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
“우리 망했네.”
"올 것이 온 거지."
"종말의 날을 직접 보게 될 줄이야."
시뻘겋다 못해 검게 변해버린 초 거대 게이트.
그것을 본 사람들은 체념의 말을 털어놓거나 절망한 얼굴로 게이트를 바라보곤 했다.
“젠장, 하필 왜 내 세대에서 이런 일이. 재수도 오질나게 없지.”
어떤 헌터의 입에서 이런 말이 나왔다.
사실은, 싸우기 위해 모인 헌터들 전부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
헌터나 일반인이나 목숨 귀한 사람이긴 매한가지니까.
딱 한 사람만 빼고.
척.
초거대 게이트 바로 아래.
최후의 결전을 위해 모인 헌터들의 가장 중심에 있는 자.
오십이 다 된 나이에 온몸은 상처투성이이며, 고된 훈련 탓에 손마디가 툭툭 불거져 나온 헌터 백남호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이제야 내 죄를 좀 씻어낼 수 있으려나?’
철없는 청춘을 보낸 그는, 부모님에게 단 한 번도 좋은 아들이었던 적이 없었다.
부모님이 자기 대신 몬스터에게 먹혔던 그날까지도.
하지만 불행 중 다행으로, 부모님의 죽음 이후 그는 정신을 차렸다.
그제서야 철이 들었다는 말이다.
그날 이후 백남호는 피나는 노력 끝에 ‘검신’이라는 칭호를 얻었다.
그의 가슴에서 빛나고 있는 검 다섯 개, 헌터계 최고 원수를 뜻하는 훈장이 이를 증명해 주고 있었다.
하지만 훈장을 받았을 때에도 그는 하나도 기쁘지 않았다.
자신을 대신해서, 혹은 자신이 부족해서 먼저 보내버린 사람들이 늘 그의 어깨를 짓누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여기서 난 죽겠지. 그건 괜찮다. 다만, 나 대신 가치 있는 생명이 하나라도 더 살았으면 할 뿐이야.’
우우웅.
그의 검이 푸른 빛을 뿜었다.
“저게 그 ‘검신’의 마나구나!”
“어떻게 마나가 눈에 보일 수가 있는 거지? 밀도가 어느 정도인 거야?”
그의 마나를 본 헌터들이 놀라 웅성댔다.
개중엔 외국어로 뭐라 말하는 헌터들도 많았다.
캬아아악!
게이트 안쪽에 있던 몬스터가 모습을 드러냈다.
머리통이 산봉우리만치 큰 붉은 드래곤이었다.
용이란 걸 실제로 보게 될 줄이야.
타닷.
하지만 백남호는 그 끔찍한 드래곤의 모습을 보고도 망설이지 않고 도약했다.
그는 예전부터 항상 목숨을 내놓고 살아왔으니까.
모든 걸 잃은 자는 두려움이 없다.
콰과과곽!
그가 날린 참격이 하늘을 갈랐다.
놀랍게도, 그것은 단단한 돌 같은 드래곤의 가죽에 생채기를 냈다.
“우리도 출격하자!”
적은 한 마리.
헌터들은 다수.
이런 상황이니 거창하고 복잡한 전략 따위는 없었다.
그저 최대한 녀석이 나오지 못하도록 막고.
기회가 된다면 저 삐져나온 목을 잘라 버리는 것.
모든 헌터들이 오로지 그 임무 하나를 가슴에 새긴 채 날아올랐다.
광!
치지지직.
화염과 전기, 도끼와 활 등등.
마나를 실은 모든 공격이 드래곤의 목으로 쇄도했다.
***
백남호의 시체가 차가운 땅바닥에 널브러져 있었다.
이미 왼손은 드래곤의 브레스를 직격으로 맞아 다 타서 쪼그라들었고.
오른손과 두 발도 전부 부러져 버렸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주변에는 그런 그를 일으켜 줄 헌터가 더 이상 남아 있지 않았다.
“으으.”
이미 죽은 자와 곧 죽을 자.
그의 주변엔 오직 그런 사람들뿐이었다.
화르르륵.
완전히 게이트에서 나와버린 드래곤은 화가 많이 났는지 계속 브레스를 뿜어대고 있었다.
아마 녀석의 감은 왼쪽 눈에 새겨진 긴 자상 때문일 것이다.
