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달, 떡타지 세계관에서 성불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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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그린
그림/삽화
DALL-E
작품등록일 :
2024.08.12 2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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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09 2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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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14 2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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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3 아무튼 역귀를

DUMMY

<003 아무튼 역귀를 >


“꼭 만나야 합니다. 안 알려 주신다면 그냥 밖에 나가서 싸돌아 다니겠습니다. 그러다보면 만나겠죠.”

-그러니까 니가 대체 왜 그 험한 것을 만난다는 것이야?-


1선조가 빡이 쳤는지 목소리가 커져서 머리가 웅웅 울렸다.


“왜 만나냐니요. 당연히 없애버려야 할 악귀잖아요.”

-아서라. 우리 힘으로는 무리야.-

-더구나 지금은 영력 소비도 많았으니라.-


성불하는 거 방해하고 저주 남발 하느라 애 많이 쓰셨습니다. 제길.


“그러니 일단 만나서 방법을 찾아야지요.”

-만나는 순간 니가 끝장나는 거야.-

-게다가 역귀는 은밀해서 막상 찾기도 쉽지 않안다.-

“못 도와 주신다면 제가 나가서 직접 찾아볼게요.”

-그러다가 천연두에 걸리기라도 하면 어쩌려고?-

‘그럼 나이스지.’

-죽을 수도 있단 말이다.-

‘그건 안되지.’


하긴 천연두는 치사율이 30%에 달하는 무서운 병이다. 고대세계에서는 재앙 그 자체. 역귀를 직접 만날 필요 없이 예방 접종으로 약하게 앓는 방법도 있다. 예방 접종 후에 대충 긁어대면 약한 곰보를 남길 수 있겠지.


=띠링! 자해는 부모의 가슴에 상처를 남김.=


일부러 얼굴을 상하게 하면 안되는구나. 그렇다면 예방접종으로 곰보가 생길 확률이 너무 낮아진다. 어쩔 수 없이 역신을 만나기는 해야 한다. 아, 어머니를 생각하면 우두나 인두 접종도 하긴 해야 겠구나.


이런 저런 궁리를 하고 있는데 갑자기 절그럭 거리는 쇠사슬 소리가 들리는 것 같더니 머릿 속이 하얘져갔다.


‘아! 망할 심신산란주. 집중하면 안 된다더니.’


눈을 뜬 것은 정오가 지난 다음이었다. 풀을 엮어 만든 이불을 덮고 있었고 옆에서 어머니가 바느질을 하고 있었다.

맹인이 바느질 하는 것이 놀랍지만 어머니는 손으로 옷감을 이리저리 재며 거침없이 바늘을 놀렸다.


“일어났니? 우리 아기.”

“네, 어머니.”

“아가! 밖에 역귀가 다니고 있으니 답답해도 집 밖으로 나가면 안 된다.”

“네, 어머니.”


두되가 우동사리로 바뀌었는데, 그것마저 누군가 호로록 해서, 하얀 두개골만 남은 느낌으로 생각없이 대답했다.


‘무섭구나. 심신산란주.’


그냥 공부만 안하면 되는 줄 알았는데 집중을 하면 머릿속이 갑자기 비어버린다니.


*


순식간에 며칠이 흘렀다.

그 동안 대문은 커녕 방문 밖으로도 나가지 않고 방에서 뒹굴거렸다. 다섯 살이면 한참 바스락거리고 밖으로 뛰쳐 놀 나이인데 심신산란주의 영향인지, 아니면 내 육체가 진중하고 진득한 성격이라 그런지 방 안에만 있는 것이 갑갑하게 느껴지지도 않았다.


‘이렇게 멍한 상태로 있다가 어느 순간에 여자 배 위에서 정신을 차릴지도 몰라.’


과장이 아니다. 며칠이 아니라 몇 년이 그냥 막 흘러 갈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아가! 절대로 밖에 나가면 안된다.”


