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리님 회장님 되실 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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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몽쉘
작품등록일 :
2024.08.10 2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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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9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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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18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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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만난 과거의 인연과 우연

DUMMY

나는 클럽 한 번 가보지 못했고 연예조차 쉬이 하지 못했기 때문에 인연이 될 만큼 스쳐간 사람을 기억 못할 리 없다.


이름이 낯익은 걸 보면 혹시 내가 얼굴을 기억하지 못하는 학교 동창이려나?


“혹시 우리 동창인가요?”


“아··· 정말 기억 못하는 구나···.”


그녀의 아쉬워 하는 표정을 보니 마음이 다급해졌다.


정말 기억이 안 나는데 속 시원하게 알려주면 안될까요?


나는 어줍잖게 그녀와의 인연을 맞추려고 노력하기 보다 솔직하게 물어보기로 했다.


“미안해요. 솔직히 기억이 안 나서요. 우리가 어디서 만났지요?”


“같이 게임하면 기억 날 줄 알았는데··· 인수 오빠, 나 정말 기억 안나요?”


오빠? 게임?


가물가물 기억이 날 것 같으면서도 도통 명확하게 떠오르지 않아 답답했다.


내가 어안이 벙벙한 채 생각을 하고 있으니, 양채인은 조금 뾰로통한 표정을 지었다.


“에이 됐어요. 이해는 하는데 그래도 조금 서운하네. 나 1호 살던 채인이, 오빠는 다른 오빠들이랑 4호 살았잖아.”


아! 기억이 났다.


“어?! 꼬맹이? 우리 집 자주 놀러 오던···.”


내 반응을 보자 양채인이 샐쭉하게 한 번 흘겨보더니 배시시 웃었다.


“그래~ 이제 기억 났어? 나는 얼굴보고 이름 들으면 알아볼까봐 어떻게 반응할 지 고민하고 있었는데···. 왠걸 끝까지 못 알아 보시더라구요오.”


“아··· 미안해. 실은 이름이 낯이 익어서 떠올려 보려고 했는데 기억이 안났어. 어렸을 때랑 지금 모습이 도저히 매치가 안 되서···.”


내가 어쩔 줄 몰라 하는 모습을 보고 다운이 풋 하고 웃었다.


정체를 몰랐을 때는 조금 가까이 하기 어려웠지만 어렸을 적 인연이라는 걸 알게 되고, 그녀가 편하게 대하는 걸 보니 그 동안의 시간을 뛰어넘어 가까워진 느낌이 들었다.


* * *


나는 10살 때 양채인을 처음 만났다.


당시 아주머니와 함께 살던 집은 복도식 아파트였는데, 정이 많았던 아주머니는 같은 라인의 모든 집들과 가깝게 지냈다.


그러다보니 채인이의 집인 1호와 우리 집인 4호는 끝과 끝집이었지만 서로의 사정을 어느 정도 알 수 있었다.


이가 처음 이사왔을 때 이미 한부모 가정이었는데 아빠와 함께 살았다.


그러다보니 그녀의 아빠는 자신이 일하는 동안 여섯 살인 딸을 맡아줄 곳이 필요했다.


사정을 들은 아주머니가 채인이를 맡아주기로 했기 때문에, 내가 학교를 마치고 돌아오면 평일에는 집에 항상 채인이가 있었다.


마침 채인이는 철이 형이 다니는 태권도장을 등록한 상태였고, 철이 형이 관장에게 부탁한 덕분에 안전하게 등하원을 할 수 있었다.


그래서인지 채인이는 우리 모두를 잘 따랐지만, 처음에는 철이 형을 가장 잘 따랐다.


형이 직접 자세를 봐주기도 했으니 조금 더 가까워질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랬던 채인이의 관심이 나에게 옮겨 간 것은 형들이 고 3이 되면서 바빠진 이후였다.


가장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게 되면서 놀아주는 건 나의 몫이 되었다.


그나마 가장 나이 차이가 적어서 그런지 채인이는 나를 금새 친근하게 여기는 것 같았다.


그 때 우리는 보드 게임을 참 많이 했다.


성격이 활발하고 활동적이었던 채인이를 집에서 뛰지 않게 하기 위해 내가 고안한 수단이었다.


사실 함께 놀이터에 간 적이 있었지만 채인이가 한 살 많은 남자애를 때려 눕히는 바람에···.


채인이는 승부욕이 강했지만 집중력이 좋고 규칙을 어기려 하지 않았다.


