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거운 힙투비: 마지막 하이크란트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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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ntaray1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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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13 1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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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화 - 귀신의 자식(2)

DUMMY

“칫......”

두어 개의 지붕을 지난 지점에서 리즈베테는 낭패감에 혀를 찼다. 갑작스레 상대의 모습과 인기척이 사라진 것이다.

뜨거운 태양이 작열하는 오후, 그림자가 서쪽으로 길어진 시간의 도시는 세 번째 식사를 마친 후의 여름 낮잠에 빠진 듯 고요했다. 저녁 등불이 밝혀지고 사람들이 식은 더위에 활기를 띄며 거리로 나오려면 아직 한참은 걸릴 터라 괴한의 모습을 제보해줄 목격자 역시 거의 보이지 않는다.

-낭패로군.

리즈베테는 완전히 인기척을 감추어버린 상대의 존재에 다시 한 번 혀를 차며 발길을 돌리려고 했다. 바로 그 순간 더운 공기를 안고 떠오르는 풍선처럼 건물의 아래에서 카이난의 모습이 바람을 타고 떠오르듯이 나타났다.

“.............!”

“귀하는?”

순간 서로 눈이 마주친 두 사람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이맛살을 접어 버리고 말았다.

그도 그럴 것이 젖어서 물이 뚝뚝 떨어지고 있는 감아 올린 붉은 머리카락에 수건과 무명휘장으로 알몸만 겨우 가린 상태의 리즈베테의 몰골은 한 눈에 보기에도 목욕을 즐기다 검을 들고 뛰어나온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녀석을 보았소?”

“그러면 귀하도 놈을 쫓아온 거요?”

카이난의 말에 놀라서 되묻는 리즈베테의 물음에 그는 다시 한 번 그녀의 모습을 위아래로 흩어보더니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보아하니 녀석이 당신의 침실을 노렸나보군.”

“그 괴한의 정체를 알고 계시오? 녀석의 목적이 뭐요?”

리즈베테는 자신의 모습을 훑는 카이난의 시선에 밀려오는 당혹감을 감추고서 침착하게 검을 아래로 세웠다.

지금 이 남자가 자신을 칠칠치 못한 여자라고 생각을 하든지 말든지 그런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잖아, 리즈베테.엔마돌라.카트로스테!

“파렴치한 부녀자 추행범이오. 미향(媚香)으로 여자들을 홀린다고 하더군. 내가 심어둔 함정을 건드렸으니 멀리 도망가지는 못했을 거요.”

“함정을 심어놨다고?”

“도시의 치안대장이 녀석을 잡아주면 즉시 도시를 떠나게 해주겠다고 하더군. 여성이 투숙하고 있는 여관이나 골목에 수많은 링크레들을 주문으로 심어 두었지. 녀석이 그것을 밟거나 건드리면 평소보다 몸이 몇 배나 무거워질 거요. 지금쯤 당황해서 몸을 숨겼을 테니 이 근처를 수색해보면....”

다시금 카이난의 시선이 리즈베테의 입성에 와 닿더니 곧장 고개를 돌려버리며 덧붙였다.

“여관으로 돌아가시오. 이곳은 내가 맡을 테니까.”

“어림도 없는 소리...으... 기다리시오! 곧 돌아올 테니까!”

리즈베테는 반사적으로 터져 나오는 반박과 동시에 기다려달라는 손짓을 남기고는 서둘러 지붕을 가로질러 자신의 방으로 돌아왔다. 어느 사이 옷을 챙겨 입은 힙투비가 창문으로 들어오는 그녀에게 재빨리 옷가지와 흉갑을 내밀었다.

“얼른 입고 따라가, 엄마. 아빠는 기다려 주지 않을 거야.”

“너는 천리안이냐? 어떻게 보지도 않은 일을....아니다, 다녀오마. 위험하니 혼자 있지 말고 아래층으로 내려가서 주인과 함께 있어라.”

서둘러 옷을 걸치고 갑주를 몸에 두른 다음 다시 창문으로 빠져나가며 리즈베테는 힙투비에게 주의를 주었다. 그녀의 말에 순순히 고개를 끄덕이는 소녀의 반응을 확인하고 나서야 다시 지붕을 타고 문제의 자리로 돌아온 리즈베테는 흔적도 보이지 않는 카이난의 모습에 다시 한 번 혀를 찼다.

힙투비가 말한 그대로다. 이 남자는 자신과 함께 할 생각이 전혀 없었던 것이 틀림이 없다.

