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하제일인의 마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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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라임참깨
그림/삽화
AI
작품등록일 :
2024.08.19 12:55
최근연재일 :
2024.09.19 1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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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17 15: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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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쪽

뜻밖의 희소식

DUMMY

<소령의 별호를 혈수마녀가 아닌 광란잠봉으로 바꾸기로 하였습니다. 여주의 성격과 가장 잘 맞는듯 하여 오랜 고민 끝에 내린 결정입니다. 혼란스럽게 해드려 정말 죄송합니다.>




"광란.. 객잔?"


이주 만에 돌아온 객잔의 이름이 뭔가 이상했다.


짧은 시간이지만 마치 고향에 온 것처럼 정겨움도 느껴졌지만..


간판에 걸린 이름을 보니 어쩐지 화딱지가 올랐다.


객잔 안을 들어서자 여느 때보다 많은 손님이 보였고, 음식을 나르던 점소이가 친근하게 다가와 인사 했다.


"아이고, 소저 오랜만이십니다요!"


"그동안 잘 지내셨죠?"


"아이고 덕분에 장사가 미친듯이 잘 됩니다요. 크큭."


"흠..도원이랑 단양 아저씨는 안에 있나요?"


"아, 소저의 일행분들은 지금 객잔에 없습니다요."


도원과 단양은 현재 모용가 사람들과 함께 섬서성 피해 복구를 돕는다고 하였다.


"그렇군요. 이봐요."


"네엡! 무엇이든 필요한 게 있다면 말씀하십시오. 헤헤."


"당장 문밖에 이름 바꿔요."


"네에?"


소령은 더 이상 말없이 주먹을 쥐어 보였다.


눈치 빠른 점소이는 더이상 대꾸 않고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그렇게 점소이가 일러준 방향으로 걸어가 보니, 사도련들의 습격으로 피해를 본 건물들이 줄지어 보였다. 대부분 화재 피해였는데, 임시 숙소를 지으며 건물을 재건하는데 다들 분주해 보였다.


그중 가장 많은 인력이 붙어 작업하는 곳이 보였다. 대부분 모용가의 백목대원들이 팔을 걷어붙이고 복구 작업에 뛰어들고 있었는데 망치를 쥐고 기둥을 두들기는 단양도 보였다.


그는 대원들을 다그치며 현장을 지휘했는데, 칼만 쥘 줄 알았지 할줄 아는 게 아무것도 없다며 툴툴거리는 중이었다.


통! 통! 통!


"아저씨!"


"헉!"


놀랐던지 기겁하며 망치를 떨어트렸다. 이어 목각인형같이 부자연스럽게 고개를 돌렸는데, 표정이 어째 귀신을 본 듯했다.


"소, 소저 여긴 어쩐 일이요?"


"왜 그리 놀래요?"


"아, 아니오."


서로 알고 지낸 지도 어느덧 반년이 흐른 듯한데 한데, 여전히 자신만 보면 불안해하는 게 단양 다웠다.


"대체 여기서 뭐 하는 거예요?"


"보다 싶이 일손이 부족하다고 해 잡혀 왔소."


"흐음.."


의미심장하게 웃으니 왜 그러냐며 불편한 기색을 비쳤다. 소령은 아무것도 아니라며 항상 찰떡궁합처럼 붙어 다니던 도원은 어디 갔는지 물었다.


"혹, 오다가 못보셨소?"


처음에는 무슨 말인가 싶었는데, 도원은 작정하고 섬서성 주변을 이 잡듯 송백이란 자를 찾고 있었다고 한다.


"말도 마시오. 이름이 같고 얼굴만 곱상하다 싶으면 패대기부터 친다고 하니 누가 녹림..무식한 새끼 아니랄까 봐."


단양의 말을 들으니 민폐가 이만저만 아닌듯 싶다. 가뜩이나 광란잠봉 어쩌고 인식이 좋지 않은 마당에 불난 집에 제대로 기름칠 중이다.


만나기만 하면 가만두지 않겠다며 벼르던 도중 뒤쪽으로 중년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하하. 단 대협 친구가 오신 모양이구려. 실례가 안 된다면 내게도 소개해 주시겠소?"


