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대영제국에 괴식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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낑깡깽
그림/삽화
매일 저녁 8시
작품등록일 :
2024.07.24 0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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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9 1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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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11 2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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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험한 내기

DUMMY

1900년대는 혁신적인 기술과 발명품, 그리고 독특한 신제품들이 용광로처럼 뜨겁게 쏟아져 나오던 시기였다.


그 중에서도 특히 주목할 만한 히트작이 있다면, 바로 1900년 2월 미국 코닥 사에서 내놓은 브라우니 No.1 카메라.


이 제품이 출시되기 전까지 카메라는 엄청나게 비쌀 뿐만 아니라 필름 교체조차 쉽지 않은, 일부 소수만 갖고노는 사치품이었다.


심지어 사용 횟수도 제한되어 100장을 찍으면 제조사에 카메라를 반납해야 새 필름으로 교체할 수 있었다.


그런데 코닥이 카메라 시장에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필름 교체를 쉽게 하도록 구조를 단순화했을 뿐 아니라, 대당 1달러, 필름은 15센트라는 파격적인 금액에 내놓는 강수를 둔 것.


원래 카메라 본체는 금속이나 나무로 제작하는 게 정석이었는데, 그냥 내구성 버리고 종이 골판지로 덮어 생산 비용을 무식하게 깎은 거지.


그래서 어떻게 됐냐고? 정확한 숫자는 모르겠지만 소문엔 뭐 어마무시하게 대박났다던데?


하지만 대부분이 미국 내에서만 판매된 탓에, 영국에선 아직 구할 수 없어 친한 신문기자가 굉장히 한탄했던 기억이 난다.


신문기자는 어떻게 아냐고? SNS도 없고 남의 기사 복붙도 불가능한 시대에 기자들이 취재 소스를 도대체 어디서 얻었겠냐. 신문팔이 네트워크를 무시하면 안 된다. 그리고 난 그 중에서도 보스라 불릴 정도로 굉장히 유명했던 사람이라고.


아무튼 그렇게 미국에서 카메라 전성시대가 열리자마자, 동시에 환호한 곳이 있었다.


그건 바로 가십거리만 주로 다루던 황색 언론들. 대표적으로 뉴욕 월드(New York World)나 뉴욕 저널(New York Journal) 같은 싸이코 놈들.


이 놈들은 연예, 스포츠, 범죄, 정치인 스캔들 같은 자극적인 소재들로 신문계를 타락시켰는데, 카메라가 보급되면서 사진까지 첨부할 수 있게 되니 얼마나 신이 났을까!


카메라 한 대와 필름 여러 개를 들고 미국은 물론 전 세계를 들쑤시면서 자극적인 기사를 쓰기 시작한 거다.


그리고 내 눈앞에 내밀어진 것도 그런 것들이었다.


"세계 최악의 먹거리 문화 특집···?"

"그것도 벌써 45회나 연재된 인기 코너지. 나도 스트레스 해소할 때 재미삼아 종종 읽어. 내용은 쓰레기지만. 계속 읽어보게나."


후우,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영국 런던에서 판매하는 치킨은 본고장인 미국 루이지애나와 조지아 주의 프라이드 치킨에 비하면 정말 형편없었다. 질긴 튀김옷은 마치 창의력이 고갈된 영국인들이 미국의 식문화를 얼마나 부러워하고, 코요테처럼 교활하게 표절하고 있는지 여실히 보여 주었다. 그 중에서도 가장 최악은 '클라나 디비나'라는 레스토랑으로, 이곳에선 1.5달러(약 6실링)라는 거금을 받고 이러한 끔찍한 음식을 고급 요리인 양 포장해 파는 행태를 아무렇지도 않게 자행하는 중이었다··· 라고?"


나는 기사를 읽다 어이없는 표정을 지으며 테슬라 씨를 쳐다봤다.


이건 내 이름을 어떻게 추리했는지 궁금하면 읽어 보라면서 테슬라 씨가 냅다 던져준 신문 쪼가리였다.


