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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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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24 1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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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03 1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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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화-승부의 끝

DUMMY

충격일 수밖에 없었다.


무흔무영보가 창안되고 삼백년 정도의 시간이 흘렀다. 그 동안 무흔무영보가 깨진 적은 단 세 번.


그 세 번의 패배마저도 시전자의 내력이 달렸거나, 일점에 집중하는 속도가 떨어졌거나...아니면 무흔무영보 이상으로 환(幻)이 뛰어났을 뿐이다.


결코 하수에게 간파당할 리 없는 고절한 무공이라고 생각해왔던 양은월이기에 그 충격은 클 수밖에 없었다.


“너...뭐냐.”


“...”


지금 악화결에게 그녀의 물음에 대답할 여유는 없었다. 상대의 움직임을 보지도 않고 피한다는 악조건 속에서 아무렇지 않을 수 있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특히나 지금 악화결은 모든 신경을 양은월에 발끝에 집중하고 있었다. 칠할 정도는 양은월의 발을 보고 파악하고, 나머지 삼 할은 공격의 낌새를 감으로 느끼고 보충하는 것에 가까웠다.


기감도 아닌 감. 말 그대로 눈을 가리고 아슬아슬한 줄타기 곡예를 펼치고 있는 것이었다. 한순간 어긋난다면 그대로 곤두박질쳐 떨어질지도 모르는 그런 상황 속에서 소모되는 신경과 체력은 이루 말 할 수 없었다.


스윽!


양은월이 발을 움직였다. 그 순간 악화결이 몸을 움찔했다.


‘...이 녀석...내가 완전히 움직이기도 전에...반응하고 있어. 설마!!?’


양은월은 방금 떠올린 생각을 바로 부정했다.


‘그럴 리가...그럴 리가 없어.’


발의 움직임만으로 상대의 공격을 예측하고 분간한다고?


설사 삼류의 공격이라 해도 감히 할 수 없는 그런 기예이거늘, 하물며 자신이 익힌 보법이 어떤 것인가.


무흔무영보. 강호상에서 으뜸이라고 할 정도는 아니어도 수백년 간 강호의 일절로 불려왔던 무공이었다.


일류 고수가 발만을 뚫어져라 본다고 해서 간파당할 무공도 아니었고, 더군다나 이제 막 무공에 입문한 코흘리개가 알 수 있는 것은 더더욱 아니었다.


양은월은 설마 하는 심정으로 다시 초식을 펼쳤다. 양 손에 들린 단도가 날카롭게 날아들었다.


단도가 악화결의 가슴부 요혈을 찌르기 직전, 악화결이 뒤로 한걸음 물러났다. 절묘하게 맞아떨어지는 그 움직임에 단도는 허공을 갈랐지만 양은월의 공격은 그걸로 끝이 아니었다.


돌아가던 단도가 순간 꿈틀대며 다시금 악화결의 목을 노렸다. 그 변화는 매끄럽기 짝이 없어 악화결이 막거나 피하지 않는다면 목을 꿰뚫을 것이 자명했다. 단도가 매섭게 날아드는 순간 악화결이 팔꿈치를 들어 올리며 악화결의 손목을 밀어 올렸다.


그 결과 단도는 양은월이 그렸던 궤도에서 벗어날 수밖에 없었다.


“큿...”


순간적으로 당황한 양은월이 급하게 물러났다.


“사초.”


양은월의 귀에 악화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런...”


자신도 모르게 속 마음을 입에 담은 그녀였다.


‘이런 일이...이런 것이 가능하다고?’


충격에 젖은 양은월은 움직임을 멈춘 채 잠시 생각에 잠겼다.


‘후발선제(後發先制)의 묘리를 그대로 보여주고 있어. 어떻게...’


양은월은 자신이 안 좋은 악몽이라도 꾸고 있나 싶은 심정이었다. 악화결같은 하수가 보일만한 묘리가 아니었다. 특히나 그런 묘리를 체화했다면 애초에 서문휘 정도에게 그렇게 고전했을 리도 없었다.


‘알고 있었던 것을 위기에 몰려서야 구사할 수 있게 된 거냐...그도 아니면 지금 이 순간에 개화한 재능인 거냐...’


둘 중 어느 것이든 말이 안 되는 얘기라는 것은 양은월 스스로도 알고 있었지만 그렇지 않고서는 지금 상황이 설명이 되지 않았다.


게다가 처음에는 자신의 하반신을 보는가 싶었는데 그것도 아니었다. 애초에 자신의 무릎과 다리 움직임에도 상대의 눈을 속이는 변식(變式)이 담겨져 있었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상대를 현혹시키는 무흔무영보가 아니었던가.


분명 악화결이 반응하고 있는 것은 자신의 발목 아래 부분이었다. 그렇지 않고서는 나올 수 없는 반응들이 있었다.