고개를 돌리니 모용 지백이 뒷짐을 쥐고 서서 웃자, 단양은 황급히 인사했다.


"인사하시오 소저. 이분은 모용세가의 가주 모용 지백 어르신이오."


"하하, 반갑습니다. 그럼 전 이만.."


어쩐지 소령은 식은땀을 흘리며 애써 자리를 피하려 했다. 그가 이미 누군지 잘 알고 있다. 그에게 있어 자신은 금지옥엽 같은 딸을 납치한 인간 아닌가?


"하하. 눈치 볼 것 없네. 그대의 미움은 사라진 지 오래니깐."


미움? 지금은 오히려 감사할 따름이다.


항상 마음이 여리고 상처받기 쉬워 어디를 내놓아도 불안하기만 했던 혜영이었다. 그런 딸아이에게 자신감을 불어넣어 주고, 놀랄 만큼 성장시켜주었던 게 눈앞의 소령이지 않은가? 첫 만남 당시에는 마부꾼 행색을 하고 있어 무시한 측면도 있었으나, 지금은 그런 자신을 깊이 반성하며 존경심마저 일었다.


지백은 정중히 허리를 숙이며 말했다.


"지금까지 못난 딸아이를 보살펴준 은혜 결코 잊지 않겠네."


지엄한 일가의 가주가 몸을 낮추니 단양은 크게 놀랬다. 어느 오대세가의 가주들보다 고집 세고 경계심이 높던 그가 자신보다 한참 아래인 사람에게 몸을 낮추는 것은 결코 보기 드문 일이 아니었으니깐.


그의 진심이 전달됐는지, 항상 시건방스럽던 소령 또한 진심으로 허리를 숙이며 답했다.


"아니에요. 오히려 따님에게 배운 점이 더 많았는걸요."


문제 터지지 않을까 내심 걱정하기만 했던 단양은 바보가 된 느낌이었다. 이렇게 화기애애한 분위기라니.. 이쯤되니 자리를 비켜줘야 하는 게 아닌가 되려 눈치를 살필 지경이다.


"나 모용 지백의 이름을 걸고 자네에게 장담하겠네. 앞으로 우리 모용가는 곤륜의 구파 잔류에 대해 적극 지지할 생각이네."


누가 듣기라도 하면 충격에 뒤로 나자빠질 만한 소리였다. 숱하게 해남문을 지지했던 모용가가 하루아침에 곤륜을 지지한다는 것은 남들 눈에서 결코 고운 시선으로 볼 일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충분히 감수할 준비가 되었던지 그의 의지는 확고해보였다.


"가, 감사합니다. 장문인께서 아주 좋아하실거에요.."


듣도 보도 못한 곤륜의 장문인까지 거론했지만, 솔직히 말해 그게 자신과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솔직히 말해 빨리 이 자리를 벗어나고 싶은 마음뿐이다.


"그래, 한참 주가를 달리는 곤륜의 제자가 여긴 어쩐 일이신가? 혹 혜영을 찾는 거라면 이곳에 없네."


옳거니!


고맙게도 기다렸던 질문을 해주었다. 소령은 혜영의 행방을 물었고, 가주는 그녀가 있는 곳을 알려주었다.


거의 도망치다시피 자리를 벗어나며 그곳으로 향하자 얼마 지나지 않아 아이들과 놀아주는 혜영과 그 옆으로 양춘이 보였다.


"혜영!"

"소령 언니!"

"소저!"


혜영과 양춘이 화들짝 놀람과 동시에 반가운 기색을 비치며 반겨주었다. 사도련의 습격 이후 2주 만에 보는 얼굴인지라 어느 때보다 반가움을 느꼈지만, 곧 혜영의 표정이 뾰로통해진다.


"정말 너무해요. 어떻게 얼굴을 한번 안 비출 수가 있어요?"

"미안해요. 잠시 생각할 게 많았거든요."


그녀는 한동안 무림맹의 본관에서 머물고 있었기에, 혜영과 양춘이 그녀를 직접 대면하기란 어려움이 많이 따랐다.


"설마 저를 잊어버린 게 아닌지 얼마나 슬펐는줄 알아요?"

"하하, 전 그동안 치근대던 사람이 없어서 어찌나 편하던.."

"치근대요?"


순간 주변 공기가 차가워졌다.

