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 여행자의 생존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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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프21
그림/삽화
E-soul
작품등록일 :
2024.08.02 11:20
최근연재일 :
2024.08.28 11:10
연재수 :
29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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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121,980

작성
24.08.03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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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쪽

타임 003. 리셋 라이프 (삽화)

DUMMY

계단을 내려가 어두컴컴한 복도를 지났다. 그리고 다시 계단을 내려가 다시 어두컴컴한 복도를 이동했다.


'젠장, 어디까지 가는 거야.'


흐릿한 비상구 조명을 의지해 노인을 따라 걷는데 안으로 들어가면 갈수록 겁이 났다.


“저기요. 어르신.”


“왜?”


“어디까지 가는 겁니까?”


“다 왔어.”


머리 벗겨진, 검정 비닐봉지를 든 노인은 복도 끝 벽 앞에 섰다.


“저기요···.”


“왜?”


“여긴 복도 끝인데···.”


아무것도 없는 벽 앞에 서서 다 왔다고 말하는 노인을 보며 슬금슬금 뒷걸음쳤다.


노인이라고 방심했는데, 사기꾼에게 제대로 물린 느낌이다.


“저기, 저는 돌아가···.”


아차 하면 튀려고 스르륵 발목을 돌리는데, 철컹하며 벽이 흔들렸다.


“....?”


눈을 크게 뜨고 집중해 보니, 그냥 벽이 아니라 불이 나면 안팎을 차단하기 위해 천장에서 내려오는 방화벽이다.


노인은 방화벽 우측에 긴급 용으로 만들어 놓은 작은 철문을 열더니, ‘응? 방금 뭐라고 했나?’ 하면서 뒤를 돌아봤다.


문 안쪽에서 빛이 흘러나와 방화벽 주변이 조금은 밝아졌다.


“그게···.”


뭔가 의심스럽고 어두컴컴하고 딱히 돈을 줄 것 같지도 않은 분위기에 내키지 않는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제가 다른 아르바이트가 있는데, 깜빡했지 뭡니까. 죄송하지만···.”


“다른 아르바이트가 있었어?”


“네.”


“거긴 얼마 주는데?”


“네?”


“우린 건당 백만 포인트야.”


“백만···. 포인트요?”


“그렇지. 종일 일하는 것도 아니고. 테스트 건당 백만이야.”


일당도 아니고 건당 백만 포인트라는 말에 반쯤 돌아갔던 발목을 슬그머니 원상 복구시켰다.


“싫으면 별수 없고.”


“어, 그게. 무슨 일인지 들어보고···.”


“당연한 소릴 하고 있네. 갈 거 아니면 일단 들어와. 들어와서 이야기 들어보고 별로면 관둬. 자네 아니어도 하고 싶다고 줄 섰으니까.”


'그래. 내가 지금 이것저것 가릴 상황은 아니잖아.'


“여기 서서 날 샐 거야? 할 거면 들어오고. 아니면 그만 가봐.”


노인 말대로 일단 들어 보고. 아니다 싶으면 미련 없이 돌아서기로 했다.


“아니요. 들어갑니다. 네네. 들어가요.”



*



지하에 지하로 내려와 방화벽 쪽문 너머에 자리한 RS 소프트.


지하 쪽방 같은 곳이려나 생각했는데, 의외로 내부 공간이 크다.


벽 한쪽엔 캐비닛 형태의 서버가 불빛을 깜빡였고, 반대편엔 작업용 선반이 놓여 있는데, 정체를 알 수 없는 부품과 전선이 늘어져 있다.


그리고 낡은 가운을 걸친 삐쩍 마른 또 다른 노인 한 명이 눈에 들어왔다.

삽화2-시간 여행자의 생존법.jpg

얼떨떨한 표정으로 주변을 돌아보는데, 대머리 노인이 손짓을 했다.


“그쪽에 앉게.”


“네.”


낡아 빠진 소파에 엉덩이를 붙이자, 삐쩍 마른 노인이 다가왔다.


“목이라도 축이게나. 커피야.”


“아. 네.”


나무 박스를 주워다 만든 테이블에 생산년도를 알 수 없는 낡은 스테인레스 컵이 놓였다.


컵 안을 힐끔 살폈다.


'이게 커피라고?'