“하지만 나를 떼어놓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오산이지. 그 파렴치한 시정잡배 녀석은 내가 잡고야 만다.”

지붕에 뚜렷하게 남아있는 남자의 커다란 발자국을 재빨리 추격해 나가며 리즈베테는 나직하게 중얼거렸다.

“감히 여인의 목욕하는 알몸을 훔쳐보다니, 잡히기만 하면 그 놈의 목을 비틀어 버리고야 말겠어.”

카이난의 커다란 발자국은 몇 개의 지붕을 지나 한적한 거리의 외곽으로 접어들고 있다. 리즈베테는 아담한 규모의 약초정원을 지나 맑은 물줄기를 뿜어내는 분수가 있는 작은 마당으로 들어섰다.

따갑지만 한적한 오후의 빛이 가득한, 누군가의 집 중정으로 보이는 그 공간의 그늘진 구석에서 카이난은 무릎을 굽히고 벽에 난 핏자국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녀석의 핏자국이오?”

피가 묻은 손으로 벽을 짚은 것으로 보이는 흔적을 내려다보며 리즈베테는 자신의 허리에 둘러진 검으로 손을 가져갔다.

“놈의 기척에 검을 휘둘렀소. 분명히 베인 반응이 있었지. 검 끝의 감각으로는 가볍게 돌아다닐 상처는 아닐 거요. 분명히 이 근방을 벗어나지는 못했을 거라고 생각하오.”

“그렇다면 이야기는 쉬워지겠군.”

카이난은 자신의 수도복 주머니에서 면으로 만든 수건을 꺼내더니 한 귀퉁이를 찢어 채 마르지 않은 벽의 핏자국을 닦아 내었다.

“육체의 흔적을 손에 넣었으니 녀석은 더 이상 도망가지 못하오.”

“...........?”

리즈베테는 피가 묻은 조그만 천 조각을 향해 무어라 알아들을 수 없는 언어를 흘려내는 카이난의 입술을 올려다보았다.

“이마그엘레 이가르티 데아그라 피아. 디바란 피아. 운미드리 카느함....”

여자가 보았을 때 부러움의 한숨이 흘러나오리만치 길고 짙은 색의 속눈썹 사이로 청남색의 눈동자에 신비로운 섬광이 어린다. 그것은 그의 손에서 가볍게 떠오른 천 조각이 한 줌의 공기로 변해 사라지는 과정에서 발산하는 빛을 반사한 것이었다.

“무슨 일을 한 거요?”

흔적도 없이 먼지가 되어 대기 속으로 사라지는 천 조각을 따라 시선을 옮기던 리즈베테는 곧장 그들의 머리위로 몰려드는 검은 구름에 (분명히 조금 전까지만 해도 푸른 하늘에는 구름이 거의 없었다.) 이맛살을 접으며 중얼거렸다.

“우리 머리위에만 폭풍우가 내릴 것 같은 구름이로군.”

“우리가 아니오. 녀석의 머리위로 쏟아질 비극.....”

“히이이익-?”

마당을 향해 난 건물의 문이 열리는 것과 동시에 기겁을 하는 비명 소리가 카이난의 말을 잘라버리며 넓지 않은 공간속으로 퍼져 나갔다.

리즈베테는 자신들의 모습에 사색이 되어 건물의 벽을 붙잡고 주저 앉아버리는 남자의 겁에 질린 모습에 재빨리 손을 내밀며 부드럽게 입을 열었다.

“진정하시오, 주인 – 허락도 받지 않고 난입을 해서 미안하오. 우리는 수상한 이가 아니라 파렴치한 잡범을 잡기 위해.....”

“카...카이난 사제... 카이난 사제! 대체 어떻게 여기를 당신이?”

“...........!”

파랗게 질린 표정으로 떨리는 손가락을 들어 올리는 남자의 반응에 리즈베테는 반사적으로 카이난을 돌아보았다. 비로소 남자의 얼굴을 확인한 그의 눈빛도 빠른 속도로 굳어가고 있다.

“서로 아는 사이요?”

“.............”

비로소 사내가 기겁을 한 이유가 단순히 자신들이 거주지역을 난입해 들어온 불청객이어서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은 리즈베테는 카이난을 향해 물음을 던졌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없다. 대신 발작적으로 사내의 입술에서 튀어나온 문장들이 카이난의 대답을 대신하며 그녀의 귓가를 울렸다.

