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이름은 허초희(許楚姬): 104개의 클론이 들러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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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라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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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라나다
작품등록일 :
2024.08.22 0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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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9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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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22 2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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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소리의 정체

DUMMY

#4-1장 계속 들리는 목소리


그 목소리가 점점 더 커져갔다.


어떤 때는 하나의 목소리가 들렸고, 어떤 때는 여러 명의 목소리가 동시에 들려왔다. 낯선 목소리들도 있었고, 나와 비슷한 나이 또래의 목소리도 섞여 있었다. 가느다란 아이의 목소리부터, 차분하고 성숙한 여성의 목소리까지··· 그 음성들은 나를 혼란스럽게 했다.


그가 없을 때는 그 목소리들이 더욱 기승을 부렸다. 마치 그가 사라지기를 기다리기라도 한 듯, 내 귀에 아주 시끄럽게 들려왔다. 처음엔 그 목소리들이 너무 무서워서, 그에게 도움을 요청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그의 반응은 내가 기대했던 것과는 달랐다.


"일전에도 그런 일이 있었습니다. 걱정하지 마세요. 가벼운 정신 착란입니다. 갑작스럽게 깨어나 신체가 과부하가 걸린 것 같습니다. 좀 안정되면 환상은 사라질 겁니다."


그는 알 수 없는 이야기를 하며, 나를 멍하게 만드는 주사를 놓았다. 주사액이 몸속으로 들어오자마자 머릿속이 희미해지며 모든 것이 흐려졌다.


'일전에도 그랬다고?··· 무슨 의미지?'


그의 말이 머릿속에서 맴돌았지만, 나는 그날 이후로 더 이상 그에게 도움을 요청하지 않았다. 어쩐지 그의 반응이 믿음직스럽지 않았다.


하지만 목소리는 사라지지 않았다. 오히려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강해졌다.


"그만해···."


나는 내 귀로 들어오는 그 소리들을 막아보려 갖은 노력을 다했다. 음악을 크게 틀거나, 내가 큰소리로 책을 읽거나, 혹은 소리가 큰 영상을 틀기도 했다. 하지만 그 소리들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그가 집에 있을 때는 목소리가 급격히 줄어들었기에, 나는 그가 나가려 할 때마다 그를 붙잡기도 했다. 그의 곁에 있는 동안은 잠시나마 고요함을 느낄 수 있었으니까. 하지만 내가 잠든 사이에 그가 나간 것인지, 오늘도 여지없이 목소리들이 나를 파고들었다.


'지하실로 가··· 지하실···'


며칠째 계속되는 그 목소리들에, 나는 점점 정신이 나가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손톱을 물어뜯으며 거실을 서성이던 나는, 점점 더 불안해졌다.


"정말 저 지하실로 가면 이 목소리가 들리지 않을까?"


나는 스스로에게 물었다. 그 목소리들은 끊임없이 지하실을 가리키며 나를 유혹하고 있었다. 그곳에 답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그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곳으로 가야만 한다는 충동을 억누를 수 없었다. 내가 원하는 것은 단 하나, 이 끝없는 혼란에서 벗어나는 것이었다.


#4-2장 의구심


나는 지하실로 향하는 문 앞에 섰다. 그러나 그 문을 열 수 있는 어떤 장치도 눈에 보이지 않았다. 그저 까맣고 매끄러운 벽이 나를 가로막고 있을 뿐이었다.


당황스러웠다. 다급한 마음에 나는 그 문 주위를 마구 더듬기 시작했다. 손끝으로 벽을 이리저리 만져보았지만, 어떤 단서도 찾을 수 없었다.


그러는 동안에도 목소리는 계속해서 울려 퍼졌다.


'지하실로 들어가···'


이제는 한두 개의 목소리가 아닌, 합창처럼 내 귀를 때렸다. 그 소리들은 내 머릿속을 꽉 채우며 나를 점점 더 미치게 했다. 나는 귀를 막고 문을 두드리기도 하고, 벽을 이리저리 눌러보기도 했지만, 아무소용이 없었다···.