1면 내용부터 딱 근거 없는 전형적인 찌라시. J.P. 모건이 정치인들을 매수해 파나마 운하에 세금을 쏟아붓고 있다느니, 독과점을 일으키고 있는 트러스트 대기업들을 전부 붕괴시켜야 한다느니, 뉴욕 경찰청장이 언론 탄압에 열을 올리고 있다느니···


그리고 그 중 최악은 단연 이거.


이 빌어먹을 자식들이 미국에서 내 치킨 앤 칩스를 음해하고 있었네?! 죽여버릴까?!


"어디, 나도 한번 보여주게!"


촥.


내가 분노에 찬 손으로 신문을 구기고 있을 때, 아직도 키득대던 크룩스 경이 그 활자 쓰레기를 낚아채 갔다.


그리고 그는 또 다시 박장대소를 했다.


"푸하하! 쟝 폴 뒤랑 군, 이 사진 도대체 언제 찍힌 건가? 아무리 봐도 자네잖아!"


나도 봤다. 그래서 더 화가 난다.


지금 내가 입고 있는 옷과 완전히 똑같은 차림새다.


사진 품질도 조악하고 흑백 인쇄라 얼굴은 알아보기 힘들지만, 내가 입고 있는 셔츠, 베스트, 트위드 바지에 포마드로 넘긴 올백 머리까지 사진 속 차림과 똑같다. 눈썰미 있는 사람이라면 유사점을 쉽게 찾겠지.


왜 그때 입은 옷을 지금도 입고 있냐고? 이 시대에 누가 빨래를 자주 하겠냐! 도리어 자주 빨면 옷만 망가진다고 바보 취급받는 시대에!


"최근에 인터뷰 요청하는 편지가 계속 날아들어서, 전부 휴지통에 처박아 버렸거든요. 그런데 허락도 없이 누가 몰래 숨어들길래 붙잡아서 혼쭐을 내주고 경찰에 넘겼습니다만···."


하필이면 갈비찜을 못 먹어서 화가 잔뜩 난 더비 백작님한테 걸렸지. 백작님은 레시피를 훔치러 몰래 들어온 거냐고 윽박지르고, 바로 코에 주먹을 날려서 스트레스를 푸시더라.


지금 와서 보니 기자? 뭐 그런 패거리였나 보네.


더비 백작님이 좀 고약한 데가 있긴 하지만, 그래도 귀족들 사이에선 강펀치로 유명했다.


세상에, 노친네가 권투를 그렇게 잘할 줄 몰랐다. 어쩐지 몸이 다부져 보이더만, 펀치 한 방에 사람 콧대가 무너지더라니까?


아무튼 테슬라 씨는 고개를 끄덕였다.


"뭐, 흔히 있는 일이지. 2인 1조, 3인 1조로 다니며 미끼를 던져 상대를 화나게 하고, 그걸로 나쁜 이미지를 덮어씌우는 수법이야. 나도 옛날에 워싱턴에서 한번 당할 뻔했어. 물론 고소해서 배상금은 두둑히 받아냈지만."

"크흠, 그럼 내가 어디 계속 이어서 읽어 볼까. 이 부분이군? 영국에서는 저질의 치킨 앤 칩스를 유행시키려고 아편(Opium)이나 에테르(Ether)를 넣어 판다는 소문이 있으니 미국인 여행자는 반드시 유의하는 게 좋다··· 라는데? 자네, 혹시 진짜 마약을 넣은 건 아니겠지? 어쩐지 치킨 앤 칩스를 먹을 때마다 식욕이 폭발하더니만!"

"제가 미쳤습니까?!"

"으허허, 농담일세, 농담! 허허허허."


이 사람은 이제 할아버지가 아니다! 그냥 노친네 영감탱이다!


"뭐 이 기사 내용은 완전히 허무맹랑한 헛소리구만! 글 쓴 놈이 내 눈앞에 있었으면, 지금쯤 대신 주먹을 날려줬을 텐데!"


이제 와서 수습하려 해도 소용없습니다, 영감님!


