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로 신대륙의 거물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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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식마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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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대륙 전문가 (2)

DUMMY

땅을 파면 황금이 나오고 향신료가 땅바닥에 굴러다닌다는 인세에 강림한 엘도라도.


스페인의 큰손들이 인도 무역에 품고 있는 환상은 그 정도로 컸다.


하지만.

그런 달콤한 환상이 완전히 박살이 났으니 수도는 한바탕 난리가 났을 게 틀림없다.


사재까지 털어서 콜럼버스를 마구 밀어준 이사벨은 시원하게 욕설이라도 내뱉고 싶은 심정이겠지.


물론 사람은 너무 가혹한 진실을 마주하게 되면 회피하고 싶어지는 본성이 있다.


그냥 단순히 ‘응 여기 인도 아니야’ 해버리면 분명 네가 그걸 어떻게 아냐는 비판이 날아들었을 게 틀림없다.


그래서 나는 가볍게 떡밥을 던져둔 것이다.


-신대륙은 인도는 아니지만 엄청난 잠재력을 품고 있는 땅이다.


-너희는 모르지만 나는 잘 알고 있다. 이유도 말해줄 수 있지만 지면상의 문제로 그건 다음 기회에.


너무 과장스럽게 말하면 오히려 역효과가 날 수 있다.


이렇게 간단하게만 보고를 올리자 딱 예상한 대로의 답이 돌아왔다.


“제독님, 본국에서 답신이 왔습니다.”

“뭐? 이렇게 빠르게?”

“예. 그런데 그···일단 돌아오라고 하십니다.”

“뭐라고? 설마 탐사를 그만두라는 말은 아니겠지?”

“그게 아니라 폐하께서는 제독님께서 이 땅에 대해 알아내신 걸 듣기 원하십니다. 지금까지 조사한 결과를 보고한다고 생각하시면 될 겁니다.”


해석하기에 따라 다르겠지만 이건 사실상의 소환령으로 보일 여지가 다분하다.


이 불길한 이야기를 들은 콜럼버스는 당연히 떨떠름한 반응을 보였으나.


“···추가 지원을 받고 싶으면 직접 와서 설득을 하라는 말씀이로군. 그러고보니 리 감찰관님도 폐하께 보고를 보내지 않으셨습니까? 혹시 뭐라고···.”

“이 땅은 엄청난 잠재력을 지닌 땅이라고 적었습니다. 어마어마한 이윤을 뽑아낼 수 있는 황금향이라고 했죠.”

“오오오! 그러셨습니까? 역시, 감찰관님은 알아주시는군요. 그렇게까지 지원사격을 해주셨다면 충분히 폐하를 설득할 수 있겠어요.”


오롯이 진실만을 말한 나의 대답에 콜럼버스의 안색이 한층 밝아졌다.


물론 본국으로 돌아간 뒤에도 내게 거짓말쟁이라고 할 수는 없을 걸?


콜럼버스에게 한 말은 진짜 어디 한군데도 틀린 구석이 없는 순도 100퍼센트의 진실이었으니 말이다.


신대륙은 황금알을 낳는 거위가 맞아. 단지 그 알을 받아갈 사람이 네가 아닐 뿐이지.


“혹시 폐하께서 나만 돌아오라고 하셨나?”

“아닙니다. 리 감찰관님께서도 같이 돌아오라고 하셨습니다. 아, 그리고 실제 여기에 살고 있던 원주민들도 몇몇 데려오라고 하셨습니다.”

“후우···다행이로군. 그럼 최대한 빠르게 다녀오는 게 좋을 거 같습니다. 일단 본국에서 추가 지원을 데려올 때까지 주변을 잘 정리하라고 일러둔 뒤에. 이곳에 다시 돌아오는 대로 카오나보의 부족을 밀어버리면 깔끔하겠네요.”

“폐하를 오래 기다리게 할 수 없으니 오늘이라도 바로 출발하시죠.”

