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 떨어지는 놈 (3)
청파랑의 길드장이자 국보급 헌터인 정백호.
그는 게이트 발생 초기까지만 해도 검술로서 이름을 크게 날렸다.
그를 따르는 제자만 수백이 넘었고, 그가 가는 곳마다 한국의 신기록이 깨졌다.
젊은 시절의 그는 명실공히 대한민국 최고의 검사이자 헌터였다.
하지만 그 기세는 오래가지 못했다.
- 세계 최고의 방산 기업인 테이머, 마정석 레이저건 개발.
- M-45. 몬스터 사살 가능. 첫 몬스터용 무기로 기네스 등재.
- M-445. 세계 최초로 S급 몬스터를 잡아.
그가 평생을 닦아 온 검술은 마정석으로 만들어진 무기들에 완벽히 패배했다.
검술은 더 이상 게이트에서 사용되지 않았다.
그도, 검도 이 세상에서 필요가 없어졌다.
‘겉멋 든 칼잡이.’
S급 헌터인 그에게 이런 멸칭을 붙이는 자들도 더러 있을 정도였다.
그럴 때마다, 정백호는 이를 악물고 더 열심히 싸웠다.
백만 원도 안 되는 수당을 받고 일한 적도 있을 정도였다.
S급 헌터임에도, 그렇게 개 같이 싸우러 다녔다.
‘그땐 정말 한 마리의 미친개였지.’
인간의 몸으로 태산도 가른다는 마정석 무기에 도전했었다.
백 번, 천 번을 깨지고 또 깨졌지만, 그는 계속 게이트로 뛰어들었다.
존재 이유를 잃고 싶지 않았기에.
‘그때 차라리 다 접고 편히 놀면서 쉴 걸 그랬나?’
그렇게 미친 듯이 싸우던 그는 안타깝게도 첫 번째 게이트 쇼크의 희생양이 되었다.
어느 날, 아무런 변화를 감지하지 못하고 들어간 A급 게이트.
그곳에서 갑자기 마정석 무기들이 제멋대로 날뛰기 시작했다.
"이, 이게 왜 안 들지? 고장이 날 리가 없는데?"
"으악! 레이저 건이 뜨거워지고 있어!"
펑!
그날, 게이트에 들어가자마자 레이저 건과 마력 방사기가 미쳐 날뛰었다.
그 바람에 함께 들어갔던 헌터 다섯이 죽었다.
크르르릉.
정백호는 살아남은 세 명의 헌터와 함께 A급 키메라에 맞서 싸웠다.
하지만 무기 없는 헌터가 몬스터 앞에서 살아남을 리 없었다.
"으윽!"
결국 동료는 다 죽어버렸고, 그는 홀로 A급 몬스터를 상대하다 치명적인 상처를 입고 말았다.
키메라의 독이 양손에 깊게 스며들어 버린 것.
그럼에도 치열하게 싸운 그는 결국 홀로 A급 몬스터를 물리쳤고.
영웅이 되어 국보급 헌터로 승급했다.
“우리 대한민국 국민은, 목숨을 걸고 끝까지 싸워 재앙을 막아 준 정백호 헌터를 절대 잊지 않을 것입니다.”
안타깝게도 그의 손가락은 평생 검을 쥘 수가 없을 거란 판정을 받았다.
검과 헌터로서의 삶을 잃은 대신, 영웅의 칭호를 얻은 셈.
누구는 A급 게이트에서 혼자 살아 돌아온 그가 운이 좋았다고 말하기도 했고.
누군가는 막 검술이 빛을 보려는 시기에, 검을 쓸 수 없게 되어서 지지리 복 없는 남자라고도 했다.
하지만 그가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아무도 알 수 없었다.
친딸인 청염까지도 말이다.
“여기인가.”
[희망 용역.]
낡아빠지고 냄새나는, 바닥 급의 헌터들이나 기웃거릴 곳이다.