어쨌든, 대충 상황은 파악이 됐다. 테슬라 씨는 뉴욕에서 저 쓰레기 같은 기사를 읽고, 그 내용을 똑같은 옷을 입고 있던 나한테 대입했다··· 뭐, 그런 식의 추리인가?


하지만 여전히 의문은 풀리지 않았다. 나는 이 크로아티아산 홈즈에게 질문을 하나 더 던졌다.


"그런데, 이 사진은 그냥 옷만 비슷할 뿐이지 제 얼굴은 하나도 안 보이잖아요. 게다가 신문에 제 이름도 안 나왔고요."

"간단해, 크룩스 경이 당신 치킨을 하도 자랑해서 말이지. 귀에 딱지가 앉을 뻔했다고. 그리고 당신이 먼저 만나자고 제안했다며? 소개장을 자랑하는 모습이 얼마나 밉상스럽던지. 그런 크룩스 경이 오늘 데리고 올 젊은이가 당신 말고 더 있겠나."

"···크흠! 테슬라 자네, 그런 부끄러운 얘기는 그만 좀 해 주게!"


···잠깐, 애초에 추리고 뭐고 다 필요 없었잖아. 그냥 크룩스 경이 내 인적사항을 하나하나 다 떠벌리고 다녔던 거네?!


그런데 테슬라 씨는 여전히 짜증이 가득한 표정을 풀지 않았다.


"크룩스 경, 이 친구가 정말 제 연구를 도울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추리한대로 그냥 요리사일 뿐이잖습니까."


농담이라면 진짜로 주먹을 날릴 듯한 눈빛으로 테슬라 씨가 크룩스 경을 차갑게 노려보았다.


"아니, 물론 농담이지! 자네 설마 그걸 진지하게 받아들인 건가? 이 친구는 그냥 요리사가 맞아!"


빠직.


어디선가 스파크가 튀는 소리가 들린 것 같다.


"사실 도움을 받아야 할 사람은 자네가 아니라 이 친구일세! 자네가 두뇌 활동을 무척 즐긴다는 걸 알고 있지만, 내 경험에 따르면 일이 막힐 때는 주의 환기가 꼭 필요하네! 그래야 나중에 더 좋은 아이디어가 불현듯 떠오르는 법이지! 내가 탈륨을 발견했을 때도 그랬다네."

"그래서, 도대체 지금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겁니까? 농담 따먹기인가요? 제 시간을 그만 방해해 주시죠."

"잠깐, 그런김에 자네, 우리랑 내기 하나 하지 않겠나?"


어어, 뭔가 흐름이 또 이상한데? 이 노친네, 설마 나를 이곳에 데려온 이유가ㅡ


"내기요? 뭐 한번 들어나 봅시다."

"간단하네. 자네 영국에 와서 음식이 입에 안 맞는다고 줄창 커피만 마시고 있지 않나! 그런데 여기에 내가 런던에서 가장 아끼는 요리사가 있어! 쟝 군이 자네 입맛에 맞는 음식을 만들어 준다면··· 어때? 자네가 쟝 군의 고민에 작은 도움을 주는 거야!"


저기요?! 할아버지? 제 의견은요?


"그럼 제가 이기면요? 아시다시피 제 입맛은 무척 까다로운 편입니다만."

"조건은 자네 마음에 쏙 들걸? 자네 요즘 투자금이 바닥났다며? 그래서 런던까지 푼돈 벌러 온 거 아닌가? 마침 내가 돈이 좀 여유가 있으니, 자네의 무선 충전 시스템인가 뭔가에 보탬을 줄 수 있겠지. 더불어 우리 학술원 회원들에게도 다리를 놔 주겠네."

"그럼 제가 너무 유리한 거 아닙니까? 무조건 맛없다고 할 생각인데요?"

"나한테 다 생각이 있다네. 일단 심판은 공정하게 내가 맡을 걸세. 그리고 자네와 승패를 다툴 비밀 심사위원이 한 명 더 있지. 쟝 군, 자네 생각은 어떤가?"


찡긋.