벌써 겨울이라도 온 건가? 아직 낙엽은 보이는데..


"설마..제 얘기이신 건가요?"


한기의 정체는 혜영이었다. 싸한 눈빛으로 노려보니 말실수를 했다는 것을 눈치챈 소령이 어색하게 웃음을 지었다. 양춘이 급히 나서며 오해라 말하니 어느 정도 진정된 듯 보였다.


"근데 여기서 뭐 해요?"

"아이들과 놀아주고 있었어요."


양춘이 덧붙여 말했다.


"화재로 터전을 잃은 아이들입니다. 잠깐 의탁할 곳이 없어 임시 숙소를 짓는 동안 우리가 돌보는 중이오."


"역시 혜영 답네요. 양춘은..좀 의외지만."


아이들과 놀아주는 양춘이라..어울리지 않았다.


"흐흠! 전 호위 임무 중입니다만."

"그러지 말고 령도 함께해요.아! 그리고 저희 언니랑도 인사 못 하셨죠?"


혜영은 소령의 손목을 낚아챈 뒤 어디론가 끌고 갔다.


"자, 잠깐만요!"


잠시 혜영의 성격을 잊고 있었다. 자기가 옳다고 생각하면 남의 얘기는 귓등도 안 듣던 그녀다. 어쩔 수 없이 끌려가 보니 대략 스무 명 정도의 아이들이 있었는데, 한가운데로 앉아서 놀아주는 모용 지혜도 보였다. 설화일봉이라는 별호와 달리 아이들에게는 눈웃음을 쳐줄 줄 아니 제법 의외의 모습이었다.


"지혜 언니, 인사해요. 제가 말했던 소령이에요."

"아.."


지혜는 소령을 보며 잠시 놀라다가도 어색함이 묻어났다. 고개만 살짝 숙인 뒤 다시 아이들과 어울려 주었는데, 소령 또한 그녀와는 별 할 말이 없었기에 묵묵히 지켜만 봤다.


사도련에게 습격당했던 상처는 다 아물지 않았는지 가슴과 복부 쪽에 흰 천을 감싼 게 옷 사이로 드러났다. 그럼에도 혜영과 함께 아이들과 놀아주는 모습을 보니 기특하기까지 했다. 둘의 관계는 비무대회를 통해서 이전보다 많이 발전한듯 싶어 안심이 들었다.


"소저도 함께 하시오."


양춘의 말에 소령이 기겁했다.


"아뇨, 전 그런 거 못 해요."


"령~어서 이리로 와요."


양춘은 망설이는 소령의 손을 붙잡고 아이들이 있는 곳에 끌고갔다.


"자, 잠깐!"


이 인간도 혜영에게 물든 것일까?

사람 말을 귓등으로 안 듣는다.


결국 반강제적으로 끌려오다시피 하며 아이들 무리 한가운데 앉게 되었다. 몇몇 호기심 많던 아이가 소령에게 다가와 말을 걸었는데 뇌 정지가 왔는지 입을 다물고만 있는 게 어색하기만 하다.


그래도 시간이 지나니 대화도 나누며 차츰 나아지는 듯했지만, 생각보다 그리 오래가지는 못했다.


"에이 재미없어. 못생긴 누나 저리 가요."

"뭐야? 이 새꺄!"


".........."


아이들의 투정에 진심으로 발끈하는 걸 보니, 영 소질이 없어 보인다. 오히려 그런 반응이 재밌던지 아이들은 합심해서 소령을 놀려 대기 시작했다. 울긋불긋 달아오른 그녀의 표정을 보니 양춘은 자신도 모르게 웃음이 튀어나왔다.


"풉!"


"양 호위.."


소령이 죽일 듯 노려보니 애써 헛기침을 날리며 시선을 회피했다. 하지만 여전히 그녀를 생각하니 웃음을 참기란 여간 쉬운일이 아니었는지 먼 산을 보며 애써 마음을 진정시켰다.


아이와 함께 있는 소령의 모습이라..

그 옆에 자신이 있다고 상상하니.


순간 양춘의 얼굴이 붉어졌다.


'내, 내가 대체 무슨 생각을..!!'


