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벌 3세를 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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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근의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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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7.31 0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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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08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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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9화 장진수를 부르는 목소리

DUMMY

“아아 여기 있습니다.”

“시럽은?”

“드시던 대로 헤이즐럿 시럽을 한번 짜왔습니다.”

“준성이 니 꺼는?”

“저야 시럽 없이 그냥 가져왔죠.”

“나랑 바꿔 먹자.”

“이거요?”

“응, 당 좀 줄여보려고.”


준성은 왼손에 들고 있던 시럽 안 탄 아메리카노를 내밀었다.


“아, 시원하다.”


장재성은 아메리카노 한 모금을 바로 삼키지 않고, 입에 머금고 음미하다가 삼켰다.


시원하기는. 이야기를 기다리는 사람은 답답한데.

준성도 빨대로 힘차게 커피를 빨아올렸다.

평소에 마시던 시럽 없는 커피와 다른 달달한 맛이 느껴졌다.

쓴 걸 먹다가 단 걸로 갈아타는 게 순서라... 역시 고진감래(苦盡甘來)가 진리인가?

씁쓸한 장진수의 인생에 비하면 장준성의 인생은 달콤해 진 게 사실이니 앞으로는 시럽을 좀 넣어 먹는 것도 괜찮겠다 싶었다.


장재성은 더 이상 얘기를 보채지 않고 달달한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쪽쪽 빨아 마시며 딴청을 부리고 있는 준성을 힐끔거렸다.


“에이, 재미없다. 그냥 얘기해줘야겠네. 회장님이랑은...”


역시 반응하지 않으면 놀리는 재미도 떨어지는 거다.

이번만큼은 준성이 이겼다. 후후후.


*


“의성이한테 보고는 받았다. 재성이 너도 다른 친척들처럼 독립하고 싶은 게냐?”

“아닙니다. 회장님.”

“아니면 내가 그동안 너에게 섭섭하게 한 게 있었나?”

“그것도 아닙니다. 아버지의 빈자리가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늘 잘해주셨습니다.”


거짓말은 아니었다.

직계 가족은 아니지만, 오너 일가의 일원으로서 넘치는 지원과 대우를 받고 있었다.


“그럼, 대체 뭐가 문제인 게냐?”


장명구 회장은 진심으로 궁금해하는 표정이었다.


“다른 뜻은 없습니다. 다만 저희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꿈을 이어가고 싶을 뿐입니다.”

“으음...”


장명구 회장은 입을 굳게 다문 채 잠시 생각에 잠겼다.


“내가 숙부님께는 늘 마음의 빚이 있었다.”


현도자동차는 장세용 회장이 평생을 바쳐 키운 회사였지만...

장주용 회장은 장자 승계 원칙을 앞세워 아들인 장명구 회장에게 물려주면서, 동생 장세용 회장 일가에겐 현도 산업개발을 떼어줬었다.


“숙부님이 회장 이임식 날 사가를 부르며 눈물을 훔치던 모습이 아직도 기억나. 내가 그 입장이라도 억울했을 거야.”


옛일을 회상하는 장명구 회장의 표정엔 복잡미묘한 감정이 담겨있었다.


“하지만 숙부님이 계속 회사를 운영했다면, 회사는 명규의 손에 넘어갔을 거다. 그랬으면 어떻게 됐을까?”

“우리 회사가 절대 지금처럼 성장할 수 없었을 겁니다.”

“그래. 차라리 둘째인 명건이가 회사를 물려받았으면 좋았겠지만, 우리 집안의 장자 승계 원칙 때문에... 어쨌든 아버지는 거기까지 내다보신 거였어.”


재성도 이해할 수 있었다.

백부인 장명규 회장이 처음 현도 산업개발을 물려받았을 때는 국내 1위의 건설사였다.

하지만 지금은 계속 사세가 기울어 가는 중이었다.


“사실 명건이가 현도 산업개발로 넘어가지 않고 현도차에 남아서 일을 한다고 했을 때, 고맙기도 하고 놀라기도 했었다. 당시엔 회사 안팎으로 말이 많았었어. 명건이가 속으로는 칼을 갈면서 쿠데타를 일으킬 거라는 의견이 많았었다.”


회사를 빼앗기듯이 양보한 장세용 회장의 아들이 잔류를 선언하고 남아서 일을 했으니, 주변에서는 그렇게 보는 게 당연한 그림이었다.