그 상처는 오늘의 전투에서 남호가 유일하게 남긴 업적이었다.
안타깝게도 다른 헌터들은 그 근처까지 가지도 못하고 쓸려 나갔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완전히 열려버린 최종 게이트에선 갖가지 종류의 몬스터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었다.
켈켈켈.
그중 고블린 한 놈이 뒤뚱대며 남호의 곁으로 다가왔다.
툭툭.
그리곤 발로 그를 차면서 놀더니, 남호의 가슴에서 반짝이는 훈장을 휙 낚아챘다.
“킥켁.”
그게 뭔 줄 알긴 하는 건지, 고블린은 그것을 자기 빤스에 꽂은 후 좋다고 엉덩이를 씰룩댔다.
대한민국을 빛낸 가장 위대한 헌터의 훈장이.
냄새나는 쬐그만 고블린의 빤스에 걸렸다.
남호는 이 장면이 인류의 멸망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 같다고 느꼈다.
콰직!
고블린 녀석은 남호를 갖고 놀기로 작정한 모양이었다.
녀석이 발길질을 할 때마다, 그의 얼굴에서 피가 났고 이빨이 깨져나갔다.
몸을 보호할 마나조차 남지 않은 탓이다.
그는 여기서 죽음을 직감했다.
‘후회된다. 조금만 더 일찍 정신 차릴걸.’
대부분의 인간이 그렇듯, 그는 죽어가면서 지난날을 후회했다.
‘딱 십 년만, 아니 오 년만 더 일찍 정신을 차렸어도 부모님과 동료들을 살릴 수 있었을 텐데.’
하지만 검신의 호칭을 얻은 그일지라도, 지나가 버린 일을 돌이킬 순 없었다.
그런 줄 알았다.
삐빅.
[최종 게이트 공략에 실패하였습니다.]
와중에 상태창이 최후의 패배 선언을 했다.
‘나도 알아 이 새꺄.’
지금 나 외에 저 문구를 볼 수 있는 헌터가 남아 있긴 할까?
남호는 이런 생각이 들었다.
[기여도를 측정합니다.]
[검신:90%]
[호키포키:5%]
[매드우먼:3%]
···
[기여도가 가장 높은 ‘검신’헌터에게 특전을 부여합니다.]
‘특전?’
황천길 건널 보트 시동 걸렸는데, 인제 와서 무슨 특전이냐?
[특전: 초기화 사용권 1매.]
‘초기화?’
[초기화: 고유 특성을 얻기 전 시점으로 되돌아갑니다. 사용하시겠습니까?]
남호의 고유 특성은 ‘극검’이라는 특성이었다.
백남호 고유 검술이라 불렸던 극검.
그가 '검성'이라는 호칭을 얻게 해준, 그 귀중한 특성을 얻기 전으로 돌아간다라.
‘그 전이란 게 대체 언제쯤이란 거지? 한 살? 열살? 아니면 스무 살?’
그 시기에 대한 내용은 없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남호의 마음은 이미 정해져 있었다.
‘무조건 돌아가야지!’
그게 언제가 됐든.
돌아가서 바꿀 수 있는 건 싹 다 바꿔 버릴 거다.
물론 좋은 쪽으로.
그가 아끼는 사람을 살리는 쪽으로.
그리고, 그와 동료를 배신한 자들을 죽이는 쪽으로.
***
“특전을 사용하겠다.”
남호가 작게 외쳤다.
그후.
콰직!
고블린이 휘두른 몽둥이에 그의 두개골이 부서져 버렸다.
***
오랜만에 꿈을 꿨다.
한국의 최고 헌터가 되고, 외국에서도 유명세를 떨치게 된 검신 남호의 일대기가 아니라.
젊은 시절, 형편없는 개망나니였던 시절의 꿈을.
‘그래. 옛날엔 내가 저렇게 병신이었지.’
그저 그런 스탯을 가졌음에도 노력조차 하지 않았다.
하는 건 맨날 싸움박질과 얼굴을 가꾸는 일 정도였다.
이런 말 하긴 뭐하지만, 내가 좀 잘생기긴 했거든.
날카롭고 무서운 이미지가 좀 강하긴 하지만.
‘꿈에서의 마지막 장면이, 오토바이 타고 전봇대에 처박힌 거였나.’