“어떻게 당신이.... 그 꼴로... 정령원을 그 꼴로 만들어 놓고서! 당신 때문에.... 다, 당신 때문에 모두가... 당신이 다 망쳐놨어! 이 저주받은 크페스터스!”

“..............”

-크페스터스?

리즈베테는 더듬거리며 터져 나오는 사내의 문장 속에서 이질감을 주는 낯선 단어에 슬쩍 이맛살을 접으며 딱딱하게 굳어있는 카이난의 얼굴 근육을 올려다보았다. <크페스터스>라는 단어가 종족의 이름인지 단순한 욕설인지는 알아들을 수가 없지만 사내의 입에서 튀어나온 그 단어와 문장들이 눈앞의 남자를 고통으로 몰아가고 있다는 사실만은 확신할 수 있었다.

그런 카이난의 무거운 침묵에 창백한 표정에도 비틀리고 신경질 적인 미소를 떠올리며 사내는 한층 기세가 올라 공격의 날을 세우기 시작했다.

“우리가 얼마나 은혜를 베풀었는데.... 히가의 명령이라고 할지라도 우리는 모두 침묵의 서약을 지켰다고! 그런데도 배은망덕한 당신이 멋대로 정령원을 뛰쳐나가서는... 반역을 하다니! 히가와 동조해서 반역을 하다니! 대체 언제부터 그러한 음모를 꾸미고 있었던 건가? 그러고도 정령원이 무사하리라 생각을 했던가? 이 은혜도 모르고 염치도 없는 작자 같으니! 천한 짐승의 피가 그리 시키더냐?”

“잠깐....”

“히...히이익!”

순간, 꿈틀하고 경련을 일으키는 카이난의 얼굴 근육에 리즈베테는 재빨리 제지의 말을 꺼내려다 말을 삼켰다.

여차하면 분노한 카이난의 주먹이 사내의 얼굴에 날아들 것 같아 제지를 하려고 했던 것인데 공포가 한 발 빨랐던 것일까? 카이난의 눈동자에 서리는 분노의 빛에 사내가 제풀에 두 팔로 얼굴을 감싸 안으며 겁에 질린 토끼처럼 몸을 웅크리고서 비명을 흘려 내었다.

“해... 해치지 말아줘..... 내가 말이... 말이 심했어. 다, 당신 탓이 아닌 것을 알아...”

“.............”

금세라도 숨이 끊어질 듯이 몸을 웅크리고서 몸을 부들거리는 사내의 쥐어짜는 듯 흘러나오는 애원에 카이난은 말없이 눈을 감더니 이윽고 조용히 입을 열었다.

“정령원이 무사하지 못하리라는 것은 짐작하고도 남았소. ...요리장인 콘타오른 사제의 소식은 아시오?”

“콘...타오른 사제....”

어느새 눈물까지 줄줄 흘러내리고 있던 사내는 카이난의 물음에 구겨지듯 얼굴의 근육을 허물어뜨리며 본격적으로 울음을 터뜨렸다.

“으흐흑.... 그 놈들이.... 고위 사제들과 주임 사제들은 모조리.... 모조리 우리 눈앞에서 죽여 버렸다네... 모조리 죽여 버렸어... 그 중에서도 코...콘타오른 사제는.....”

터져버린 오열을 통이 넓은 옷소매로 감추며 사내는 기억하기도 싫다는 듯 몸서리를 치며 자신의 머리통을 두들겨 대었다.

“너무 끔찍하게.... 크페스터스인 당신을 맡아준 장본인이라는 이유로.... 위, 위협에 사제들이 다 말했단 말이야... 내가 말한 것이 아니라고.... 크페스터스인 당신에 대해서 심문을 받은 사제들이 다 말했어... 그래서 콘타오른 사제는...”

“...............”

“...거죽이...벗겨진 채....거꾸로 말뚝에 매달려서....”

“................”

“페테...브란트 인이었으면 나도 사형을 면치 못했을 거요. 흑...흑.... 내국출신의 사제들은 모두 반역의 죄를 덮어썼으니까... 하지만 그 놈들도 차마 외국인 사제들까지 죽일 수는 없었는지 모두 추방을 당했지... 그 뒤로는 정령원이 어찌 되었는지...”

리즈베테는 흐느낌으로 두 무릎 사이에 얼굴을 파묻는 사내에게서 눈을 떼어 주변의 약초밭을 둘러보았다. 아무래도 한때는 정령사제였던 이 사내는 지금은 의술사가 되어 살아가고 있는 것 같다.