자신이 세운 길드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초라한 곳.
하지만 그곳에 들어간 정백호는, 청파랑에서는 한 번도 들어보지 못했던 웃음소리를 들었다.
“푸하하하.”
“근데 사장님은 왜 자꾸 되지도 않는 춤을 추시는 거예요?”
“태초에 희망 용역이 생긴 이래. 우리 지부장님이 큰 건을 따내시고, 밑의 헌터들도 줄줄이 명성을 얻어 내니. 내 어이 춤이 나오지 않을 수 있겠는가!”
“저건 성경 구절이야, 아님 시조야?”
“뭔 그런 거창한 단어들을 붙여? 그냥 술주정이지!”
“으하핫.”
땀내 나는 남자들이 모여 앉아 막걸리며 소주 같은 술을 홀짝이고 있었다.
그 중앙에서는 신이 난 남자가 춤을 추고 있었고.
나머지 사람들은 보기 싫다면서도 남자를 보며 깔깔 웃었다.
놀리는 사람이나 받는 사람이나, 딱히 불쾌해 보이지는 않았다.
아니, 오히려 즐거워 죽겠다는 얼굴들을 하고 있었다.
이건 그가 만들고자 했던 청파랑의 모습과 꽤 비슷했다.
‘요즘 세상에 저런 즐거운 표정이라니. 귀하군.’
저도 모르게 그들과 함께 분위기에 취하던 정백호의 눈이 한 남자에게 고정됐다.
문신, 노란 염색에 피어싱 자국까지.
온갖 껄렁한 요소는 다 갖추고 있었지만, 그 눈만은 또렷하게 빛나는 사람이었다.
‘자기만의 기세가 있어.’
저 녀석이 이곳의 분위기를 만들어 낸 모양이었다.
모든 사람들의 행동과 대화가 그를 중심으로 돌아가는 걸 보면 알 수 있었다.
'생각보다, 나쁘지 않은 것 같군.'
아마 청파랑의 입단 시험을 볼 블랙리스트라는 놈도 저놈이겠지.
그렇게 가만히 남호와 용역 헌터들의 대화를 듣던 정백호가 자리에서 조용히 일어났다.
'이번 입단 시험은 좀 빡세게 가보는 것도 좋겠네.'
그는 안 하던 짓을 한 번 해보기로 마음을 굳혔다.
뭔가 재미있는 일이 일어날 것 같았으니까.
"성현아."
"아, 저 여기 있는 거 아셨어요?"
그림자처럼 조용히 나타난 백파의 수장, 김성현이 미끄러지듯 백호에게 다가왔다.
"네가 알려준 장소니 당연히 있을 거라고 생각했지."
정백호가 손을 들어 성현의 어깨를 툭 쳤다.
그 손에는 붕대가 빼곡하게 감겨 있었다.
"이번 입단 시험은 네가 좀 짜봐라."
"제가요?"
성현이 인상을 팍 찌푸렸다.
그는 길드장 앞에서도 이렇게 서슴이 없었다.
"귀찮은데. 그리고 저는 세세하게 지원자들 배려하는 그런 거 못 합니다."
"안다. 네 기준은 꽤 높으니까."
이렇게 말할 때, 정백호의 눈은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다.
성현은 길드장의 이런 눈을 참 오랜만에 보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안전이니 뭐니 하는 건 청염이랑 대룡이가 알아서 하겠지. 듣기에는 이번에 지원자가 많아서 제대로 뽑을 거라며?"
"길드 분위기야 다 아시면서 뭘 물어보세요?"
"그렇다면 너도 길드 애들 좀 도와봐라. 어디 그 높은 기준 좀 보자고. 책임은 내가 질 테니."
"그렇게까지 말씀하신다면, 안 할 수가 없네요."
'백호 님이 오늘 그 녀석을 보고 뭔가를 느끼신 모양인데?'
슥.