“알겠습니다. 다들 들었겠지? 내가 다시 돌아올 때까지 최소한 지금보다 2배 이상의 귀금속을 수확해두도록!”


티끌 모아 태산이라고 배에 오르는 그 순간까지도 콜럼버스는 수금을 멈추지 않았다.


저걸 애쓴다고 안쓰러워 해야 하나 아니면 헛된 노력을 한다고 조소를 흘려야 하나.


뭐가 됐든 간에 나는 별다른 말 없이 그의 뒤를 따랐다.


결국 자신이 내린 명령의 결실을 누리게 되지도 못하게 될 텐데 가는 길에라도 좋은 꿈은 꾸게 해줘야지.


배 위에서 내려다보니 문득 프란치스코 수도회의 사제들 중 일부가 희생당한 원주민들을 위해 기도하는 모습이 보였다.


역시 이런 시대라도 행동하는 양심들은 있기 마련이지만 애석하게도 그들은 콜럼버스의 부하들을 제지하는데 실패했다.


이것만 보더라도 답은 자연스레 나온다.


지금 시대에 양심이나 연민 같은 것에 호소해봐야 씨알도 먹히지 않는다.


하지만 그렇다고 브레이크 없이 폭주하면 콜럼버스와 한 세트로 역사에 박제당하게 되겠지.


실리와 명분을 다 잡는 게 최선이겠지만 그게 어디 말처럼 쉬운가.


‘역시 애매할 때는 경험치를 쌓는 게 최고지.’


아무리 능력이 있어도 막 배치받은 신입은 어느정도 얼타는 게 당연하듯 지금 시대에 통용되는 선을 알려면 두 눈으로 상황을 지켜보는 수밖에 없다.


그런 점에서 앞으로 있을 무대는 원래 계획보다 더 크게 판을 키우는 게 좋지 않을까 싶다.


콜럼버스가 화려하게 산화하면 할수록 나는 더 많은 걸 보고 배울 수 있을 테니까.




* * *




다행히 바야돌리드까지 돌아오는 길은 순탄함 그 자체였다.


파도도 그리 거세지 않았고 별다른 위험한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이러니 저러니 해도 결국 집만한 곳이 없다고.


지금 시대에 떨어진 지 얼마 되지 않은 것과 별개로 원룸 내의 공간은 그래도 내가 먹고 자고 하던 나만의 공간이 아닌가.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오자마자 다리에 힘이 쭉 풀려서 그대로 침대에 주저앉아 버렸다.


“후우···이제야 좀 살겠네.”


돌이켜 보면 배를 타고 신대륙으로 건너간 그 순간부터 지금까지 단 한 순가도 긴장을 늦춘 적이 없다.


게다가 실제로 어떤 일이 터져도 최대한 여유로운 척을 하고 해야하니 심력이 두배로 소모 됐다.


방에 오자마자 뻗어버리지 않았으면 그게 더 오히려 이상한 일이었으리라.


“자료 준비할 시간이 일주일은 넘게 필요하다고 해놨으니 오랜만에 푹 쉬어야겠다.”


샤워라도 하고 좀 잘까 했지만 손가락 하나 까딱할 수도 없을만큼 온 몸에 힘이 없다.


생각해 보니 어차피 자고 일어나면 원룸 안의 물건들은 다 원래대로 돌아가니까 이부자리가 더러워질 일도 없잖아?


에라 모르겠다 그냥 자고 일어나서 생각하자.


“사라야, 12시간 뒤에 깨워줘.”


[네 12시간 후에 일어날 때까지 알람을 울리겠습니다.]


손으로 알람을 맞출 체력도 없을만큼 피곤했기 때문일까.


눈을 감자 내 의식은 거의 10초도 되지 않아 어두운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다.



띠링! 띠리리링!


“아···뭐야, 벌써 12시간이 지났다고?”


