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대영제국에 괴식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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낑깡깽
그림/삽화
매일 저녁 8시
작품등록일 :
2024.07.24 05:06
최근연재일 :
2024.09.16 1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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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7.24 0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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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프롤로그

DUMMY

"짜잔! 감자탕 나왔습니다!"

"우와, 진짜 대박! 맛있겠다!"


나는 얼굴에 함박미소를 가득 띄우며 눈앞의 카메라 렌즈를 응시했다. 하지만 내가 보고 있던 건 카메라가 아닌 그 너머의 사람들이었다.


숨죽이고 우리를 둘러싼 수십 명의 스태프들. 당장 먹고 죽어도 여한이 없겠다는 표정. 인상을 잔뜩 쓰면서 참고 있지만 난 알 수 있었다. 내 눈엔 다른 사람들이 볼 수 없는 정보가 보였으니까.


[ 권세용: 배고파서 배가 아파. / 감정: 화남 / 만족도: - ]

[ 김지현: 냄새! 진짜 미치겠어. / 감정: 화남 / 만족도: - ]

[ 이경수: 제발 나도 한 입만. / 감정: 화남 / 만족도: - ]


맞다. 내겐 사람들의 감정을 간단하게 볼 수 있는 능력이 있었다. 독심술? 사이코메트리? 이런 초능력을 뭐라고 불러야 하지?


나는 즐겨하던 게임에서 따온 용어로 간단하게 정리했다. '상태창'이라고.


이걸 상태창이라고 부르는 게 맞는지 모르겠다. 겨우 저 정도의 메시지만 출력될 뿐이니까.


[ 김아린: 빨리 먹고 싶다. 못 참겠어! / 감정: 기대 / 만족도: - ]


그리고 이 능력은 만능도 아니었다. 감정과 만족도는 주로 음식과 관련된 상황에서만 강하게 드러났으니까.


만약 이 능력이 다른 장소에서도 통했다면 나는 타짜를 하거나 사기를 쳤겠지. 그러나 대부분 음식쪽 외에는 무쓸모했기에, 나는 이 사기적인 능력을 최대한 활용하기 위해 그냥 요리사가 되기로 했다.


아, 내가 이 능력을 상태창이라고 부르게 된 까닭은 이것뿐만이 아니다. 바로 다른 사람들이 내가 만든 요리를 먹고 만족했을 때ㅡ


"그, 그러면 한 입만 먹어볼게요!"


꿀꺽.


그녀의 목울대가 움직이는 소리가 여기까지 들렸다.


"우와아! 진짜 이게 무슨 맛이야! 눈물 날 것처럼 맛있어요! 입에서 살살 녹아요!"


[ 김아린: 황홀해서 죽을 것 같아! / 감정: 행복 / 만족도: ★★★★★ ]


【 요리 포인트를 5 획득했습니다. 】


이렇게 그들의 평가에 따라 1에서 5까지 포인트를 받았다. 꼭 게임에서 별점 매기는 것 같잖아. 그래서 상태창이라고 한 거다.


이 포인트로 뭘 하냐고? 글쎄, 소설 속 주인공처럼 능력이나 아이템 같은 걸 살 수 있으면 좋았겠지만, 아쉽게도 내게 그런 능력까지는 없었다.


[ 보유 포인트: 73,012 ]


그래서 이렇게 쌓이기만 했다. 이걸 손에 잡히는 재화, 예를 들어 금이나 다이아몬드 같은 비싼 걸로 바꿀 수 있었다면 얼마나 좋을까.


결국 내 능력에서 활용할 수 있는 건, 내 요리를 타인에게 먹이고 실시간 피드백을 얻어내는 것 단 하나뿐이었다.


물론 그것만으로도 여러 매체에 단골로 출연할 실력파 요리사가 되기에 충분한 치트키였다. 사람들의 속마음을 읽으며 요리를 해봐라. 실력이 느나 안 느나.


내가 대한민국 최고의 요리사란 소리는 절대 아니다. 이 바닥에 워낙 은거기인들이 많아서. 다만 사람들에게 감동을 줄 만한 실력 정도는 어떻게든 만들었단 거지.


사실 이 정도로 유명해지는 데는 그 정도면 충분했다. 나머지는 마케팅과 이미지 메이킹이 다 했으니까.


사람들을 만족시킬 괜찮은 요리를 하고, 입담도 좋아서 카메라가 잘 받고, 대중들에게 이미지도 좋은 요리사.


감정을 읽는 초능력을 가지고도 거기까지 가는데 십수 년이 걸렸다. 쉽지 않더라고.


"촬영 끝! 고생하셨습니다!"

"고생하셨습니다!"


휘유우. 나는 어깨를 돌리며 굳어버린 근육을 풀었다. 머리도 살짝 지끈거렸다. 벌써 수십 회차 촬영이 진행된 요리 방송 프로그램. 아무리 인생을 뻔뻔하게 살아온 나라도 수십 명의 시선을 견디며 태연하게 버티는 건 여전히 쉽지 않았다.