하지만 <크페스터스>라는 생소한 단어로 불리고 있는 눈앞의 이 남자는....

그녀는 여전히 굳게 입술을 다물고서 주먹을 틀어쥐고 있는 카이난의 우울한 눈빛을 마주 바라보며 의문의 파문이 커져만 가는 것을 느꼈다.

<딸>인 힙투비의 말에 의하면 페테브란트의 왕을 죽이고 싶어 하는 남자.

한 때는 정령사제였던 사내의 말에 의하면 반역을 일으킨 남자.

대체 이 남자는 어떤 사연으로 왕을 암살하겠다는 턱도 없는 목표를 가지게 된 것일까? 그것이 이 남자의 반역과 연관이 있을 것은 분명한 일인데 왜 이 남자는 반역을 일으키게 된 것이지? 일개 정령사에 불과한 남자가 대체 무슨 야망이 있어서?

....야망이 아니라 원한인가?

리즈베테는 어둡게 가라앉은 카이난의 눈동자에서 일렁거리는 빛이 원대한 야망이나 이상, 그 어떠한 철학이나 신념에 의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에 자신의 기사직을 걸어도 좋다고 확신을 했다.

그의 눈동자는 깊은 감정을 담고 있고 그 감정은 지극히 어둡고 우울하며 분노에 가득 찬....

“............?”

한 동안 흐느껴 우는 사내를 응시하다가 단호하게 등을 돌리며 벽을 타고 오르는 카이난의 몸짓에 반사적으로 뒤를 따르며 리즈베테는 말을 걸었다.

“이대로 가도 되겠소? 저 이에게서 듣고 싶은 말이 더 있는 것 같던데.”

“녀석의 반응이 잡혔소. 아주 가까운 곳에 있어.”

지붕에서 시선을 서쪽으로 향하며 대답하는 그의 목소리는 조금 전 사내에게 콘타오른 이라는 사람의 신변에 대해 물을 때와 같던 죄책감이나 연약함이 흔적도 없이 사라져 있다.

더 이상은 과거의 생각을 하지 않겠다는 뜻이로군.

리즈베테는 단호하게 이웃 지붕의 한 곳을 가리키는 그의 시선을 따라가며 꼬리에 꼬리를 잇고 고개를 드는 자신의 호기심을 잘라 내었다.

이 사내에 대해서 내가 궁금해 해본들 무슨 소용이 있단 말인가? 이제 곧 다시는 얼굴을 볼 일이 없는 스쳐가는 인연일 뿐인데 말이다.

“찾았다!”

또 한 번 밝은 색의 흙벽에 뚜렷이 남아있는 핏자국에 리즈베테는 촉각을 곤두세우고서 주변을 노려보았다. 분명히 스친 듯이 보이는 벽의 핏자국은 양이 많지 않음에도 전혀 마르지 않았다. 녀석은 이 근처, 아주 가까운 곳에 있다.

바로 그 순간, 리즈베테는 자신의 주변의 공기가 흐트러지는 것을 느꼈다. 아주 미세하지만 불어오는 옅은 바람이 흐트러지고 있다. 아무것도 변함이 없는 골목의 정적인 공간 속에서 보이지 않는 무언가가 움직이고 있다!

“거기!”

보이지 않는 무형의 인기척을 쫓아 시선을 옮기는 것과 동시에 벽에 한 방울의 피가 튄다. 분명 아무것도 없는 공간이었음에도 어디선가 날아간 피가 벽에 흔적을 남기는 것이다.

리즈베테는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반사적으로 허리의 단검을 뽑아 날렸다. 날아간 단검이 아무것도 없는 공간의 한 점에 꽂히는 것과 동시에 나직한 신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동시에 어디에서부터 생겨난 것인지 급격하게 몰려든 작고 검은 연기가 곧 검은 옷을 입은 노파로 바뀌더니 보이지 않는 공간을 감싸 안는다.

“끄악! 기분 나빠! 기분 나빠~! 뭐냐고~ 이거!”

검은 빛의 노파에 감싸인 투명한 공간이 기겁을 한 듯 비명을 토해냄과 동시에 하늘에서 깡마른 처녀의 모습을 거느린 카이난이 여유로운 걸음으로 지붕에서 내려와 검을 겨누고 있는 리즈베테의 곁으로 다가왔다.

“잡았소.”

“저 괴물이 말이오? 투명해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데?”