단 한번도 뒤척이지 않고 푹 자서 그런지 그토록 피곤했었는데도 상쾌하기 이를 데가 없다.


사실 이 방에서 자고 나면 항상 이랬다.


한번 눈을 감으면 항상 숙면을 취했고 기상할 때 몸이 찌뿌등하거나 몸에 피로가 남아있다는 느낌이 든 적도 없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야, 환장하겠네. 이게 진짜 된다고?”


화장실의 거울을 통해 본 내 몰골은 첫 출근을 준비했을 때처럼 말끔했다.


그렇다. 신대륙까지 배를 타고 왕복하며 면도도 대충하고 머리도 다듬지 않았는데.


심지어 너무 피곤해서 그 상태 그대로 잠들었는데 눈 떠보니 모든 게 원래대로 돌아왔다.


이렇게 되지 않을까 대강 짐작은 하고 있었다.


여기에 온 뒤로 아침에 면도를 하려고 했을 때마다 수염이 거의 자라있지 않다는 걸 자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원룸을 떠나 배에서 먹고 자고 하니 그때는 또 수염이 무럭무럭 자라나기 시작하는 게 아닌가.


그때부터 반쯤은 심증이 굳어졌다.


-원룸에서 자고난 뒤 원래대로 돌아오는 건 사물만이 아니라 내 몸 역시 마찬가지라고.


그리고 완벽하게 깨끗해진 피부와 수염, 머리카락을 확인한 순간 저 가설은 이제 사실이 됐다.


“이걸 대체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나···복잡하네.”


내 신체가 이 방안에 있는 물건들처럼 계속 원래대로 돌아간다는 건 분명 나쁜 소식은 아니다.


막말로 어디가서 사고로 팔 하나 다리 하나 날아가도 방 안에서 자고 일어나면 다시 멀쩡해진다는 뜻이니까.


그러면 뇌도 원래대로 돌아가야 하니 기억도 리셋돼야 하지 않나 싶지만 애초에 스마트폰에 저장되어 있는 사진도 그대로인 걸 보면 이해는 간다.


내가 진짜로 알고 싶은 건 그보다는 내 신체가 원래대로 돌아가는 범위였다.


만약 기억을 뺀 모든 부분이 원래대로 돌아가 버리는 거라면···.


“나 앞으로 안늙는다는 거 아니야?”


지금껏 이 세상의 모든 권력자가 그토록 원했지만 끝끝내 손에 넣지 못한 불로불사의 몸.

내가 바로 그 신체의 주인공이 됐다는 뜻 아니겠는가.


···아니지. 너무 설레발 치지는 말자.

이 방에서 잠을 자야 신체가 리셋되는 거니 엄밀히 말하면 완벽한 불사는 아니다.


바깥에서 총이라도 맞아 비명횡사하면 리셋이고 뭐고 없으니까.


그래도 조건만 달성하면 영원히 젊은 신체 그대로 살 수 있는 셈이니 이게 얼마나 대단한 일인가.


“아니야, 아니야. 아무리 그래도 아직 확정이라고 보기는 어려워. 노화가 되는지 아닌지는 좀 더 장기적으로 지켜봐야 알 수 있지 않겠어?”


내 신체가 정말로 노화되지 않고 지금 그대로 남아 있는지 알려면 최소 5년에서 10년 정도는 시간을 두고 검증해 봐야 한다.


어떻게 하냐고?

그냥 사진 찍어두고 비교해보면 그만이다.


게다가 잘 생각해보면 이게 마냥 축복으로 작용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지금이야 아무 문제 없겠지만 먼 미래에도 내 외모가 지금 그대로라면 주변에서 이 사실을 어떻게 받아들이겠는가.


운 나쁘면 젊음을 위해 영혼을 사탄에게 팔았다는 누명을 쓸 수도 있고, 그게 아니더라도 세상 모든 권력자가 날 족쳐서 불로의 비밀을 밝히려 가능성이 99.9%쯤 된다.


