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 요원인데 천재 배우로 착각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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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우
작품등록일 :
2024.08.04 0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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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17 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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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17 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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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주인공

DUMMY

‘이 내가 기척조차 느끼지 못했다고···?’


이진혁은 혼란에 빠졌다.


비록 지금은 평범한 고등학생 이진혁을 연기하고 있지만, 그의 진짜 정체는 S.M.A.R.T 최정예 비밀요원 고스트였다.


고스트는 작전을 시작한 이래 단 한 번도 긴장의 끈을 늦춘 적이 없었고, 지금껏 그의 레이더망을 벗어난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그런데 대본 연습실에 처음 들어온 여학생이 가까이 다가올 때까지 이진혁은 그녀의 기척조차 느끼지 못했다.


‘S.M.A.R.T 베테랑 요원들조차 내게서 기척을 숨길 수 있던 사람은 없었다. 그런데 이게 대체 무슨···?’


이진혁은 놀란 눈으로 대본 연습실에 새로 들어온 여학생을 보았다.


긴 머리카락을 우아하게 뒤로 묶은, 어쩐지 전신에서 고풍스러움이 물씬 느껴지는 여학생이었다.


그 나이 또래에 흔한 장신구나 악세서리 하나 몸에 걸치지 않고도 도도한 매력을 뿜어낼 수 있는, 심상치 않은 분위기의 여학생이었다.


‘단순히 내 착각이거나 우연일 뿐인가···?’


일반인 중에서도 존재감이 특히나 옅은 사람이 있듯이, 의도치 않게 자신의 존재감을 숨기는 사람도 있는 법이긴 했다.


자신이 100% 신뢰하던 경계 태세가 웬 일반인, 그것도 한낮 여고생에게 돌파당했다는 사실에 이진혁이 당황하는 동안, 신아연은 자신을 찾아온 여학생을 반갑게 맞이했다.


“어서 와! 너무 오래 기다려서 안 오는 줄 알았잖아?”


하지만 신아연의 반가운 태도와 달리, 여학생의 태도는 찬 바람이 쌩쌩 부는 것처럼 차가웠다.


“말을 전하러 왔어.”


“말?”


“나를 네 드라마에 넣으려는 시도를 그만두라는 말. 문자로 할 수도 있었지만, 이런 말은 직접 얼굴을 보고 전해야 할 것 같아서.”


“자, 잠깐! 갑자기 그게 무슨 소리야?”


신아연이 당황하는 모습을 보는 게 흔한 일은 아니었기에, 이진혁을 비롯한 나머지 연극부원들은 흥미롭게 지켜보고 있었다.


하지만 여학생은 여전히 인형이라 착각할 만큼 도도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내가 할 말은 그것뿐이었으니, 가볼게.”


신아연이 여학생을 붙잡기 위해 어떤 말을 하든, 여학생은 들은 체도 하지 않고 다시 대본 연습실을 나가버렸다.


마치 오랫동안 집착 해온 연인에게 버림받은 듯이 상심한 표정의 신아연에게 나머지 연극부원들은 슬금슬금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괜히 지금 상황에서 안 좋게 눈 밖에 났다간 신아연의 쌓인 분노를 억울하게 뒤집어쓸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누구도 희생양이 되고 싶지 않아 먼저 나서지 않아서 고요해진 대본 연습실 안에서, 가장 먼저 용기 있게 입을 연 사람은 이진혁이었다.


“혹시, 방금 나간 사람이···?”


“안시영. 고전문화연구부 부장이야. 벌써 오래 전부터 내가 드라마에 출연시키려고 눈독들이던 애인데. 갑자기 이런 식으로 나오니까 당황스럽네?”


“나는 대본 연습하러 와서 너한테 드라마에 출연하지 않겠다고 말하고도 별 일없이 멀쩡히 돌아간 게 더 신기하게 느껴지는데? 네 평소 성격을 생각하면 말이야.”