“하지만 너희 아버지는 그런 정치적인 계산이 없는 사람이었다. 그냥 순수하게 자동차를 좋아하고, 우리 회사를 사랑했던 사람이었어. 시간이 흐를수록 주변 모두가 그 마음을 깨달을 수 있었지. 명건이가 사고를 당하지만 않았어도....”


장명구 회장은 조용히 눈물을 훔쳤다.

사촌 동생인 장명건 부회장에 대한 깊은 정과 그리움이 묻어나는 눈물이었다.


“재성이 너는 명건이를 쏙 빼닮았어. 차를 좋아하는 것도, 일을 잘하는 것도. 네가 유학을 마치고 귀국해서, 우리 회사에서 일하고 싶다고 나를 찾아왔을 때 얼마나 기뻤는지 너는 아마 모를 거다.”


재성도 기억이 생생했다.

장명구 회장은 엄청 기뻐하면서 흔쾌히 입사를 허락했고. 장의성 부회장에 버금가는 지원과 대우를 해주며 재성을 키워줬다.


“회장님도 아시겠지만, 저 역시 아버지와 같은 마음입니다. 다만...”


이 대목이 오늘의 하이라이트였다.


“90년대에 저희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열정적으로 개발했던 초기 전기차들이 묻혀버린 게 안타깝습니다. 그 프로젝트들이 사장되지 않고 명맥을 이어갔다면 우리 회사의 전기차 기술은 훨씬 앞서갈 수 있었을 겁니다.”


96년도에 이미 니켈 메탈 배터리로 최대 주행 거리 390km짜리 전기차를 성공시켰었다.


“그래. 돌이켜보면 그 부분이 안타깝구나. 하지만 2000년도 초반에는 미래가 보이지 않는 전기차에 인력과 자원을 투자할 수 없었어.”

“네, 회장님께서 선택과 집중을 잘하셨고, 회사가 고속 성장할 수 있었습니다.”


당시엔 전기차 개발에 비용을 투자한다는 게 비합리적인 선택이었다.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판단을 넘어선, 오너의 강력한 의지와 열정을 불태워야지만 가능한 일이었다.

차세대 먹거리를 위한 투자는 당장 성과가 나타나거나 이익을 회수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고, 성공을 보장할 수 없는 모험이었다.


“충분히 옳은 선택을 하셨고, 지난 일은 되돌릴 수도 없습니다. 저는 그냥 지금이라도 전기차 개발에 총력을 다하고 싶은 마음입니다. 현도의 계열사든 자회사든 별도의 전문적인 조직에서 꿈을 펼쳐보고 싶습니다.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못다 이룬 꿈이기도 하고요.”

“그래. 참 장한 생각이야. 그 꿈을 이룰 수 있도록 내가 도와주마.”


*


“뭐 그렇게 된 거야. 궁금증이 풀렸어?”

“넵.”


오래 묵은 마음의 빚을 갚으려는 마음에 장명구 회장의 급한 성격이 더해지다 보니, 프로젝트가 급발진하듯이 튀어 나가게 된 거였다.

본부장만 있는 본부를 신설하고, 전무 승진, 언론 보도까지 일사천리로 판이 벌어져 버렸다.


“회장님의 이런 스타일도 나쁘지만은 않아. 일단 저질러 놓으면 어떻게든 수습하게 되어 있거든.”

“이런 것도 장주용 회장님의 ‘해봤어?’ 정신인 거죠?”

“일맥상통하는 거지. 일단 지르고 보는 도전 정신. 하하하하.”


‘해봤어?’는 장주용 회장의 가장 유명한 어록이었다.

부딪혀 보기도 전에 안될 이유를 찾지 말고, 일단 도전을 해보고 나서 해결할 방법을 찾으라는 이야기.

불굴의 도전 정신을 강조하는 말이지만...


시대가 변했다.

모든 게 백지상태였던 과거에는, 뭐든지 먼저 시작하는 사람이 성공할 확률이 높았기 때문에 저돌적인 도전 정신이 먹혔었다.

하지만 경제와 산업의 모든 분야가 고도화 된 현재에는, 일을 지르기 전에 실패의 요소를 제거해나가는 방식이 훨씬 효율적인 방법이었다.


장명구 회장 같은 2세 경영인까지는 옛날 방식이 익숙한 세대라면, 장의성 부회장이나 장재성 같은 3세들은 무작정 돌진하는 것보다 대내외적인 경영환경을 고려해서 신중하게 일을 벌이는 게 어울리는 세대였다.


