엔 곧장 허리를 붙잡은 성기사의 등을 팔꿈치로 세게 내려찍었다.


단지 그뿐이었는데 성기사가 피를 왈칵 뱉어내며 바닥으로 쓰러졌다. 이제 남은 건 오른쪽 어깨에 달라붙은 성기사였는데 가볍게 주먹을 날린 후에 자세가 흐트러지자 발차기로 허벅지를 박살 냈다.


샬릭은 몇 초도 지나지 않아 자신을 붙잡은 성기사들을 전부 무력화하고 되레 공격에 나섰다. 그의 양손은 성기사들의 피로 번들거렸다.


“미친 살육자다! 신탁이 옳았어!”


칼록 신자들이 경기했다. 그들은 몸을 부들부들 떨더니 칼록의 이름을 부르짖으며 도망쳤고 남은 성기사들 역시 약하게나마 손을 떨었다.


그러나 용케 도망치지 않고 샬릭과 맞섰다.


“칼록을 위하여!”


성기사들이 어찌나 열렬히 달려드는지 지켜보는 제리얀이 다 안쓰러울 지경이었다. 저래봤자 자기들만 다칠 텐데.


그러거나 말거나 성기사들을 열심히 샬릭을 공격했다. 그 끈질긴 집착이 효과가 있었는지 성기사 하나가 처음으로 공격에 성공했다.


“맞았다!”


그러나 샬릭은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 다른 성기사들이 자신의 몸을 후려치든 말든 무시하고서 성큼성큼 걸어갔다.


주먹을 들어 성기사 하나를 때려눕혔다. 그리곤 다음 상대를 찾아 떠났다. 뒤에서 누가 투구를 때렸지만 무시했다.


성기사들은 샬릭이 자신들을 무참히 때려눕히는 것보다 고통을 모르는 광전사처럼 구는 저 모습을 더 두려워했다.


저놈은 진정 괴물인가? 이 무슨 말도 안 되는······.


“어쩌면 오늘 우리는 전부 죽을지도 모르겠다.”


성기사 하나가 허탈하게 중얼거렸다. 그러나 그는 손에 들고 있던 칼을 더욱 세게 쥐었다.


“그러나 칼록을 위해 싸우다 죽는다면 그만한 영광도 없을 테지.”


“그 말대로다! 우린 오늘 칼록을 위해 죽는다!”


“칼록을 위하여!”


자기들끼리 헛소리나 지껄이고 난리 났군. 샬릭은 가볍게 손목을 털고서 누구부터 쓰러트릴지 고민했다.


“그만!”


복도가 울릴 정도로 쩌렁쩌렁한 목소리. 분명 노인의 것일 텐데 그 성량이 어마어마했다. 모두의 시선이 목소리가 난 쪽으로 움직였다.


거기엔 성기사들을 대동한 한 명의 노인이 있었다. 그가 다시 한번 소리쳤다.


“그만해라! 성전에서 이 무슨 짓거리냐!”


“댁은?”


샬릭이 노인을 쳐다보며 묻자 성기사 하나가 소리쳤다.


“댁이라니? 이분은 대신관님이시다!”


“대신관이라고?”


노인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대신관 데르마요. 이 신성한 장소에서 이게 대체 무슨 짓이오?”


“미안한데 저쪽이 먼저 덤볐어. 아무래도 서로 오해가 있는 모양인데 대화로 해결할 생각은 없나? 혹시나 해서 말하지만 난 아무도 안 죽였어. 아직은 말이지.”


데르마가 턱짓하자 성기사들이 쓰러진 성기사들의 상태를 확인했다. 대부분 샬릭이 거의 일격에 쓰러트린 덕에 오히려 크게 다치지 않고 기절하기만 했다.


“전원 살아있습니다. 사제들에게 상태를 봐달라고 하겠습니다.”


데르마가 다시 샬릭을 쳐다봤다. 그래도 되겠느냐는 무언의 질문에 샬릭이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고맙소. 대화로 해결하자고 하셨으니 대화하러 갑시다. 이쪽으로 따라오시오.”


샬릭은 순순히 데르마의 뒤를 따랐다. 뒤쪽에서 적의 어린 시선이 느껴졌지만 무시했다.