"하아··· 그만해···"


나는 절망에 빠져 그대로 문 앞에 주저앉았다. 무릎을 꿇은 채, 내 뺨을 따라 눈물이 흘러내렸다. 이 끝없는 혼란과 두려움 속에서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그때, 거실로 그가 들어왔다. 그는 휴대폰으로 통화를 하고 있었다. 그의 눈길이 나를 찾는 듯, 휴대폰을 얼굴에서 떼어내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지하실에 들어가야겠어요."


어둠 속에서 나는 그의 얼굴을 올려다보며 말했다. 그의 표정은 순간 굳어졌다. 그는 급하게 휴대폰을 끄고 나에게 다가왔다.


"초희, 왜 여기 계십니까? 괜찮아요?"


그는 내 요구를 듣지 못한 것처럼 엉뚱한 질문만 늘어놓았다. 그의 태도에 나는 화가 치밀어 올랐다.


"이 문을 열라고! 당장!"


나는 분노에 찬 목소리로 그를 향해 외쳤다. 그의 차분한 태도와 나를 무시하는 듯한 반응이 더 이상 참을 수 없게 만들었다. 내 안의 두려움과 의구심이 점점 더 커져만 갔다.


그는 잠시 나를 바라보다가, 천천히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저었다. 그의 얼굴에는 복잡한 감정이 서려 있었다. 하지만 그 감정이 무엇인지, 나는 도무지 알 수 없었다.


그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그리고 왜 나를 이토록 통제하려는 것인지··· 그 모든 것이 의심스러웠다. 나는 그를 믿을 수 없었다. 하지만 이 지하실에 들어가지 않고는 이 목소리들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생각이 점점 더 강해졌다.


#4-3장 의구심 2


마구 소리 지르며 저항하는 나를 그가 진정시키기 위해 다가왔다. 나는 그를 피해 엉덩이를 끌며 도리질했다.


"주사 놓지 말아요! 싫다고요!"


그가 한숨을 쉬며 부드럽게 말했다.


"진정하세요···, 주사 놓지 않겠습니다. 하지만 그 행위들도 당신을 위한 것입니다. 그대에게 해가 될 일을 제가 왜 하겠습니까?"


그는 나를 부드럽게 안아 내 뒤통수를 감싸 그의 어깨에 기대게 했다. 그의 품에 안기자마자 나도 모르게 흐느낌이 터져 나왔다.


"흐흑··· 이 소리 좀··· 없애줘요··· 사라지지 않아요··· 사라지지 않는다고요!"


나는 절망적으로 외쳤다. 그가 나를 일으켜 세우더니, 어둠에서 벗어나 빛이 있는 곳으로 나를 이끌었다. 그의 손길은 차분하고 확고했지만, 그 안에 감춰진 강압적인 힘이 느껴졌다.


"오늘은 기쁜 소식을 알려주려 했는데···."


그는 안타까운 듯이 말했다.


"기쁜 일이요?"


어느덧 어린아이처럼 그에게 히스테리를 부린 것이 미안하게 느껴졌다. 머쓱해져 괜히 코를 문질렀다. 그는 그 모습을 귀엽다는 듯이 보며, 나를 부드럽게 안아 들었다. 그의 갑작스러운 행동에 나는 화들짝 놀라 그의 목에 손을 둘렀다.


"왜···?"


그는 나지막이 웃으며, 나를 안심시키려는 듯 말했다.


"자세한 이야기는 그대가 준비되면 하겠습니다."


"나 진정했어요··· 기쁜 일이란 게 무엇인가요?"


나는 그에게 안긴 채, 그가 떠날까 봐 걱정스러운 마음에 계속 말을 걸었다. 그의 곁에 있으면 목소리들이 잠잠해졌기에, 나는 그가 떠나는 것을 두려워했다.


그가 나지막이 웃으며 말했다.


"당신의 신분이 완성되었습니다. 그대의 이름과 존재가 이제 공식적으로 인정되었지요."


그의 말에 나는 잠시 얼떨떨했다. 그의 품에서 느껴지는 온기와 차분한 목소리가 내 불안을 조금씩 가라앉혔다. 그러나 그가 말한'신분'이라는 단어가 마음에 걸렸다. 내 존재가 무엇으로 인정되었다는 걸까? 그의 말은 안심보다는 더 많은 의구심을 불러일으켰다.


