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성의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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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진영S
작품등록일 :
2024.08.21 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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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20 1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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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12 2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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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공포는 이성을 마비시킨다

DUMMY

네 대의 소방차 위에서 로프로 몸을 묶고 물을 뿌려대는 사람들은 무척 행복해 보였다.


사이렌을 네 대 모두 켜고 달려서 그런지 몰라도 몰려드는 좀비의 숫자가 꽤 많았다.


‘야, 이게 다 얼마야?’


골고루 바닥을 적시며 이동했는데 도로 위에 떨어진 물을 밟자마자 빛에 휩싸여 사라지는 게 보였다.


저게 다 경험치라고 생각하니 들뜬 기분이 들면서도 도무지 내 능력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맨발인 좀비가 죽는 건 어떻게 보면 당연하다고 볼 수 있다.


어쨌든 물이 직접 닿으니까.


‘신발을 신은 좀비가 죽는 건 무슨 매커니즘이지?’


나는 물을 뿌리면서도 멀찍이 떨어져 있는 좀비를 쳐다봤다.


신발을 신고 있어도 여지없이 젖은 도로 위로 올라오면 빛에 휩싸인다.


‘물을 뿌리면 그냥 그 땅 자체가 신성 지대 같은 게 되는 건가?’


그나마 가장 가능성 높은 가정은 그것 뿐이었다.


“몇 번을 봐도 정말 신기하네요!”


김진국이 로프를 둘둘 몸에 감고 신나게 물을 뿌리면서 내게 소리쳤다.


물 만난 물고기가 따로 없겠다 싶을 정도로 굉장히 들떠 있었다.


“그러게요.”


확실히 몇 번을 봐도 신기한 광경이다.


물에 닿자마자 빛에 휩싸여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리는 놈들을 보자 시원했다.


무엇보다 시체를 직접 처리할 필요가 없다는 게 가장 큰 장점 같았다.


아파트에 밖으로 나온 뒤 가장 먼저 했던 게 내 능력을 가지고 시체를 없애는 일이었다.


내가 죽인 것, 내 힘을 활용해 죽인 놈들도 있었지만, 물리적인 힘으로 죽인 것도 있었다.


그런 경우엔 사라지지 않고 시체가 되어 그대로 남았다.


일반적으로 시체가 방치되면 부패하면서 엄청난 악취가 나온다.


‘거기다가 시간이 조금만 지나도 엄청 끔찍하게 변하지.’


특히 이런 여름 같은 경우엔 부패 속도가 훨씬 빠르고 구더기 같은 게 끓기 시작하면 눈 뜨고 봐주기 어려울 정도다.


당장 부패하지 않은 시체라고 하더라도 그걸 보는 것 자체가 죽음의 공포를 불러일으키기에 정신적으로 썩 좋은 건 아니다.


‘처리하는 과정도 정신적으로 물리적으로 힘든 일이었을 텐데.’


그렇게 큰 규모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적은 규모라고 볼 수도 없는 아파트 단지를 빠르게 안정시킬 수 있었던 건 그 덕분도 있다고 생각했다.


공포는 이성을 마비시킨다.


합리적인 생각을 할 수 없게 만들고 인간을 감정과 본능에 충만한 동물로 만든다.


그런 과정을 겪지 않았던 건, 내 능력을 통해서 시체를 빠르게 처리한 일이 크게 작용했다고 볼 수 있다.


“조금 있으면 아파트 단지로 진입하게 되는데 다른 아파트 단지를 한번 돌아보면 어떨까요?”


옥상을 통해서 본 다른 단지 역시 상황이 썩 좋아 보이진 않았다.


여전히 아파트 안에 갇혀 있는 것으로 보였고 꽤 많은 좀비가 단지 내부를 배회했다.


우리가 소리를 내서 꽤 많은 놈들을 끌어들인 건 맞지만 다른 아파트 단지에 있는 좀비 전부를 끌어들여 처리할 순 없었다.


“일단 돌아가죠. 생존자를 달고 아파트 단지를 도는 건 위험할 수도 있습니다.”

“어, 그런가요? 지금으로선 딱히 그럴 것 같진 않은데.”

“저도 그럴 것 같은데. 방심은 늘 큰 피해를 가져오더라고요. 지금 우리가 확신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습니다. 최대한 안전하게 가죠.”


김진국은 살짝 움찔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그럼 이대로 복귀하겠습니다.”


본인 스스로가 은연중에 상황을 낙관하고 있다는 걸 느낀 모양이다.


상황이 아무리 좋다고 하더라도 방심해서 좋은 건 하나도 없다.


늘 최악을 생각하고 대비해야 했다.


‘자이언트 좀비 그 이상의 놈들도 있을 수 있으니까.’


최악의 상황엔 물을 들이 부어도 버텨내는 놈들이 있을 수 있다는 거다.


그런 놈들이 나오지 않길 바라지만 내가 바란다고 해서 나오지 않는 건 아니다.


* * *


아파트 단지에 거의 다다랐을 때 별안간 공중에서 소리가 나 고개를 들었다.