‘아니...아무리 발의 움직임을 읽었다고는 해도 상대의 공격의 날아드는데 그것을 제대로 보지도 않고 자신의 판단에 몸을 던진다고?’


‘아차하면 목숨 혹은 무인의 생명과도 같은 근맥이 날아가는데?’


양은월은 오싹함에 몸을 떨었다.


자신이라면. 자신이라면 절대 하지 않을 짓을. 아니 누구라도 하지 않을 짓을 하고 있는 괴물을 바로 눈앞에서 보고 있다는 생각에 격동할 수밖에 없었다.


남은 것은 단 사초.


양은월은 초조함보다는 약간 몸이 달아오르는 것을 느꼈다. 지금에 이르러서 내기 따위는 머리 한 구석으로 밀려나고 빈자리는 호승심, 호기심이 채워나가기 시작했다.


그녀 역시 칼밥을 먹고 사는 무인이었기에.


마음을 다 잡은 그녀가 길게 숨을 내쉬었다.


“하아아아아아아...”


“...”


악화결은 양은월의 긴 호흡에 다시 마음을 다잡았다. 그녀가 진지해졌다는 것을 바로 느꼈기 때문이다.


‘사 초. 사초만...’


“너를 무시했던 것을 사과하마. 남은 사 초, 제대로 간다.”


그녀의 몸에서 날카로운 기세가 흘러나왔다.


“...”


악화결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고 이를 악물어 기세에 대항했다. 지금 그는 말 그대로 필사적이었다. 이미 육 초식을 버티는 동안 체력은 물론 정신력과 기력은 모두 깎여 나간지 오래였으나 그저 의지만으로 버티고 있었다.


두 사람의 기합과 의지는 점점 높아졌고, 이윽고 양 쪽 모두 최고조에 이르렀다. 그 순간, 잔잔해진 싸움의 양상이 돌변했다.


양은월은 다시금 무흔무영보를 전력에 가깝게 펼쳐내기 시작했고, 그와 정반대로 악화결은 이를 악문 채 양손을 들어 올린 그대로 방어자세를 굳혔다.


‘온다!!!’


스스로에게 외치듯 말한 악화결은 양은월이 지척으로 다가들기도 전에 움직였다. 여태까지와는 전혀 다른 반응이었다. 속도에서 뒤쳐지기에 계속 후수를 취할 수밖에 없었던 악화결이 상대의 공격이 날아들기도 전에 움직인 것이다.


양은월이 내공을 최고조에 가깝게 끌어올리자, 그 속도를 몸으로 느낀 탓이었다. 빨라진 공격을 마냥 기다리면 제대로 피해낼 수 없다는 것을 바로 느낀 것이다.


솨아악.


그 예상은 그대로 맞아떨어졌다. 양은월의 단도가 치켜 올라가며 악화결의 뺨에 생채기를 낸 것이다.


‘칠!!!’


그 순간 올라갔던 양은월의 단도가 뒤집히며 벼락처럼 떨어졌다.


‘크으읍’


순간적인 연환초식에 악화결이 양 팔을 들어올렸다.


푸욱!!


“크으으읍!!”


단도가 그대로 악화결의 어깨에 박혔다. 양팔을 들어 올려 공격의 기세를 죽이지 않았다면 분명 단도가 어깨를 관통했을 순간이었다.


‘파...팔...’


양은월은 회심의 공격이 먹히자마자 단도를 빼내며 뒤로 물러났다. 보통 이런 상황이었으면 발로 차서 떼어놓겠으나 지금은 십 초식의 제약이 있는 바. 다음으로 이어지지 않는 단순한 발차기로 한 초식을 낭비할 수는 없었다.


뒤로 물러난 것과 거의 동시에 양은월의 발이 바닥을 쓸며 날아들었다. 악화결의 균형을 잃게 만들기 위한 하단 차기였다.


퍼억!


발차기가 그대로 악화결의 오른발에 적중했다.


“큭...”


‘구...’


‘기회!!’


악화결이 오른발이 무너지는 것을 보자마자 양은월이 달려들었다. 교차한 단도가 양쪽팔의 근맥을 노리고 날아들었다.


그 순간 악화결의 눈에서 날카로운 신광이 번뜩였다.


‘시....십 초.’


말 그대로 마지막의 마지막 순간 악화결이 움직였다. 불안정한 자세 속에서 악화결이 선택한 것은 바로 공격이었다.


‘뭣?’

서로의 공격이 교차했다.


악화결의 손은 붕권이 되어 양은월의 복부에 박혔고, 양은월의 단도는 어깨 위쪽을 가르고 지나갔다.


“우웩!”


주먹을 내지르고 있던 악화결이 피를 토했다.


“쿨럭...쿨럭...”


