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셋 라면은 여섯
" 응. 우리 호동이 여전히 그대로네. "
신수인의 말에 동이가 기쁜듯 웃었다. 신수인 또한 그런 동이를 사랑스럽게 바라봤다. 300년만의 재회이니 얼마나 기쁠지 가늠 할 수도 없었다.
" 동이 얼굴 좀 봐. 엄청 좋은가봐. "
나는 류희성을 쿡쿡찌르며 말했다. 류희성은 여전히 뚱한 표정이었다. 머쓱해진 나는 헛기침을 하며 류희성에게서 한발짝 떨어졌다.
" 저 여자, 처음 볼때부터 이상하다고는 생각했지만... "
" 나중에 천천히 설명해줄게. "
류희성은 뚱한 표정으로 나를 노려봤다. 뭐가 그리 비밀이 많은거냐 서운하다 라는 표정같기도 했다.
" 누이 얼굴이... 머리칼이... "
동이는 걱정스러운 얼굴로 신수인의 얼굴을 살폈다. 신수인은 그제야 자신의 머리를 만져보다가 길었던 머리칼이 짧아진것을 눈치챘다.
" 머리카락은 재생이 안되나보네... "
많이 짧아진 머리칼에 대해 이제야 인지한 신수인은 많이 당황한듯 보였으나 그래도 자신을 걱정하는 동생을 위해 애써 웃어보였다.
" 정말 괜찮은거야? "
걱정스러운투로 신수인에게 물었다. 신수인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더 묻지않고 함께 미소를 지어줬다.
" 다같이 우리집가서 밥이나 먹자. 배고프다. "
" 나는 갈래. "
" 왜애애. 가자. 같이 고생했는데. "
류희성에게 칭얼대며 붙잡자 류희성이 정말 혐오스럽다는 표정을 지었다.
" 왜요. 같이가요. 뒤에 할머님도 같이 가고싶으신것같은데... "
신수인이 류희성을 보며 말했다. 신수인의 유백색의 눈동자는 정확히 류희성의 어깨부근을 바라보고있었다. 류희성은 꽤나 당황한듯 보였다.
" 어...?...뭐.... "
" 할머님도 배고프시다는것 같은데... "
나는 류희성과 신수인을 번갈아가며 바라보았다. 신수인의 하얀 속눈썹과 진주같은 눈동자가 빛나며 웃음지었다.
" 네, 바리할머님. 저희랑 같이가요. "
***
류희성이 뚱한 표정으로 김이 모락모락 나는 라면 앞에 앉아있었다.
" 내가... 왜... "
사람은 셋이었지만 라면그릇은 여섯개였다. 나, 류희성, 신수인의 라면과 동이, 라면냄새맡고 뛰쳐나온 강림.. 그리고 바리할머니?
" 본아...이거... 어쩌지? "
신수인은 내 방 벽에 있는 거울로 자신의 얼굴을 연신 바라봤다. 짧아진 머리칼은 그렇다쳐도 하얘진 속눈썹과 눈동자는 많이 난감한듯 보였다.
" 누이! 그래도 이뻐! 일단 먹자! "
" 그래 수인낭자. 그래도 예쁘니 일단 먹지. "
동이가 식탁을 손으로 콩콩치며 말했다. 뒤이어 진지하게 뱉어낸 강림의 말에 모두가 강림을 쳐다봤다.
" ..뭐.. 음식을 앞에 두고 기다리는건 예의가 아니니까 말일세. "
강림이 뻔뻔하게 웃으며 숟가락을 들었다. 옆에서 동이가 탐탁치못한 눈빛으로 강림을 쏘아봤다.
" 앞으로는 인형탈쓰는 일밖에 못하겠네.. "
신수인은 시무룩해져 식탁앞에 앉았다.
" 사람은 셋인데... 라면이 여섯개.. 계란도 여섯개... "
나 또한 시무룩해져있었다. 생활비는 떨어져가는데 어째 먹여야할 입들은 점점 늘어나는 느낌이었다. 혼자살려고 상경했는데...
' 저놈의 저승사자들 때문에...! '
나는 강림과 동이를 피눈물을 흘리며 노려봤다. 내 눈빛에 저승사자들은 쟤 왜저러냐라는 눈빛으로 라면을 호록호록 맛있게 먹고있었다.
" 할머니, 입에 좀 맞으세요? "
신수인이 빈 자리를 보며 살갑게 물었다. 빈자리 옆에 앉은 류희성이 신수인을 날카롭게 쏘아봤다.
" 야. 신령님께 친한척 굴지마. "
" 뭘 그리 날카롭게 굴어. 바리할멈도 낭자를 맘에 들어하는것 같구만. "
강림의 핀잔에 류희성은 강림을 노려봤다.