어머니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당부를 반복했다.


“공주마마께서도 역귀에 당하신 모양이야. 정말 무섭지 않니?”

“네, 어머니.”

“무섭지 않다고? 우리 아기 용감하기도 하지.”

“무섭다고요.”

“그래, 그렇지. 역귀는 정말 무섭단다. 공주님도 참 가여우시지. 그렇지 않니?”


솔직히 관심이 1도 없다. 성불에 영향 줄 사람도 아니고.


“도성 안에서 천연두 걸린 사람들은 모두 성 밖으로 몰아내고 있다는 구나. 역귀는 정말 무섭단다.”


정작 어머니는 바느질 거리를 찾아 매일 밖을 다니셨다. 홀몸으로 나처럼 많이 먹는 아이를 키우려면 어쩔 수 없는 듯 했다


‘내 성불만 신경쓰느라 어머니 생각을 못 했구나. 이렇게 이기적인 태도로 성불을 어떻게 하겠다고.’

=띠링! 맞음. 성불 못 함.=

‘나는 아직 멀었구나. 어머니를 위해서라도 천연두 문제를 해결 하긴 해야 돼.’


종두를 구하든 역귀를 퇴지하든 해야 한다. 그 와중에 내가 곰보가 될 수도 있는 거고.

선조들을 불러놓고 이런 감정을 단호하게 어필했다.


“역귀를 만나야겠어요.”

-또 그 소리야? 안된다고 하지 않았느냐.-

-위험하네. 이번 역귀는 정말 역대급으로 강하다네. 피하거나 숨는 게 상책일세.-

-지난 번에도 간신히 막았다고.-


설득을 어떻게 해야 하나 궁리를 하고 있자니 또 다시 심신산란 타임이 올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생각 없이 내뱉었다.


“이 세계의 평화를 지키기 위해, 사랑과 진실, 어둠을 뿌리기 위해.”


그야말로 갑툭튀. 원래 인생에서 보았던 애니메이션의 그 대사. 그걸 기억하고 있었는지도 지금 막 알았다.


-뭐? 그게 무슨 말이냐?-

“이해를 못하시는 군요. 아무튼, 역귀를 만나 어머니들을 구해야 합니다.”


눈알이 번들거리도록 힘을 빡 주지만 초점은 불명확하게 허공의 어딘가로 던져 놓을 것. 아무말이나 나오는 대로 내뱉다가 요구 사항 만큼은 분명하게 지속적으로 되풀이 할 것. 무지성 토론의 핵심이다.


술은 먹었으나 음주운전은 안했고

명품은 받았으나 뇌물은 아니고

자백도 했으나 주어가 없었고.

하여튼, 아무튼, 어쨌든, 아니라고 우기는 오리발의 금자탑.

지성과 논리의 무풍지대였던 21세기의 삼한민국에서 군대 전역까지 한 나는 이런 무지성 대화의 스페셜리스트라고 할 수 있다.


“어린 공주도 아프다지 않습니까. 내가 역귀를 만나야 합니다.”

-그거랑 공주랑 무슨 상관이 있느냐?-

-될 리도 없겠지만 공주는 아니된다. 부마가 되면 처첩을 둘 수가 없어.-

“그게 아니라, 이제 날씨도 풀렸는데, 봄이니까 세계 평화도 생각을 해야지요.”

-대체 무슨 말을 하는 게야?-


1선조가 소리를 빽 질렀다. 나도 쫄지 않고 마주 고함을 쳤다.


“참으로 답답하십니다. 그렇게 이해를 못하십니까?”


고민하던 2선조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봄에는 파종을 하지 않습니까? 파종은 사람으로 치면 파정이지요.-

-그렇지.

