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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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죽겠다... "
한식주점 마감청소를 끝내니 밤 열두시였다. 어제의 호텔에서 있던 일로 온몸이 두드려 맞은것같은데다가 한식주점은 생각보다 많이 바빴다.
" 남궁본총각! 수고했어! "
" 하하... 평일인데 손님이 북적북적하네요. "
" 그러게... 그래서 홀서빙 알바를 구할까 생각중이야. "
" 홀서빙이요? "
" 응.. 아무래도 여자가 낫겠지? 주변에 소개해줄만한 사람 있어? "
여사장의 말을 듣고 신수인을 떠올렸다. 어제 앞으로의 일자리를 걱정하는 말을 했었지. 그런데.. 신수인의 신분이 문제였다.
" 어... 한 명 있기는한데.. "
" 응? 누구? "
" 어... 그게.... "
일자리가 있다고하면 분명 좋아할텐데. 어떻게 취직을 시키지?
" 사실 제 사촌여동생인데.. 원래는 외국에서 살다가 지금 한국에 몇년 있을것같거든요... 아니.. 계속 있을수도있고.. "
" 외국? 어디? 미국? "
"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라고... "
여사장은 미소를 띄며 잠시 멈칫했다. 예상치도 못한 국가명에 당황한듯했다.
" ....굉장히 멀리서 왔나보네.... "
" 하하하 그렇죠... "
" 한번 면접보러 오라해! 한국어는 잘 하지? "
" 그쵸... 하... 근데 이 친구가 국적이 외국이라... 한국에서 일하는게 좀... "
내 말을 들은 여사장은 잠시 생각에 잠긴듯 보였다.
" 가족도 없이 혼자 한국에서 생활해야되는데... 생활비도 여의치않고... "
" 에고고... 여자애 혼자 타지에 와서 맘고생이 심하겠네... "
" 그리고 눈도 한쪽이 불편해서... "
" 어머! 어쩌다! "
" 그...갱단으로부터 동생을 구하다가 다쳐서.... "
" .... "
너무 오버했나? 라는 생각에 아차싶어 여사장의 얼굴을 바라봤다.
" 사장님....? "
" 하이고.... 남궁본총각 사촌동생이라고... ? "
여사장은 눈물을 그렁그렁한 채로 나를 보고 있었다.
" 내가 일자리준다고 내일 바로 오라해. 하이고..어린 처자가 어쩌다가... "
" 가...감사합니다... "
뭐..동생을 구하다가 다친건 틀린말은 아니니까... 생각보다 공감능력이 뛰어난 여사장의 반응이 다행이라고 해야할지...
" 내일 물어보고 바로 괜찮으면 바로 오라고 할게요! "
" 그래그래. 오늘 늦었으니까 얼른 퇴근해보고. 하이고...혼자 얼마나 힘들었을까... "
" 넵! 들어가보겠습니다! "
여사장은 내가 퇴근하고 문밖을 나설때까지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에서 온 가여운 소녀를 생각하며 손수건으로 연신 눈물을 훔쳤다. 내일 바로 신수인에게 말할 생각에 입가에 미소가 절로 번졌다.
" 수인이가 좋아하겠다. "
***
" 플럭시..너시나이힐..리필리피..케이셔언..입니다... "
여사장은 미소를 띄며 신수인의 면접을 봤다. 사실 면접이랄것도 없었다. 가게에 나와 함께 들어온 신수인을 보고 바로 뛰쳐나와 손을 꼭 잡고 눈물을 글썽이며 잘왔다고 한바탕 난리를 쳤었기 때문에.
" ...예쁜 이름이네... "
" ...감사합니다.. "
여사장은 생각보다 긴 이름에 또 한번 적잖히 당황한듯했다.
" 그럼 내가 뭐라고 불러야할까...? 플...래쉬.. ? "
" 한국이름도 있어요! "
이대로가다가는 신수인이 우스꽝스러운 이름으로 불릴게 뻔하기에 중간에 내가 나서서 제지했다.
" 호호호.. 진작말했어야지. 우리 예쁜 아가씨 또 다른 이름이 뭘까? "
" ....신..수인...입니다... "
" 아이고 이게 더 예쁜이름이네! 수인양 식당일은 해본적 있고? "
신수인은 대답대신 고개를 저었다. 여사장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 괜찮아! 괜찮아! 식당일이야 배우면되고! 머리도 깔끔하고 손톱도 단정하고 깨끗하고! 그것만해도 백점이지! "
여사장은 신수인의 안대를 지그시 보며 말했다.
" 동생을 구하다 그렇게 됐다며? "
" 네? 네... "
여사장은 자신의 옷소매를 걷어붙혔다. 여사장의 드러난 팔목에는 한눈에 봐도 심한 화상흉터가 있었다.
