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방무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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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미
작품등록일 :
2024.08.24 1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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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24 2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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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쪽

3화-혼의 울림

DUMMY



“네?”


“그만두라고 했다.”


그 목소리는 마치 심연에서 간신히 흘러나오는 것처럼 느껴졌다.


“...무슨...정말 그래도 괜찮다는 건가요?”


왕연리는 눈을 파르르 떨며 말했다.


“다시 한 번 말해 보세요. 화결. 정말로 가문을, 아니 달리 묻겠습니다. 저를 이렇게 잃어버려도 괜찮다는 건가요?”


“...슨 의미가 있지?”


“네?”


너무 작은 소리에 왕연리가 되물었다.


“너와 난 가문이 정해준 관계, 그것만이 전부다. 즉 내가 악가에서 쫓겨난 지금에 와선 아무 의미도 없다는 말이다.”


“...진심인가요?”


“...”


“진정으로 그렇게 말하는 거냐고 물었습니다.”


“......”


악화결은 한참을 침묵했다. 그의 눈길은 분명 눈앞의 왕연리를 향해있지만 그녀를 보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


지금 이 순간 악화결의 머릿속에 스쳐 지나가는 것은 왕연리와의 추억 같은 것이 아니라 그저 자신의 아버지 악명경의 말과 얼굴이었다.


그렇게 지난 일들을 떠올리는 사이 초점이 없던 악화결의 눈에 잠시 후 빛이 돌아왔다. 그제야 왕연리의 모습이 악화결의 눈에 들어왔다.


“그래. 그렇게 생각한다.”


잠시 그녀를 응시하던 악화결이 씹어뱉듯이 말했다.


“...당신은 정말 어쩔 수 없는 바보군요.”


악화결은 그녀의 말에 손이 떨려왔다.


‘그럴지도.’


악화결은 속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을, 자신의 운명을 받아들이기로 한 그는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이게 마지막이 될지도 몰라요. 진짜 마지막으로 물을게요. 지금 당신이 한 마디만 한다면 저는 왕 가의 모든 힘을 동원해서라도 악 가주와 숭협련의 수뇌부들의 결정을 바꿀 거예요. 한 마디만. 한 마디만 해줘요.”


“...”


“저를 잃기 싫다는 말 한 마디만.”


“...아버지의 결정이야. 나는 따라야만 해.”


악화결의 말에 왕연리의 눈가에 경련이 다시금 일어났다.


“정말이지 당신은 마지막까지...”


왕연리는 그대로 뒤를 돌아 발걸음을 옮겼다. 추호의 미련도 없다는 듯이 한 번도 돌아보지 않은 채, 그대로 떠나갔다.


악화결은 그녀가 떠나가는 것을 그저 지켜보기만 했다. 이미 아버지의 결정을 받아들이기로 한 자신이 무엇을 할 수 있단 말인가.


다시 그녀를 붙잡는 것도, 그녀의 이름을 불러보는 것도 그 어떠한 것도 할 수 없었다. 딱히 그녀를 사랑했던 것은 아니었다. 아직 사랑이란 것을 제대로 느끼기엔 악화결은 어렸고, 그런 것에 눈을 돌릴만한 여유도 없었다.


단지...그저 단지 자신의 것을 모두 잃어버리고 숭협련에서 사라지는 자신을 용서할 수 없었을 뿐이다.


마용휘(馬寵輝).


마용휘는 악명경이 받아들인 자신의 사제였다. 자신이 봐도 부러운 녀석이었다. 백년에 한번 있을까 말까한 근골이라고 주위 사람들이 칭송할 정도니 두 번 말해 무엇 하겠는가.


그렇게 모든 것을 가지고 태어난 자의 삶이란, 기분이란 어떤 것일까?


지금의 자신으로선 알 수 없었다. 아니 평생 알 수 없을지도 몰랐다. 이제 혈혈단신으로 살아가야 하는 자신이 그를 떠올리고, 시기하는 것 자체가 그야말로 경화수월(鏡花水月)이란 말에 너무나 잘 어울렸다.


거울에 비친 꽃과 물에 비친 달.