흙탕물인지 구정물인지 알 수 없는 애매한 색의 음료.


세상이 흉흉하다보니, 선뜻 손이 가질 않는다.


별 생각 없이 한 모금 했다가, 정신 차리고 나니 콩팥이 없어졌다던가. 애꾸가 됐다던가. 이럴 수도 있는 일이다.


대머리 노인이 손에 들고 있던 비닐봉지에서 돌돌 말린 뭔가를 꺼냈다.


삐쩍 마른 노인이 반가운 표정으로 그걸 받아 들더니, 단단히 말린 뭔가를 급하게 풀어냈다.


고소하고 달달한 향기가 지하에 확 퍼져나갔다.


아! 만두구나.


꿀꺽.

코 끝을 자극하는 만두 냄새에 자신도 모르게 군침이 넘어갔다.


삐쩍 마른 노인은 허기진 표정으로 연신 만두를 집어삼켰다.


그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자, 삐쩍 마른 노인이 잠시 동작을 멈췄다.


“아이고, 손님이 있는데 나 혼자 먹고 앉아있네. 한 입 하겠나?”


사채업자 때문에 꽁꽁 숨어 있느라, 이틀 간 쫄딱 굶었다.

먹은 거라곤 물 몇 잔이 전부라 위장이 요동을 쳤다.

마음 같아선 당장이라도 고개를 끄덕이고 싶었지만, 꾹 참았다.


사채업자 협박에 콩팥 노이로제가 걸릴 지경이라 안전이 확보되지 않은 모든 것이 다 의심스럽게 느껴지고 꺼려졌다.


하지만...


'그래도 저건 밖에서 가져온 음식이고 나 혼자 먹는 것도 아니고 노인도 같이 먹는 거니 괜찮지 않을까?'


일단, 예의상 한 번 거절을 했다.

대뜸 기다렸다는 듯 받아 먹기엔 분위기가 좀 그랬다.


“아닙니다. 어르신 드십시오.”


삐쩍 마른 노인은 ‘그래?’하더니 다시 쩝쩝거리며 먹방을 시작했다.


어? 이게 아닌데.


저기요. 어르신?


예의상 한 번 거절한 겁니다. 다시 한번 물어 봐주면 안될까요?


한 번 더 물어보면 못 이기는 척 맛 정도는 봐 볼까 했는데, 노인은 반기는 눈빛으로 만두에 코를 박았다.


그나저나 명색이 소프트웨어 회사인데 다른 사람은 보이지 않고 달랑 노인네 둘 뿐이다.


'이거 제대로 된 회사 맞나?'


돈이 급하지 않았다면.... 당장이라도 되돌아 나가고 싶은 풍경이다.


삐쩍 마른 노인이 만두 먹방을 끝내자, 대머리 노인이 물컵을 가져와 맞은 편에 앉았다.


자신에게 커피라고 내 놓은 구정물 비슷한 것이 아닌, 그냥 맹물이다.


안 그래도 미심쩍은데, 노인들의 행동에 의심이 증폭됐다.


대머리 노인이 태블릿을 꺼내 뭔가를 확인하더니, 입을 열었다.


“이름이 뭔가?”


“아. 네. 한상진입니다.”


“어디 보자. 아, 여기 있네. 한상진.”


대머리 노인이 태블릿을 조정하자, 철사로 이를 쑤시고 있던 삐쩍 마른 노인이 힐끗 화면을 바라봤다.


“나이는 스물다섯 살이고. 군대는 다녀왔고. 대학은 휴학 중이고···. 가족은 없고. 응? 전공을 안 적었네?”


게임 베타 테스터 뽑는다면서 그런 걸 왜 궁금해 하는지 모르겠다.


“전공?”


“문학···. 입니다.”


“문학? 요즘 같은 세상에?”


대머리 노인과 삐쩍 마른 노인은 미쳤냐는 듯 바라봤다.


나도 알아. 안다고. 그런데 어쩌라고.


"그냥,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습니다."


요즘 세상에 전공 찾아서 밥 빌어먹는 사람이 몇이나 된다고.


그냥 점수 맞춰서 대충 때려 넣었는데 합격도 하고 장학금도 주고 그래서 갔을 뿐이다.


때깔 좋은 게 먹기도 좋다고 고졸 취준생 보단 대졸 취준생이 그나마 있어 보이니까.


