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딸이 산삼을 주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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랑몰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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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06 2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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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19 2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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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 아빠.

DUMMY

“아빠-! 선물이예요오.”


누가 다섯살 아이를 두고 미친 다섯살이라 했을까.

이토록 사랑스럽기만 한데.


“고마워! 근데 이게 뭐야?”

“몰라요. 저기서 주웠어.”


사실 아들은 어떤지 모르겠다.

나는 딸 키우는 아빠니까.


“보자 보자. 이게 뭐지? 사삼이라 하기에는 빵이 좀 작고 길경이 치고는 향이 없네?”

“아빠-! 빨리 가요오. 엄마가 기다려요오.”


딸이 주워다 준 소중한 풀떼기를 아무렇게나 주머니에 넣고 행복한 저녁 산책을 마쳤다.

인생 별거 없다.

사랑하는 딸과 이렇게 행복한 시간을 보낼 수 있다면 그게 전부지.


*** 


[심대리님. 품목보고 변경됐나요?]

[나 연차 몇 개 남았어?]

[강성 클레임입니다. 빠르게 확인요.]


내 나이가 어느덧 마흔을 바라보고 있다.

이런저런 회사를 떠돌다 와이프를 만나서 정착한 지금의 회사.

업력은 10년이 조금 넘었고, 생산직까지 모두 합친 직원 수는 30명 남짓.

매출은 100억 언저리를 왔다리 갔다리하는 좆소기업.

그래봤자 나도 이제 이 회사에서 5년 차인데, 근속연수로 치면 대표를 포함해서 이 회사의 넘버3다.


“후-. 할 수 있다.”


가장이 사회에 나와 일하고 돈을 버는 목적은 분명하다.

내 가족 내 새끼를 먹여 살리기 위해서.

하지만, 우리 아버지들을 보면 그게 좀 잘 안됐다.

분명 가족들을 위해서 일하는 건 맞는데, 시간의 대부분을 회사에서 보내다 보니 오히려 가족에게 소홀해져서 주객이 전도.

나는 절대로 그렇게 살지 않으리라 다짐하며 나인 투 식스를 철저하게 지키며 생활하고 있지만, 이 회사에서 이런 나를 두고 뭐라 할 사람은 단 한 명도 없다.

심지어 대표도.


[품목보고 변경 완료.]

[8개입니다. 공장장님.]

[직접 확인하세요.]


여느 직장인들을 보면 회사에서 꿈과 포부를 가지고 열정을 다하던데.

나는 아니다.

아니, 적어도 이 회사에서는 아니다.


“심대리. 나 커피 좀. 아. 미안. 정아씨 부탁합니다.”


이 회사 사무실에는 내 바로 위에 나보다 두살 어린 본부장, 그리고 들어온 지 이제 6개월쯤 된 재무팀장.

마지막으로 경리 업무를 보고 있는 아주머니가 있다.

근데 참 경리가 아무리 문턱이 낮은 업종이라 해도 요즘 같은 시절에 엑셀에서 sum도 쓸 줄 모르는 사람이 어떻게 경리 업무를 본다는 건지.

그래도 대표는 저렇게 새글 새글 웃으면서 아침 커피를 타 주는 저 아주머니가 썩 마음에 드는 모양이다.


“재고 보고 오겠습니다.”


대표는 열외로 두고,

나 보다 두 살 어린 본부장은 슬슬 혼기가 지나고 있는 탓에 갈수록 마음이 다급해지는 듯, 이제는 회사 일을 조금씩 놓으려고 하는데, 그래봤자 일을 나누어줄 사람이 없다.

실질적으로 나와 본부장 둘이서 회사를 굴려 가고 있는데 누구한테 무슨 일을 나누어 주려고?


“심대리님, 이따가 이야기 좀 해요.”

“안 합니다. 직책이든 직함이든 ‘장’이라는 글자만 들어가 보세요. 그날 바로 사직서 제출이니까.”


짧다면 짧지만 5년이라는 세월 동안 이 회사에서 굴러먹으며 수없이 지나쳐간 사람들을 두고 봤을 때.

장 자리에서 오래 버틴 사람은 지금의 본부장뿐이다.

대표의 학교 선배인 공장장님도 계시지만 아직 1년이 채 안 되셨고, 공무 팀장님은 이제 막 8개월 차가 되셨다.

어쨌거나 장을 단다고 해도 직급 수당 따로 나오는 것도 아니고 일이 달라지는 것도 아니다.