말 그대로 영원히 닿을 수 없는 것에 손을 내미는 어리석음. 악화결은 평소 가지지 못한 자가 있는 자를 시기하는 것은 어리석음이라고 생각해왔지만 이렇게 막다른 곳까지 몰리자 그 역시 마용휘를 질투하고 또 운명을 저주할 수밖에 없었다.


‘빌어먹을. 나에게 그 녀석 만큼만. 아니 평범한 몸만 타고 났더라면...’


그렇게 생각에 잠긴 악화결이 꼼짝도 않고 생각에 잠겨있자 한 시진 넘게 기다리던 하인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가주의 엄명이 있었기에 그들로서도 어쩔 수가 없는 노릇이었다.


“죄송합니다. 도련님.”


갈홍이 속삭임에도 악화결은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하인들이 악화결의 눈치를 살피며 사지를 잡고 들어 올렸음에도 아무런 반응도, 말도 없었다.


그저 텅 빈 눈동자로 청명한 하늘을 올려다 볼 뿐이었다.


콰당!!


숭협련의 정문이 열리고 그 사이에 악화결이 짐짝마냥 거칠게 던져졌다. 악화결은 바닥에 등을 댄 채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끼이이이이이이익!!


악화결이 가만히 하늘을 올려다 보는 사이 정문이 서서히 닫혀갔다.


숭협련과의,


자신이 태어난 악가와의,


인연이 끊어진 것이다.


“으....아아아아아아아.우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문이 완전히 닫히고 잠시 후 비로소 악화결이 울부짖기 시작했다.


세상천지에 홀로 떨어진 절망과 고독감이 몸을 휘감았다. 지금의 그에겐 등을 대고 있는 땅과 세상은 그저 산산이 조각난 것으로밖에 느껴지지 않았다.


차가운 땅과 맞대고 있는 등은 물론 흙에 닿아있는 손 역시 어떠한 느낌도 느낄 수 없었다.


그렇게 악화결은 추방되었고, 세상에 홀로 떨어졌다.



***



말 그대로 속세와의 인연을 잃어버린 자가 갈 곳은 많지 않다. 아니, 악화결은 애초에 어딘가에 갈 생각도 떠올리지 못했다.


그저 발길가는대로 헤맬 뿐.


꼬르르르륵.


그 와중에도 그의 몸은 산 자답게 자연스러운 반응을 내보였다. 물론 몸의 주인에게는 딱히섭취에 대한 생각이 전혀 존재치 않았지만 말이다.


허나 그렇다고 사람이 몸의 생존 본능을 완전히 무시할 수 있는 것도 아니긴 하지만 말이다.


그저 발길이 닿는 대로 걷기만 하던 그였지만 비가 내리면 악화결 자신도 모르게 입을 벌리고 빗물을 마시거나 입가의 비를 혀로 훔쳤다.


몇날 며칠을 그렇게 헤매었을까.


악화결은 산중턱에 호수가 보이자 그저 자연스럽게 발길을 옮겼다.


뚝뚝.


손으로 호수의 물을 퍼 올리고는 입가로 가져가 마셨다.


악화결의 눈에 호수에 비친 자신의 모습이 비쳐졌다.


“후..후후...”


자신의 한심스러움에 그의 입에서 자조어린 웃음이 흘러나왔다.


모든 것을 잃었음에도 빗물을 마시고, 호수에 다가와 물로 배를 채우는 자신의 모습이 견딜 수 없었다.


그 자신의 생각으로는 그저 추하기 그지없었다.


“이런 지경에 이르러서까지...살고 싶은 건가?”


악화결은 스스로 물어보았다. 살아야 할 이유도, 살아갈 의욕도 아무리 생각해도 느낄 수 없었다.


그럼에도 자신은 추하게 목숨을 연명하고 있었다.


‘죽고 싶은가?’


‘모르겠다.’


악화결은 마치 자신이 두 명이라도 된 것처럼 자문자답을 이어나갔다.


‘정말로 죽고 싶은가?’


‘모르...겠-’


‘정말로 죽고 싶은가?’


스스로의 대답을 끊어버리는 스스로의 물음.


‘...죽고 싶지는 않아. 아니...이대로 죽을 수는 없어.’


진실 된 혼의 울림이 악화결의 마음속에서 울려 퍼졌다. 그렇다. 스스로 모든 것을 포기했다 생각했지만 자신은 그 무엇도 포기하지 못한 것이다.