헌터 때려치우고 배달 일을 한답시고 엄마한테서 돈을 뜯어냈었다.
그렇게 해서 산 오토바이로 과속하다가 전봇대를 박아버린 거다.
그나마 엄한 다른 차를 박은 게 아니라 다행이었다.
“으음.”
쨍한 빛에 절로 미간이 찡그려졌다.
아침인가보다.
역시 꿈은 꿈일 뿐···?
“선생님! 여기 백남호 씨 의식 돌아왔습니다!”
“어? 잠깐만 바로 갈게요!”
눈이 빛에 익숙해지자 살며시 눈꺼풀을 들어 올렸다.
‘어?’
의사도 놀라고 나도 놀랐다.
낯설지만 어딘지 알 것 같은 천장이었다.
여긴 틀림없는 병실이다.
‘설마 나, 정말 다시 돌아온 거야?’
정말 과거로 회귀한 모양이었다.
의사가 의식을 확인하고 이름이나 나이 같은 것을 물어보는 동안에도 나는 그저 얼떨떨했다.
‘그 교통사고가 난 이후로 돌아온 거야?’
그렇다면 설마!
“남호야!”
“엄마?”
누군가 따뜻한 팔로 나를 감싸 안았다.
얼굴을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엄마 냄새가 났으니까.
주륵.
나도 모르게 눈에서 물이 줄줄 나왔다.
됐다. 이거면 됐다.
부모님께서 살아계신 시점으로 돌아왔다니.
더 바랄 게 없었다.
“아이고 남호야. 너 그거 알어? 네가 사흘 만에 깨어난 거? 여보, 우리 애가 일어났어. 빨리 와 봐요.”
‘그래. 그랬던 것 같아.’
사고 이후 사흘 동안 눈을 못 떴다.
하지만 이런 사고를 당한 뒤에도 난 정신을 못 차리고 계속 방황했었다.
‘새삼 느낀다. 백남호 넌 진짜 개망나니 불효자 새끼였어.’
뒤이어 들어오신 아버진 엄마처럼 강렬한 반응을 보이진 않았다.
원래도 아버진 엇나가기만 했던 나와 사이가 썩 좋지 않았다.
‘이게 정상이야. 아니, 오히려 날 많이 봐주신 편이지.’
오십까지 살아본 나는 이제야 아버지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었다.
만일 내가 아버지였다면.
그리고 내 자식이 나 같은 개망나니였다면.
검 쓰기도 아깝다며 몽둥이로 자식을 후두려팼을 거다.
“뭘 보고만 있어?”
엄마는 아버지가 내게 뭔가 따뜻한 이야기라도 해 주길 바라는 눈치였지만.
아버진 오묘한 표정을 지은 채 휙 나가 버리셨다.
그래. 저래야 우리 아버지지.
“남호야. 아빠가 많이 놀라서 그래.”
때마침 의료진들이 내게 다시 다가왔다.
의식이 돌아온 건 확인하였으나, 몸이 제 기능을 할 수 있는지 기본적인 검사가 필요하다고.
“그러면 일단 몸 추스르고 있어. 엄마 다시 올게.”
“네. 천천히 오셔도 돼요.”
내 대답에 엄마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남호 너, 왜 존댓말을 쓰고 그래? 엄마 무섭다. 그냥 평소에 하던 대로 해.”
“네, 으응. 알겠어.”
너무 오래간만에 부모님을 뵌 탓에.
나도 모르게 존댓말이 튀어나왔다.
하지만 그 때문에 오히려 걱정만 더 끼쳐 버렸다.
그런 엄마의 표정을 보니 마음이 좋지 않았다.
‘두고 보세요. 이렇게 다시 만나게 됐으니, 이번엔 속 안 썩이고 사람답게 살게. 나 진짜 제대로 효도할게.’
삐-이이익!
그때 귀를 찢는 불쾌한 경고음이 들렸다.
사람들이 가지고 있던 스마트폰에서 나는 소리였다.
그 소리에 사람들의 안색이 허옇게 질렸다.
“어떻게 된 거야?”
“또 게이트가 발생했나 봐.”
“몇 급?”
“헉! C급이야.”
“근처에 헌터는 있는 거야?”
“서울 시내니까, 상주 헌터는 있겠지.”
“아아, 마정석이 있었다면.”