다만, 대표가 부르는 일이 많아질 게 뻔하다.


“안녕하세요!”

“어- 심대리 왔나-.”

“이번에 들어온 엄나무예요?”

“그래-. 야. 근데 니가 보기에는 어떻노?”

“흠-. 이거 벌레집 같은데요?”

“그쟈? 이런걸 뭐라카는 줄 아나?”

“폐기요?”

“에이 그런 무서븐 말 쓰모 준오가 짜증 마이 낼거니까네. 고마 몬신다라고 보고해라.”


요즘 이 회사의 대표는 해도 해도 안 맞아지는 재고조사에 온 마음이 꼽혀 있는 탓에, 나는 아침에 공장 한 바퀴 둘러본 후 선정한 품목들로 재고 조사를 하며 하루를 시작한다.

이 재고라는 녀석이 정확히 딱 맞아져 주면 너무 좋지만 절대로 안 맞는다.

사유야 많겠지만, 도난이라는 변수를 버리고 생각해도.


‘제발 오배송 없어라.’


일단 오배송이 제일 크다. 

예를 들어 구기자 주문이 들어왔는데, 택배실에서 오미자를 보내버리면 두 품목에 대한 재고가 틀어져 버리는 거고, 주문이 다섯 개가 들어왔는데 4개만 포장해서 보내도 재고는 바로 틀어진다.

이 다음으로 생각하면 환불이나 교환에 대한 전산 처리 문제가 있을거고, 대표가 한 번씩 지인에게 줄 거라고 들고 가버리는 것에 대한 것도 있으며, 포장 불량으로 인해 재포장이 되거나 폐기 되는 제품들의 재고 또한 정확히 맞아야 한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을 나 혼자 챙겨야 하고.


“안녕하세요!”

“네. 안녕하세요.”


그렇게 택배실로 가서 제품 재고를 파악하고 세 군데로 흩어져 있는 창고 재고까지 확인하고 나면 오전의 절반이 사라진다.

물론 그사이 사이에 현장직 분들의 민원을 들어드리는 시간도 꽤나 들고.


“후-. 다녀왔습니다.”

“고생하셨어요.”

“본부장님, 저희 별초 어떻게 됐어요?”

“아! 별초 그만! 나 진짜 꿈에 나와요.”

“그럼 일시 품절 처리해요?”

“아니 아니. 무슨 사달이 날려고. 나 진짜 오늘 꼭 구할 테니까. 쫌만 기다려주셔요.”

“경상도에는 씨가 말랐다면서?”

“에이 그럼 서울에서 구하면 되죠.”

“화이팅.”

“진짜. 진짜로 내가 구한다.”


저 소리만 벌써 2주일째지만, 그렇다고 내가 구해다 줄 수도 없는 부분이니 이제는 각종 부자재에 대한 구매 요청을 처리하고 스티커 라벨을 출력해서 금일 오후와 익일 오전 물량까지 정리하고 나면 점심시간이 된다.


“맛있게 드세요.”


근처 식당에서 한 사람당 5,500원짜리인 점심이 배달되어 오면 현장직 여사님들이 세팅을 해주시고 뷔페식 점심이 차려진다.

그래도 대표 몰래 식수 인원을 두 명 정도 더 넣어서 반찬이 부족하지 않게 신청하는데도 오늘 같이 딱히 먹을 만한 반찬이 없는 날이 있다.


“에이씨. 권 조장아. 라면 끼리라.”

“예예. 바로 끼리겠습니다.”


그렇게 부르스타가 동원되고 그나마 먹을만하다 평가된 제첩국이 투하되면서 10인분의 라면이 순식간에 완성된다.

아. CS팀 3명과 마케팅팀 5명, 디자인팀 1명은 생산 시설이 있는 본사가 아닌, 인력 수급이 그나마 수월한 도심지에 있기에 우리랑 밥을 같이 안 먹고, 택배팀 인원 다섯 명은 공장장님과 묘하게 사이가 좋지 않아서 패스.

늘 외식을 즐기시는 여사님 다섯 분을 제외하면 식수 인원은 보통 열두어명 남짓이니.


“크- 진짜 맛있어요!”


베테랑 주부 권조장님이 직접 집도한 라면은 엄마가 끓여준 라면, 그 자체였다.


“호호-. 차린 건 없지만 많이 드세요.”


그렇게 라면에 밥이랑 김치를 흡입하고-.