단순히 근골을 타고나지 못했다는 이유만으로 이렇게 모든 것을 잃고 죽을 수는 없었다.


적어도...


적어도 자신의 살다 갔다는 사실만은 남겨두고 싶었다.


자신의 진실 된 마음을 깨달은 악화결의 눈빛에 생기가 돌아왔다. 생기가 돌아오자마자 그는 발을 움직였다.


물론 생기가 돌아왔다고는 하나 그가 하는 행동은 똑같았다. 빗물을 마시고, 강가나 호수의 물을 마시고 그렇게 발을 옮겼다. 수중에 돈이 하나도 없는 그가 달리 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


천생 도련님으로 자라온 그가 구걸이라는 행위를 떠올릴 수 없는 것은 당연했다. 그는 거리에서 귀동냥 하며 북쪽으로 향했다.


강남, 즉 강소성을 벗어나 계속해서 북쪽으로 향하자 산동성에 도착했고, 계속해서 위로 올라가 마침내 하북과 산동의 접경 부근까지 이르렀다.


그렇게 피골이 상접한 그의 눈에 들어온 하나의 마을이 있었다.


낭인촌.


그것이 그 마을의 이름이었다.


마도천하의 시대 속에서 적응하지 못하거나 모든 것을 잃어버린 자들이 모였다는 마을.


허나 그 안을 들여다보면 정파는 물론 정사중간의 고수들이 상당수 모여 있다는 마을이었다. 숭협련에서 그 이야기를 한 번 들은 적이 있는 악화결은 귀동냥하고 길을 물으며 간신히 이곳까지 당도한 것이다.


“후욱.”


깊게 숨을 들이마신 악화결이 발걸음을 낭인촌으로 향했다.


마을의 입구처럼 보이는 길목에는 비석 하나가 덩그러니 놓여있었다. 그 비석에는 예리한 무언가로 글이 적혀져 있었다.


‘낭인촌’


악화결의 눈길이 비석에서 머물렀다. 단순히 도구를 이용해 새겨진 것이 아니었다. 분명 고수가 무언가를 이용해 새긴 것이 틀림없었다.


비록 자신의 무공은 형편없을지언정 무공을 안목은 나쁘지 않다고 생각하는 악화결이었다.


무공에서 본다는 것은 무척이나 중요한 일이었다. 물론 고수가 된다면 기감으로 사물을 느낄 수 있다고는 하나 그 자체만으로 무척이나 지치는 일이었고, 눈의 단련은 필수적인 것이다.


악화결의 발달하지 못한 단전과 경맥으로는 얼마 되지 않는 무공수련만으로 금세 지쳐 아무것도 할 수 없었고 그런 그에게 할 수 있는 것은 그저 지켜보는 일 뿐이었다.


물론 본다는 것은 아무 의미 없이 보기만 한다면 그저 의미 없는 행위로 끝나버린다. 하지만 강해지기를 꿈에서마저 갈망하는 악화결이었기에 달랐다. 남들이 지쳐 그저 멍하니 있을 때에도 그는 숭협련 내의 실력자들의 움직임을 항상 눈으로 쫓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홀로 재현하고자 수없이 노력했다. 물론 그의 몸이 눈으로 이해한 것을 그대로 재현해주지는 않았지만 그 피땀 어린 노력은 헛된 것이 아니었다.


그의 눈은 서서히... 고수들의 움직임과 그 경지를 엿볼 수 있는 경지에까지 이른 것이다.


기술의 흐름과 숨결, 박자는 물론 근육과 경맥의 변화까지.


무공에 있어 가장 필요한 것을 얻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물론 그런 사실까지는 알고 있지 못하는 악화결이었지만 어쨌든 다소 안목에 자신이 있는 그 스스로가 보기에 이 비석의 문자는 평범한 것이 아니었다.


‘도대체 무엇으로 새긴 거지?’


‘검기인가? 지공? 판관필?’


도무지 상상이 가지 않았다. 확실한 것은 자신으로선 측량도 할 수 없는 고수가 이 마을에 있다는 사실 뿐이었다. 적어도 이 마을에 온 것이 틀린 것이 아니었다는 사실에 그가 쾌재에 젖어 주먹을 움켜쥐었다.