모두 패닉에 빠졌다.
‘그래. 이 시기가 딱 그때였지. 게이트 쇼크 이후 격변기.’
게이트 쇼크 사태가 발발하기 이전엔 마정석 무기가 대세였다.
사용자가 각성을 안 해도, 별다른 전투 기술이 없어도 조준만 잘하면 몬스터를 석석 썰어대던 무기가 바로 마정석 무기였으니까.
레이저건, 마력 폭탄, 마력 방사기.
인간은 그것들을 이용해 몬스터를 쓸어버렸다.
그들은 겁나는 게 없었다.
S급? A급? 생기면 오히려 환호하며 달려들었다.
그때의 게이트는 ‘마정석’이라는 노다지 밭일 뿐이었으니.
‘기술력이 곧 무력이었지. 각성한 헌터보다는 무기가 더 중요한 시대였고.’
하지만 게이트 쇼크 이후 모든 것이 달라졌다.
이 년 전, 게이트의 파장이 갑자기 강해져 게이트 안에서 마정석으로 가공한 무기가 제어되지 않는 상황이 벌어졌다.
그래서 마정석 무기들은 게이트에서 조준이 잘 안되거나 갑자기 터져버리기 일쑤였다.
화약을 이용한 총기류도 물론 마찬가지.
그 현상으로 인해 몬스터보다 사람이 더 많이 다치게 되자, 자연스레 마정석 무기는 더 이상 쓰이지 않게 되었다.
‘그 후 진짜 각성을 한 자들만 게이트를 갈 수 있게 됐지. 몬스터는 마나가 깃든 무기를 써야만 죽일 수 있었으니까.’
유일하게 몬스터를 죽일 수 있는 존재가 된 각성자, 즉 헌터.
그들의 가치는 기하급수적으로 올라갔다.
문제는, 헌터들의 능력이 그들이 싸워야 할 몬스터에 미치지 못한다는 것.
‘슈팅 게임하듯 편하게 레이저나 갈기다가, 갑자기 도끼나 활, 검을 능숙하게 쓸 수 있었겠냐고.’
그래서 이 격변기에 참 많이도 죽었다.
개중에서도 주로 돈 없고 빽 없는 헌터들이 고기 방패로 쓰였다.
삐빅.
'종로구 C급 게이트 공략 완료되었습니다.'
다행히 몇 시간 후에 공략이 됐다는 알림 문자가 왔다.
뉴스를 보니 헌터 서른 명이 투입되었고, 그중 세 명은 안타깝게도 사망하였다고.
인류의 암흑기다운 결말이었다.
‘지금의 내 능력도 대부분의 헌터들처럼 형편없겠지.’
‘상태창.’
상태창은 소유한 특성과 기술만을 보여준다.
헌터 등급 같은 건 협회에서 테스트 후 부여하는 거다.
[특성]
[강화D], [잠재력EX]
[기술]
[신체 강화 Lv.2]
‘응?’
강화 특성 D급과 강화에서 파생된 신체 강화 기술 2레벨.
거기까진 알고 있었다.
근데 저 잠재력이란 건 뭘까? 게다가 S도 아니고 EX 레벨이라니.
어디서 들어 본 적도 없는 레벨이다.
해당 특성에 집중해 상세 내용을 열었다.
[대상자의 업적과 능력이 '잠재력'이라는 특성으로 치환됩니다.]
[잠재력EX: 기술 습득 시간을 10배 단축합니다.]
‘헉!’
이건 마치 경험치 10배 이벤트와 같은 거였다.
게다가 지금의 난 ‘검신’이었을 때의 기술을 모두 머리로 익힌 상황.
이전 생에서 최고의 경지에 오르기까지 대략 삼십 년 정도 걸렸으니.
만일 그대로 노력한다면 이제는 삼 년 만에 모든 기술을 터득할 수 있을 터였다.
'이건 뭐, 검만 슥슥 휘두르면 기술 하나가 추가되는 수준이 아닌가?'
이전 생에서 기술 하나를 얻기 위해 피나게 노력했던 나에게는 더없이 완벽한 특성이었다.
‘상태창 너도 결국 인류의 편이었구나.’
아니, 회귀하여 부모님을 만나게 해 주고, EX급 특성까지 얹어줬으니 내 편이라고 해야 하는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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