이제 나도 표정이 불편해졌다. 크룩스 경이 커피 하우스로 출발하기 전에 윙크를 날렸을 때, 그 속에 담긴 의미를 이제서야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도대체 언제부터 이 장난을 준비한 거지? 내가 냉장고가 필요하다고 말한 그 순간부터였나?


그리고 심사위원은 누구야? 내 음식을 가지고 뭐 요리 경연이라도 하겠다는 건가? 비밀 심사위원은 헨리 씨? 더비 백작님? 아니면 요크 공작님이 몰래 또 홈즈 분장하고 나타나나?


하지만 그렇다고 내뺄 내가 아니었다.


나에겐 비장의 치트키가 있었으니까.


[ 니콜라 테슬라: 저 친구는 내가 채식주의자라는 사실을 절대 모르겠지! / 감정: 기쁨 / 만족도: - ]


이 양반, 말과 다르게 속으로는 기뻐하고 있네? 내가 치킨 앤 칩스를 내놓으면, 고기 안 먹는다고 밥상 뒤엎고 투자금만 쏙 먹튀할 생각?


하지만 그렇게는 못하지. 다된 밥에 먹물 뿌리기는 내 전공이거든.


나 또한 잔뜩 심사가 뒤틀려서 대답했다.


"좋습니다. 이 사람에게 진짜 영국인의 영국맛을 보여 드리죠. 참고로 저는 프랑스인이 아니라 영국인입니다, 테슬라 씨. 제 이름만 그런 겁니다."

"좋아! 테슬라 군, 자네 생각은?"


테슬라 씨는 자세를 고쳐 잡았다.


"뭐, 슬슬 배가 고파지던 참이었습니다. 맛없는 음식이라도 먹으면 기분 전환은 되겠군요. 물론 불쾌하겠지만. 이 친구가 음식에 정말 마약이라도 넣었는지 확인해 보는 것도 흥미롭겠네요."

"둘 다 동의한 거지? 그럼 쟝 군, 자네의 레스토랑으로 가세! 내 메르세데스 35 HP의 속도를 보여 주마!"


···속도는 정말 거북이였다.


그런데 비밀 심사위원은 도대체 누구냐고!




###




비밀 심사위원의 정체를 확인하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크룩스 경, 테슬라 씨, 그리고 나. 이렇게 셋이 고물 벤츠에 몸을 구겨넣고 수십 분을 달려 내 레스토랑에 도착했을 때ㅡ


정문 앞에서 마주친 건, 테슬라 씨와 나와 마찬가지로 불편한 표정의 정수리 까진 중년 남성이었다.


흰 머리, 약간 넙대대한 얼굴, 깊게 가라앉은 눈, 둥글고 큰 코, 흰 셔츠에 조끼, 그리고 나비 넥타이.


현대인이라면 모를래야 모를 수 없는 인물. 위인전과 교과서의 단골 손님.


그 남자의 이름을 테슬라 씨가 무심코 흘려주었다.


"···에디슨 씨, 이 먼 영국 땅에서 당신을 만날 줄이야. 크룩스 경, 이게 도대체 무슨 속셈입니까? 상당히 기분이 나쁜데요."


그리고 그 순간 뜬 중년 남자의 상태창.


[ 토머스 엘바 에디슨: 맛있는 음식 내기라고 해서 왔더니, 테슬라 저 친구가 또 방해하러 왔군! / 감정: 짜증 / 만족도: - ]


나 또한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눈앞에 서 있는 이 남자는 다름 아닌 그 유명한 미국의 발명가, 토머스 에디슨!


지금 테슬라 씨와 학술원 문제로 얽혀 있는 인물이기도 했다. 이건 정말 예측 불가였다. 레스토랑 축음기에 싸인이라도 받아야 하나?!


아무튼 그 또한 화가 잔뜩 나서 새하얀 두피에 피가 몰려 울그락불그락해진 상태였다.


"그 말은 나도 똑같이 하고 싶군요, 크룩스 씨. 이게 도대체 무슨 짓거리입니까? 설명이 필요할 것 같은데요!"