-역귀가 설치면 파정을 받아 줄 아녀자들이 피해를 입을테니 그게 걱정 된다는 뜻이 아닐지요?-

-그게 그런 뜻인가?-

-이 아이가 씨를 뿌려 잉태시키면 처녀들이 어머니가 되는 것 아니겠습니까.-

-어머니들을 구한다는게 그런 뜻이었군.-


선조님들이 납득했다. 역시. 무지성 토론은 지지 않는다.


-이놈이 우리 자손 아니랄까봐 누굴 닮아서 이리도 영웅의 기상이 있는게야.-

-그러게나 말입니다. 말투에서 현기까지 느껴지니 참으로 우리 가문의 미래는 밝은 듯 합니다.-


1선조의 표정이 밝아졌다.


-수 많은 여인들을 구하여 네 아이의 어머니로 만들겠다는 포부가 매우 가상하구나.-

“그건 아니지만, 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러나 용기란 만용이 아니란다. 지금 역귀를 찾는다 해도 잡아 없애는 것은 불가능할 것이야. 이번 역귀를 잡으려면 아주 큰 힘이 필요해. 국가 단위의 큰 굿 정도라면 가능할까.-

“아니, 꼭 잡을 필요는 없습니다만”

-말이 통하지 않을 것이네. 처단 할 수 밖에 없네.-


말이 통하지 않는게 누군지. 아무래도 너무 질러댄 것 같다. 그냥 역병 걸린 사람이나 슬쩍 만나고 올 것을.


-하지만 세번 째 선조를 잘 소환한다면 잡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실로 어려운 확률이지만 간절히 바란다면 하늘이 응답할 것이네.-

“아니, 그렇게 거창하게 할 필요까지는···”

-때가 되기도 했어. 5살 부터는 3년 마다 한 번씩 새로운 선조를 소환해 도움을 요청 할 수가 있단다.-

-원래는 우리가 상황을 보아 후손에게 필요한 선조를 소환하는 것이나 후손이 직접하는 것이 더욱 간절하겠지.-


아, 그런거였군. 어차피 역귀를 만나는게 목적이니 선조를 한 분 더 모시면 천연두를 가볍게 앓게 될 확률이 높아지려나.


-내가 주문을 일러줄 터이니 잘 기억하거라. 너무 집중하지는 말고.-


1선조가 알려주는 주문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흑마법사 시절에 공부했던 소환술과도 일맥상통 하는 부분이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이건 메리트다. 일반적으로 새 인생을 살 때마다 세계관이 달라 물리법칙도 묘하게 다르고 사용할 수 있는 능력도 다르다.

전생에 검기를 뿜고 우주 전함을 만들었다고 현생에서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그런데 선조들이 알려주는 주문은 왠지 이해가 가는 것이다.


-그럼 우리도 준비가 필요하니 너도 마음을 경건히 하도록 하여라.


***


사방이 거울로 장식 된 넓은 실내.

이곳은 태왕의 개인 집무실인 교량전에 딸린 접견실이자 일종의 취조실이었다.


“차도는 있나?”


태왕의 낮고 굵은 목소리가 접견실 안을 울렸다.


“그것이 발병한지 얼마 되지 않아 아직은 차도가 없사오나 최선을 다 하고 있사옵니다.”


어의가 사력을 다한 공손한 어투로 아뢰었으나 태왕은 가타부타 말이 없었다.


“차도들 보이려면 이레 정도는 걸릴 것으로 아뢰옵니다. 완치까지는 열흘 정도 더 걸릴 것이옵니다. 송구하옵니다. 폐하.”


어의가 바닥에 들러붙듯 몸을 엎드리며 머리를 땅에 대었다.

태왕은 이번엔 옆에 있는 인물을 불렀다.


“북신당주”

“폐, 폐하.”


제국의 제사의례를 담당하는 북신당의 당주이자 모든 무당의 정점이며 온갖 신장과 귀신을 부리는 그녀였지만 태왕 앞에만 있으면 지옥의 판관 앞에라도 선 것처럼 모골이 송연했다.