극한의 동안이라고 우겨서 넘어갈 수 있는 건 끽해봐야 20년 정도 아닐까.


“본의 아니게 타임 리미트가 생긴 셈인가.”


주변에서 저 놈 뭔가 이상하다는 시선을 보내기 전에 그런 논란 거리에 휩쓸리지 않을만한 지위를 구축해둬야만 한다.


결국 이번 무대를 철저하게 준비해 둬야 할 이유가 하나 더 생긴 셈이었으니.


나는 바로 컴퓨터의 전원을 키고 이번 무대에서 쓸 자료들을 출력하기 시작했다.



* * *




콜럼버스의 성과 보고는 사전에 내가 부탁한 대로 바야돌리드의 왕궁에서 아주 성대한 규모로 열렸다.


참가한다고 알려진 면면만 봐도 입이 떡 벌어진다.


이번 항해의 촉 감독인 후안 주교는 물론이고 왕실 재정 담당, 평소부터 여왕과 각별한 친분이 있다고 알려진 톨레도의 대주교.

여기에 새로운 인도항로에 군침을 질질 흘리는 몇몇 대귀족들이 바야돌리드로 결집하고 있었다.


무대를 크게 키워달라고는 했지만 이렇게까지 해줄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는데 여왕님도 참 화끈하기도 하셔라.


물론 일이 어떻게 흘러가더라도 자신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결론을 낼 자신이 있을테니 이러는 거겠지.


되도록 많은 사람들에게 강한 인상을 남길 필요가 있는 내게는 더 바랄 게 없는 조건이 갖춰진 셈이다.


이런 배경을 꿈에도 모르는 콜럼버스는 나름 자신감 있게 모두의 앞에서 입을 열었다.


“측량사들이 살펴본 결과 저희가 도착한 섬 외에도 여러 섬들이 주변에 있는 걸로 추정된다고 합니다. 일단 저희는 이 일대를 서인도 제도라 칭하기로 했습니다.”

“저번에는 남중국일 가능성도 있다고 하지 않았나?”

“중원은 대칸의 지배력이 드넓게 퍼져 있다고 합니다. 하지만 저기 사는 야만스러운 원주민들은 아무리 봐도 대칸의 지배를 받고 있지 않은 듯 했습니다. 인도는 중원과는 다르게 여러 국가가 난립해 있다고 하니 중앙의 지배력이 그만큼 약할 겁니다.”

“그래? 그러면 그건 그렇다 치고 자네가 호언장담한 수익률은 실제로 기대해 볼 수 있는 건가? 향신료 수입은?”


만약 콜럼버스가 발견한 땅이 정말 인도라면 원금 회수 따위야 걱정할 필요가 없다.


오스만이 인도무역로를 틀어쥐고 막대한 수익을 얻었듯이 카스티야도 다른 나라가 뛰어들기전에 수입을 바짝 땡기면 그만이다.


이사벨이 콜럼버스에 투자한 돈 따위는 몇 년안에 본전의 몇 배 이상으로 돌아오게 될 것이다.


저기가 진짜 인도였다면 말이지만.


“폐하, 설명드렸다시피 향신료는 인도 본토에 널리 분포되어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그 향신료의 안정적인 수급을 위해서는 우선 히스파니올라에 식민지를 건설해야 합니다. 그 다음 거길 교두보로 삼아 인도 본토와 향신료 교역을 하면···.”

“계획 자체는 나무랄데가 없는데 결국 다 추측 아닌가? 어느 것 하나 확실한 게 없어보이는데.”

“그렇게 생각하실까봐 증거를 가지고 왔습니다. 여기 히스파니올라에서 가져온 귀금속들입니다.”


히스파니올라에서 상륙하자마자 원주민들을 탈탈 털어서 수집한 금과 은.

그리고 그 전리품으로 사슬에 묶여 끌려온 10명 가량의 원주민들까지.