#4-4장 신분을 얻다


그가 나를 안고 흔들의자에 앉았다. 그러고는 아기를 재우듯 등을 조용히 토닥였다.


"신분이요?"


나는 그의 말을 이해할 수 없다는 듯 의아해하며 되물었다.


"네··· 그대는 일종의 부활을 했습니다. 지난 조선시대에서 지금 이 시대로··· 그래서 그대를 정의할 신분이 없었습니다."


그의 목소리는 차분하고 확신에 차 있었다.


"이제 그대는 허초희라는 이름과 내 아내라는 신분을 얻었습니다."


'아내라고?'


나는 그의 말을 되 새기며 혼란스러워졌다. 머릿속이 어지러워졌다.


"저는 이미 혼인했습니다. 아이도 있어요. 저는 그이를 배신할 수 없습니다. 제 유일한 지아비입니다."


그가 내 턱을 들어 올려, 그의 눈을 마주 보게 했다. 그의 눈빛은 강렬하고 집요했다.


"당신은 내 아내입니다. 저는 그것을 위해 달려왔지요."


그의 말은 결코 허투루 하는 말이 아니었다. 그의 눈빛과 말투에는 그 어떤 의심의 여지도 없었다.


"그대가 죽기 전에 들었던 말··· 기억하십니까?"


그의 질문에, 나는 마지막 숨을 거두기 전 희미하게 들렸던 목소리가 어렴풋이 떠올랐다. 그때의 기억이 떠오르면서 가슴이 서늘해졌다.


'부인, 이 몸이 당신을 놓을 일은 없을 것이오. 그러니 잠시 쉬시오. 자고 일어나면 다 좋아져 있을 게요.'


그가 내 앞에서 그 말을 다시 되풀이했다. 그의 말투, 음성, 그리고 눈빛까지··· 모든 것이 너무나도 낯익었다.


"부인, 이 몸이 당신을 놓을 일은 없을 것이오. 그러니 잠시 쉬시오. 자고 일어나면 다 좋아져 있을 게요."


내 앞에 있는 그 남자가, 그때 나의 남편과 똑같은 말을 하며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오랜만입니다, 부인. 그리웠습니다."


그 순간, 나는 현실과 기억 속에서 혼란스럽게 뒤엉키는 감정에 휩싸였다. 눈앞의 그가 정말 나의 지아비인가? 아니면 그저 내가 상상 속에서 만들어 낸 환상인가?


#4~5장 덫


김강우는 지하실 깊숙한 자신의 자리에서 일기를 쓰고 있었다. 지하실에는 지금까지 그의 104개의 실패작들이 오와 열을 맞추어 정리되어 있었다. 시험관 안에 채 형성되지 못한 허난설헌의 신체 조각들이, 각각의 실패를 상징하듯 고요히 놓여 있었다.


1번부터 104번까지··· 하나하나 정성스레, 마치 트로피처럼 진열된 그 모습은 소름이 끼칠 정도로 섬뜩했다.


김강우의 일기


[지금은 아니다. 그녀의 불안을 알지만, 지금은 그때가 아니다. 좀 더 조여야 한다. 그녀가 나를 더욱 의지하도록, 낭떠러지로 몰아세워야 한다. 이건 그녀를 위해서도, 나를 위해서도 필요한 과정이다. 그래야만 우리는 함께할 수 있다.


이 빌어먹을 그녀의 소유권을 완벽히 갖출 때까지··· 정부는 언제나 핑계를 대며 일을 미루고 있다. 흥! 내가 그들의 속셈을 모를 줄 알고··· 어딜 날로 먹으려고··· 하지만 그들은 모른다. 그녀는 나의 아내이며, 나의 반려다. 그 무엇도, 그 누구도 그녀를 나에게서 빼앗을 수 없다.


내가 이토록 노력하는데··· 그녀는 언제나 불만이 많다. 그 불만조차, 사랑스럽지만··· 그것이 나를 미치게 한다. 그녀가 나를 완전히 받아들이고, 오직 나만을 바라보도록 만들어야 한다. 그날이 오기 전까지, 나는 절대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나는 그녀에게 다가가 사랑을 속삭인다. 그녀의 언어로···


"부인, 불안해하지 마시오. 다 잘될 것이오. 그대가 궁금해하는 모든 것을 조 만 간 다 풀어주리다. 그러니 이제 그 불안을 내려놓으시오."