결국 다 돈 때문에 하는 거지, 안 그래?


"저, 저기요···"

"네? 무슨 일이십니까?"

"혹시 괜찮으시다면, 하고 계신 유튜브 채널에 저도 좀 초대해 주시면 안 될까요?! 아까 만들어 주신 요리 진짜 엄청 좋았어요!"


방금 내 음식을 먹고 기뻐하던 여자 연예인. 물론 여기 스튜디오에서 처음 만났지만, 나도 얼굴은 익히 알고 있는 사람이었다. 최근 주연을 맡은 영화가 천만 관객을 돌파하면서 단숨에 인기 폭발한 여배우.


보통은 저쪽 매니저가 우리 쪽 매니저에게 먼저 연락을 하는 게 일반적인데, 어지간히도 맛있었던 모양이다. 뭐, 별 5개짜리 만족도가 뜨는 건 흔치 않은 일이니까. 오늘은 좀 피곤해서 대충 했다고 생각했는데, 의외로 잘 먹힌 모양이네?


그래서 나도 지갑에서 작은 명함 하나를 꺼내 건넸다. 이런 일이 워낙 자주 있다 보니, 별도의 명함을 수십 개씩 들고 다니는 편이었다.


"뭐 안 될 거 있나요. 이쪽으로 연락해서 스케줄 잡아 주시면 됩니다. 콜라보라면 언제든지 환영이거든요."

"진짜 진짜 감사해요! 다음에 감자탕 한번 더 해주세요!"


그녀는 그걸 받고 뛸 듯이 기뻐하며 후다닥 사라져 버렸다.


"순수하네··· 요즘 세상에도 저런 캐릭터가 있었나?"


나는 빈말로도 좋은 성격은 아니다. 내 이득을 위해 타인의 감정을 관음보듯 훔쳐보는 사람. 게다가 요리사가 된 이유도 결국 내 능력을 최대한 활용해 돈벌이를 하려던 것일 뿐. 만약 내 능력이 요리가 아닌 다른 분야에 적용되었다면, 나는 그 일을 했을 것이다.


그게 바로 나, 고아원에서 자수성가한 김철진의 인생이었으니까.




###




"어디 보자, 다음 스케줄이···."


나는 밴 뒷좌석에 앉아 태블릿으로 다음 행선지를 확인했다. 내 전담 매니저는 현재 테이크아웃 커피를 가지러 나간 상태.


"아, 내 유튜브 촬영이네. 채널 좀 몇 개 줄일까? 너무 많은데."


요즘 정신없이 바쁘다 보니 스케줄러 없이는 당장 뭐가 있는지조차 기억하기 힘들었다. 출연하는 공중파 프로그램만 4개. 거기에 개인 유튜브 채널 여러 개, CF 촬영, 잡지사 인터뷰까지, 정말 폭발하는 인기를 실감하는 중이다.


이쯤 되면 좀 쉬엄쉬엄해도 좋겠지만, 통장에 다이렉트로 꼽히는 돈의 액수를 보니 참기 어려워서 그만. 일단 젊을 때 빡세게 벌고, 노후에 느긋하게 건물주로 생활하자는 주의다.


벌 수 있을 때 벌어놔야 한다. 인기란 게 언제 허상처럼 사라질지 알 수 없었으니까. 특히 나 같은 야매 요리사에게는.


띠리리링. 띠리리링.


갑자기 전화벨이 울렸다. 업무폰이 아닌 개인폰이었기에 난 바로 발신자를 확인했다.


[엄마]


딸깍.


"어, 엄마. 무슨 일이야?"

- 철진아, 지금 바쁘니? 통화할 수 있니?

"어, 지금 쉬는 중이야. 통화돼."

- 그래, 그런데 갑자기 이렇게 큰돈을 뭐 하러 보냈니? 저번 주에도 천만 원이나 줬잖니.

"아이, 뭐. 내가 요즘 잘 나가잖아. 가족도 없는데 그 돈 다 가지고 무덤에 들어갈 것도 아니고, 애들 옷이나 좀 사 입히라고. 저번에 민아 보니까 양말에 구멍 났더라."

- 아무튼 고맙다. 원에는 언제 내려올 거니? 동생들이 많이 보고 싶어 해.


그 말에 난 스케줄을 한참을 뒤적였다. 당장 몇 달 치 일정이 꽉 찬 상태였다. 이거랑, 이거, 매니저한테 취소하라고 해야겠네.


"음··· 다음 주 화요일? 아니다, 수요일? 맛난 거 해줄 테니까 애들한테 잔뜩 기대하고 있으라고 전해줘. 아니다, 서프라이즈 할 테니까 비밀로 해 줘."

- 괜찮겠니? 요새 많이 바쁘다고 들었는데.

"하루 정도면 괜찮아. 마침 좀 쉬고 싶기도 하고. 다음 주에 내려갈게!"


뚝.


갑자기 머리가 심하게 지끈거려서 전화를 끊었다. 요새 너무 바쁘고 과로한 탓일까? 아무래도 며칠 밤을 샜더니 카페인이 부족한 모양이었다.