규칙 내에서 어떻게든 나를 이겨 보려고 안간힘을 썼고, 질 때 마다 다시 하자고 졸랐다.


너무 많이 질 때는 분에 못 이겨 울기도 했지만···, 그럴 때 마다 나는 조금은 의젓하게 져주기 보다 이기는 법을 알려주며 달래주었다.


그러다가 나를 이기는 날에는 하루종일 의기양양해 하며 집안 모든 사람들과 아빠에게까지 자랑을 했다.


나도 어렸기 때문에 채인이가 동네방네 자랑하는 게 유쾌하지 않았지만 조금은 의젓하게 칭찬해 주었다.


그렇다고 11살 남자애가 7살 여자애랑 싸울 수는 없는 노릇이고, 괜히 기분 상하게 했다가 보드 게임을 안하겠다고 하면 그게 더 곤란하니까···.


하루는 함께 간식을 사러 슈퍼에 다녀오는 길에 기분이 좋아진 채인이가 갑자기 뛰어서 도망친 적이 있었다.


딴에는 나에게 장난을 친 모양이었지만 나는 걱정이 되어 어떻게든 잡아 보려고 내달렸다.


– 채인아! 채인아! 기다려. 나랑 같이 가야지.


– 히히히, 내가 이길거야.


운동을 배워서 그런지 생각보다 빨라서 놀랐지만 그래도 7살 꼬마를 못 따라잡을 리는 없었다.


그런데 이내 따라 잡을 즈음 갑자기 채인이가 넘어져 버렸다.


순간 나는 화가 났지만 꽤 아프게 넘어졌는데도 겁을 먹고 울지도 못한 채 나를 보는 아이에게 화를 낼 수는 없었다.


– 채인아 괜찮아? 그러니까 나랑 같이 갔어야지.


– ···.


– 많이 아파? 오빠가 업어줄까?


채인이는 풀이 죽은 채 말없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힘들게 업고 가고 있는데 등 뒤에서 훌쩍 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 오빠··· 미안해··· 흐에엥.


솔직히 꽤나 힘들었지만 말없이 업고 돌아와 채인이의 다친 무릎을 치료해 줬다.


아무튼 이런 나의 모습들이 채인이에게 꽤 어른스럽게 느껴진 모양이었는지 그녀의 생일날 모두가 함께 모인 자리에서 갑자기 폭탄 선언을 했다.


– 나, 나중에 인수 오빠랑 결혼 할거야.


어른들은 물론 형들도 박장대소를 하며 채인이의 일방적인 약혼을 축하했다.


– 인수 좋겠네. 벌써부터 신부가 생기고···.


– 그래, 인수 정도면 우리 채인이 신랑으로 인정할 만 하지.


나는 부정하며 자리에서 도망치고 싶었지만 얼굴이 빨개진 채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도망치면 채인이가 상처 받을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나는 어쩌면 어린 나이부터 느낀 부모의 부재와 외로움이라는 동질감 때문에 채인이의 마음을 신경 썼는지도 모른다.


내가 13살 때 채인이는 아버지의 지방 발령을 따라 이사하게 되었고 이후 형들의 유학으로 나 역시 아주머니와 헤어지게 되면서 완전히 소식이 끊겼었다.


* * *


“나는 오빠를 보는 순간 알겠던데···, 오빠는 정말 나를 못 알아봤어요?”


“내 등에 업혀 다니던 꼬맹이가 어떻게 이리 훤칠한 아가씨가 되었냐? 나는 진짜 못알아봤어. 미안해.”


“하핫, 미안하다는 소리 좀 그만해요. 이제 알았잖아. 하긴 내가 어렸을 때 좀 선머슴이기는 했지. 그래도 나 크니까 꽤 이뻐졌지?”


어떻게 대답해야 할 지 생각이 나지 않았다.


인연이 있는 사람이라는 걸 알았을 때 땡 잡은 느낌이 들 줄 알았지만 의외로 그렇지 않았다.


어렸을 때 봤던 여동생과 지금 눈 앞의 아름다운 아가씨의 갭이 쉽게 메꿔지지 않았고, 정체를 몰라 낯설 때 들었던 호감이 오히려 알고나서 가깝게 느껴진 지금은 약간 죄스럽게 느껴졌다.


“어렸을 때는 죄다 때려 눕히고 다니더니, 지금은 남자들이 많이 따라 다니겠는데?”