자기 뺨을 후려치며 어떻게든 정신을 다잡아보려 애를 썼다. 그 모습을 보며 아이들은 큰 충격을 받았는데, 이후부터 양춘을 볼 때면 자해공갈 양춘이라며 소령과 함께 놀림을 받게 처지가 되었다.


일몰이 시작되자 양춘과 혜영은 아이들과 함께 모용가가 머무는 숙소로 돌아갔다. 소령은 단양과 함께 객잔으로 돌아갔는데, 먼저 도착해 있던 도원이 소령을 발견하며 눈물을 펑펑 쏟아부었지만. 그는 잠에 들기까지 미친 듯이 두들겨 맞고 말았다.


다시 2주가 흘렀다.


그동안 소령의 일과는 화재 복구 작업을 도우며 아이들을 돌보는 게 대부분이었다. 그녀는 받은 현상금은 대부분 이곳에 쓰는데 아끼지 않았는데, 아이들의 옷가지나 생필품 식자재에 쓰이는데 크게 들었다. 평생 살면서 이토록 많은 돈을 쓴 적이 없었는데 워낙 거금이었던지 아직도 전낭은 묵직했다.


때문에 그녀는 오늘 제대로 인심 써보기로 마음먹었다. 도원과 함께 식자재를 들고 오랜만에 감추었던 요리 실력을 뽐내었다. 야외 조리대에서 달그락- 달그락 웍을 돌리는 소령의 솜씨가 꽤 일품이었는지 옆에서 지켜보던 도원이 감탄할 정도였다.


음식이 완성된 후 야외 식당을 차렸는데, 100인분에 달할 만큼 엄청난 양이었다. 아이들이 먹기엔 과할 정도였지만 공사 현장에서 일하는 백목대와 청호대원들의 식사량까지 생각한다면 오히려 부족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땅땅땅!


소령은 냄비를 두들기며 식사 시간을 알리자, 땀에 절어있던 대원들이 함박웃음을 지으며 달려왔다. 흰쌀밥에 궁보경전, 고추볶음 등 먹음직스러운 음식을 보며 침을 흘리던 그들은 배식받으며 소령에게 잘 먹겠다는 인사를 아끼지 않았다.


한 명씩 바닥에 앉은 후 가장 먼저 고추볶음 접시 쪽으로 젓가락들이 모여들었다.


먹음직스러운 고추를 한입 베어먹은 순간.


"푸웁!"


동시에 음식을 토해내는 경이로운 일이 벌어졌다. 그만큼 충격적으로 맛있던 걸까? 하나같이 캑캑대며 물을 찾는 대원들을 보며 소령은 팔짱을 낀 채 만족스러워했다.


"대, 대체 음식에다가 무슨 짓을 한 거죠? 독이라도 탄 건가요?"


"무슨..짓이라뇨?"


지혜가 입을 헹구며 경멸스러운 눈빛으로 쏘아대니, 소령은 이해가 안 됐던지 도원에게 물었다.


"맛있으면 원래 물부터 찾는 거 아냐?"


"........."


도원은 순간 할 말을 잃었다.


어쩌면 그녀의 남편 이송백이 가출한 이유는 꽤 단순해 보였다. 한평생 저런 음식을 먹으며 그래도 맛있다고 해줬을 그를 생각하니. 혹, 송백을 찾게라도 된다면 먼저 위로의 말부터 전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고, 식사들 하십니까? 음식이 꽤 먹음직스러워 보이는군요."


눈치 없게도 등장한 한 사내를 보며 소령이 반갑게 맞이했다.


비총관의 외사원 황삼독이었다.


"삼독 아저씨. 여긴 어쩐 일이에요?"


"하하. 어쩐 일이긴요. 소저의 일 때문에 찾아온 것이지요."


"설마..!"


삼독은 말없이 웃으며 소령에게 말했다.


"맹주님께서 찾으십니다."


드디어!!


그토록 기다리던 송백을 찾은 것일까? 아니면 그와 관련된 정보를 입수 한 것일까? 소령은 앞치마와 국자를 내팽개치고 득달같이 달려 나갔다. 쌩하니 사라지는 소령의 뒤를 보며 흐뭇하게 웃던 삼독은 음식을 보자 순간 허기짐을 느꼈다. 그러고 보니 식사 때를 한참 놓친 뒤였다.


