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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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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24 1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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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24 1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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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화-근골

DUMMY



알고 있었다. 무를 접했을 때부터, 무공을 닦으면 닦을수록 나에게 재능이 없다는 것쯤은.


기를 느끼는 기감이 트이는 것부터 남들보다 느렸다. 아니 사실 그 정도야 사실 아무래도 좋은 일이지만, 그래도 그때였던 것 같다. 내가 눈치 챈 것은,


내가 가진 근골은 그다지 무공에 적합하지 않다는 것을 말이다.


결정적으로 내가 십이 세가 되었을 때 숭협련의 고수들이 내 기맥을 철저히 조사했을 때 내 기혈은 대부분이 막혀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때 당시 하나같이 내 몸을 진맥하던 고수들이 혀를 차거나 어두운 얼굴로 아버지와 심각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하지만 아버지는 나를 포기하지 않았었다.


숭협련의 고수들로 안 된다면 의학의 힘을 빌려서라도 나의 근골을 어찌해볼 생각이셨는지 아버지는 숭협련의 정보력을 이용하면서까지 백방으로 노력했다. 그 덕분에 무림의 명의와 의학에 지식이 깊은 고수들을 초빙할 수 있었다.


허나 그들 또한 나의 체질을 어찌할 수는 없었다. 내 근골에 딱히 문제가 있는 것도 아니었고 절맥은 더더욱 아니었다. 그저 대부분의 기혈이 거의 다 막혀 있을 뿐이었다.


날 진료했던 의원 중 한 명이 말하기를 마치 수십 년 산 중년 남자 정도의 기혈이라고 했던가?


악화결의 머리가 잠시 과거의 회상에 젖어들었다.


‘절맥은 아닌 것 같군요. 그저 기혈에 탁기가 가득할 뿐입니다. 가끔씩 있죠. 이런 몸을 지닌 사람이. 탁기가 남들보다 빨리 쌓이는 체질입니다. 아직 이십도 되지 않았지만 무공을 닦지 않은 중년인 정도의 기혈인 것이죠.’


‘...어떻게 할 수는 없겠소이까? 남쪽 지방에서 화 의원보다 뛰어난 이는 없지 않소.’


‘...소생을 높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만...절맥, 차라리 절맥증이라면 치료할 수는 있겠지만 이것은 그저 체질에 불과한 것이라...저로서도...’


‘...그러면 이 아이가 계속 무공을 수련한다면 어떻게 되는 것이오?’


‘...별다른 문제는 없을 것입니다. 다만...’


‘다만?’


‘확실한 것은 아니나, 남들만큼의 같은 성취를 얻는데 갑절의 노력이 필요할 것입니다.’


‘허...허.허허허허허. 결국 똑같은 시간을, 똑같은 노력만을 가지고 수련한다면 남들보다 뒤쳐진다는 소리 아니오?’


‘...’


그 의원 노인네는 결국 아버지의 말에 대답을 하지 않았다. 잠시 뜸을 들이던 그가 다시 입을 열었다.


‘위안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제가 보기엔 저 아이의 오성(悟性)은 나쁘지 않습니다. 아니 평범한 이들보다는 훨씬 나아 보이는군요. 신이란 것이 존재한다면 나름대로 공평한 처사라고 해야 할지도 몰지도 모르겠군요.’


‘반쪽짜리란 얘기군 후...’


‘흠. 흠.’


악화결은 그 때 보았던 악명경의 얼굴을 지금도 잊을 수가 없었다. 그렇기에 지금까지 죽을 힘을 다해 노력해왔건만...


악화결 역시 어렴풋이 느끼고 있었다. 숭협련에 불어오는 변화의 바람을. 하지만 악명경이 이런 결정을 내릴 것이라고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아니,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지금까지 스스로가 의도적으로 회피한 것일지도 모른다.


악화결의 마치 시간이 멈춘 것처럼 멈춘 채 어떠한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아니 하지 않았다는 것이 더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지금 이 순간을 받아들이고 싶지 않은 탓인지 그의 머리는 계속해서 과거의 시간을 헤맬 뿐이었다.


“@$^#$...!!!”