“심대리-. 오늘 허대표 기분 어떻드노?”

“평소처럼 불만족 상태예요.”

“오-. 그래도 매우 불만족은 아닌가보네.”

“에혀.”

“와? 아직도 만족을 기대하나? 그런거 읎다니까.”


아. 대표는 늘 외식이다.


“아니. 이 더운 날씨에 굳이 건물 벽 현수막이랑 대량 기계 작업을 시켜야 직성이 풀린데요?”

“금마가 원래 사람이 글러 먹어서 그렇다.”

“이러다가 사고라도 나면 진짜 어떻게 할라고···.”

“내 있다 아이가. 내가 잘 둘러봐가매 할테니까. 니는 걱정하지 마라.”


정말이지 이 회사 대표는 인성이 글러 먹었다.

물론 한 회사를 운영하는 오너의 입장을 내가 경험해보지 못해서 쉽게 하는 말일 수는 있겠지만.

아니 창고 벽면에 회사 홍보 현수막 다는 일이 시일을 다투는 일은 아니잖아?

왜 그걸 요즘같이 한창 날이 뜨거울 때 설치하라고 지시를 내리는 걸까.

심지어 작동이 잘 안 되서 묵혀둔 대량 기계도 가동하란다.

요즘 같은 날씨에.


“그래도 걱정이 안 될 수가 있어요..”

“야. 내가 허대표한테 오늘은 너무 더버가 대량 기계 몬쓴다 카이 뭐라카는 줄 아나?”

“···.”

“행님, 여기 놀러 온 거 아니잖아요. 카드라.”


대충 예상은 했지만, 진짜.

회사가 아무리 이익을 추구하는 집단이라 해도 다 사람 사는 곳이다.

근데 이 회사 대표는.

그냥 사이코패스 같다.


“아따. 라면 끼리 묵는다고 점심시간 다 써삣네. 가자.”


그렇게 짧디짧은 점심시간도 끝이 나고-.

클레임 건에 대한 대응, 대표 요청 보고서 작성, 원산지 증명 서류 정리, 위생계 확인 사항 처리, 신제품 제품명 검토 등등의 업무를 처리하다 보면 여섯 시 땡.


“들어가 보겠습니다.”

“넵! 고생하셨어요.”

“어. 내일 봐.”

“들어가세용”


대표는 평소처럼 점심 전에 소리 소문 없이 나간 상태이기에 본부장님과 재무팀장님, 그리고 경리에게 차례대로 인사를 하고 사무실을 나섰다.


“들어가보겠습니다!”

“그래-. 고생했다.”


그렇게 공장장님께 퇴근 인사를 드리고 집에 오면.


“아빠-!”


내가 도어락 비밀번호를 누르고 들어오는 소리에 맞춰 내 딸이 달려 나와 나를 반겨준다.


“나. 아빠 많이 많이 사랑해.”

“아빠도 우리 딸 많이 많이 사랑해요. 쪽.”

“아! 아야! 따가워어-!”

“어? 뭐가 그렇게 따가울까? 이건가?”


나에게 있어 회사 생활은 내 딸의 저 귀여운 미소 하나를 보기 위한 수단이다.

물론 저녁상을 차리며 이런 우리 둘을 흐뭇하게 바라보고 있는 와이프의 미소는 덤이고.


“다인아. 아빠 이제 밥 먹어야지.”

“네에-!”


여섯시 조금 넘은 시간에 칼퇴를 하고 와도 집에 도착하면 보통 여섯시 사십분쯤이 된다.

우리 딸이 어린이집에서 돌아오는 시간이 네시 반쯤이니 내가 퇴근할 때까지 기다리게 하는 게 조금 미안해서 다인이가 먼저 먹고, 육아휴직 후 퇴사해서 자체 휴직 중인 와이프랑 내가 밥을 먹는다.

그동안 내 딸은 TV를 보고.


“오빠. 주머니에 무슨 뿌리 식물 들어있던데?”

“아! 어딨어?”

“···. 지금 봐야 돼?”

“아니. 생각난 김에 확인할까 싶었지만, 급한 건 아니고.”

“으휴. 있어 봐.”


자체 휴직 중인 와이프는 솔직한 말로 살림에는 관심이 없다.

그래도 괜찮다.

전업주부 선언을 하고 살림이 사는데 이러면 문제가 되지만 지금은 자체 휴직 상태니까.


“오-. 씻었어?”

“씻었지. 세탁기가.”