“그거 칭찬 맞지? 아냐··· 지금 만나는 사람도 없는 걸?”


“왜? 공대 여신이었을 것 같은데?”


사실 공대 여신이 아니라 단연 어느 학교 어느 과에 있었어도 여신이었을 것 같다.


“그것보다 오빠는 만나는 사람 없어요? 오빠는 어렸을 때 얼굴이 남아 있어서 나 진짜 보는 순간 딱 알아봤거든. 사람들이 다 오빠 얼굴보고 귀여워 했잖아.”


간단한 질문이었지만 어디서부터 어떻게 말해야 할 지 막막했다.


세월의 간극이랄까?


아마 채인이는 의례 상 던진 질문이겠지만 연애를 하지 않는 이유를 설명하려면 그동안 내가 보낸 세월을 공유해야 하므로 많은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었다.


너무 진지하게 받아 들인 것이겠지만 나는 듣는 사람이 지겨울 수도 있고, 구구절절 말하기 귀찮을 수도 있는 그동안의 시간을 그녀와 공유하고 싶었다.


하지만 지금 그런 말들을 늘어 놓기는 좀···.


“어렸을 때 들은 말을 지금도 기억하고 있냐? 나도 뭐 딱히···?”


내가 말을 얼버무리자 채인이는 나를 의미심장하게 쳐다보더니 장난스레 말했다.


“오빠도 지금 뭔가 말하기 좀 그렇구나? 그럼 우리 내일 번개할래요? 둘이서.”


그녀의 말이 오히려 반가웠고 왠지 가슴이 뛰었다.


이건 13살 때 헤어진 양채인을 다시 만났기 때문일까? 지금 눈 앞의 성인이 된 양채인을 다시 만나고 싶어서 일까?


“좋아. 내일 퇴근하고 보자. 몇 시에 끝나니?”


“음··· 지금 들어가서 업무 마무리 하면 내일은 정시 퇴근?”


“아··· 다시 일하러 가야 하는 구나?”


“내가 좀 유능하거든요. 팀장님이 좋게 봐주고 있기도 하고···. 아무튼 그래요.”


“그래, 그럼 내일 보자. 할 이야기가 많을 것 같아.”


“그래요. 내일 봐요. 잊지 말고요.”


돌아서기 전 나는 중요한 말을 빼 먹은 것 같아 다시 한 번 그녀를 불렀다.


“채인아.”


그녀는 말없이 눈으로 응? 이라고 물어봤다.


“정말 반갑다.”


채인은 푹 하고 웃은 뒤 손을 내밀었다.


“뭐야, 싱겁게···. 나도 정말 반가워. 자주 봐요 우리.”


나는 그녀가 내민 손을 가볍게 쥐고 악수를 했다.


왠지 어릴 적 약속할 때 새끼 손가락을 거는 것처럼 느껴졌다.


+ + +


예상보다 갑자기 치고 들어 온 업무가 많아 먼저 연락을 하지 못했다.


그래도 거의 볼드모트 같은 자를 찾아 헤맬 때 처럼 집중한 결과 퇴근 전에는 일을 마칠 수 있었다.


다행히 파트장 컨펌도 빨리 나서 칼퇴가 보장되었다.


그런데 그녀에게서도 연락이 오지 않는 것이 문제였다.


설마 채인이가 야근인 건 아니겠지?


나는 문득 채인이가 업무할 때 모습이 보고 싶어졌다.


도저히 보지 않고는 상상이 가지 않는 그 모습.


슬그머니 DBA 팀을 찾아갔다.


DBA 팀은 사무실의 끝 편 공간을 사용하고 있었는데 마침 가까운 곳에 회의실이 있었다.


퇴근 시간까지 얼마 남지 않았기 때문에 아마 회의실은 아무도 쓰지 않을 것 같았다.


나는 자연스럽게 이동해 잽싸게 회의실로 들어갔다.


그리고 조심스레 유리벽 틈 사이로 그녀를 찾기 시작했다.


몇몇 DBA 팀원 사이에서 양채인을 너무 쉽게 찾아낼 수 있었다.


팀원들 의상과 다르다 보니 좋게 말하면 눈에 잘 띄고, 나쁘게 말하면 너무 튀는 모습이었다.


검은 색 삼디다스 츄리닝에, 어제 모임에서 썼던 안경을 쓰고, 머리는 말아서 펜을 비녀 삼아 고정하고 있었다.