분명 자신의 아버지가 무어라 말하고 있음에도 악화결의 귓가엔 무엇 하나 들리지 않았다. 지금의 그에겐 천지가 무너진 듯했다. 몸은 묘한 탈력감과 불쾌한 부유감에 사로잡혔고 머릿속에서는 과거의 그림자들이 스쳐 지나갔다.


허나 그럼에도 시간은 멈출 수 없는 것.


냉정한 현실이 기어코 멍에마냥 그를 구속하고 현실로 끌어내렸다..


터억!


악명경의 손이 어깨에 올라가자마자 악화결은 흠칫 몸을 떨었다. 어깨에 느껴지는 체온이 느껴지게 되자 그의 정신이 되돌아온 것이다.


“아..”


무어라 말을 내뱉지 못하고, 그저 뜻을 이루지 못한 소리만이 입안을 맴돌았다.


“정신 차려라!!!”


“아..아아..”


마비된 육체가 비로소 현실을 받아들이기 시작했지만 악명경은 그것을 기다릴 여유는 없었다. 아니 오히려 기회라고 생각했다.


자신의 아들의 눈빛에 초점이 돌아온 것을 눈치챘지만 그는 냉정하게 부정을 억누르고 생각했던 그대로를 실행하기 시작했다.


“이 머저리 같은 놈!!”


퍼억!


노성과 함께 내리 떨어진 벼락.


“커억!”


턱을 꿰뚫린 고통을 느끼기도 전에 악화결이 바닥을 굴렀다.


바닥을 뒹굴고 바닥에 한참을 엎어지고 나서야 그의 눈이 돌아가기 시작했다. 정신이 조금 돌아오자 그는 방금 전에 무슨 일이 있어났는지를 파악하기 위해 애썼다.


그가 흩어져 가는 의식을 간신히 그러모아 상황을 파악했을 때 부친의 음성이 그의 귓가를 연이어 때렸다.


“어찌 악가에 너 같은 놈이 나올 수 있단 말이냐.”


“...”


악화결이 낙담과 절망이 그대로 얼굴에 드러났지만 악명경은 말을 멈추지 않았다.


“무인의 길을 걷겠다는 놈이 불의의 기습에 나뒹굴고 일어나지도 못하는 꼴이라니...아비로서 아니 스승으로서 차마 얼굴을 들지 못하겠구나.”


“크...”


악화결이 있는 힘껏 일어나 보려고 정신을 집중하지만 그의 몸은 요지부동. 그저 입가에서 흘러내리는 핏방울의 떨어지는 속도만 빨라졌다.


그로 그럴 것이 절정지경에 발을 디딘 이의 일격이기에 그럴 수밖에 없는 일이었다. 정신이 라던가 의지만으로 어찌할 수 없는 문제였다.


만약 절정고수가 마음먹고 날린 일격이었다면 타격부위는 물론 주변의 기혈과 혈도들까지 상해 심할 경우엔 목숨이 위태로울 터.


물론 아무리 악명경이 살심을 품지 않고 가벼이 날린 주먹이라 할지라도 그 위력은 악화결의 몸의 자유를 앗아가기엔 충분한 것이었다. 하물며 애초에 그것을 노리고 주먹을 날렸으니 악화결이 몸을 움직일 수 있을 리 없었다.


일어나는 것은 한없이 멀고, 손가락 하나 움직이는 것조차 여의치 않았다.


“정말이지 내가 내린 결정이 옳았음을 네가 지금 증명해주는구나. 긴말은 필요 없다. 당장 악가는 물론 숭협련에서 떠나거라. 처음부터 네 자리는 여기에 없었느니라.”


“아...아..버...”


“네 자리는 마용휘(馬寵輝) 그 아이가 그대로 이어받을 것이니 네가 거리낄 것은 하나도 없다. 숭협련에서 나간다면 즉시 숭협련은 물론 강호에 몸을 담았다는 일 자체를 잊어라.”


“...”


악화결의 말이 멈추었다. 다만 그 이유는 악명경의 일격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의 눈에 들어온 것. 바로 그것이 그를 멈춰 세웠다.


악명경의 손에서는 무언가가 떨어져 내리고 있었다.


‘...피?’