콜럼버스는 자신이 얻어낸 성과를 선보이며 이사벨과 귀족들 앞에서 자신감 있게 설명을 이어나갔다.


“히스파니올라에는 이런 미개한 인디오들이 수없이 퍼져나가 살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들은 마을마다 금과 은을 비축해 두고 있으니 여기서 얻어낸 돈으로 전초기지를 세우는 건 아무런 문제가 없을 겁니다. 인력도 언제든지 자유롭게 충당할 수 있으니 이보다 좋은 조건이 또 어디 있겠습니까.”

“히스파니올라에서 기반을 다지고 이후 인도무역에 집중하겠다라···.”

“폐하, 제가 듣기에는 콜럼버스의 말에도 일리가 있는듯 합니다.”

“그런가? 그러면 다음 콜럼버스와 함께 동행한 이들에게도 이야기를 들어보지. 다들 들어 알고 있겠지만 이 사람이 바로 짐의 초상화를 그려준 그 예술가라네. 짐의 명령으로 감찰관의 신분으로 콜럼버스와 함께 신대륙에 다녀왔으니 의견을 들어볼 가치가 있지 않을까 싶은데.”


콜럼버스가 사람들의 지지를 막 얻으려던 찰나에 나에게 날아든 발언권.


이사벨은 나를 앞으로 불러내 어디 한번 분위기를 반전시켜보라며 고개를 까딱였다.


만약 여기서 내가 편지에 써놓은 말들을 증명하지 못한다면 그녀는 주저없이 콜럼버스의 손을 들어줄 것이다.


“후우···.”


준비자체는 완벽하게 해놓긴 했지만, 긴장되는 건 어쩔 수가 없네.


다른 사람도 아니고 일국의 왕 앞에서 하는 공식적인 프레젠테이션이지 않나.


연수원에서 많이 해보긴 했어도 대통령을 앞에 세워두고 한 건 아니라 느껴지는 압박감이 차원이 달랐다.


“먼저 경애하는 여왕 폐하와 여기 계신 고귀한 귀족 분들께 인사올리며 발표를 시작하겠습니다. 저는 여왕 폐하께 부여받은 감찰관이라는 과분한 직위 덕분에 신대륙에서 많은 걸 보고 듣고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신대륙?”


서인도가 아닌 신대륙이라는 단어에 좌중에서 일순간 당확한 기색이 풍겼다.


나는 그들이 숨을 돌릴 틈도 없이 내가 가진 비장의 자료들을 선보이기로 했다.


“여기 계신 분들 중에는 제 능력을 직접 보신 분들도 계시고, 듣기만 하신 분들도 계실 겁니다. 그래도 모르시는 분은 없을 거라 생각하고 바로 공개하겠습니다. 이게 대서양 건녀편에 있는 신대륙의 풍경입니다.”

“오오! 이게 그···.”


최대 사이즈로 출력한 신대륙의 전경을 본 귀족들과 주교들이 나직한 탄성을 흘렸다.


실제로 보는 건 처음인 이사벨 역시 흥미를 감추지 못한 채 살짝 몸을 앞으로 기울이며 내가 그린(인쇄한) 작품을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저들이 인디오들인가? 진짜로 우리와 완전히 다르게 생겼군.”

“몸에 걸치고 있는 옷들도 그렇고 진짜 야만인들 같군요.”


나는 천천히 종이를 넘겨 다른 그림을 보여주었다.


환하게 웃으며 이쪽을 반겨주는 순박한 원주민들.

물과 음식을 기꺼이 나눠주며 호의를 표하는 그들의 모습에 원주민들을 조롱하던 분위기가 조금 잦아들었다.


“머리는 조금 딸려도 순박하긴 한가 봅니다.”

“들었던 그대로네요.”

“···뭐, 무지하다고 인성이 나쁜 건 아니니까요.”


그러나 바로 다음.