돌아가기 직전, 성현은 뒤를 돌아 희망 용역을 한 번 눈에 담았다.
그리고 두 사람은 어둠 속으로 홀연히 사라졌다.
***
"에엑!"
"지부장님이 청파랑 입단 시험을 보신다고요?"
"그거 통과하실 수 있겠어요? 아니, 아니지. 그 전에 거기 문지방이나 넘을 수 있겠어요?"
내가 한국 탑3 길드에 드는 청파랑 이야기를 꺼내자, 한바탕 소란이 일었다.
내 말이라면 무조건 믿어주는 녀석들도 이 이야긴 안 믿기는 모양이다.
"진짭니다. 협회 승인까지 다 받았다니까요?"
"어떻게요?"
"이번에 백상아리 잡았잖아요. 그 포상이랍니다."
"이야! 그 콧대 높은 협회에서 웬일이야?"
"그럴 거면 승인 이딴 것보단 차라리 블랙 리스트에서 빼 주는 게 더 낫지 않아?"
내 말이 그 말이다.
"맞아요. 근데 협회의 높은 사람도, 그건 국보급 헌터나 해 줄 수 있는 일이라고 딱 선을 긋더라고요."
"에잉 그럴 땐 한잔해~. 그리고 다른 녀석들은 몰라도 우리들은 조장이 얼마나 대단한지 잘 안다구."
그때 겁쟁이, 아니 정수가 술을 마시다 말고 내게 물었다.
"청파랑에서는 뭐래?"
그의 물음에 다들 침묵한 채 내 입만 쳐다봤다.
"일단, 입단 시험 보러 오래."
"그 꽉 막힌 데서? 난 협회 일보다 그게 더 놀랍다."
"우리 조장이 백상아리 잡아서 뉴스에도 났잖냐. 거기서도 조장이 탐이 나는 거겠지."
"이제 비행기는 그만 태워 주세요. 거기 A급에 S급도 있다구요. 제가 성에 차기나 하겠어요?"
"왜? 헌터는 인지도도 중요하잖아? 그런 면에선 일단 조장이 먹고 들어가는 게 있지."
그렇게 다시 한 번 칭찬 세례를 받고 나니.
이번엔 애꾸눈 헌터가 내게 질문을 던졌다.
다들 길드란 곳에 대해 궁금한 점이 꽤 많은 모양이다.
"올해 입단 시험을 어떻게 치르는진 들었어?"
"일단 설악산 오염지역 입구로 모이라는데요?"
"헉!!"
"..."
순간 팍 가라앉은 침묵이 일 분 정도 이어졌다.
정수는 순식간에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거긴, 몬스터가 활개 치는 곳이잖아?"
오염지역.
보스 몬스터를 죽이지 못해 게이트가 오픈된, 말 그대로 '문'이 열려버린 곳이다.
간혹 이렇게 보스를 죽이는 대신 주변을 봉쇄하는 전략을 쓴 게이트도 있었다.
실력 있는 헌터가 필요한데, 데려올 자금이 후달릴 때 주로 쓰는 방법이다.
'그 명동은 예외지.'
내가 처리했던 흡혈 고목의 경우는 서울 시내 중심에 생겼고 그 나무 줄기를 계속 뻗어내는 놈이었기에 무리해서 공략한 것이지.
보통 이런 산이나 사막 같은 데 생긴 고위 게이트는 오염 지역으로 버리는 경우가 꽤 있었다.
헌터의 인력 풀이 좁은 국가의 경우 열 개 이상의 오염지역을 가지고 있기도 할 정도.
그나마 다행히도 한국의 오염지역은 설악산 딱 하나다.
'지금은 설악산이 세 구역으로 나뉜 상태지.'
설악산 오염지역은 저렙 몬스터가 있는 그린 존, C급 몬스터가 있는 옐로 존, 그리고 보스인 A급 몬스터 한 마리가 있는 레드 존으로 나뉘어 있다.