악화결이 발걸음을 옮겨 조금 더 안쪽으로 향하자 무언가 소리가 들려왔다.


‘...충격음?’


싸움소리가 들려왔다. 병기가 부딪치는 소리, 가뿐 호흡과 땅을 두드리는 발소리까지. 분명 누군가가 싸우고 있는 것이다.


악화결이 발걸음을 빨리 했다. 한줌의 내공을 움직여 경공을 사용했다. 그렇게 급하게 다가간 소리의 근원지에서는 예상과 다르지 않은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아니 자신의 상상을 뛰어넘는 장면이 펼쳐지고 있었다.


세 명이서 휘둘러오는 도와 검을 피한 중년의 남자가 창을 내질렀다.


푸확!!


무언가 터지는 듯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창날이 베는 것이 아니라 말 그대로 사람의 몸뚱이 한 부분을 베어 먹은 듯이 뚫고 지나갔다. 말 그대로 절정의 창술이었다.


“으아아아아아!!”


한 사람이 그렇게 쓰러지자 남은 두 명이 그 기회를 노렸다는 듯이 달려들었다. 큰 공격자세로 생겨난 빈틈을 노린 결사의 공격이었다. 몸 곳곳의 혈맥이 지렁이처럼 부풀어 오른 것을 보면 분명 가진 바 모든 공력을 동원한 바. 승부의 막바지였다.


좌측의 뒤에서는 도가, 우측의 앞에서는 검이 시퍼런 빛을 토해내며 창을 든 이에게 날아들었다. 두 개의 공격으로 몸이 갈라지기 직전, 창이 번개처럼 움직였다.


창날이 앞으로 날아들어 앞을 가로막는 검을 부러트리고 상대의 가슴을 꿰뚫었다. 그리고 언제 그런 일이 일어났냐는 듯이 창이 뒤로 물러났다.


창을 든 이는 뒤도 보지 않은 채 창대를 뒤로 뻗어 상대의 복부를 가격했다.


“쿠헉!”


싸움은 그것으로 끝이었다.


앞서 두 명은 공격과 동시에 즉사였고, 창대로 복부를 가격당한 이만이 숨을 급히 몰아쉬고 있었다. 허나 꼼짝도 못한 채 심상치 않은 양의 선혈이 입으로 토해내고 있는 모습을 보면 도를 든 이의 목숨도 바람 앞 꺼지기 직전의 등불이었다.


끄르...르륵.


도를 든 이는 목에서 꾸역꾸역 흘러나오고 있는 선혈로 목울대만을 핏소리로 울리다 곧 숨을 거뒀다.


“흐음...”


창을 든 이는 자신의 창을 한번 살피더니 창을 어깨에 올렸다. 그리고는 악화결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고개를 돌리자 악화결의 눈에 들어온 어딘가 안색이 창백한 중년의 얼굴이었다.


“뭐냐. 꼬맹이. 길을 잘 못 든 거냐?”


“저..저...”


“여기는 너 같은 애들이 올 곳이 아니다. 그저 악몽을 꾼 셈 치고 돌아가 잊어라.”


악화결이 말을 더듬자 창을 든 이는 악화결이 비명횡사한 것을 보고 놀랐다 여기고 말을 늘어놓았다.


“무...무공을 가르쳐 주세요. 당신처럼 강해지고 싶습니다!!!”

“...허?”


중년 남자는 전혀 예상치 못한 반응에 한숨을 터트렸다.


“강해져서..강해져서 더 이상 아무것도 잃어버리고 싶지 않습니다!!!”


“...”


“부탁입니다...제발...”


“...지랄.”


“네?”


“똥을 싸고 있네. 아직도 바지에서 똥내 풍기는 애새끼를 내가 뭐 하러?”


중년 남자의 싸늘한 말이 비수가 되어 악화결의 귓속을 파고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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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8화-승부의 끝 24.09.03 119 2 12쪽
7 7화-십초지적 24.09.01 132 2 12쪽
6 6화-구명지은 24.09.01 158 2 12쪽
5 5화-승리 24.08.27 180 4 14쪽
4 4화-낭인촌 24.08.25 198 3 12쪽
» 3화-혼의 울림 24.08.24 200 5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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