"폐, 폐하. 그, 그, 그, 그것이 여, 여, 역귀는 은밀하고 잘 인식하지 못하게 하는 권능이 있사옵니다."


게다가 이번 역귀는 천귀문의 영향을 받아 무척이나 강했다. 아무리 수호부, 방호부로 삼중 사중으로 막아도 역부족이었다.

그런데 하필이면 그 어린 공주께서 병에 걸리시다니.


“흠”


태왕의 낮은 신음 소리가 흘러나왔다. 작은 소리였지만 어의와 북신당주에게는 천둥처럼 크게 들렸다.

거울을 통하여 사방에서 느껴지는 태왕의 날카로운 눈빛은 온 몸을 투과하여 북신당주의 내면의 모든 것을 꿰뚫는 것 같았다.


“구, 구, 구, 굿을 하겠나이다. 큰 굿을 올려 역귀를 잡을 신장을 초, 초, 초, 초빙한다면 반드시 공주마마께서 털고 일어나실 것이옵니다.”


태왕은 여전히 말이 없었다.


“5일 아니, 3일만 말미를 주신다면 바로 준비하도록 하겠나이다.”


한동안 정적이 흘렀다. 북신당주는 속으로 준비 날짜를 더 줄여야 하는 것인가 고민했다. 하지만 막굿이면 몰라도 큰 굿을 준비 하는데 3일이면 정말 빠듯한 시간이다.


“그리하라. 상을 내리지.”

“황송, 황송하옵니다.”


북신당주는 바닥에 머리를 쿵쿵 찧으면서도 자신이 제대로 들은게 맞는지 의심스러웠다.

상이라니, 처음 들어 본 말이다.

자비가 없는 무서운 성격으로 세간에서는 모가지 대왕, 처형의 황제 등으로 불리는 태왕께서 상을 언급하시다니. 잘 못 될 경우에는 어차피 죽는 거고 성공하면 보상이 있다. 죽기 아니면 포상. 중간은 없다.


교량전에서 물러난 북신당주는 휘하의 무당들, 무녀들, 신관들을 닥달하여 큰 굿을 준비해 나갔다.


‘내 목숨을 걸어서라도 반드시 굿을 성공하여 역귀를 잡고 공주마마를 구하리라.’


첫 날은 밤을 꼬박 새우고 이틀째 되는 날 꼭두 새벽. 기도를 하며 마음을 정갈히 하던 북신당주는 어떤 기운에 화들짝 놀라 일어섰다.


“게 누구 있느냐?”

“네 당주님.”


신당을 지키던 무녀 하나가 대답했다.


“방금 무언가 일이 벌어졌다. 밖에 무슨 일이 생긴 건지 알아보고 오너라.”

“명을 받드옵니다.”


무슨 일이 벌어졌는 지는 아침이 밝았을 때가 되어서야 알 수 있었다.


“당주님 큰 일이 났사옵니다.”

“그래, 내가 그리 말하지 않았더냐. 큰 일이 났다고. 그런데 대체 무슨 일이 일어 난 게야?”

“역귀가 사라진 듯 하옵니다. 궁궐 밖의 환자들도 회복하고 있사옵니다.”

“어, 어째서?”


굿은 시작도 안 했는데.


“공주마마께서도 아침에 거뜬히 일어나셨다 하옵니다.”

“어의는 뭐라고 한다더냐?”

“아무 말도 없는 줄 아뢰옵니다.”


하긴 할 말이 없겠지.


“다행이구나. 참으로 잘 된 일이야.”


그런데, 이리 쾌차 하실 것이면 하루만 더 참으셨다가 굿을 한 연후에 일어나셨으면 좋았을 것을.

순간, 북신당주는 크게 깨닫는 바가 있었다.


‘중간은 항상 있는 법이다. 하늘이 내게 이걸 깨닫게 하시려고.’


정확한 건 알 수 없으나 아무튼 역귀가 사라진 건 확실했다.



작가의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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