악화결은 흐릿한 의식 속에서 붉은 무언가가 반짝이는 것을 깨달았다. 힘이 잔뜩 들어간 것처럼 긴장되어 있는 손에선 피가 흘러내리고 있었다. 절정지경에 이른 고수의 손이 단순히 하급 무인의 몸을 쳤다고 피가 흘러내리는 일은 불가능이라고 봐도 좋은 일. 그렇다면 어째서 그의 손에서 피가 흘러내리는 것일까?


자세히 들여다보면 악명경의 손은 부르르 떨리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아무리 모진 척을 한다고 한들 속마음은 숨기지 못한 것이다. 끓으려야 끓을 수 없는 부정과 격동이 그의 손에서 흘러나오고 있었다.


악화결의 경악으로 인한 침묵은 길지 않았다. 악화결이 놀란 눈으로 자신을 쳐다본 것을 느낀 악명경은 다음 행동에 나섰다.


“제 발로도 일어나지 못하겠더냐? 하아.”


속마음과는 달리 그의 입에서 말은 서릿발처럼 차갑기 그지없었다. 손에서 흘러내리는 피에 혈육의 정을 모두 쏟아버리기라도 한 것처럼 말이다.


“거기 누가 없느냐!!”


악명경의 말에 밖에서 대기하고 있던 하인들이 움직였다.


파바바바바박.


수많은 발소리가 집무실 안까지 울렸다.


집무실에서 한 번도 들려오지 않았던 노성과 소음에 하인들 또한 마음을 졸이며 바깥에서 대기하고 있었던 것이다. 허나 들어오자마자 들려온 명령은 그들의 예상과는 한창 동떨어진 것이었으니.


“저 못난 놈을 집어다 내 치거라. 이 악가에서 쫓아내는 것이 아니다. 숭협련에서 쫓아내는 것이니 숭협련의 정문까지 저놈을 옮겨 던지거라.”


가주의 명령이 떨어졌음에도 움직이는 이는 없었다. 여섯 명의 하인들은 그저 자신들이 제대로 들은 것이 맞는 것인지 눈을 껌뻑거릴 뿐이었다.


“갈(喝)!!!!!”


악명경의 심후한 내공이 담긴 소리가 집무실 안을 울렸다. 하인들은 귀청이 떨어질 것만 같아 인상을 찡그리거나 귀를 틀어막을 정도였다.


“무얼 하고 있는 것이냐.”


“...”


“어허. 이놈들이. 이것은 악가의 가주로서만 내리는 명이 아니다. 숭협련의 천무령주로서 내리는 명이니라.”


악명경이 숭협련의 이름과 직위를 입에 담고 나서야 하인들은 그제야 악명경의 명이 진짜임을 깨닫고 움직이기 시작했다.


“도련님...죄송합니다.”


누군가는 사죄를 하고, 누군가는 눈물을 글썽이기도 했다. 허나 그들로서도 악명경의 지엄한 명을 거역할 수는 없었다.


악화결은 그렇게 하인들의 손에 들려져 밖으로 향했다.


바깥으로 향하는 하인들의 귓가에 악명경의 전음(轉音)이 꽂혔다.


“사람들이 잘 볼 수 있도록 요란히 던지도록. 내 필히 확인해볼 것이니 꼭 그리 하도록.”


악명경의 냉정한 말에 하인들은 몸서리쳤다. 마치 사람이 백팔십도 달라진 까닭에 잠시 고민했지만 애초에 답은 정해져 있었다. 애초에 악가가 보관하고 있는 물건에 지나지 않는 자신들이었다. 악가의 가주가, 숭협련의 령주가 내린 명을 어찌 거역할 수 있음이랴.


더군다나 자신들의 가족들 또한 숭협련 내에서 생활하고 있지 않은가. 그들이 할 수 있는 것은 그저 악노성에 용서를 비는 것뿐이었다.


쾌활하고 명랑한 악화결과 정을 쌓은 것도 이미 십년은 족히 지난 그들이었기에 더욱 죄책감이 클 수밖에 없었다.


그들은 그저 가만히 있는 악화결을 고통스럽지 않게 든 채 사람들이 잘 보이는 대로변을 지나 숭협련의 정문으로 향했다.


