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당 개업
동업자. 다른 말로 하면 언제든 뒤통수 칠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
나는 동업이란 단어를 믿지 않는다. 전생에 한식 요리사로 이름을 제법 날리기 시작했을 무렵, 동업하자고 찾아오는 사람들이 매일 한 트럭이었으니까.
하지만 그들은 몰랐다. 내가 사람의 감정을 읽을 수 있는 초능력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그럼 동업을 안 했냐고? 설마. 자본을 들고 찾아오는 사람들을 마다할 이유는 없었다. 다만, 통수를 칠 때는 내가 먼저였다는 거지. 하하하.
준비물은 단 하나. 법적으로 구속할 수 있는 올가미. 현대 법률에는 배임이라는 혐의가 있다. 충분한 증거를 수집하면 경영권 박탈 같은 강력한 제재를 가할 수 있는 혐의.
하지만 이곳은 미개한 20세기 근대 사회 영국. 법은 가난한 자보다 부유한 자에게 유리하게 작용하는 나라.
누군가의 뒷통수를 치려면 더 큰 뒷배가 필요했다. 그래서 나는 충분한 뒷배를 얻기 전까지 일단 열심히 헨리 씨의 일을 돕기로 했다.
현대 지식 덕분에 이 시대의 업무는 손쉬웠다. 직장인이라면 평범하게 쓰는 단순한 스프레드 시트조차 이들에겐 혁신이었으니까.
"하하하, 내가 사람 보는 눈이 있었군! 역시 쟝 군, 자네는 정말 천재일세! 하하하!"
"뭐, 별것 아니에요. 저는 그냥 헨리 씨께서 가르쳐 주신 대로 했을 뿐인데요."
"여기 앉아있는 월급도둑들보다 자네 한 명이 더 낫다는 건 통탄할 일이야! 레스토랑 일이 아니었으면 당장 이 자리에 자네를 앉히고 싶을 정도라네!"
헨리 씨가 회계 장부 정리 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길래 즉석에서 10개 이상의 오류를 잡아내 주었더니, 그가 기뻐하며 한 말이었다.
아무튼 식당 공사가 완료될 때까지 나는 오전엔 런던의 바클리즈 은행 롬바드 가 사무소에 출근하며 헨리 씨에게 일을 배우기로 했다. 치킨 앤 칩스 장사는 부모님과 에밀리에게 맡겨 두었다. 내가 주기적으로 재료만 준비해 주면, 튀기고 파는 일은 간단했으니까.
도리어 배관공으로 일할 때마다 더 많은 수익을 거둬 부모님은 무척 기뻐하셨다. 그 수익 일부로 엄마의 약값도 충분히 마련했고, 덕분에 요즘은 건강이 많이 좋아지신 것 같다.
하지만 나는 거기서 만족할 수 없었다. 하루 일해서 하루 먹고 사는 생활에서 벗어나지 않는 한, 진정한 부자는 될 수 없다. 자본이 돈을 벌어야 한다는 진리는 전생에서 이미 깨달은 바였다.
"여기 도면이요, 이대로 제작이 가능하시겠습니까?"
"음··· 처음 보는 설비군요. 한 번 시도해 보겠습니다."
"꼭 만들어 주셔야 합니다. 비용이 아무리 많이 들더라도요!"
"그렇다면, 적어도 사흘의 시간을 주십시오. 어떻게든 해보겠습니다. 어이, 찰스! 장인들 모두 불러 모아!"
오후엔 헨리 씨의 돈으로 실컷 플렉스를 했다. 런던의 목공소와 철공소를 돌며 내가 그린 도면과 스케치를 내밀고 그대로 제작해 달라고 주문했다. 이 모든 건 식당에서의 고행을 최소화하기 위한 필수 작업이었다.
주철로 만든 팬, 커다란 튀김 냄비, 닭을 손질할 큰 칼과 도마, 믹서기, 각종 현대식 주방기구,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환풍기! 특히 이제 막 개발된 전기식 배기팬은 내가 가장 신경 쓴 부분이었다. 튀길 때 나오는 유증기는 폐 건강에 치명적이니까.
가뜩이나 스모그가 낀 런던에서 기름 냄새까지 맨날 맡으면 폐가 상해 버린다고.
"쟝 씨, 주방에 공기 빼는 설비까지 꼭 필요한가요? 그냥 창문을 열어 자연 환기시키는 게 더 경제적일 것 같은데, 이 배기팬은 유지비도 꽤 들 거고요."
"아니요, 이건 필수입니다. 꼭 설치해 주세요. 그리고 이 후드 부분도 반드시 제 설계대로 달아야 해요."