신아연을 살짝 도발해서 속내를 떠보려는 의도로 이진혁은 그렇게 물었지만, 의외로 신아연은 발끈하는 대신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어쩌겠어? 아쉬운 사람이 먼저 굽힐 수밖에.”


“아쉬운 사람? 네가 아쉬운 입장일 때도 있었어?”


“당연히 아쉬운 입장일 때도 있지. 아까 전부터 너는 대체 나를 뭐라고 생각하는 건데?”


“왜 그렇게까지 저 애한테 집착하는 거야? 어차피 네 드라마라면 출연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은 널렸다며?”


이진혁의 물음에 이시영은 다시 한번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다른 배역이었다면 벌써 오래 전에 바꿔버렸겠지. 하지만 솔직히 여주인공은 대체 불가라서···.”


“남주인공 역할인 내 배역도 새로 뽑으려고 오디션을 열었으면서?”


“그거랑은 상황이 좀 달라.”


“상황이 다르다고?”


“남주인공 역할에는 뛰어난 연기력을 가진 배우가 필요했던 거라, 진혁이 너보다 더 연기를 잘하는 사람이 나타나면 얼마든지 교체해 버릴 수 있었거든. 그날 너보다 더 연기 잘하는 사람이 없었던 걸 다행으로 알아.”


“어휴. 다행이다. 정말 다행이네. 그럼 여주인공 역할도 더 연기 잘하는 사람을 뽑으면 그만이잖아?”


“그게 아니야. 내가 시영이를 여주인공 역할로 점찍은 이유는, 연기력 보다는 분위기가 여주인공에 딱 어울려서거든.”


“분위기라고?”


“그래. 솔직히 내가 이 드라마를 기획한 이유가 저 애의 분위기에 영감을 얻어서 만든 거란 말이야. 그러니 안시영 없이 드라마를 찍는 건 말도 안 되는 일이지.”


확실히 그냥 보기에도 안시영의 첫인상은 묘한 매력의 오로라를 뿜고 있었다.


평범한 일반인이 베테랑 비밀 요원인 이진혁의 경계 태세를 돌파했다는 특이 사항도 있고.


아직 안시영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기 전이긴 했지만, 이진혁은 본능적으로 그녀가 경계해야 할 인물이라는 사실을 직감했다.


하지만 솔직히 이진혁으로서는 신아연이 여주인공 배역에 안시영을 이렇게까지 고집하는 이유에 대해서는 크게 공감하기 어려웠다.


대본 리딩을 준비하던 다른 연극부원들이 주섬주섬 대본을 정리하며 신아연의 눈치를 살피고 있는데, 신아연은 깊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오늘은 이 정도만 하고 접자. 어차피 안시영이 없으면 죽도 밥도 안 될 드라마인데. 대본 리딩은 해서 뭐해?”


그렇게 느닷없이 일방적으로 일정 취소를 통보한 신아연은 다른 이들의 대답 따위는 필요 없다는 듯이 대본 연습실을 나가버렸다.


다른 연극부원들은 어안이 벙벙한 표정으로 서로를 쳐다보았다.


신아연이 자신의 변덕 때문에 마구잡이로 일정을 바꿔버리는 상황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지만, 아무리 그래도 시작하기 직전인 계획을 취소해 버리는 일은 잘 없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런 만행을 마구잡이로 저지른 신아연에게 다른 연극부원들은 투덜거리거나 구시렁거리는 소리 하나 내지 못했다.


이 학교 내에서 신아연이 가진 권력의 강함을 다시 한번 실감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이 일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제삼자처럼 조용히 숨죽이고 상황을 흥미롭게 관찰하던 이진혁은 빠르게 자신도 자리에서 일어나 대본 연습실에서 나간 신아연을 뒤쫓았다.


상부에서 이진혁에게 내린 명령은 신아연의 웹드라마 촬영 계획을 존치시킬 것.


신아연이 안시영 없이는 드라마를 찍지 않겠다고 고집 피운다면, 이진혁의 작전 역시 위태로워질 수 있는 상황이었다.