“예상보다 재주가 많은 녀석이로군. 디바란이여 –녀석에게 고통을 주십시오.”

“자, 잠깐 뭘 하려고? 야! 이 자식아! 그만두라고!”

카이난의 명령에 흐릿한 형태를 지닌 깡마른 처녀가 휘적거리며 허공을 날아 투명한 괴물의 몸을 짓누르며 파고들자 한층 비명이 높아지며 두 정령신에게 붙잡힌 투명한 공간이 몸을 뒤틀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는 피부는 문제의 인물이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알몸이라는 사실을 알려주고 있다. 또한....

“.....꼬리?”

리즈베테는 버둥거리는 맨다리의 모습에 재빨리 고개를 돌리려다 덜렁거리는 다리 사이의 물건이 또 하나 있다는 사실에 눈을 크게 떴다.

그것은 사내의 검붉은 피부색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밝은 색으로 가늘고 길게 늘어진 꼬리였다. 흡사 도마뱀의 꼬리를 닮은 그것은 분명히 사내의 다리보다 길게 뻗어 있다가 눈에 띄는 속도로 빠르게 줄어들어 벌거벗은 엉덩이 사이로 기어들었다.

“더 이상 짧아지지는 않는 모양이군.”

카이난은 어른의 엄지손가락만큼 짧아져서 뭉툭하게 엉덩이에 매달려 있는 사내의 꼬리를 손으로 만져 보더니 씩씩거리며 숨을 몰아쉬고 있는 사내를 향해 물음을 던졌다.

“이 꼬리 덕분인가? 네가 모습을 감추는 재주를 가진 이유가?”

“남이사 꼬리가 있든 말든 무슨 상관이야! 만지지 말라고! 여자도 아니고 아무리 잘생겨도 사내새끼가 만지는 것이 기분 좋을 것 같아?”

“너는 이 도시에서는 용서받지 못할 범죄자다. 도시의 모든 남편과 아비들이 네 목을 달아매려고 단단히 벼르고 있으니 교수형은 면치 못할 것이다.”

“웃기시네... 나는 지들이 만족시켜 줄 수 없는 여인들의 외로움을 달래주는데 한 몸을 다 바친 사람이야. 솔직히 내가 사람을 죽였어, 아니면 도둑질을 했어? 여자들의 몸은 내가 만져주면 더 풍요로워지지 닮는 것도 아닌.....커억!”

사내의 말은 채 끝을 맺지 못했다. 성큼 걸음으로 다가든 리즈베테의 주먹이 사내의 턱을 정통으로 올려붙였기 때문이다.

“뻔뻔한 입을 닥쳐라, 파렴치한 놈! 내가 외로움에 네 놈의 손길을 그리워하며 목욕을 하고 있었다고 지껄이고 싶은 것이냐? 어린 여자애의 알몸까지 훔쳐보는 천하의 변태 색마같으니!”

“아...아니.... 당신이 목표지 그 꼬마 계집애는 관심 없....끄악!”

“더 들어봐야 시간낭비요. 이놈을 치안대에 넘기고 각자 갈 길을 갑시다.”

“...그래야겠지.”

카이난은 리즈베테의 두 번째 주먹에 정신을 잃고 추욱 늘어져 버린 사내의 알몸을 천천히 내려다보더니 다시금 주문을 흘려 내었다.

하지만 어찌된 일일까? 리즈베테는 순순히 물러나기는커녕 사내의 벌려진 입속으로 파고들어 사라지는 두 정령신의 모습에 눈을 깜박이며 그를 올려다보았다.

“무슨 짓을 하는 것이오? 내 눈에는 오히려 정령들이 저 자의 몸속으로 들어간 것처럼 보이는데...”

“나도 안배하나는 해둘까 하고.”

“안배?”

“이 자를 치안대에 넘기면 십중팔구 그는 사형을 당할 거요. 가진 재주가 아깝게도.”

“무고한 여인들을 농락한 대가요. 당연한 결과 아니겠소? 자업자득이지.”

당연한 결과예측에 사내의 몸을 어깨에 짊어지고서 걷기 시작하는 카이난을 따라 걸음을 옮기며 리즈베테가 고개를 끄덕이자 그는 조금 심술궂은 미소로 입술을 비틀어 올렸다.

“그래. 당연한 자업자득이지.”

“그런데 귀하는 무슨 안배를 해두겠다는 거요?”

“..............”