"간단하네! 에디슨 자네에게 전화로 알려준 것에서 하나도 달라진 게 없어!"


하하, 농담하시는 거죠? 이게 대체 무슨 소동이야!


크룩스 경은 내 어깨에 손을 올리며 말했다.


"지금 여기 있는 친구는 내가 아는 한 런던 최고의 요리사일세! 그리고 나는 테슬라 군과 내기를 했는데, 테슬라가 이 친구의 요리를 먹고 승복을 하면 이 친구에게 아주 작은 도움을 주고, 만약 그렇지 못하면 내가 테슬라에게 아주 큰 투자를 하기로 했다네!"

"그건 알고 있습니다. 다만 그 친구가 여기 테슬라라는 것만 몰랐을 뿐이죠."

"지금 그게 중요한가? 자네에게 말했듯이, 자네는 테슬라 군의 맛평가에서 논리적으로 맞지 않는 부분을 찾아내 성공적으로 반박해야 하네! 반박하면 자네의 승리고, 반박하지 못하면 뭐 테슬라 군이 승리할 수도 있겠지! 만약 에디슨 자네가 이기면, 자네가 지금 하고 있는 로비 활동을 방해하지 않고, 의회에 자네 의견을 긍정적으로 검토하자는 소견서를 써주겠네! 하지만 자네가 패배하면, 아까 말한 대로 자네도 쟝 군에게 작은 도움을 줘야겠어!"


이건 미친 짓거리다. 여기서 빠져 나가야겠어!


내기의 구조를 정리해 보자면 이렇다.


이 게임의 승자는 오직 한 명, 테슬라 씨 아니면 에디슨 씨. 하지만 경우에 따라 둘 다 패배할 수도 있다.


첫째, 내 음식이 진짜로 맛있어서 테슬라 씨가 어쩔 수 없이 맛있다고 인정하면, 테슬라 씨는 패배하고 에디슨 씨도 반박할 논리가 없으니 둘 다 패배. 이 경우의 승자는 바로 나다.


둘째, 음식이 맛없어서 테슬라 씨가 솔직하게 맛없다고 하면, 테슬라 씨는 승리하고 에디슨 씨는 마찬가지로 반박할 수 없어서 패배.


셋째, 음식이 맛있는데도 테슬라 씨가 거짓말로 맛없다고 하면, 에디슨 씨가 그 말을 성공적으로 반박해 이길 확률이 생긴다. 반박하지 못하면 결국 테슬라 씨의 승리.


넷째, 내 음식이 맛없는데 테슬라 씨가 맛있다고 거짓말을 한다면? 이건 완전 바보잖아? 이럴 경우는 애초에 없다. 테슬라 씨는 곧바로 패배하고 에디슨 씨의 승리. 그러니까 이 흐름은 제외.


즉, 내가 이기거나, 테슬라 씨가 이기거나, 에디슨 씨가 이기거나.


이런 구조를 고려할 때, 테슬라 씨는 이제 무조건 사실대로 말해야 한다. 거짓말을 했다가는 패배할 위험이 훨씬 크니까.


"쟝 군, 자네는 평소처럼 최고의 요리를 만들기만 하면 돼! 자네가 만든 음식을 먹고 나서 부정적으로 평가할 사람은 없을 테니까! 그러니 자네는 무조건 승복시키게! 그러면 자네가 그토록 원하던 냉장고인가 뭔가 하는 걸 여기 세계 최고의 발명가인 두 사람이 힘을 합쳐 만들어 주겠지! 이게 내가 자네에게 해 줄 수 있는 최고의 도움일세!"


···이 할아버지는 그냥 내가 무조건 맛있는 음식을 만들 거라고 전제를 깔아놨네.


나와 크룩스 경에게 가장 이상적인 시나리오는, 내가 만든 음식이 정말 맛있어서 테슬라 씨가 어쩔 수 없이 인정하고, 에디슨 씨가 반박에 실패하는 것이다.