물론 상부에서 왜 그런 지시를 내렸는지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설명 해주지 않은 게 마음에 걸렸지만, 일단 상부에서 명령이 내려온 이상 이진혁은 따를 수밖에 없었다.


***


이진혁이 대본 연습실을 나간 신아연을 뒤쫓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신아연은 청담고 교내에 위치한, 거대한 학생 전용 카페테리아에서 커피를 마시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특히 이진혁이 신아연을 쉽게 찾을 수 있던 이유는, 그녀가 저기압이라는 사실을 눈치챈 다른 학생들이 자신에게 불똥이 튈까봐 그녀의 주변에 앉는 걸 피했기 때문이었다.


이진혁이 망설임 없이 걸어가서 신아연 앞에 비어있던 좌석에 앉자, 지켜보던 다른 학생들은 마치 이진혁이 호랑이 굴에 제 발로 들어가기라도 한 듯이 경악한 표정이었다.


신아연에게 말을 걸려던 이진혁은 그녀의 앞에 놓인 수많은 종류의 디저트를 발견하고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카페테리아에서 주문할 수 있는 디저트를 전부 한 종류씩 주문 한 것처럼 테이블은 신아연이 주문한 디저트 접시들로 가득 차 있었다.


웬만한 고급 카페보다도 가격이 비싼 이곳에서 이런 짓을 서슴없이 저지를 수 있다니.


이래서 부자 놈들은.


신아연의 작은 몸으로는 도저히 다 먹을 수 없어 보일 만큼 많은 양의 디저트들을 쳐다보며, 이진혁은 물었다.


“그거 혼자서 다 먹을 순 있겠냐? 왜 이렇게 많이 시켰어?”


“말 걸지 마. 혼자서 단 걸 입에 꾸역꾸역 처넣고 있다는 건, 혼자 있고 싶다는 의미거든?”


“그랬어? 난 몰랐네.”


신아연이 분명히 저리 가라는 의사를 밝혔음에도 이진혁은 어영부영 시간을 끌며 자리를 지켰다.


이진혁에게는 어떻게 해서든 신아연의 웹드라마 촬영을 존치시켜야 한다는 임무가 있었기 때문이다.


슬금슬금 신아연의 눈치를 보며 다시 입을 열 타이밍을 재던 이진혁은 테이블 위에 각종 쿠키가 종류별로 놓여있던 접시를 가리키며 넌지시 물었다.


“나 쿠키 하나만 먹으면 안 돼?”


이진혁의 부탁에 신아연은 진절머리 난다는 한숨을 내뱉으며 아예 쿠키 접시를 통째로 이진혁 쪽으로 퉁명스럽게 밀었다.


사실 이진혁도 정말로 그 상황에서 쿠키를 먹고 싶었다기보다는, 음식을 나눠 먹음으로써 생기는 친밀감과 동질감을 최대한 이용하려는 전략적인 행동이었다.


커다란 초콜릿 칩 쿠키의 귀퉁이를 조금 베어 물며, 이진혁은 신아연에게 말했다.


“상심한 건 알겠는데, 너무 그렇게 걱정할 건 없을 것 같아. 네 드라마는 예정대로 잘 촬영될 테니까.”


“너 또 무슨 말을 하려는 건데? 그걸 네가 어떻게 알아?”


“이런 상황을 처음 보는 건 아니니까. 지금은 그 안시영이라는 애한테 꽂혀서 그렇지, 막상 시간이 지나면, 다른 녀석들에게 연기를 맡겨도 썩 나쁘지 않겠다고 생각할 거야.”


이진혁의 입장에서는 신아연이 왜 그렇게까지 안시영에게 집착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기에, 이진혁은 자신이 느끼는 대로 담담하게 대답했다.


하지만 돌아오는 건 신아연의 경멸적인 눈빛뿐이었다.


“너 계속 그런 이야기 늘어놓을 거면, 내가 식탁을 뒤엎기 전에 알아서 돌아가는 게 좋을 거다.”


“미안···.”


이건 꽝이었나?