도원이 접시를 들고 와 삼독에게 건냈다.


"응? 이걸 제가 먹어도 되겠습니까?"


"다 드셔도 됩니다."


삼독은 감복했는지 눈물을 글썽인 채 소령이 만든 음식을 받아들였다.


"흑, 잘 먹겠소."


나이가 들었는지 작은 정에도 쉽게 감동하는 황삼독이었다.



✻✻✻



깊은 산자락 한구석에 다 허물어져 가는 대문짝이 삐거덕- 하며 열리자 15세 정도로 보이는 소년이 걸어 나왔다.


겹겹이 꿰맨 흔적의 흰 도복 차림에 등짐을 매고 있던 그는 허물어지다 못해 비스듬히 걸린 간판을 바로 잡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조금이라도 강풍이 불면 언제든 바닥에 떨어질지 모를 만큼 위태로운 것이 남 일 같지 않았다.


몸보다 큰 등짐을 매고 한참을 내려가니 청해 산지기들이 보였다. 여느 때처럼 못 본 체하며 하며 지나가려던 순간.


"허허, 전협 도사님 오랜만이십니다."

"식자재 구하러 하산하시는 중이십니까?"


전협은 놀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 인간들이 갑자기 왜 이러지?


평소 밥버러지 시선으로 바라보던 그들이 유난히 자신을 반기니 어색함이 일었다. 애써 무시한 채 하산 후 인근 시장통에 들리며 식료품점에 들어섰다.


"저.."


전협은 낮은 목소리로 점포주를 불렀는데, 귀신같이 알아들은 사내가 모습을 드러냈다.


"어르신, 염치없지만 식자재 좀 구하러 왔습니다.."


식료품점에 식자재를 찾는 게 이상한 법은 아니나 어쩐지 전협의 낯빛은 상당히 어두웠다. 그야 평소처럼 외상이라 칭하며 구걸을 해야하는 상황이니 이 짓거리를 몇 년 동안 해보아도 여전히 적응이 안 되었다.


또 어떤 한 소리를 들을까 몰라 고개를 숙이던 그때.


"아이고! 그동안 뭣하다가 이제 나타나신 게요?!"


"네...네에?"


평소라면 으름장을 놓던 점포주가 웬일로 반갑게 전협을 맞으며 신발도 신지 않고 뛰쳐나왔다.


"필요한게 있으면 다 가지고 가시오. 껄껄."


"저..알다 싶이, 제가 돈이.."


"아이고! 우리 사이에 돈이라니 무슨 말씀이오? 정말 섭섭합니다!"


"예에?"


오늘따라 이 인간들이 왜 이러는 것이지? 평소 개방인보다 못한 취급을 했던 그가 유독 반가움을 떠나 어떻게든 친근함을 과시하려는 듯 해 얼떨떨하기만 하다.


"이보시오들! 여기 곤륜 도사님께서 오셨소!"


거기에 그치지 않고 점포주가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니 인근 상인들까지 몰려들었다.


한순간에 포위된 전협.


"이, 이보십시오. 대체 왜 이러시는 겁니까?!"


얼굴이 창백해진 채 그는 사람들의 등쌀에 의해 어디론가 끌려가고 있었다.


한편, 산속에 가을바람은 상당히 매서웠는지, 방으로 들어오는 한기가 제법 찼다. 바닥에 이부자리를 깔고 기침을 여신 쏘아대던 능선의 옆으로 능경은 이불 아래로 손을 연신 넣어대며 온도를 측정했다.


"쿨럭! 어서 가보시래도요. 바쁘신 장문인께서 늙은이 시중만 든다고 사람들이 욕을 할게요."


"허허, 그러라고들 하시오. 어차피 우리가 남들 눈치 살피고 했던 적이 있습니까?"


그런 능경을 보며 문밖에서 기다리던 재경 각주 능열은 장부를 쥔 채 한숨만 푹 내쉬었다.


벌써 이달이면 확보해두었던 금전과 곳간이 바닥을 치는 셈이었다. 어떻게든 아껴보고 아껴봤지만, 올해를 넘기기는 정말 어려워 보였다. 이 사실을 능경에게 어떻게 보고해야 할지 참담하기만 하다. 다행히 못 참겠다며 곤륜을 버리고 간 제자들이 한가득 아니었다면 벌써 3년 전에 쫄딱 망했을 것이다.