그녀의 눈을 바라보며, 나는 그녀가 이 말에 안심하기를 바란다. 그러나 그 안심이 완전한 순종으로 바뀌기 전까지는 나는 멈추지 않을 것이다. 그녀의 모든 생각과 의지가 나에게로 집중될 때까지, 그녀의 세계에서 나만이 존재할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한다. 결국 우리는 함께하게 될 것이다.]


김강우는 펜을 내려놓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차가운 지하실 공기 속에서 그의 눈빛은 집착과 광기로 빛났다. 그는 자신의 '트로피들(실패한 104개의 클론)‘을 애정 어린 손길로 하나하나 어루만졌다.


"너희는 실패작일 뿐이지만··· 그녀는 아니야··· 내가 그렇게 만들 거니까··· 그러니 방해 말고 그냥··· 여기에서 침묵해··· 그리고 만족해···."


그의 목소리는 속삭이듯 낮고, 그러나 그 안에 담긴 의지는 단호했다. 김강우는 자신이 만든 이 지하실 속에서, 그리고 그가 만든 존재들과 함께, 완벽한 세계를 꿈꾸고 있었다. 그 꿈을 실현하기 위해 그는 끝까지 자신을 믿고, 그녀를 가두고, 결국은 자신의 것으로 만들겠다는 결심을 굳혔다.


지하실의 차가운 공기 속에서, 그의 멀어지는 발걸음이 무겁게 울려 퍼졌다.


작가의말

허난설헌은 집 안에서 알 수 없는 목소리를 점점 더 자주 듣게 되며, 그 목소리들은 그녀를 지하실로 유혹합니다. 김강우는 지하실에 대해 질문을 피하며 절대 내려가지 말라고 경고하지만, 그녀의 지하실에 대한 궁금증은 커져만 갑니다. 목소리들이 단순한 환청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며, 그녀는 그 의미를 탐구하기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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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름은 허초희(許楚姬): 104개의 클론이 들러붙다 연재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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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허난설헌이 깨어날 조건 NEW 6시간 전 2 0 12쪽
27 이정우의 고뇌 24.09.18 2 0 11쪽
26 거래 24.09.17 4 0 11쪽
25 강민혁의 딜레마 24.09.16 6 0 12쪽
24 초희를 기다리며 24.09.14 6 0 11쪽
23 허난설헌: 자유를 찾아서 24.09.13 6 0 11쪽
22 현실의 허초희 딜레마에 빠지다 24.09.12 8 0 11쪽
21 허난설헌과 초희: 자유를 향한 동맹 24.09.11 7 0 12쪽
20 난설헌의 각성: 가상세계에서의 진실 24.09.10 7 0 12쪽
19 변화의 조짐 24.09.09 9 0 11쪽
18 모든 것이 틀어진다 24.09.07 9 0 12쪽
17 김강우가 만든 세계 24.09.06 7 0 13쪽
16 김강우의 가상세계로 24.09.05 8 0 13쪽
15 김강우의 비빌 24.09.04 8 0 13쪽
14 허난설헌이 아닌 진짜 나 24.09.03 7 0 12쪽
13 선택의 기로 24.09.02 7 0 12쪽
12 위기일발 24.08.31 9 0 11쪽
11 진실의 조각들 24.08.30 8 0 13쪽
10 그녀의 선택 24.08.29 10 0 10쪽
9 형사와의 공조 24.08.28 11 0 14쪽
8 의혹의 그림자 24.08.27 11 0 14쪽
7 자유의 대가 24.08.26 13 0 12쪽
6 탈출의 시작 24.08.24 12 0 12쪽
5 금단의 문 앞에서 24.08.23 10 0 10쪽
» 목소리의 정체 24.08.22 13 0 12쪽
3 익숙하지만 낯선 곳 24.08.22 13 0 11쪽
2 김강우 24.08.22 13 0 10쪽
1 과거에서 미래로 24.08.22 36 0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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