" 저번부터 느꼈지만 참 고양이같은 친구로구만. "
" 풉. "
" 야. "
강림의 말에 나는 웃음이 터져버렸다. 그도 그럴게 희성이는 체구도 작고 눈매도 날카로웠다. 게다가 성격도 틱틱거리고 예민하고.. 겉보기에는 차갑고 사나운 느낌이지만 막상 친해지면 희성이만큼 정이 많은 친구가 없었다.
" 예로부터 바리여신은 영혼이 선한 자들의 눈앞에 나타난다고들 하지. "
강림은 신수인을 보며 말했다. 신수인은 라면을 먹다가 강림과 눈이 마주치자 얼굴이 붉어졌다.
" 저만 영혼이 썩은거군요... "
나는 씁쓸히 중얼거렸다. 지금 이 식탁에서 바리할머니를 볼 수 없는 사람은 나밖에 없었다. 왜지? 왤까...?
" 지금 바리할멈이 수인낭자를 왜 마음에 들어하는지 모르겠다만... 이유가 있으시겠지. "
" 신령님이 맛이 가셨나....컥! "
류희성이 중얼거리다가 갑자기 무언가에 맞은것처럼 고개가 푹 숙여졌다.
" 앗! 할머니가 뒤통수를 후려갈겼어요! "
" 호동아, 어르신께 후려갈긴다는 표현은 좋지않아. "
신수인이 동이의 언행에 대해 핀잔을 주자 동이는 시무룩해졌다.
" 수인낭자. 백색 눈동자를 손으로 가려보게. "
신수인은 강림의 말을 듣고 하얘진 눈동자쪽을 가렸다.
" 어? 호동이가 안보여요! "
" 반대편을 가려보게. "
" 어? 호동이가 보여요! "
신수인은 양쪽 눈을 번갈아가며 가려보고는 신기하다는듯 감탄했다. 강림은 그런 신수인을 지그시 바라보았다.
" 낭자의 오른쪽눈은 죽어버렸군. "
" 에? "
" 고통스럽진 않았나? "
신수인은 번갈아가며 눈을 가리던 두 손을 가만히 무릎위에 올려놨다.
" 호동이가 지옥으로 끌려간다는 소리를 듣고... 무작정 지옥의 문으로 뛰어간것같아요... "
신수인은 가만히 오른쪽 눈을 만졌다.
" 지옥의 문턱까지 호동이가 보이지 않다가 어느순간 호동이가 보였고. 잡히더라구요? 그리고 오른쪽 눈이 타버린건지 시야가 흐려졌어요. "
" 누이... "
" 엄청 아프긴하더라구요. 불에 몸이 타들어가본건 처음이에요! "
신수인은 씩씩하게 웃었다.
" 한쪽 눈이 죽어버렸다거나 이렇게 변해버린건 괜찮아요. 이렇게 동생을 볼 수 있게됐으니까. "
" 찬물 끼얹어서 미안하지만 문제가 되는건... "
강림의 말에 모두가 주목했다.
" 문제가 될 수 있는건 지옥이 가져간 낭자의 눈을 누군가 손에 넣는다면 그 눈을 통해서 우리를 볼 수도 있다는 것. "
" 그게 뭐에요. 무섭게. "
" 낭자의 눈이 지옥과 연결되어 있다는 뜻이야. "
일순간 분위기가 싸해졌다. 신수인도 무척 놀란듯 그대로 굳어져버렸다.
" 아쉽지만 .. 지금부터 한쪽눈은 가리고 다니는게 좋겠네. 위험해질수도 있어. "
" 누이... "
" 그런게 어딨어요. 무슨 인간 CCTV도 아니고. "
" 낭자가 목숨이 위태로울 수 있어. "
" ...그런... "
갑자기 류희성의 자리가 소란스러웠다.
" 아 싫다구요! 쫌 ! "
류희성이 옆에 빈 자리를 보며 짜증을 내고 있었다. 아마 바리할머니라고 하는 존재와 티격태격하는듯 했다.
" 신령님... 왜 그러시는거에요... 그게 어떤 물건인데. "
" 할머니랑 고양이삼촌이랑 싸우고있어. "
동이가 나를 보며 친절히 설명해줬다. 류희성의 머리가 아까와같이 뭔가에 맞은듯 고개가 푹 떨어졌다.
" 아!!!씨!!!!쫌!!!! "
" 할머니가 고양이삼촌 머리를 후려쳤어. "
" 호동아, 어르신께 후려친다는 표현도 무례한거야. "
" 아 알았어요! 알았어! 주면 되잖아! "
류희성은 열받은듯 벌떡 일어났다. 일어나서 자신의 가방을 가져오더니 거칠게 가방을 뒤지기 시작했다.
" 아오씨.. 이게 어떤 무구인데 이걸 주래... "
류희성은 자신의 가방을 뒤지다 검은 천 하나를 꺼냈다. 은빛 연꽃이 수놓아져있는 안대였다.