그러면 나에게 세계 최정상의 천재 발명가 두 명이 붙게 되는 거니까. 크룩스 경도 돈을 잃지 않을 테고!


도대체 이 할아버지는 언제부터 이런 계획을 세운 걸까?!


아무래도 그가 내 팬이라는 건 정말 진심인 것 같다.


내가 냉장고 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는 걸 알고, 세계 최고의 발명가들을 내게 붙여 도움을 주려는 속셈이었겠지.


세 가지 경우 나에게 모두 손해는 없었다. 둘 중 하나는 무조건 지고, 결국 나를 도와야 할 테니까. 첫번째를 제외하면 손해는 크룩스 경만 본다.


그래서 나는 도리려 외통수에 걸려 버렸다. 나를 이렇게까지 도와주려는 크룩스 경에게 손해를 입히면 내 양심에 털이 나버릴 테니까. 역시 현 시대 영국 최강의 과학자 다운 두뇌 공격이었다.


게다가 내 시야 한 구석에 희미하게 반짝이는 메시지.


【 일반 퀘스트: 특별한 음식으로 명사들을 감격시키기 (2/99회차) 】


이 기회에 일석이조의 보상을 얻을 수도 있지 않을까?


그런데 도대체 무슨 요리를 만들어야 하냐고? 한 명은 채식주의자에, 한 명은 심사가 잔뜩 꼬여 있는 남자라니. 이거 미치겠구만! 치킨 앤 칩스는 무조건 안 되잖아!


결국 우리 셋은, 실컷 서로를 번갈아 가며 한참을 바라보다가, 모두 동시에 고개를 끄덕였다.


작가의말

1. 코닥 사의 브라우니 No.1 은 출시 이후 4달만에 미국 내에서 15만 대나 팔렸다고 합니다. 사용자가 직접 롤 필름을 교체할 수 있는 카메라 중에서 최초의 상업적 성공을 거둔건데, 그 이유는 본문에 기재한 대로 값싼 가격 덕분이었습니다. 최초의 롤 필름 교체식 카메라는 1888년 출시한 코닥 No.1 이었는데, 가격이 25달러였던 대다가 직접 필름 교체도 못 했습니다. 100장이나 되는 필름을 다 쓰고 나면 본사로 다시 카메라를 보내야 교체된 버전을 받을 수 있었죠. 하지만 1900년 2월에 출시한 브라우니 No.1은 본체 1달러, 필름 15센트라는 혁신적인 가격에다가 현대식 카메라처럼 직접 필름을 교체하는 게 가능했습니다. 필름을 사고 싶으면 그 지역 사진사에 가거나 통신 판매로 신청해서 편지로 받으면 그만이었으니 여러모로 굉장히 간편해진 셈이죠. 그래서 4개월만에 15만대나 판매할 정도로 어마무시한 상업적 성공을 거둡니다. 그 이후 V자 조준선을 포함해 뷰파인더를 개선한 No.2 모델을 1901년에 2달러라는 마찬가지로 저렴한 가격에 내놓아 카메라 전성시대를 열게 됩니다. 

2. 20세기 초까지 권투는 영국 상류층의 교양 스포츠였습니다. 19세기 후반 퀸즈베리 후작이 만든 퀸즈베리 룰 이라는 규칙을 가지고 권투를 했는데, 이게 현대 복싱의 시초라고 합니다. 이 규칙의 도입으로 권투는 더 이상 단순한 거리 싸움이 아니라 정식 스포츠로 인정받기 시작했다네요.

3. 1900년대에는 세탁이 지금처럼 일상적이지 않았습니다. 대부분의 옷을 천연 소재로 만들었기 때문에 세탁에 굉장히 취약했고, 구멍도 잘 났습니다. 근대 묘사 보면 하층민들이 양말 기워 신고, 천으로 팔꿈치 등을 덧대고 하는 게 사실 가난해서 새 옷을 살 돈이 없어서도 있지만 옷이 너무 잘 망가져서 가능한 한 오래 입으려고 그랬던 것도 있었다고 합니다. 대게는 심한 오염이 없다면 먼지만 털어서 벗은 옷을 그대로 입었다고 하네요.