‘헬기?’


꽤 높은 고도에서 이동하던 헬기가 우리를 보더니 방향을 돌리는 게 보였다.


‘군용 헬기 같은데?’


대대 규모의 작은 부대에서 근무했기에 제대로 된 헬기를 보는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사단장이 타고 왔던 건 잠자리처럼 생겨서 K2로 쏘면 떨어질 것 같던데. 저건 제법 헬기처럼 생겼네.’


나는 물을 뿌리면서 헬기에 시선을 보냈는데 내부가 잘 보이진 않았다.


조종석으로 보이는 곳 옆에 문이 뚫려 있었는데 기관총 같은 게 나와 있었다.


“생존자를 찾기 위해 군에서 수색하고 있는 거 아닙니까?”

“그런 것 같네요.”


김진국의 말에 나는 떨떠름하게 대답하곤 순식간에 우리 머리 위에 떠 있는 헬기를 쳐다봤다.


거리가 꽤 멀리 있었지만, 헬기에서 나는 소음이 상당히 컸다.


“어떻게 할까요?”

“일단 이동하죠. 어차피 이 주변에선 착륙하기도 힘들 거고 단지 안으로 들어가면 저쪽에서 뭔가 반응이 있겠죠.”

“알겠습니다.”


생존자들은 그 헬기를 보며 상당히 기뻐하는 모습을 보였는데 아파트 단지 사람들은 심드렁한 반응이었다.


애초에 저들을 구해줬던 건 군이 아니라 나라는 것 때문이기도 했지만, 우리의 상황 자체가 군을 필요로 할 정도로 나쁜 상태가 아닌 것도 한몫했다.


군과 접촉하는 게 이득이 될지 손해가 될지 모르겠지만, 안전한 장소를 제공받을 수 있다면 우리로서 나쁠 건 없다.


‘정보도 얻을 수 있을 테고.’


지금 상황에서 생존과 직결되는 건 두 가지다.


식량과 정보.


식량이야 편의점이나 마트를 활용해 해결한다고 하더라도 이 정보는 사실상 국가 기관이 아니면 얻기기 힘들다.


인공 위성을 이용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헬기를 가지고 있는 것도 아니다.


통신 자체가 안 된다고 하더라도 정보를 모으고 종합할 수 있는 여건은 우리보다 훨씬 훌륭할 거다.


‘지금 일어난 이 사태에 대해서 어느 정도 알 수도 있겠지.’


여러모로 군과 접촉해서 잃는 것보다 얻는 게 많다고 생각했지만, 그렇다고 확신할 순 없다.


군이라는 집단 자체가 지휘관의 능력에 따라 천차만별이기 때문이다.


어쩌면 내 힘을 탐내 이번 기회를 노려 국가를 먹어 보고 싶어하는 사람일 수도 있다.


‘한 번 일어난 일이 두 번 일어나지 말라는 법은 없지.’


나는 쓰게 웃으며 허공에서 우릴 내려다보고 있는 헬기를 쳐다봤다.


“그어어어!”

“그워어어어!”


헬기가 내는 소리가 제법 커서 그런지 몰라도 몰려드는 좀비가 늘어났다.


그걸 헬기도 느꼈는지 황급히 고도를 높이는 게 보였다.


‘굳이 안 그래도 되는데.’


나는 보일지 모르겠지만, 고도를 다시 낮추라고 손짓했다.


보일지 안 보일지 확신이 서지 않았는데 고도를 높이던 헬기가 덜컥 멈추는 걸 보니 보인 모양이다.


잘 됐다 싶어서 나는 다시 손짓했다.


“고도 내려고 되니까 내려오라고요. 몰이 사냥 한 번 해보자고요.”


나는 마음 속에 있던 말을 내뱉으며 연신 고도를 내리라고 손짓했다.


너무 아래로 내리면 고층 건물에서 헬기로 뛰어드는 놈들도 있을 수 있었기에 적당히 손짓하곤 관뒀다.


“헬기 소리 듣고 아마 많이 올 겁니다. 속도 줄이고 최대한 처리하면서 이동하겠습니다.”


바닥에 물만 뿌려 놓으면 알아서 밟고 사라지긴 하지만, 결국 놈들은 소리를 따라간다.


그렇기에 물을 바닥에 뿌려 놓는다고 100% 다 제거할 수 있는 건 아니다.


‘밟게 만들어야지.’


그러려면 속도를 최대한 줄이고 우리 주변으로 최대한 들어올 수 있게 해야 한다.


요란하게 울리는 사이렌 소리와 함께 헬기가 내는 소음이 겹쳐지자 효과는 확실해 보였다.


“최대한 사방을 향해 쏘세요! 바닥을 충분히 적시면서 천천히 이동하겠습니다!”

“알겠습니다.”’

“예, 성자님!”


물 들어올 때 노 저어야지.