천무령주의 아들로서 그의 얼굴을 모르는 자는 숭협련 내에 많지 않았고, 대로변에 있던 사람들은 들려 나가는 악화결을 알아보고 수군대기 시작했다.


그것을 모를 악화결도 아니었지만 지금의 그에게는 그딴 것들은 아무래도 좋은 일이었다. 좌절감, 그 구렁텅이의 바닥을 헤매는 자에게 그런 것이 자신에게 들어올 여유가 어디 있겠는가.


수군대는 이들 중 몇몇은 자신들이 속한 문파나 가문으로 향하기 시작했다. 그러는 와중에도 악화결과 하인들은 죽죽 나아가 마침내 숭협련의 정문까지 이르렀다.


그들은 차마 바로 냅다 던지지는 못하겠는지 악화결을 살며시 바닥에 내려놓았다.


“도련님...”


하인들 중 가장 악노성과 정이 깊었던 갈홍이 애달프게 악화결을 불렀다. 허나 악화결은 여전히 반응이 없었다. 마치 영혼이 깨져버린 사람처럼. 긴 대로변을 지나올 때에도 반항 한 번 안 하지 않았던가.


“도련님...한 번. 한 번쯤은 가주께 반항을 해보시는 것도...”


‘반항?’


악화결의 눈길이 드디어 움직이며 갈홍을 바라보았다.


“반...항?”


“네. 여기서 한번 소동을 부리면 가주께서도 체면을 생각해서 결정을...물리실수도...”


“하...하하...”


메마른 웃음이 악화결의 얼굴에 드리웠다.


‘반항 따위가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애초에 그렇게 굳게 결심하신 분에게.’


지금 악화결에게 있는 것은 그저 자신에 대한 절망과 분노 뿐이었다. 반항 따위에는 추호도 생각이 없었다.


“의미 없는 짓이야.”


“...”


마치 영혼이 빠져나간 듯이 생기 없는 악화결의 표정과 어조에 갈홍은 차마 말을 잇지 못했다. 자신의 아버지에게 직접 얻어맞고 내쫓겨나는 자신의 작은 주인에게 더 이상의 말을 한다는 것은 이분을 두 번 죽이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의 표정이었다.


“...”


갈홍이 단념하자 다른 하인들이 갈홍에 눈으로 신호를 보내었다. 하인들이 마음을 정하고 움직이려는 순간, 차분한 음성이 들려왔다.


“잠시만요.”


차분한 여자의 목소리가 그들의 행동을 붙잡았다. 악화결은 목소리가 들려오자 반사적으로 일어나기 시작했다.


그녀의 이름은 왕연리, 강호의 동도들은 라고도 불렀다. 또한 그녀는 악화결의 태중혼약녀이기도 했다. 강호에서도 절색으로 소문난 그녀답게 주의의 이목을 확 잡아끄는 미모였다. 자신의 약혼녀를 봤음에도 악화결의 표정은 변함이 없었다.


지금의 그에게, 아니 애시당초 그에겐 아무런 의미가 없는 그녀였다. 악화결에게 있어 그녀는 그저 가문이 정해준 혼약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


악화결의 시선이 천천히 그녀에게 향했지만 아무런 말도 내뱉지 않았다. 지금 감정의 구렁텅이를 헤매는 그에게 그녀는 그저 길바닥의 바위와 큰 차이가 없었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인가요?”


그녀가 물었음에도 악화결은 딱히 대답하지 않았고, 그녀가 악가의 하인들에게 시선을 돌리자 갈홍이 나서 전후사정을 설명했다.


“...이렇게 된 일입니다.”


왕연리가 사정을 듣고 화가 치밀어 올랐는지 상기된 얼굴로 입을 열었다.


“악 가주님이 어떻게 이런...너무하시는군요. 저희 가문은 물론 제 의향도 듣지 않고 결정하시다니. 제가 가서 가주님께 단단히 따지겠습니다. 그러면 가주님께서도 분명-”


“그만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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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6화-구명지은 24.09.01 159 2 12쪽
5 5화-승리 24.08.27 180 4 14쪽
4 4화-낭인촌 24.08.25 198 3 12쪽
3 3화-혼의 울림 24.08.24 201 5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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