리즈베테의 재차 물음에도 카이난은 대답을 하지 않았다. 대신 그는 무언가 생각에 잠긴 표정으로 치안대를 향해 가는 내내 말이 없었다.

도무지 속을 알 수가 없는 사내라니까.

큰 보폭을 자랑하듯 앞서서 걸어 나가는 그와 점차 거리가 벌어지는 가운데 리즈베테는 조그맣게 한숨을 흘려내었다.

아서라. 더 이상은 관심을 가지지도 말아야 할 인연이다.

오늘 자신은 발리아나 왕녀에 대한 중요한 정보를 손에 넣었다. 이제 한시도 지체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내일이라도 당장 서쪽에 있다는 <용암의 대지>로 가야만 한다. 발리아나 왕녀가 그쪽으로 향했다면 자신도 그래야만 하리라.

그리고 왕녀를 설득하여 고국으로 돌아가야만 하겠지. 그리고.... 그러면.....

...몇 달 동안의 자유로웠던 여행은 끝이 나고 모든 것이 원래대로 돌아가겠지.

그래. 원래대로.... 예전과 조금도 다를 바가 없는 생활로. ...발리아나 왕녀가 결혼을 해서 고국을 떠난 이후의 생활로 다시 돌아가는 것이다.

“.............”

아무래도 내가 너무 속세의 자유에 마음이 흐트러졌나 보다.

리즈베테는 순간적으로 가슴을 치고 올라오는 답답함에 크게 숨을 들이키며 서쪽으로 기울어가는 해를 올려다보았다.

다섯 달이 넘어가는 여행기간은 평생을 왕궁과 저택, 그리고 기사단과 전투지만을 오갔던 자신의 단조로운 인생에서 신선한 바람과도 같았다.

낯선 자연, 낯선 문물, 낯선 언어와 사람들.... 그리고 이 남자와 어린 소녀 힙투비.

이 모든 것이 이제 곧 끝난다. 따라서 눈앞을 걸어가는 남자와도 내일이면 다시는 얼굴을 볼 일이 없을 것이다.

<이자를 치안대에 넘기고 각자 갈 길을 갑시다.>

조금 전, 자신의 입으로 이렇게 말을 했는데... 참으로 기묘하고 간사한 인간의 마음이다.

눈앞으로 다가오는 치안대의 건물을 바라보며 리즈베테는 자신의 나약한 마음에 우울한 심정으로 자조의 웃음을 흘렸다.

처음 떠날 때는 어서 임무를 마치고 고향으로 돌아갈 날만을 기다렸는데.... 이제는 이 여행을 끝내고 싶어 하지 않는구나.

그녀는 앞서 걸어가는 카이난의 넓은 등을 바라보며 자신의 내면에서 떠오르는 솔직한 목소리에 다시 한 번 긴 한숨을 흘려내었다.

....그리고 여전히 이 사내의 사연이 궁금하여 이토록 애가 타고 있구나.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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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20화 - 여기사, 소녀를 만나다 (1) 24.09.09 8 0 2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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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18화 - 샴.베스타의 학살 (2) 24.09.05 6 0 21쪽
18 17화 - 샴.베스타의 학살 (1) 24.09.04 6 0 25쪽
17 16화 – 전조(前兆) (3) 24.09.03 5 0 23쪽
16 15화 – 전조(前兆) (2) 24.09.02 5 0 23쪽
15 14화 – 전조(前兆) (1) 24.08.30 5 0 2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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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12화 - 축복의 시간(4) 24.08.28 7 0 26쪽
12 11화 - 축복의 시간(3) 24.08.27 7 0 20쪽
11 10화 - 축복의 시간(2) 24.08.26 7 0 24쪽
10 9화 - 축복의 시간(1) 24.08.23 6 0 25쪽
9 8화 - 시녀 일레이네 (4) 24.08.22 5 0 24쪽
8 7화 - 시녀 일레이네 (3) 24.08.21 7 0 16쪽
7 6화 - 시녀 일레이네 (2) 24.08.20 6 0 17쪽
6 5화 - 시녀 일레이네 (1) 24.08.19 9 0 18쪽
5 4화 - 정령원의 비밀사제 (4) 24.08.16 6 0 23쪽
4 3화 - 정령원의 비밀사제 (3) 24.08.15 6 0 22쪽
3 2화 - 정령원의 비밀사제 (2) 24.08.14 5 0 19쪽
2 1화- 정령원의 비밀사제 (1) 24.08.13 8 0 18쪽
1 프롤로그 24.08.13 9 0 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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