철컥. 내 옆쪽 문이 열렸다. 전담 매니저 강선혁이었다.


"철진이 형! 여기 주문하신 커피요!"

"어, 그래. 고맙다."

"형 표정이 좀 이상한데요? 무슨 일 있으셨어요?"

"표정이 이상하다고? 어디가?"

"왼쪽 얼굴이··· 잠시만요. 괜찮으세요?"


매니저가 내 얼굴을 만졌다. 그제야 나도 이상함을 깨달았다. 분명히 만지고 있는데도, 아무런 촉감이 없었다. 나는 비명을 질렀다.


"이런 씨··· 선혁아. 스케줄 전부 취소하고 빨리 병원으로!"

"네, 알겠습니다!"


연예인에게는 일분일초가 소중하다. 나도 요리사로 시작했지만, 소속사와 계약한 후 연예계 활동을 이어가고 있었다. 이럴 때 연예인들이 대기 없이 찾는 전문 병원이 따로 있었다.


검사한 지 한 시간째ㅡ


"뇌졸중입니다. 다행히 빨리 발견하셔서 위험한 고비는 넘겼습니다만, 조금이라도 늦었다면 큰일 날 뻔했습니다."


뇌졸중이라니. 요새 너무 과로를 했나? 아니면 능력을 너무 무리하게 사용해서 그런가?


"어쨌든 급히 혈전 용해제를 투여했습니다. CT에서 발견되지 않은 부분이 있을 수 있으니, 일정을 잡아 MRI를 한 번 더 찍어보는 게 좋겠습니다.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요즘 의학 기술이 많이 발전해서, 혈전이 아무리 두꺼워도 시술로 충분히 제거할 수 있습니다."

"그럼 저는 무사한 겁니까?"

"지금까지의 소견으로는 그렇습니다. 하지만 스트레스는 예후에 좋지 않으니, 일단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히는 게 중요합니다."


난 그 말을 철썩같이 믿었다.


믿지 않으면 뭐 어쩌겠는가. 내가 의학 지식이 있는 것도 아니고. 난 어디까지나 요리사지 의사가 아니었다.


내 건강 상태는 곧 언론에 퍼졌고, 광고주와 PD들도 내가 잠시 쉬어야 한다는 걸 이해해 주었다. 엄마에게서도 눈물 섞인 안부 전화가 와서, 냉혈한인 나조차도 함께 울 뻔했다.


다행히 매니저가 열심히 대응해 준 덕에 위약금 없이 모든 스케줄을 무사히 미뤘다. 이게 다 내가 평소 여기저기서 선한 이미지를 열심히 쌓아온 덕분이다. 유튜브 채널 댓글에도 많은 네티즌들이 내 건강을 걱정하며 응원해 주었다.


"하··· 하마터면 감동받을 뻔했네."


나는 댓글을 읽으며 슬쩍 흘러나온 콧물과 눈물을 훔쳤다.


"퇴원하면 동생들한테는 뭘 해줄까? 세상에서 최고로 맛난 수육을 만들어 줄까? 분명 좋아하겠지?"


최근 남 몰래 완성한 수육 레시피. 이게 세상에 퍼지면 분명 전 세계적인 메가 히트가 될 거다. 나는 이 특별한 요리를 세상에서 가장 애정하는 고아원에서 처음 선보이기로 마음먹었다.


그리고 이건 누굴 주고, 저건 또 누굴 위해 만들고···


그렇게 병원 침대에 누워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보니, 잠이 솔솔 밀려왔다. 약기운 때문인가? 약은 한참 전에 먹었는데···


나는 눈을 감으며 서서히 가는 숨을 내쉬었다.


그것이 내가 기억하는 내 1회차 인생의 끝이었다. 제기랄.


작가의말

상태창이 있긴 하지만 비중이 높진 않습니다. 치트가 없으면 현대인은 도저히 살아남을 수 없는 흉참한 시대로 넘어가야 해서 어쩔 수 없었습니다.

재밌으셨다면 선작 또는 추천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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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 왕실 다과회 +15 24.09.03 7,734 296 15쪽
44 불청객 +20 24.09.02 7,724 310 13쪽
43 왕실의 말 +27 24.09.01 8,004 327 15쪽
42 만남 +33 24.08.31 8,278 334 14쪽
41 여행 +23 24.08.30 8,464 334 14쪽
40 뜻밖의 보상 +36 24.08.29 8,617 353 14쪽
39 폭탄 선언 +42 24.08.28 8,621 325 15쪽
38 과거 회상 +28 24.08.27 8,673 320 14쪽
37 유혹 +28 24.08.26 8,743 312 13쪽
36 완벽한 탈출구 +24 24.08.25 8,837 317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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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 마지막 한 수 +16 24.08.22 8,987 325 16쪽
32 맛의 미로 +26 24.08.21 9,094 330 14쪽
31 추리 게임 +29 24.08.20 9,043 292 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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