유증기의 위험성을 이들이 모른다고 일일이 과학적으로 설명할 필요까지는 없었다. 나는 강하게 밀어붙였고, 헨리 씨는 이것도 결국 수표를 끊어 주었다.
돈의 힘은 역시 대단했다. 서너 달은 걸릴 거라 생각했던 치킨 레스토랑이 두 달 만에 완공되었으니까. 게다가 복잡한 행정 절차도, 헨리 씨의 이름만 대면 무사히 통과됐다.
알고 보니 헨리 씨의 아버지가 보수당 정치인이더라. 그래서 당분간 통수를 치는 건 미루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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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뷔시, 아라베스크(Arabesques).
경쾌한 피아노 선율이 우아한 홀 안을 가득 채웠다.
클라나 디비나(Culina Divina). 현재 인도 총독으로 재임 중인 조지 너새니얼 커즌의 차남, 헨리 커즌이 세웠다는 고급 레스토랑.
로마와 그리스 시대를 찬미하는 각종 조각상과, 불빛을 반사하는 샹들리에, 견고하게 마감된 대리석 바닥 등 런던 사교계의 최신 유행을 모두 반영한 화려한 장소였다.
이곳에 1901년 현재, 영국 런던을 대표하는 수많은 명사들이 모여들었다.
헨리 커즌은 런던의 돈줄을 쥔 몇 안 되는 인물 중 하나였다. 그가 보낸 사교 파티 초대장을 무시할 사람은 없었다.
조지 버나드 쇼(George Bernard Shaw)도 초대된 인물 중 한 명이었다.
헨리 커즌이라니, 조금의 일면식조차 없던 유명한 젠트리가 초대장을 보낼 줄이야. 자신은 그저 대표작 한두 개로 이름만 조금 알려진 평범한 극작가일 뿐인데 말이다.
게다가 요즘 들어 슬럼프까지 겹쳐 제대로 된 글 한 줄 써내지 못하고 있었으니, 자신이 초대된 이유를 더더욱 알 수 없었다.
하지만 곧 그 의문은 풀렸다. 멀리서 낯익은 얼굴이 다가와 손을 내밀었기 때문이다.
"웰스 씨! 당신이 어떻게 여길···."
"하하, 쇼 씨! 와주실 줄 알았습니다. 방문하신 소감이 어떻습니까? 굉장히 독특한 인테리어 아닙니까?"
"그렇습니다. 굉장한 영감을 주는 장소로군요. 이런 곳에 제가 있어도 될지 잘 모르겠습니다."
"괜찮고 말고요! 쇼 씨에게 초대장을 보낸 건 바로 저니까요! 헨리 씨가 동행인을 추천해달라고 해서, 당연히 쇼 씨가 떠오르지 뭡니까! 그러니 사양 말고 같이 편히 분위기를 즐깁시다."
H.G. 웰스. 그는 자신보다 10살이나 어렸지만, 이미 대성공을 거둔 유명 작가였다. 그가 헨리 커즌과 연결고리가 있다면 충분히 이해가 갔다. '타임머신'과 '우주전쟁' 같은 작품들, 솔직히 재능의 차이가 느껴질 정도로 재미있었으니까.
웰스를 처음 만난 건 몇 년 전, 우연히 참여한 독서 토론회에서였다. 문학과 연극에 대한 취향이 비슷하다는 걸 그때 알았다. 이후로 종종 커피하우스에서 만나 토론을 하며 친분을 쌓았지만, 이런 귀중한 자리에 초대받을 줄은 상상도 못했다.
"그런데··· 이곳은 대체 어떤 레스토랑입니까? 인테리어를 보니 단순히 사교장소로만 쓰이는 곳은 아닌 것 같습니다만."
"글쎄요, 혹시 최근 유행하는 '치킨 앤 칩스'를 알고 계십니까?"
"치킨 앤 칩스? 아아, 몇 번 먹어 보긴 했는데···."
최근 런던에서 유행하는 음식이 하나 있다. 바로 치킨 앤 칩스라는 요리. 간단하게 아일랜드식 닭튀김에 감자튀김을 얹어 파는 메뉴다. 쇼도 호기심에 3펜스라는 비싼 가격을 주고 집 근처 노점에서 사 먹어본 적이 있었다.
감상은 별로였다. 닭튀김에서는 뭔가 불쾌한 냄새가 났고, 감자튀김은 덜 익어서 먹기 힘들었다. 도대체 이게 왜 유행하는지 이해할 수 없을 만큼. 쇼는 차라리 익숙한 피쉬 앤 칩스가 훨씬 낫다고 생각했다.