“본부장님.”

“응?”

“그냥 호칭을 입에 붙여보려고 불러봤습니다.”

“풉. 싱겁기는.”


그래도 가끔은 이렇게 하루 아침에 실장에서 본부장으로, 상무에서 전무로 승진하는 이벤트가 터져주는 것도 좋은 것 같았다.


“본부장님, 화상회의 준비가 다 됐습니다.”


윤태진 부장이 방문을 열고 들어왔다.


“참, 부장님. 저만 혼자 승진하는 게 마음에 걸리는데. 연말에 이사 대우 승진 품의 상신해드릴게요.”

“네? 저를요? 싫습니다.”


윤 부장은 단칼에 제안을 거절했다.


“저는 부장으로 정년 채우는 게 목표인데요. 괜히 임원 달아봤자 여기저기서 공격받고 욕이나 들어먹을 텐데, 됐습니다.”

“알겠습니다. 부장님 의견을 존중합니다. 그러면 준성이는?”

“네? 저요?”

“연말에 차장이나 부장 달아줄까?”

“저는 올해 과장 1년 차로 들어왔는데요?”

“너는 규정 외로 승진하고 욕을 먹어야지. 그래야 다들 신분에 대해 납득할 거 아니겠냐?”


내규에 명시된 특진의 조건을 뛰어넘는 고속승진은 오너 일가 자제들의 대표적인 특권이었다.

장준성을 승진시켜버리면 ‘장준성 서자썰’은 굳히기에 들어가게 될 거다.


“욕받이가 되어야겠군요.”

“안타깝지만, 그게 장준성의 숙명이지.”


알면서 시작한 일이었다.

욕 값 역시 충분히 받는 셈이었고.


“물귀신 승진이라고 해두자.”

“......”


장의성 부회장의 밥상머리 교육에 장재성을 같이 엮어서 끌고 들어간 걸 이렇게 복수하네.

한 방 먹었다.

다음번엔 꼭 돌려줘야지.

복수는 복수를 낳는다.


* * *


- 바빠?

- 아니에요. 통화 가능해요.


10월 말이 되자 선선한 가을 바람이 피부로 느껴졌다.

준성은 잠시 머리를 식히기 위해 산책을 나왔다가 유진이에게 전화를 걸었다.


- 바람 쐬러 나왔어.

- 많이 힘들죠? TFT 하나 만드는 것도 엄청 빡세던데, 본부 하나를 신설하려면 진짜... 어휴.


유진이가 신입사원이긴 해도 직장생활의 고충을 이해해 줄 수 있는 여친이라는 게 좋았다.

주변에 서로 다른 직업을 가진 커플들을 보면, 각자의 일에 대해 이해하지 못해서 생기는 트러블이 은근 많았다.


- 전 부서에서 골고루 인원을 뽑아오면 자리가 많이 비겠네요?

- 응, 그래서 경력사원 공채를 진행 중이야. 우리가 빼 온 만큼 채워줘야지.

- 오빠네 신설 본부에서는 외부 인력은 안 뽑아요?

- 우선 내부 인원으로 기본 조직 골격을 갖춰 놓고, 모자란 부분을 나중에 추가 충원으로 뽑을 거야.


그게 최선이라 그렇게 하기로 합의를 봤다.

신설조직이 자리 잡기 전부터 외부 인원의 비중이 높아지면, 분위기가 더 어수선해질 수 있다는 판단이었다.


- 이 모든 일을 오빠가 지휘하고 있는 거예요?

- 아니, 지휘까지는 아니고 깊게 관여는 하고 있어.


‘응’이라고 대답하고 여친한테 허세를 부려볼까 하는 생각이 잠시 들기도 했지만...

굳이 그럴 필요는 없었다.

지금도 짬밥을 뛰어넘은 권한을 쥐고 대우받으면서 일하고 있다는 걸, 유진이가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 나중에 오빠네 본부에서 사람 뽑을 때, 제가 원서 넣으면 뽑아줄 수 있는 거예요?

- 으응?


장재성의 허락만 받으면 되는 일이니, 불가능한 일은 아니었다.

다만 순간적으로 여러 가지 생각이 복잡하게 뒤엉켜서 떠올랐다.


그런 편법을 써도 되나?

아니, 장준성의 존재와 생활 자체가 편법의 결정체인데 괜찮지 않을까?