"그나저나 전협 이놈은 대체 돌아오지 않고 뭘 하는 게야?"


유일하게 몇 안 되는 제자 전협은 식자재를 구해오겠다고 말한 뒤 4시진(8시간)이 흐르도록 소식이 없었다. 이쯤 되니 상인들에게 모질 짓거리를 당한 게 아닌지 걱정이 앞섰다.


순간 문밖으로 시끄러운 소리가 들려왔다.


능열은 무슨 일인가 싶어 대문 가까이 다가가니, 살짝 열린 문틈 사이로 전협이 얼굴을 비추었다.


"이놈! 대체 여태껏 뭐하고 돌아다닌 거야?"


"저어..각주 어르신."


어째 전협의 얼굴이 상당히 난처해 보였다.


"도착했으면 들어올 것이지, 대체 거기서 뭘 하는.."


그때 문짝이 뻥 차이듯 활짝 열리자 능열이 기겁하며 쓰러졌다.


"무, 무슨 짓들이오!"


대문을 박차고 들어선 수많은 사람들. 하나같이 비단옷을 입은 차림새가 범상치 않아 보였다.


"장문인! 장문인 어디 있으시오?!"


한눈에 봐도 각 상단주로 보이는 자들이었다. 왜 저리들 눈을 부라리며 애타게 장문인을 찾는 것일까?


더이상 청산할 빚도 없었기에 능열은 당당하게 맞서고자 일어섰다.


"난 재경각주 능열이오! 장문인에게 할 말 있으면 먼저 내게..!"


"당신이 재경각주요?!"

"난 동월 상단에서 왔소. 곤륜과 계약하고 싶어 이 먼 길까지 찾아왔습니다."

"어허 거 좀 비키시래도! 우린 청룡 상단이오. 우리와 먼저 거래를 틉시다!"

"이보시오 우리는..!"


"이, 이게.."


이름만 들어도 알만큼 각 지역을 대표하는 상단들이다.


그런 자들이 뭐, 우리와 거래하고 싶다고?


훌쩍-!


매서운 바람 때문인지 이른 감기라도 들린 것일까?


능열은 콧물을 삼키던 도중 혼절해버리고 말았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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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 새로운 여정 NEW 15분 전 2 0 13쪽
49 만남이 있으면 헤어짐이 있는 법 24.09.18 87 4 17쪽
» 뜻밖의 희소식 24.09.17 131 1 18쪽
47 중원은 생각보다 좁다. 24.09.14 167 2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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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 양자택일 +1 24.09.12 170 3 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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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 습격 +1 24.09.09 162 4 11쪽
42 습격 +3 24.09.08 175 4 16쪽
41 이놈은 가짜다 24.09.07 164 2 12쪽
40 사랑의 회초리 +2 24.09.06 185 2 15쪽
39 내가 죽는다고 했지? +1 24.09.05 170 2 15쪽
38 단정곡의 전설 +2 24.09.04 168 2 19쪽
37 야차와 짐승 +1 24.09.03 186 1 11쪽
36 용봉지회 龍鳳之懷 24.09.02 182 1 14쪽
35 용봉지회 龍鳳之懷 24.09.01 181 1 13쪽
34 용봉지회 龍鳳之懷 24.09.01 181 2 14쪽
33 용봉지회 龍鳳之懷 24.08.31 192 1 11쪽
32 너에게 닿기를 +1 24.08.30 178 1 14쪽
31 혀는 칼보다 강하다 24.08.29 176 1 15쪽
30 와, 이게 되네? 24.08.29 196 2 17쪽
29 반검무쌍 半劍無雙 24.08.28 212 2 12쪽
28 내눈에 뛰면 죽는다 24.08.28 197 1 19쪽
27 곤륜의 무공이란 24.08.27 200 2 15쪽
26 비무 대회 24.08.27 208 1 12쪽
25 비무 대회 24.08.26 191 1 16쪽
24 비무 대회 24.08.26 206 1 15쪽
23 비무 대회 +1 24.08.25 202 1 14쪽
22 속에 거지가 들었나? 24.08.25 199 1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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