하긴, 이런 이야기를 꺼내기는 조금 이르긴 했지.


이진혁은 빠르게 머리를 굴리며 머릿속으로 다음 작전을 구상했다.


회유책이 안 먹힌다면 다른 제안을 건네야지.


이진혁은 신아연에게 물었다.


“네가 가진 걸 전부 동원해도 해결될 수 없는 문제야?”


“구체적으로 뭘 말하는데?”


“뭐, 요거랄까?”


이진혁은 엄지와 집개를 이용해서 동그란 동전 모양을 만들어 보였다.


뇌물로서 이 상황을 해결하는 게 어떻겠냐는 제스처였다.


어린 학생들 사이에서 고액의 현금이 오가는 일이 어색할 수는 있지만, 이곳은 대한민국 최고 재벌들의 자녀들이 다니는 청담고였다.


신아연에게 그 정도를 지불할 만한 능력이 없는 것도 아니었고.


돈은 다른 사람을 설득할 때 가장 흔하게 쓰이는 재화였기에 이진혁은 나쁘지 않은 제안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신아연은 어이가 없다는 눈으로 이진혁을 쳐다보았다.


“너 안시영이 누군지 전혀 모르지?”


“그 이름을 들은 지 이제 고작 30분 정도 되었는걸. 당연히 모르지.”


“그럼 나한테 돈으로 안시영을 설득하라고 말하기 전에, 걔네 부모님이 뭐 하는 사람인지부터 알아봐.”


이건 나중에 직접 알아봐야겠군.


신아영이 마음을 돌릴 생각도, 현금으로 안시영을 설득할 수도 없다면, 이진혁에게는 마지막 남은 수단이 있었다.


“만약 내가 안시영의 마음을 돌릴 수 있다면 어때?”


이진혁의 제안에 내내 침울한 표정이던 신아연은 처음으로 관심을 보였다.


“그건 또 무슨 말이야? 네가 무슨 수로?”


“구체적인 계획은 차차 정해야겠지만, 일단은 미인계라도 써보지 뭐.”


“뭐라고?”


“자랑은 아닌데, 내가 이런 쪽으로 사람을 설득하는데 좀 재능이 있는 편이거든.”


그냥 하는 소리가 아니었다.


훈련소 시절 고스트의 성적은 대부분이 상위권이었지만, 그중에서도 사교에 관련된 기술 성적은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총 한 발 쏘지 않고 위협적인 상황을 해결할 수 있다면 그보다 더 좋은 상황이 없었기에, 비밀 요원들 사이에서도 중요하게 여겨지는 게 바로 사교 기술이었다.


물론 고스트가 마음껏 자신의 사교 기술을 펼칠 수 있는 건 그의 뛰어난 미모가 절반은 먹어주기 때문이었다.


이진혁의 자신감 넘치는 모습을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쳐다보던 신아연은 갑자기 웃음을 터뜨렸다.


그래서 이진혁은 의아한 표정으로 신아연에게 물었다.


“왜 웃어?”


“야. 그 진지한 표정으로 미인계 어쩌고 하는 말을 하는데, 안 웃고 배길 사람이 있겠어?”


“딱히 웃기려고 한 말은 아니었는데.”


“나도 알아. 과거에 다른 사람을 설득하는 실력이 뛰어나다는 네 말도 믿고.”


“그러면 왜 웃었어?”


이진혁의 질문에, 신아연은 입가에 웃음을 거두고 의미심장한 표정을 지었다.


“진혁아. 너 잘생겼어. 그건 나도 인정할게. 그런데 그 잘생긴 얼굴만 믿고 안시영에게 미인계니 뭐니 펼칠 생각이라면 그만두라고 충고 해주고 싶다.”


“그 안시영이라는 애가 눈이 높은 편이야?”


“눈이 높고 낮고 자시고 하는 문제가 아니라니까···.”


말귀를 못 알아듣는 이진혁에게 신아연은 답답하다는 듯이 설명하려다, 짧게 대답했다.


“아마 그 애를 직접 만나보면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 거야.”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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