그녀의 자리에는 체구보다 클 것 같은 백팩이 놓여 있었다.


그럼 저 차림에 저 가방을 메고 출퇴근 하는 건가? 아니면 출근해서 츄리닝으로 갈아 입는 걸까?


주변의 평상복 무리 사이에서 눈에 띄기는 했지만 검은 색 옷을 입고 자리에만 앉아 있으니 사람들이 주목하지 않을만 했다.


동료 팀원들도 홍일점인 채인을 크게 신경 쓰거나 의식하지 않는 것 같았다.


의외로 여자로서 관심을 가지거나 신경쓰기는 커녕 그냥 내 옆 자리의 동료 1로 대하는 느낌?


그녀는 키보드를 두드리다가 고민하고 두드리다가 고민하고를 반복하고 있었다.


음··· 하지만 저 모습도 예쁜데···, 주변에 있으면 엄청 신경 쓰일 것 같은데···.


이내 몇 번 더 키보드를 두드리던 채인은 일어서서 옆 자리의 동료에게 화면을 가리키며 뭐라고 말을 건냈다.


그 동료가 채인의 자리에 앉아 화면을 세밀히 살피는 것 같더니 뭐라고 설명하는 듯 말한 뒤 고개를 끄덕거렸다.


홍 팀장도 다가와서 함께 그 동료의 이야기를 듣고 고개를 끄덕거렸다.


느낌 상 작업 확인을 받는 것 같았다.


유리벽 틈으로 계속 보고 있으니 문득 눈알이 빠질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눈치를 봐서 슬쩍 회의실에서 나가려고 하는데 핸드폰에서 진동이 느껴졌다.


폰에 설치된 회사 메신저로 메시지가 온 것이었다.


[오늘 번개 가능해요? 야근 하는 거 아니지? 연락이 없길래 바쁜가해서···.]


채인이의 메시지였다.


[하루종일 좀 바빴지만 괜찮을 것 같아. 이렇게 확인해 놓고 네가 야근 하는 거 아니지? 너도 연락이 없어서 오늘은 패스인가 했지.]


[아니거든요. 조금 바쁘기는 했지만 나는 유능해서 그럴 일 없네요.]


[ㅎㅎ 알았어. 이따 보자.]


[응 이따 봐요. 팀장님이 이야기 나누기 좋은 장소 알려주면서 쿠폰도 줬어! 꺄아~ >ㅁ<]


으잉? 홍성수 팀장에게 뭐라고 말했길래 좋은 장소를 알려준다고 한 거지?


사람들하고 이야기 나누기 좋은 장소 좀 알려달라고 했겠지, 뭐.


그게 뭐가 중요하겠는가.


하지만 의식의 흐름과 다르게 나는 조금씩 설레기 시작했다.


이 설레는 느낌은 한참만에 열린 동창회에서 보고 싶었던 친구들을 만나기 전의 느낌과 같은 것이겠지?


정말 오랜만에 만나는 것이니 채인이도 같은 기분이 아닐까?


회의실을 나가려는데 순간 문 틈으로 백팩을 가지고 어디론가 부리나케 빨리 걸어가는 채인이가 보였다.


잠시 기다렸다가 문을 슬쩍 열고 나와 빠른 걸음으로 DBA 팀의 영역을 벗어났다.


지이이잉


홍 팀장의 메시지였다.


[다음부터는 그냥 자연스럽게 제 자리로 놀러 오십시오. ㅎㅎ]


쳇, 언제부터 눈치 챈 거지? 의뭉스럽기는···.


+ + +


로비에서 기다리고 있는데 누군가 나에게 어깨동무 하듯 손을 얹었다.


“오래 안 기다렸지? 가자.”


채인이었다.


아무리 편해도 어깨동무를 시도하다니 깜짝 놀랐다.


오랜만에 만났는데 보자마자 이렇게 편해지나?


“아냐, 네가 하도 안와서 메시지를 보내려는 참이었어.”


“에이 거짓말. 허둥지둥 걸어 가는 걸 뒤에서 다 봤는데?”


채인이는 내가 귀엽다는 듯 빙글거리며 타박을 했다.


그녀는 사무실과 다른 모습이었다.


수수한 듯 하지만 간결하면서도 가장 예뻐 보일 수 있다는 반팔 티에 스트레이트한 청바지 차림이었다.


그 사이에 가볍게나마 화장을 했는지 한 듯 안한 듯한 느낌이 났다.