4. 니콜라 테슬라가 채식주의자라는건 고증입니다.

ps. 당시의 생활사에 맞춰서 고증을 점검하고 그 부분을 그대로 묘사로 옮기고 있는데, 작가가 착각하거나 잘못 조사한 부분이 있을 수 있어서 본문에서 엄청 자세하게 설명하는 건 최대한 자제하고 최대한 흘러가는 듯이 아주 약하게만 서술하고 있습니다. 후기에는 좀 더 자세한 내용을 첨부하고요. (혹시나 궁금하신 분이 계실까봐요.) 작가가 잘못 알거나 착각한 부분이 있다면 알려 주시면 참고하겠습니다. 솔직히 후기 내용은 모르셔도 본문 이해에 아무 지장이 없도록 쓰고 있습니다.

ps. 제가 설정한 내기의 구조는 사실 다 필요 없고 주인공이 이기는 첫번째 경우만 보시면 됩니다. 개연성 만드느라 작가만 머리가 아팠습니다. 만약 모순이 있다? 그냥 소설적 허용, 레드썬으로 넘어가 주세요. ㅠ 맛이라는 것이 주관적이기 때문에, 테슬라가 어떤 평가를 내리든 이를 논리적으로 반박하거나 지지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가능할지 의문입니다. 아무튼 그건 내일의 저에게 맡겨 두겠습니다. 

오늘 연재가 늦은 이유 : 죄송합니다. 분량 조절 실패입니다. 이 회차에만 8천 자를 쓸 줄은 몰랐습니다 ㅠㅠ 쓱쓱 읽히셨다구요? 1.5개화 분량입니다!! 연참한 셈 치겠습니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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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32 맛의 미로 +26 24.08.21 9,389 338 14쪽
31 추리 게임 +29 24.08.20 9,329 299 15쪽
30 뜻밖의 방문 +10 24.08.19 9,479 307 15쪽
29 예기치 못한 변수 +22 24.08.18 9,629 315 14쪽
28 완벽한 판촉 계획 +12 24.08.17 9,818 281 12쪽
27 최고의 잼 +44 24.08.16 10,108 306 16쪽
26 비밀 계획 +19 24.08.15 10,360 292 16쪽
25 나비 효과 +20 24.08.14 10,694 314 18쪽
24 힌트 +24 24.08.13 10,864 332 18쪽
23 두 번째 신메뉴 +17 24.08.12 11,117 309 15쪽
» 위험한 내기 +14 24.08.11 10,956 309 17쪽
21 의문의 명탐정 +12 24.08.10 11,344 319 14쪽
20 발명의 천재 +22 24.08.09 11,947 339 12쪽
19 왕립 학술원 +22 24.08.08 12,649 355 13쪽
18 편지 +20 24.08.08 12,546 385 12쪽
17 대형사고 +20 24.08.07 12,524 384 14쪽
16 불신 +12 24.08.06 12,485 374 13쪽
15 변장의 대가 +21 24.08.05 12,575 378 12쪽
14 뜻밖의 방문 +11 24.08.05 12,768 373 12쪽
13 끝나지 않는 선택 +13 24.08.04 12,942 359 13쪽
12 신메뉴 +12 24.08.03 13,520 390 12쪽
11 새로운 크루 +16 24.08.02 13,709 384 13쪽
10 백작가의 아가씨 +8 24.08.01 13,867 356 13쪽
9 벨그라비아의 대저택 +9 24.07.31 14,030 383 13쪽
8 더비 백작 +11 24.07.30 14,303 390 13쪽
7 디스커버리 호의 여행 +16 24.07.29 14,876 403 12쪽
6 식당 개업 +25 24.07.28 15,232 427 11쪽
5 젠트리와의 만남 +9 24.07.27 15,713 403 13쪽
4 치킨 앤 칩스 +15 24.07.26 15,868 451 11쪽
3 아서 코난 도일 씨의 친구 +17 24.07.25 16,703 444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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