* * *


하나의 좀비라도 더 처리하는 게 지금의 상황을 1초라도 빨리 되돌리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런 의미에서 좋은 의도로 내게 다가왔든 나쁜 의도로 내게 다가왔든 군과의 접촉은 잃는 것보다 얻는 게 확실히 더 많을 거다.


헬기는 우리 바로 위에 상당히 고도를 낮춰 착실히 좀비를 모아주고 있었다.


‘내 의도를 파악한 모양이네.’


둘러 싸인 게 아니라 불러 모으고 있다는 걸 깨닫고 다니 조금 더 적극적으로 고도를 더 낮추기도 했다.


하여간, 초면에 합작해서 쓸어버린 좀비가 상당히 많았다.


“이걸 보고 아주 기겁하고 있겠네요. 물에 닿자마자 뭐 다 사라져 버리니 영문을 모르겠죠?”


김진국은 파안대소하며 엄지손가락을 척 치켜세웠다.


“글쎄요···. 군에도 저처럼 각성한 사람이 있다면 그리 놀랄 일은 아닐 겁니다.”

“아무리 그래도 이 정도 힘을 발휘하긴 힘들어 보입니다.”

“그건 솔직히 동의합니다.”


상극에 가까운 능력도 능력이지만, 그 능력의 활용 방법이 정말 무궁무진하다.


다른 능력도 그런지 모르겠지만, 하여간 나는 지금 이 상황에 특화돼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앞으로도 그럴지 모르겠지만···. 뭐, 지금 당장 주도권을 잡기엔 충분하지. 그게 군이든 국가든.’


나는 입맛을 다시며 허공에 떠 있는 헬기를 쳐다보며 한 방향을 가리켰다.


단지에 거의 도착해서 차량으로 막아둔 입구가 보였다.


그런 내 신호를 봤는지 내가 가리킨 방향으로 헬기의 동체가 돌아간다.


다다다다다다!


그러더니 그쪽 방향으로 날아가기 시작했는데 착륙할 장소를 확인하기 위해 날아간 것 같아 보였다.


“아파트 단지 안에 착륙하려는 것 같은데요.”

“그래 보이네요. 뭐, 이걸 보고도 접촉하지 않으면 이상한 거죠.”


내가 가진 능력을 보고도 그냥 떠난다면 좋은 의도로 접근했다고 생각하기 어렵다.


그런데 우릴 발견하자마자 어쨌든 내 지시에 따라 최대한 맞춰주려고 했다.


그것만 가지고 좋은 의도로 접근했다고 생각할 순 없지만, 어쨌든 나쁜 의도로 접근했을 가능성은 낮아 보였다.


“어떻게 하실 생각입니까?”

“일단은 만나보고 얘기를 나눠봐야겠죠. 사실 지금 이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 건지 아는 게 하나도 없으니까요. 가능하다면 안전한 장소로 여기 있는 사람들을 모두 데리고 가는 것도 좋겠죠.”


현실적으로 힘들어 보이긴 했지만, 어쨌든 최대한 지금의 상황을 정상적으로 돌리기 위해서 협력할 필요가 있었다.


군이 가진 능력과 내가 가진 힘을 합치면 서울 뿐만이 아니라 대한민국 전체를 정상화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어디까지 의견이 맞았을 때 얘기겠지만···.’


나와 같은 생각을 하는 지휘관일 수 있지만, 그렇지 않을 지휘관을 만날 수 있을 가능성도 생각해야 했다.


정상화라는 단어는 같지만, 나와는 다른 정상화를 생각할 수도 있으니까.


“우릴 본 모양입니다.”


아파트 단지 옥상과 경비실 위에서 경계를 서고 있던 사람들이 분주하게 움직이는 모습이 보였다.


우리가 도착했다는 걸 알리는 듯 보였다.


“아, 드디어 집에 왔구나.”


누군가 긴장이 풀린듯한 목소리로 말하자 모두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돌아오지 못할 수도 있으리라 생각하고 나온 사람들도 꽤 많을 거다.


그런 공포에도 나와 함께 밖으로 나와줬다는 사실이 새삼 감사했다.


“아으, 물에 푹 절여 있었더니 뽀송뽀송한 옷으로 좀 갈아입고 싶다.”

“저도요.”

“나는 마누라랑 애들이 보고 싶네.”

“전 다 필요 없고 그냥 시원한 에어컨 바람 쐬면서 멍 때리고 싶어요.”


생각해 보면 참 별것 아닌 사소한 일이다.


그 사소한 일이 지금은 너무나 힘든 일이 됐다.


내가 왜 이런 힘을 가졌는지 모르겠지만, 어떤 곳에 사용해야 할지는 점점 더 선명해지는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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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지키려는 자가 있다면... +2 24.09.14 174 5 12쪽
21 신은 주사위 놀이를 하지 않는다 24.09.13 173 5 12쪽
» 공포는 이성을 마비시킨다 24.09.12 177 5 12쪽
19 괜히 물만 낭비했네 24.09.11 188 5 12쪽
18 안 되면 되게 하라 24.09.10 201 5 11쪽
17 필수불가결 24.09.09 206 3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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