" 나도 내가 아주 어릴때 집에 불이나서 동생을 구하러 들어갔었거든... 수인양을 보니 옛날 생각이 나더라고... "
" ..... "
신수인은 놀란듯 눈을 동그랗게 뜨고 여사장을 바라봤다. 여사장은 씁쓸하게 웃으며 말을 이어갔다.
" 나는 동생을 못구했지만.. 그쪽은 구했어? "
신수인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 잘했네. 어려운일 있음 나한테 부탁하고.. 내가 엄마....는 나이가 아닌것같고 편한 이모라고 생각해. "
" ...감사합니다... "
신수인은 얼떨떨한 표정을 지었다. 그 표정안에는 은근한 설렘도 있어보였다.
" 자, 그럼 언제부터 나올 수 있어? 오늘? "
" 아...오늘은 인형탈 알바가 있어요. "
" 그럼 내일부터는? "
" 내일은 가능해요! "
" 그래 그럼 내일부터 남궁본총각이랑 같이 나오면 되겠네. 옆집사니까 둘이 같이 출퇴근하면 딱이겠다. "
신수인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 오늘 아르바이트 가야한다고? 더운데 고생많겠네. 얼른 가봐. "
여사장은 신수인을 친절히 문밖까지 배웅해줬다. 신수인은 공손히 인사를 꾸벅하고는 걸어갔다.
" 요즘 보기 드문 아가씨네. "
" 예? 왜요? "
" 나이를 먹으니까 어떤사람인지 대충보여. 어린나이같은데도 오래 산사람같은 눈빛을 하고있네. 그동안 고생이 많았나봐. "
나는 여사장의 말을 듣고 흠칫했다. 처음봤을때부터 예사롭지 않은 사장님이라고는 생각했지만 ..뭐 신끼가 있다거나 하는건가..?
" 자, 자, 오픈준비하자! 오늘은 예약이 다섯팀이나 있어! "
" 히익! 다섯팀이나요? "
" 빨리 들어가서 재료손질부터 하자고. "
" 네에... "
여사장은 내 등을 팡팡치며 주방으로 들어가라 재촉했다. 나는 가게로 들어가기 전 저 멀리에 있는 신수인의 뒷모습을 바라봤다. 신수인의 발걸음이 꽤 통통거리듯 가벼워보였다. 그동안에 신수인은 어딘가 모르게 어두워보였는데 오늘은 원래 제 나이를 찾은것마냥 밝아보이는 느낌이었다.
***
" 수고하셨습니다아...퇴근해볼게요... "
나는 녹초가 되어 가게를 나왔다. 예약이 다섯팀에... 손님들은 끊임없이 가게를 방문했다. 계속 주방에 쳐박혀 음식을 만들다보니 온 몸이 기름범벅이 된것같았다.
" 아... 맥주 땡기네.... "
맥주 한 잔 생각이 절실했다. 하루종일 기름냄새를 맡다보니 몸 속이 기름으로 가득 차버린 느낌이었다.
" 본아! "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 옆을 돌아보니 신수인이 서 있었다.
" 왠일이야? 이 시간에? "
신수인의 손에는 맥주와 치킨이 들려있었다.
" 나 기다린거야? "
" 취직하면 치킨 쏘기로 했었잖아. "
신수인이 배시시 웃으며 말했다. 신수인도 일을 마치고 바로 왔는지 짧은 머리는 땀에 절었고 옷도 꼬질꼬질했다.
" 근데 치킨이 조금 식었네. 보니까 손님이 계속 있더라구. 저녁도 못먹었을것같아서. "
" 아니야 ! 나 식은 치킨 더 좋아해 ! "
" 그래? 다행이다. 호동이는? 같이있어? "
" 아... 호동이는... "
동이는 아침에 오늘 일이 많다며 부랴부랴 나갔다. 늦을거라는 말과 함께.
" 오늘 바쁘대. "
" 그래? 아쉽네.. "
" 내가 돌아오면 맛있는거 해줄게. "
선선한 밤바람이 기분좋게 불어왔다. 신수인은 바람이 불어오는쪽을 바라보며 좋은듯 웃었다.
" 아, 시원하다. "
" 그럼 우리 이거 밖에서 먹을까? "
" 어디서? "
" 음... "
나는 주변을 둘러보다가 아파트 앞 강변공원이 생각났다. 어차피 집 가는길이기도 해서 먹고 집으로 들어가면 딱 맞을것같았다.
" 집가는길에 공원에서 먹자. 오늘 밤공기도 선선하니 공원치맥각이네. "
***
나와 신수인은 강이 보이는 벤치에 앉아 치킨봉투를 뜯었다. 양념반, 후라이드 반. 조금 식기는 했지만 치킨은 언제나 옳지.