그렇게 넘치는 호의를 보여주던 원주민들이 마구잡이로 학살당하는 사진이 나오자 실내의 공기가 긴장감으로 팽팽하게 조여졌다.


심지어 원주민 아이들의 시신 앞에서 열심히 귀금속을 추리고 있는 콜럼버스의 모습이 공개되자 몇몇은 대놓고 눈쌀을 찌푸리기도 했다.


“감찰관님! 지금 대체 뭘 하시는 겁니까!”


응, 안보여. 안들려. 끌려나가고 싶으면 어디 끼어들어 보든가.


“그럼 이제부터 콜럼버스를 지금의 자리에서 찍어내야 하는 이유를 설명드리겠습니다.”

“당신! 지금 미쳤···.”


뭔가 말을 더 이어가려던 콜럼버스는 뒤늦게 이 자리가 어떤 자리인지 생각이 났는지 바로 입을 다물었다.


잠깐의 정적이 있은 뒤, 이사벨이 떨떠름한 시선으로 내가 뽑아둔 그림들을 보며 물었다.


“콜럼버스의 성정이 너무 잔인하기 때문에 물러나게 해야 한다는 말인가?”

“아닙니다. 콜럼버스가 지금 자리에서 내려와야 하는 결정적 이유 그 첫 번째. 무능하기 때문입니다.”


도덕심이나 양심 같은 걸 입에 담을 거라고 생각했겠지?

좌중에 있는 모두의 시선에 의외라는 감정이 내려앉은 게 느껴진다.


“계속해 보게. 어떤 점에서 무능하다는 건가?”

“너무나도 많지만 가장 먼저 말씀드려야 할 건 역시 절망적인 지식 수준입니다. 단적으로 말해서 여러분들에게 보여드린 저 땅은 인도가 아닙니다.”


이미 한발 먼저 이 사실을 전해들은 여왕과 후안 주교는 지긋이 눈을 감았고.


“인도가 아니라고?”

“설마 신대륙이 진짜 새로운 대륙이라는 뜻이었어?”


향신료 무역에 대한 기대 하나로 바야돌리드로 몰려들었던 귀족들의 얼굴이 충격으로 물들었다.


승천의 때가 무르익었다.


작가의말

오늘도 즐겁게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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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인간과 비인간 +12 24.09.14 2,126 149 16쪽
22 풍문으로 들었소 +24 24.09.13 2,242 156 17쪽
21 석판께서 가라사대 +14 24.09.12 2,417 155 18쪽
20 태풍의 눈 (3) +16 24.09.12 2,518 168 16쪽
19 태풍의 눈 (2) +13 24.09.11 2,663 174 15쪽
18 태풍의 눈 +9 24.09.10 2,846 169 15쪽
17 세계의 절반 +17 24.09.09 3,125 187 15쪽
16 대양 제독 (2) +17 24.09.08 3,412 187 14쪽
15 대양 제독 (수정) +13 24.09.07 3,689 186 16쪽
14 신대륙 전문가 (3) +15 24.09.06 3,699 206 16쪽
» 신대륙 전문가 (2) +13 24.09.05 3,717 214 17쪽
12 신대륙 전문가 +13 24.09.04 3,840 200 15쪽
11 신세계에서 (2) +17 24.09.03 3,878 189 15쪽
10 신세계에서 +12 24.09.02 4,182 200 16쪽
9 즐거운 거래 +21 24.09.01 4,345 214 14쪽
8 여왕의 예술가 +12 24.08.31 4,410 222 14쪽
7 예술 논쟁 +16 24.08.30 4,483 212 16쪽
6 배신의 위인전 +15 24.08.29 4,581 229 14쪽
5 동방의 풍운아 +12 24.08.28 4,768 226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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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주머니 속 기계장치의 신 +27 24.08.26 6,246 221 15쪽
2 높으신 분? +19 24.08.26 7,496 242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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