사내 커플로 지내는 게 괜찮을까?

아니면 불편할 게 더 많을까?


- 장난이에요. 그냥 얘기해 본 건데. 말이 없어진 걸 보니 당황했죠?

- 아... 응.

- 헤헤헤헤. 오빠 당황할 때 표정 귀여운데. 그걸 못 봐서 아쉽. 저는 신입으로 들어왔으니 최소한 2, 3년은 버티고 어딜 가든지 해야죠. 그래야 최소한의 근성이 있어 보이니까요.


그냥 장난이라 그래서 마음이 편해졌다.

진심으로 저런 부탁을 했으면, 진짜 고민이 깊어질 뻔했다.


- 이따 퇴근하고 전화할게요. 남은 시간도 힘내요.

- 응, 이따 통화하자. 간식 내기 같은 거, 지지 말고 이겨야 해.

- 넹!


이렇게 잠시라도 목소리를 들으면 기분이 참 좋아졌다.

마치 고농도 비타민 같은 느낌이랄까?

커피나 고카페인 에너지 음료보다도 훨씬 더 나은, 아주 건강한 리프레시 방법이었다.


청량한 가을 날씨에 상큼한 유진이의 목소리까지 듣고 나서 기분 좋게 사무실로 들어가려는데,


“장진수 대리님...? 맞으시죠?”


들려서는 안 될 이름을 부르는 사람이 나타났다.

소리 나는 쪽으로 고개를 돌려보니, 레노오성의 품질경영팀에서 일을 하던 박종필 과장이 망설임이 배어있는 손짓으로 인사를 하고 있었다.


준성의 심장이 미칠 듯이 뛰어대며 얼굴이 달아올랐다.

정말로...

쉬운 날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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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 제48화 기회는 영웅을 만든다 NEW +5 21시간 전 1,046 49 13쪽
48 제47화 세계는 넓고 할일은 많다 +14 24.09.16 1,451 76 14쪽
47 제46화 (가짜) 재벌 3세 장준성 +18 24.09.15 1,688 82 13쪽
46 제45화 천종산삼 +15 24.09.14 1,858 81 14쪽
45 제44화 영화 같은 하루 +14 24.09.13 2,003 76 13쪽
44 제43화 음악회, 알리바이 그리고 거짓말 +11 24.09.12 2,122 96 14쪽
43 제42화 미션 임파서블 +12 24.09.11 2,158 95 14쪽
42 제41화 가짜를 진짜로, 진짜를 가짜로 +11 24.09.10 2,357 96 14쪽
41 제40화 잘 만든 차가 맞습니까? +14 24.09.09 2,480 87 14쪽
» 제39화 장진수를 부르는 목소리 +12 24.09.08 2,585 113 12쪽
39 제38화 신설, 전기자동차 본부 +9 24.09.07 2,590 109 13쪽
38 제37화 이중 스파이 +16 24.09.06 2,710 129 14쪽
37 제36화 임기응가 +14 24.09.05 2,845 124 15쪽
36 제35화 스케일이 커졌다 +15 24.09.04 2,995 128 16쪽
35 제34화 든든한 공범 +11 24.09.03 3,062 121 12쪽
34 제33화 예상 밖의 대답 +11 24.09.02 3,128 122 12쪽
33 제32화 자동차대여사업 +12 24.09.01 3,160 104 13쪽
32 제31화 재벌가의 사모님 +12 24.08.31 3,327 111 15쪽
31 제30화 혼돈의 카오스 +8 24.08.30 3,315 108 12쪽
30 제29화 언니는 적이다 +11 24.08.29 3,342 110 14쪽
29 제28화 VIP를 위한 시승 +7 24.08.28 3,389 106 14쪽
28 제27화 꼭 가고 싶습니다 +9 24.08.27 3,551 115 13쪽
27 제26화 히든 카드 +8 24.08.26 3,648 113 15쪽
26 제25화 품절남 +10 24.08.25 3,881 118 14쪽
25 제24화 갑질 아닌 갑질 +11 24.08.24 3,886 125 13쪽
24 제23화 늘어나는 거짓말 +13 24.08.23 3,892 123 15쪽
23 제22화 카운터 어택 +9 24.08.22 3,898 127 14쪽
22 제21화 산 넘어 산 +11 24.08.21 3,906 118 14쪽
21 제20화 비상 상황 +14 24.08.20 4,027 124 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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