" ... 이렇게 길가에서 먹어도 되는거야? "
" 먹고 잘 치우고 가면 괜찮아. 자. "
나는 캔맥주 하나를 따서 신수인에게 건냈다. 곧바로 뒤이어 내 몫의 캔맥주도 하나 따고는 웃으며 신수인 앞에 내밀었다.
" 건배! "
내가 웃으며 잔을 부딪히자 신수아도 미소지었다. 나는 곧바로 맥주를 들이부었다.
" 캬, 살겠다. 맥주 엄청 마시고싶었거든. 잘먹을게. "
" 먹고싶었다니 다행이다. "
" 응. 배도 엄청 고팠어. "
나무젓가락으로 양념치킨 하나를 집어 베어물었다. 매콤달콤한 양념이 입안을 가득 채웠다. 신수인도 후라이드치킨 하나를 집어 바삭. 하고 베어물었다.
" 그 있잖아. 오늘 사실 고맙다는 말을 하고싶었어. "
" 웅? 무가? "
나는 입에 치킨하나를 물고 웅얼대며 대답했다.
" 사실 본이 너를 만나고 난 뒤로부터 인생이 알록달록해진 느낌이야. 사람들과 맛있는 밥을 먹고, 좋은곳을 가고.. 이게 사는거구나 하는걸 느껴. "
" 그치... 몇백년을 거의 홀로 지낸거 아냐? "
" 그치.. 할망구지 뭐... "
" 아니.. 내말은 그게 아니라...! "
신수인은 맥주를 홀짝이며 쿡쿡거리고 웃었다.
" 그럼 누나라고 부를래? "
" 어...? "
신수인의 말에 내가 당황하자 신수인이 크게 웃었다. 요즘 신수인의 이런 밝은 웃음소리를 자주듣는것같네.
" 아하하하...농담이야. 농담. "
" 와...난 또... 진짜로 받아들였네. "
" 내 진짜 모습을 알고서도 친하게 지내줘서 고마워. 사실 피할 줄 알았어. "
신수인의 말을 듣고 나는 괜시리 찔려 맥주를 홀짝였다. 처음 듣고 불편했던거는 사실이니까.
" 자네들끼리만 맛있는거 먹나? "
" 왁씨!!!! 깜짝이야!!!!! "
강림이 갑자기 벤치 뒤에서 뚱한 얼굴로 쑤욱 튀어나왔다.
" 정상적으로 등장하시면 안되는거에요? "
" 할 얘기가 있어서 급히 나왔네. "
신수인은 어리둥절한 얼굴로 나를 빤히 바라봤다.
" 아아.. 강림아저씨. 아저씨. "
나는 신수인에게 뻘쭘해하며 설명했다. 강림은 아저씨라는 말에 나를 째릿 내려다봤다. 아저씨 맞지. 뭘.
" 아! 안녕하세요. 여기 치킨좀 드세요. "
신수인은 밝은 얼굴로 친절히 강림에게 치킨을 권했다. 전혀 다른 방향을 보면서.
" 이쪽일세. "
" 수인아, 이쪽에 있어. "
" 아! "
나는 신수인의 손 방향을 강림이 있는 방향으로 교정해줬다. 친절한 신수인은 교정해준 방향을 향해 빙긋 웃었다.
" 할 말이 뭔데요? "
" 흠흠... 객사차자에게 정보를 좀 알아내야할듯 한데... 여기서는 마땅치 않아서 말이야. 풀어주자마자 바로 튈것같단말이지. "
" 그럼... "
" 유화의 처소로 가볼까 하네. "
" 지금? "
강림은 고개를 끄덕였다.
" 딱 좋지 않은가 수인낭자도 있고 앞에 강도 있고. "
" 아 거참. 우리도 좀 쉽시다. 하루종일 일했어요. 내일해요. 내일. "
" 수인낭자에게도 물어봐주게. "
" 하... 이 아저씨가... "
강림은 나를 다시 매서운 눈으로 노려봤다.
" 아, 알았어요. 알았어. 수인아... "
" ..... "
" 수인아....? "
착한 신수인마저 자신에게 뭔가 시킬것을 눈치챘는지 고개를 돌리고는 대답을 하지 않았다.
" 수인이도 싫은것 같은데요? "
" ...... "
강림은 뾰루퉁해져 닭다리하나를 집어들고는 검은 연기가 되어 내 몸속으로 들어갔다.
" 알았네. 그럼 내일 낮에는 보지. "
" 아씨 !! 진짜 !! 퇴장도 평범하게 할수는 없는건가... "
" .....갔어...? "
신수인이 다시 내쪽으로 몸을 돌려 조그맣게 속삭였다.
" 어, 갔어. "
" 하아아아아... "
" 하아아아아아... "
우리는 동시에 깊은 한숨을 뱉어냈다. 저놈의 저승사자. 또 얼마나 고생을 시키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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