내가 참 옛날 사람인가 싶기는 한데, 빨래는 자고로 세탁기 돌린 다음에 팡팡 털어서 집안에서 제일 볕이 잘 드는 자리에 말려놔야 수건이나 옷에서 햇볕 냄새도 나고 좋은데.

우리 와이프는 그런 거 없다.

빨래통에 있는 빨리는 그냥 세탁기에 쏟아 넣고, 세탁이 끝나면 바로 건조기를 돌린 후 그 안에서 몇 박 며칠은 묵힌 다음에 꺼내서 겨우겨우 옷방으로 들어간다.

이번 건은 그나마 운이 좋아서 세탁기에서 건조기로 넘어가는 시점에 발견이 된 모양이다.


“이야-. 깨끗하네-.”

“···. 그래서? 뭔데?”


다만, 살림에 관심이 없어서 다행인 점은 이런 일로 잔소리를 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글쎄. 다인이가 처음 주워줬을 때도 뭔가 싶긴 했는데, 이제는 뭐 향도 샤프란 향만 나서 잘 모르겠네.”

“다인이랑? 언제?”

“어제저녁에 산책 갔다가.”

“그래? 버려?”

“에이. 일단 줘바바. 다인이가 나한테 선물이라 하면서 준 거야. 이건 못 버리지.”

“으이구 딸 빙시야-.”

“에헤이. 서방님한테 빙시라니!”

“됐고. 알아서 하시고. 집안에 썩은 내 나게 하지 마시고. 오케이?”

“오케이.”


만약 집안 살림에 충실한 주부였다면 요 녀석은 진작에 버려졌겠지.

내 딸이 주워다 준 선물을 이렇게 잃을 뻔 했다.

아니 근데 때깔이 뽀얘서 그런지 조금 귀해 보이기도 한대.


―쏴아악.


일단 섬유 유연재 냄새라도 어떻게 해보려고 엄지손가락만 한 크기의 뿌리 식물을 물에 씻었다.

이미 깨끗하긴 하지만 이렇게 씻고 나면 향으로 정체를 알 수도 있으니까.


“오-. 무취.”


하지만 씻어놓고 봐도 당최 무슨 약재인지는 알 수가 없었다.


“산삼일 리는 없고.”


전통 약재를 중심으로 한 건강식품 회사에서 근무하고 있지만 산삼을 실물로 본 적이 없다.

물론 산양삼은 자주 봤지만.


―오독.


어쨌거나 생김으로 보아 못 먹을 풀뿌리는 아니고, 이렇게 씻어 놓고 보니 때깔이 참 먹음직스러워서 한입에 씹어 삼켰는데-.


[만년삼을 섭취하였습니다.]


상태창이 나타났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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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봄. +2 24.09.17 258 10 12쪽
30 기레기. +3 24.09.16 297 12 13쪽
29 새로운 시작. +1 24.09.15 324 14 13쪽
28 사고 수습 +2 24.09.14 366 9 13쪽
27 전문가 위에 전문가. 24.09.13 398 15 13쪽
26 선수는 선수를 알아 본다. +1 24.09.12 432 15 13쪽
25 다다익선. +1 24.09.11 460 14 13쪽
24 부자 +1 24.09.10 505 17 13쪽
23 이게 맞나? +1 24.09.09 515 18 12쪽
22 전화위복. +2 24.09.08 538 20 13쪽
21 말이 씨가 된다. +1 24.09.07 527 22 13쪽
20 내 사랑. +1 24.09.06 522 20 13쪽
19 불시 점검 +3 24.09.05 518 20 13쪽
18 할 수 있다. +1 24.09.04 524 18 13쪽
17 이심전심. 24.09.03 567 19 13쪽
16 소매 넣기. +2 24.09.02 649 17 13쪽
15 좋은 인연. +1 24.09.01 674 20 13쪽
14 싸고 좋은 물건 24.08.31 740 23 12쪽
13 나 삐졌어. 24.08.30 762 22 13쪽
12 카운트 다운 24.08.29 787 24 13쪽
11 은호 미워. 24.08.28 829 23 12쪽
10 구지황 +1 24.08.27 851 20 13쪽
9 남남으로 만나서 +1 24.08.26 900 24 13쪽
8 성투 +1 24.08.25 928 28 13쪽
7 다이어트 약 +3 24.08.24 966 26 13쪽
6 그런 거 없다. +3 24.08.23 1,021 26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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