“어디로 데려가려는 걸까? 설마 감옥?”


제리얀이 속삭이자 샬릭이 웃었다.


“그럼 거기가 자기 묫자리 될 텐데 설마 그러려고.”


데르마도 샬릭의 목소리를 들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묵묵히 걷기만 했다.


길고 긴 복도를 지나 그들이 도착한 곳은 신전의 중심부였다. 제단이 있고 기도를 드릴 수 있는 공간이었는데 지금은 아무도 없었다.


데르마가 여기까지 와서야 입을 열었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대충 알겠소. 얼마 전에 있었던 신탁 때문이겠지. 얼마 전 칼록께선 우리에게 한 가지 환영을 보여주셨소.”


그게 나에 대한 거라고? 샬릭이 물었다.


“어떤 환영이었지?”


“갑옷 입은 자가 칼을 들고서 이 세상의 모든 걸 불태워버리는 장면이었소. 이런 말을 하긴 좀 그런데, 그걸 보면 누구나 당신을 멸망의 인도자라고 생각하지 않겠소?”


“글쎄, 오해할 만한 일이라고 생각하긴 하지만 고작 그런 걸로 다짜고짜 남을 공격하나? 세상에 갑옷 입고 칼 든 놈이 나 하나뿐인 것도 아니고.”


“일단 이번 일에 대해선 사과드리겠소. 다만 누가 봐도 당신이 확실하다는 것만은 말해두지.”


이토록 확신에 차서 말하니 당혹스럽다. 샬릭이 크음 하고 헛기침을 한 뒤에 말했다.


“그럼 내가 그 환영에 나온 사람이 맞다고 치자. 그래서 날 죽이기라도 하려고?”


데르마가 주변에 선 성기사들을 흘끔 쳐다봤다. 그들이 당장이라도 칼을 뽑을 수 있게 잔뜩 긴장하고 있다는 게 보였다.


늙은 대신관은 후 하고 한숨을 내뱉더니 가볍게 손을 들었다. 성기사들은 잠깐 고민하다가 칼자루 위에서 천천히 손을 내렸다.


“그럴 수야 없지. 본래 신탁이라는 건 두루뭉술해서 필멸자의 머리로는 완벽하게 이해하기 어렵소. 그러니 우리 칼록에게 물어봅시다.”


“물어보다니, 뭘? 내가 미친 살육자가 맞는지?”


“비슷하오. 자, 이쪽으로.”


데르마가 샬릭을 제단 위로 안내했다. 거기엔 커다란 석판 하나가 있었는데 데르마가 그걸 손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이건 진실의 석판으로서 우리가 칼록에게 가르침을 구할 때 쓰는 물건이오. 우리가 뭔가를 물으면 칼록께서 대답을 내려주시지. 물론 묻는다고 해서 항상 답이 내려오는 건 아니오. 사실 답이 내려오지 않게 된 건 제법 오래된 일이오. 하지만 칼록께서 당신과 관련된 환영을 보여주셨으니 이번에도 우리의 질문을 무시하진 않으리라 생각하오.”


“그러니까 여기다 질문을 하자는 거군. 흥미로운데, 한 번 해봐.”


데르마가 잠깐 호흡을 고르더니 조심스럽게 석판 위에 손을 올렸다.


“위대한 칼록이시여, 당신의 미천한 종이 감히 묻고자 합니다. 당신이 보여주셨던 환영 속에 나왔던 남자가 이 자가 맞습니까?”


샬릭이 석판을 가만히 쳐다보고 있으니 갑작스레 슥 소리가 났다.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석판에 칼자국이 생기기 시작했다.


여러 번 칼자국이 그어지고서 짧은 한 문장이 완성됐다. 석판에 이렇게 쓰여 있었다.


옳다.


“옳다? 그럼 역시나······.”


데르마가 샬릭을 쳐다보고 성기사들이 재빨리 칼자루 위에 손을 올릴 때였다.


멀뚱히 보고 있던 샬릭이 갑작스레 주먹을 휘둘러 석판을 박살 냈다. 쾅 소리와 함께 그가 말했다.


“신은 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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