이것도 언젠가 폭삭 무너질 날이 오긴 하지만.
아직은 먼 훗날의 일이니 그건 잠시 미뤄두고.
"지원자는 거의 C급일 테니 깊게는 못 들어갈 거예요. 그린 존이나, 잘하면 옐로 존 초입까지? 거기가 한계일 겁니다."
"아무리 거기 길드원들이 있다고 해도, 너무 위험한데?"
"조장, 내가 조장 무시하는 건 절대 아니지만 식칼로 오염지역에서 버틸 수가 있겠어?"
"네. 버틸 수 있습니다."
허세가 아니고 난 정말 자신이 있었다.
그 레드 존의 보스 몬스터 놈은 아직 못 이기겠지만.
그 외의 놈들은 지금의 스펙, 그리고 내 예전 경험만 가지고도 이길 수 있다.
"허, 참."
"그렇게 얘기하면 또 할 말 없지."
"하긴 내가 지금 누굴 걱정하는 건지. 당장 내일 죽을지도 모르는구먼."
"조장이 그렇게 확신하면 말이지. 그냥 그런가 보다 하고 믿게 된다니까?"
이 말에 정수를 포함한 내 지원조 일원 몇 명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은 아직도 내가 앞일을 조금이나마 보는 '예지' 능력을 가졌다고 생각했다.
그러니 내 확신에 어떤 근거가 있으리라 믿는 것이다.
"자자, 그러면 우리 마지막 건배를 하자고. 우리 용역 헌터들의 안전과 지부장의 무사 입단을 위하여!"
"위하여!!!"
'오염지역에 가보는 게 얼마 만인지.'
소싯적 거기를 주기적으로 다니면서 '청소' 작업을 했었다.
그때 청파랑의 그 '청염'도 함께였다.
그녀랑은 마음이 잘 맞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함께 검을 배우다 자연스레 친구가 됐었다.
입단 시험에 가면 아마 얼굴을 보게 되겠지.
'청염뿐이면 괜찮은데, 분명 그 새끼도 같이 볼 거 같아.'
혐룡이 새끼.
그래. 네 면상도 오래간만에 한번 보자.
***
"남호야, 위험하면 언제든 포기해."
"응. 걱정하지 마."
"엄마 간다."
"그 말 세 번째니까 이제 제발 좀 가."
엄마는 내가 청파랑 입단 시험을 본다고 하니 펄쩍 뛰면서 좋아하셨다가.
그 장소가 오염지역이라고 하니 기절할 듯 놀라며 걱정하셨다.
엄마의 걱정은, 이제 그냥 패시브 효과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그래도 이런 존재가 내 옆에 있음에 늘 감사한다.
"열심히 하고 와라."
"네, 아버지."
날 설악산 오염지역 근처까지 태워 주신 아버지와도 짧지만, 단단한 인사를 했다.
두 분은 휴가까지 내고 근처 호텔에 묵는다고 하셨다.
말은 안 했지만, 부모님이 근처에 있다고 생각하니 든든한 마음이 들었다.
'여기서부턴 산행인가.'
차가 오를 수 없는 길이 있어, 입구까지 가기 위해선 혼자 십 분 정도 산을 타야 했다.
올라가면서, 나는 참 다양한 종류의 지원자들을 보았다.
휘릭, 휙!
산에 올라가면서 검을 휘두르는 녀석이 있는가 하면.
"저번 시험은 체력 테스트부터 시작했지. 내가 엄청 무거운 쌀자루를 지고···."
떨어진 게 뭐 자랑이라고.
옆에 있는 여자에게 연신 자기 경험을 이야기하는 놈도 있었다.
그리고 그들 대부분은.
“어머, 저 사람!”
“백상아리. 그 사람이다.”
“대박! 우리랑 같이 시험 보나 봐.”
E급 블랙리스트 헌터인 나를 알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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