그런데 1학년 마치고 군대 다녀오니, 나도 모르는 사이에 어마어마한 빚쟁이가 되어 있더라고.


젠장!


“뭐, 그건 중요한 게 아니니. 일단 통과.”


“저기.”


“어.”


“그런데 게임 베타 테스터 구하는 거 아니었습니까?”


“그렇지.”


“그러면 그냥 게임 좀 하고 버그 있으면 그거 찾고···. 그러면 되는 거 아닌가요? 개인 정보는 왜···.”


“아, 그렇지. 내가 설명을 안 했네.”


대머리 노인은 자기 이마를 짝 내리치면서 깜빡했다는 표정이 됐다.


“설명이요?”


“우리 게임 말이네.”


네. 무척 궁금합니다.

뭔 게임을 만들었기에 호구 조사까지 하는 건지.


“이것저것 테스트할 것도 많고 오류도 잡아야 해서 정식 타이틀은 아직 붙이지 못했지만.”


옆에서 삐쩍 마른 노인이 말을 이어 붙였다.


“가제는 있네. 리셋 라이프.”


“리셋 라이프요?”


“그렇지. 리셋 라이프.”


인생을 새로 시작한다는 그런 의미인가?

대개의 게임이 그렇듯이 제목은 그럴듯해 보였다.


“그리고요?”


“이 게임이 설정이 좀 독특해.”


“설정이라기보단 세계관이라고 해야지.”


설정이나 세계관이나 그게 그거 아닌가?


“쉽게 말해서 시간 여행을 하는 게임이네.”


“시간 여행이요?”


“그렇지. 과거로 돌아가서 세상을 바꾸는.”


“아···.”


대충 어떤 게임인지 감이 잡혔다.


노인들이 만들었다는 리셋 라이프 말고도 유사한 게임을 여럿 봤으니까.


내가 대충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자, 노인 둘은 침까지 튀겨가며 게임 세계관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그런데 뭔가 게임 세계관 치곤 좀 많이 이상했다.


“저기요.”


“그래. 질문하게나.”


“제가 이해력이 떨어지는 편은 아닌데, 좀 헷갈려서 말입니다. 시간선이니, 패러독스니 하는 어려운 말 말고. 그냥, 게임 목표를 심플하게 정리해 주시면 안 될까요?”


“응? 쉬운 말로 해 달라고?”


“네.”


두 노인은 서로를 바라보며 이걸 어떻게 설명해야 쉬우려나 하는 표정을 지었다.


“백 번 듣는 것보다 한 번 보는 게 낫다고. 직접 해 보면 되지 않을까?”


“그래. 그게 좋겠네.”


두 노인은 연신 고개를 끄덕이더니, 태블릿을 조작했다.


“자, 여기 사인하게. 테스터 계약서네.”


태블릿을 받아 내용을 확인했다.


특별히 어려운 내용도 없고 건당 테스트비도 백만 포인트라고 확실히 명시돼 있다.


“저기, 그런데 이 항목은 뭔가요? 비밀 유지?”


“당연한 거네. 우리가 만든 게임을 경쟁 회사에서 알게 되면 어떻게 되겠나. 출시도 하기 전에 망하는 수가 있어.”


그런가? 딱히 대단한 게임으로 보이진 않는데.


“테스터가 되면 개발이 완료될 때까지 절대 비밀이네. 우리가 돈이 남아돌아서 건당 백만 포인트를 제시한 게 아니야.”


하긴, 그건 맞다.


보통 게임 테스터를 하게되면 먼저 게임을 하는 즐거움 정도? 또는 오류나 버그를 찾아 낼 때 주어지는 보상이 일반이다.


돈을 주고 하는 테스트도 많아 봐야 1만에서 5만 포인트. 이것도 일정 시간 접속해 게임을 했을 경우 주어진다.


백만 포인트면 거의 사흘 치 노가다급인데, 게임 한 번 하는데 이 돈이면 진짜 날로 먹는 거나 다름없다.


게임 세 번이면 한 달 월세. 열 번을 넘어 백 번까지 테스트가 이어지면 이자는 물론이고 원금도 깔 수 있다.


“만에 하나 비밀 유지 항목을 지키지 못하게 되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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