커다란 백팩을 가지고 다니는 이유와 아까 백팩을 가지고 달려가던 이유가 단번에 설명되었다.


“백··· 안경은? 안 껴도 괜찮은거야?”


하마터면 백팩을 언급할 뻔 했다.


그녀가 나를 살짝 흘겨본 뒤 말했다.


“오늘은 렌즈 챙겼으니까 안경 이야기는 꺼내지 마요. 나 진짜 조만간 수술할 거야. 안경 안 쓰고 싶어.”


“하긴 불편하지. 수영을 하거나 목욕을 할 때도 그렇고, 라면 먹을 때 제일 불편하지 않아?”


“어! 맞아. 라면 먹을 때 진짜 만화 캐릭터가 된다니까. 오빠는 안경도 안 쓰면서 잘 아네?”


“그런데 그거 눈 수술 괜찮은 거지? 문제는 없겠지?”


“내가 주변 사람들을 모수로 통계를 내본 결과 성공률 100%였으니까 괜찮을 거야. 아냐, 안 괜찮아도 해야 돼. 너무 불편하다구.”


“누가 공대 출신 아니랄까봐 통계까지 내봤어? 하하.”


길을 걸으며 시덥잖은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문득 주변 사람들이 우리를 한 번씩 쳐다 보고 가는 것이 느껴졌다.


아마 나보다는 채인이 때문에 시선을 한 번씩 빼앗기는 것이겠지.


사실 그동안 나는 땅만 보고 걸었기 때문에 주변을 둘러 보지 않았지만, 채인이와 함께 있는 지금은 어느 새 주변을 살피고 있었다.


뭔가 자신감이 생기고 당당해진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런데 우리 어디가?”


“어, 잠시만···. 팀장님이 말해준 곳이 이쯤이었는데···. 아 저 골목으로 들어가면 된다. 저기로 가요.”


목표를 확인한 채인은 조금 빠르고 당당하게 걸음을 옮겼다.


나도 그녀를 따라 조금 빨리 걸었는데 문득 옛날 도망치는 꼬맹이 채인을 잡기 위해 따라가던 때가 떠올랐다.


“여기, 여기가 맞네요.”


홍 팀장이 알려준 곳은 고풍스럽고 허름한 중국 요리집이었다.


“중국 요리 괜찮아? 홍 팀장 님은 왜 하필 이야기 하기 좋은 데로 중식집을 알려주셨대?”


나는 채인의 옷이 걱정되었다.


“응? 아~ 괜찮아. 앞치마 달라고 하면 되지. 여기 룸이 몇 개 없기는 한데 분위기가 진짜 운치 있대요.”


“팀장님한테 뭐라고 했는데 여기를 알려줬어?”


“음··· 그냥 오랜만에 만난 사람들하고 이야기 나누려는데 근처에 좋은 장소 없냐고 물어봤죠. 왜? 데이트하기 좋은 장소 알려달라고 했을까 봐?”


그녀가 눈을 약간 가늘게 뜨고 바라보며 놀리듯 대답했다.


나는 조금 부끄러운 마음을 감추기 위해 서둘러 안내 받은 방으로 향했다.


크지도 작지도 않은 크기에 고풍스러운 분위기와 나보다 나이가 조금 더 많은 사람들에게는 향수를 자극할 만한 물품으로 꾸며진 방이었다.


운치 있는 느낌이 왠지 이야기를 술술 풀어낼 수 있을 것 같은 곳이었다.


“그렇네···. 홍 팀장님이 의외로 보는 눈이 있네.”


“정말. 나는 사실 별로 기대 안했는데 생각보다 괜찮다. 그렇지?”


자리를 잡고 메뉴판을 보며 음식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건너 방에서 큰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니! 그래서 어떻게 할 생각인데?”


아니··· 이 목소리는 심철진 팀장인데···?


심철진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사람이라면 윤창호 대표일 가능성이 높다.


두런두런 대답하는 소리가 들렸지만 알아 들을 수 없었다.


다시 또 흥분한 듯 외치는 심철진의 목소리가 들렸다.


“야! 너는 그 때 그렇게 당하고 미련을 못 버려!”


그의 대화 상대는 윤창호 대표가 분명했다.


그렇다면 바로 지금이 동굴 속에서 은둔하고 있는 윤 대표를 만날 수 있는 타이밍이었다.


작가의말

요즘 고기보다 채소가 더 비싼 것 같습니다.

고기를 많이 먹으라는 계시인가 봅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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