그 평범한 요리가 이렇게 고상한 레스토랑에서 취급된다는 사실에, 쇼는 가슴속에 실망감이 밀려오는 걸 느꼈다.
"하하, 음식을 먹기도 전에 실망부터 하시다니요. 기대해 보십시오. 틀림없이 놀라실 겁니다."
"그렇게 말씀하시는 걸 보니··· 이미 이곳에서 드셔보신 모양이군요?"
"아니오, 아직이지만 제 문하생이 베이커 가 근처에서 지내고 있어서 운 좋게 본점의 요리를 맛볼 수 있었지요."
"베이커 가? 본점? 베이커 가라면 홈즈 시리즈에 나오는 그곳을 말하는 겁니까?"
"맞습니다. 명탐정 홈즈 씨의 베이커 가 221B 번지가 가장 유명했지요. 하지만 이제는 치킨 앤 칩스가 더 유명해졌답니다. 마차를 타고 베이커 가로 가겠다고 하면 그곳으로 가겠냐고 물을 정도니까요. 다만, 한정 수량으로 팔아서 구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입니다."
"그냥 단순한 요리 아닙니까? 그렇게나 유명하다고요?"
"하하, 아마 다른 곳에서 드신 모양이군요. 치킨 앤 칩스는 베이커 가에서 파는 것 외에는 전부 다 사기입니다. 완전히 맛이 다르단 말입니다!"
웰스는 숨도 안 쉬고 열변을 토했다. 쇼는 그 열기에 휩싸여 엉겁결에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마음 한구석에 남아 있던 의문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그러다 본격적으로 코스 요리가 시작되자, 그 의문은 한순간에 사라지고 말았다.
포크와 나이프가 미친듯이 하늘을 난다!
우걱우걱.
"이, 이런 맛이 존재하다니!"
"으허허, 이게 바로 진정한 맛이구나! 하하핫!"
'양념'이라고 불리는 이 레스토랑에서만 취급한다는 달콤한 소스와 함께 나온 치킨은, 그가 이전에 먹었던 3펜스짜리 아일랜드 닭튀김과는 비교조차 되지 않았다. 쇼는 평생 이렇게 맛있는 닭튀김을 먹어본 적이 없었다.
게다가 이 감자튀김! 얇게 채 썰었음에도 어떻게 이렇게 바삭할 수 있지?! 은은하게 퍼지는 매콤함에 깊은 풍미까지, 그 맛은 놀라움 그 자체였다.
"양파? 마늘? 이 가루의 정체가 도대체 뭡니까?!"
"저도 모릅니다, 쩝쩝, 셰프에게 직접 물어보셔야겠네요, 하하. 틀림없이 비밀이라 하겠지요."
접시는 순식간에 비워졌다. 그건 다른 테이블도 마찬가지였다. 사방에서 들려오는 만족스러운 한숨소리가 피아노 소리를 압도할 정도로.
하지만 요리는 그게 마지막이 아니었다. 후식으로 납작한 파이 같은 무언가가 등장했다.
"이게 대체 뭡니까?"
"글쎄요, 저도 처음 보는 요리입니다만."
웨이터에게 물어봐도 모른다는 답이 돌아왔다. 그때 다른 테이블에서 누군가가 설명을 해주었다.
"실례가 안 된다면 내가 대신 설명하지. 그건 '감자전'이라는 음식이라더군."
"감자전이요? 처음 듣는 이름인데... 아무튼 감사합니다. 저는 H.G. 웰스라고 합니다."
"유명하신 작가분이셨군. 윌리엄 크룩스일세. 경이라고 불러 주게. 하찮은 과학자이지만 기사 작위를 수여받았다네."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크룩스 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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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쳤다, 미쳤어.
헨리 씨와 손잡고 새로 개업한 레스토랑. 개업 첫날만에 무려 1만 포인트를 벌어들였다.
이건 전생에서도 이루지 못했던 성과였다.
- 작가의말
1. 20세기 초반에는 배기라는 개념이 아예 없었습니다. 당연히 배기팬도 개발되지 않았고, 대부분의 환기는 그냥 창문으로만 떼웠다고 합니다.
물론 배기팬 자체는 무척이나 간단한 개념이며, 1901년 당시에도 선풍기는 널리 쓰이고 있었으니 배기팬은 얼마든지 만들 수는 있었습니다.
그냥 배기라는 개념이 없어서 만들지 않았던 거죠.
그래서 이 부분은 약간의 소설적 허용으로 남겨 둡니다. 주인공이 필요했다면 직접 개발도 했을 수 있었겠지만, 굳이 소설 속에서 구구절절 설명하진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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