악화결은 피를 토하다 그대로 앞으로 넘어졌다. 무릎을 꿇고 부들거리는 손으로 간신히 버티고 있는 모습이었다. 이것이 일반적인 비무였다면 백이면 백 여력이 남아 있는 양은월의 승리겠으나...이것은 조건이 걸린 승부.


양은월은 어리둥절한 얼굴로 자신의 복부와 피를 토하는 악화결을 번갈아 쳐다보았다.


“...쿨럭. 내가...내가...”


“...그래. 네가...이겼다.”


콰당.


양은월의 목소리가 들리자마자 악화결이 짚고 있던 한쪽 팔이 무너지며 앞으로 엎어졌다. 승리를 얻자마자 혼절한 것이다.


양은월은 손을 자신의 복부로 들어올렸다. 아직도 믿기지 않은 탓이었다.


‘...마지막 그 순간에 공격이라고? 내가 전력을 기울일 때부터 처음부터...이것을 그렸던 거냐?’


양은월의 생각대로 이 모든 싸움은 악화결이 맨 처음 그렸던 그대로였다. 잘 짜인 연극처럼 말이다.


환(幻)의 극의라고도 할 수 있는 양은월의 보법을 보고, 안법 수련을 한 눈으로 대응하는 것은 무리라 판단한 악화결은 반대로 시야를 발만으로 제한한 것은 두 가지 이유에서였다.


환에 속지 않기 위한 것이 첫째이고, 둘째는 발만으로 상대의 움직임을 파악하고자 한 것이다.


아무리 변화무쌍한 보법이라도 해도 나름의 규칙성이나 특정한 호흡이 있기 마련. 악화결은 그것을 읽기 위해 발에 시야를 집중한 것이다.


물론, 그것만으로 부족하기에 간간히 상대의 몸이나 공격을 슬쩍 보았고, 첨예해진 자신의 감과 육체의 감각만으로 무흔무영보에 대적한 것이다.


이것은 무흔무영보의 창시자로서도 예견치 못한 일이었다. 안법 수련에 집중하는 무인들의 생리를 노리고 만든 보법을 설마하니 발의 움직임과 감만으로 타파한다는 것을 어떻게 상상할 수 있으랴.


그렇게 악화결은 무흔무영보에 맞춰 초식을 펼쳐내는 양은월의 공격을 어느 정도 예견했고, 그것은 그대로 맞아떨어진 것이다. 하지만 속도의 차는 어쩔 수 없었기에 양은월의 하단차기는 맞을 수밖에 없었고, 그 순간의 기치로 그것을 오히려 공격으로 전환한 것이다.


그 결과 모양새는 양패구상에 가깝게 나왔고, 그것만으로 악화결은 자신의 승리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십 초는 지나갔기에.


양은월은 한동안이나 패배의 충격에 정신을 차리지 못했고, 뒤늦게 정신을 차리고는 악화결을 집으로 옮겼다.



***



“으...으...”


악화결이 다시 일어난 것은 오일이 지나서였다.


“무...물...”


침상을 더듬던 악화결이 잠에 젖은 채 발을 침상아래로 뻗었다.


“크악!”


“쯧.”


악화결의 비명소리에 다른 방에 있던 양은월이 혀를 찼다.


“무리하지마라 멍청아.”


“...크으으으...”


“경력이 실린 발차기를 맞은 데다 그런 발을 억지로 축발로 써서 다리 전체가 엉망이니까.”


“으으으으.”


다리를 붙잡고 있는 악화결의 손을 밀어낸 양은월이 젖은 수건으로 다리를 덮었다.


“후우우...”


차가움에 간신히 정신을 차린 악화결이 한숨을 내쉬며 마음을 가다듬었다.


“당분간 무리하지 않는게 좋을 거다.”


“...내 승리 아닙니까?”


“...그래. 네 승리다.”


“하...하하...”


악화결이 웃자 양은월이 인상을 찡그렸다.


“좋아하기는...”


“하하하하하...”


양은월의 핀잔에도 악화결은 웃음을 참을 수 없었다. 처음으로 자신의 무공으로, 자신의 힘으로 자신이 원하는 바를 이룬 것이다.


자신의 목숨을 자신의 힘으로 쟁취한 것이나 다름없는 일이었다. 무가에 태어난 그로선 무인의 생명은 목숨보다도 중한 것. 그렇기에 더욱 감회가 남달랐다.


“좋아 죽는구나.”


터억!


악화결의 옆, 침상에 책 하나가 던져졌다.


“그런 걸로 좋아하다간 너...이 마을에서 못 살아남는다.”


“이...책은?”


“익혀봐라. 나보단 네게 더 필요해보이니까 말이다.”


책의 겉장에는 초서(草書)로 이렇게 적혀 있었다.


무흔무영보(無痕無影)


작가의말

재밌게 보셨다면 추천 선작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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