" 야. 신령님이 이거 너 주래. "
류희성은 신수인의 코 앞에 안대를 들이댔다.
" 기를 눌러주는 참시선인의 안대다. 이거 쓰면 네 눈에 있는 귀문을 잠재워줄거야. "
" 오, 낭자. 귀한걸 받았군. 그냥 일반안대보다는 훨씬 안전할거다. "
신수인은 류희성에게 꾸벅 감사표시를 한 후 안대를 받아들었다.
" 저...그럼 이걸 쓰면... "
" 우리의 모습을 보지 못하게 되겠지. "
신수인은 안대를 받아들고는 망설이는듯 했다. 옆에서 동이가 걱정스런 표정으로 재촉했다.
" 누이, 어서 안대를 쓰세요. 위험할수도 있다잖아요. "
신수인은 동이를 한번 지그시 보고는 미소지으며 만질수없는 머리위에 손을 얹었다.
" .....알았어. "
" 빨리요! 빨리! "
" ....할머니, 감사합니다. "
신수인은 빈자리에 꾸벅 인사하고는 안대를 썼다. 하얀 눈과 속눈썹이 가려졌다.
" 하하...어때...? "
신수인은 나를 보며 씁쓸히 웃었다. 신수인의 눈에는 지금 나와 류희성밖에 보이지 않을것이다. 신수인은 씁쓸하게 동이가 먹고있던 라면그릇을 바라보았다.
" 그건 그렇고.. "
강림은 류희성을 보며 말했다.
" 고양이총각. 우리에게 힘이 될 생각은 없나? "
" 내가 미쳤습니까? 이런데에 엮이게. 저는 갑니다. "
류희성은 날카롭게 쏘아붙힌 후 가방을 들고 갈 준비를 했다.
" 나는 자네의 부모를 죽인 악귀를 알고있지. "
" 당신이...그걸 어떻게... "
류희성이 놀란 눈으로 강림을 돌아봤다.
" 바리할멈이 얘기 안해주지? 그만큼 위험한 놈이거... "
강림이 무언가에 뒤통수를 맞은듯 고개가 푹 앞으로 고꾸라졌다. 동이가 나를 보며 친절히 설명해줬다.
" 할머니가 강림차사님의 뒤통수를 후두려팼어요! "
강림은 조금 열이받은듯 고개를 들었다. 상대가 급이 높은 여신인지라 이를 악 물고 꾹꾹참고있는게 보였다.
" 뭐.. 관심 있으면 다시 돌아오게. 할멈이 알려주지않는것들을 알려줄수도 있지. "
강림의 머리가 다시 무언가에 맞은듯 고꾸라졌다. 동이가 이번에도 내게 설명을 해주려하길래 나는 고개를 가로저어 제지했다.
" 아오씨...망할 할멈... "
강림이 중얼거렸다. 류희성은 강림의 말을듣고 가만히 서 있다가 나가버렸다.
" 쟤가 좀 멋대가리가 없어요. "
나는 강림에게 키득거리며 말했다. 강림은 어깨를 으쓱하며 다른곳을 쳐다봤다.
" 누이..누이가 기분이 안좋아보여요.. "
동이는 신수인의 근처에서 알짱거렸다. 신수인은 안대를 쓰고나서 많이 시무룩해 보였다. 맞다. 이제 신수인에게 이놈들이 보이지 않지.
" 나는 이만 들어가겠네. 밥 잘먹었네. "
강림은 기지개를 펴며 일어나 검은연기가 되어 피할새 없이 내 안에 들어왔다. 나는 놀라 의자에서 벌떡 일어나 소리쳤다.
" 아씨! 좀 다른방법으로 들어가면 안되나? "
" 나 이제 들어갈게..내일 일도 가야하고 피곤해. "
신수인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제야 동생을 만났는데 바로 다시 볼 수없게 된 사실이 슬픈것 같았다.
" 어...그래 수인아. 조심히 들어가. "
신수인이 집에서 나갔다. 옆집 현관문 열리는 소리가 나는걸 보니 바로 집으로 들어간듯했다.
" 어으.. 피곤해... 몇시야. 히익..벌써 새벽한시네? "
내가 시계를 보고 경악하는동안 동이가 침대위에 제 물건들을 정리하고 나갈준비를 했다.
" 뭐야. 동이 너는 어디가냐? "
" 누이집에. 혼자는 외로울거아냐. 내가 옆에 있어줄거야. "
동이는 제 베개하나를 들고 그대로 옆집으로 가 버렸다. 어차피 보이지도 않을텐데.
" 아아. 피곤하다. "
나는 침대위에 풀썩 누워 눈을 감았다. 내일은 하루종일 잠만잘거다. 어..? 내일...? 나는 인상을 찌푸리며 눈을 떳다.
" 하...씨... 내일 출근이잖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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