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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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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24 1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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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01 2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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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화-십초지적

DUMMY

“느려.”


양은월의 날카로운 단도가 악화결의 턱밑에 놓인 채 빛을 발하고 있었다. 양은월은 별 힘을 기울이지도 악화결을 상대하고 있었지만 악화결은 십초가 아니라 삼초를 버텨내는 것도 힘들었다.


“...”


“서문망나니와의 싸움도 그렇고 넌 무공은 배웠지만 타인과의 겨루기는 거의 경험이 없는 것 같군.”


정곡을 찌르는 말에 악화결은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이래서야 불가능하지. 십초를 버틴다는 것은.”


“...아직 첫날일 뿐이오.”


악화결의 말에 양은월이 피식 웃었다.


“그러지 말고 근처 마을에 취직이라도 시켜줄 테니 지금이라도 맘을 돌려먹는 게 어때? 이 몸이 나름대로 인맥은 있거든.”


“첫 날이라고 말했을 텐데.”


악화결의 어조가 날카로워졌다.


“뭐...좋도록 해. 허나 한 가지만 말해두지. 오늘에만 벌써 열다섯 번째의 싸움이었지만 그 모든 싸움 속에서 너는 살아 남은 게 아냐. 그저. 내가 살려줬을 뿐이지.”


악화결의 동공이 세차게 흔들렸다.


결코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그 말 또한 사실이었다. 그녀의 단도나 손이 조금만 움직였어도 자신은 이미 죽은 목숨일 터.


악화결은 아무말도 없이 발걸음을 밖으로 옮기기 시작했다.


콰앙!!!


가옥의 문이 거칠게 닫혔다.


“거...꼬마 놈이 성질하고는.”


방안에 혼자 남은 양은월은 실실거리며 말했다.


‘자...어떡한다...’


양은월은 망설이고 있었다. 그녀가 보기엔 악화결은 이 마을에 전혀 어울리지 않았다. 서문휘가 아무리 형편이 없어도 나름대로의 실력은 있었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 일량지사를 치르고 이 년이 지난 지금까지 살아 있을 수 있겠는가.


그렇지만 악화결은 아무리 봐도 무리였다. 악화결이 자신보다 고수인 서문휘를 꺾는 기적을 보였을 때만 해도 자신도 조금 흥분해 조금 거들어 주고 싶은 마음이 없었던 것도 아니었다.


물론 그것도 악화결의 몸을 진맥하기 전까지의 얘기였다. 그녀가 악화결의 몸을 이곳저곳 살펴본 바, 악화결은 무림에서 살아남는 것도 힘들어 보였다. 하물며 피와 살인이 난무하는 낭인촌에서의 생활은 더더욱 무리였다.


‘훗...그건 그렇고 묘하게 닮았어.’


양은월은 자신의 오빠를 떠올랐다. 생김새도 비슷하긴 했지만 성격은 그야말로 똑같았다. 평소에는 얌전하기 그지없지만 자신의 자존심을 건드렸을 때 고슴도치마냥 날카롭게 구는 것이 완전히 판박이였다.


하지만 그렇기에 더욱 악화결을 이 마을에 놔둘 수 없었다.


자신의 오빠는 시간이 흐름에 따라 어느덧 자신보다 어린 아이가 되어버렸기에, 지금 악화결을 그렇게 내버려둘 수는 없었다.


어떻게 본다면 과거와 결별을 가장 하지 못한 이는 양은월일지도 몰랐다.


그녀 스스로도 자각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었으나, 그녀는 스스로의 망집을 꺾을 마음은 없었다.


“앞으로 구 일인가.”


양은월은 구일이 지나면 악화결의 일이 어떻게든 판가름 날 것이라고 봤다. 물론 그것은 그녀의 바램대로일 것이라고 추호도 의심하지 않는 그녀였다.



“빌어먹을!!”


콰직!


악화결은 밖에 나와서도 풀리지 않는 울화에 발을 거세게 굴렀다. 그러고도 분이 풀리지 않아 손을 근처의 장작더미에 뻗어 그대로 장작들을 무너트렸다.


장작더미가 그대로 바닥에 흩어졌다.


“젠장!!”


이런 짓을 한다고 해서 뭐가 변하지 않는다는 것은 자신도 알고 있었다. 허나 그만큼 초조했다.


‘어떻게 한다? 어떻게? 어떻게? 어떻게? 어떻게? 어떻게?’


아무리 머리를 굴려도 좋은 생각이 나질 않았다. 기분은 더럽지만 그녀의 말 대로였다. 숭협련 내에서 자신이 했던 수행은 자기단련이 대부분이었지 남들과 겨룰 기회가 거의 없었다.


자신이 했던 거라곤 자신의 체질을 이겨내기 위해 단련하고...그저 다른 이들이 겨루는 모습을 지켜본 것이 전부이지 않나.


방금전의 싸움을 떠올리자 악화결의 머리가 뜨겁게 달아올랐다.


숭협련 내에서 사용되는 보법의 대부분은 쾌속함을 중시한 보법들로 변화가 있다고 해도 그 폭이 그렇게 깊지는 않았다.


허나 양은월이 펼치는 보법은 변화가 심하다 못해 그야말로 변화의 극에 달한 절정의 보법이었다.


움직임마다 기묘한 현기를 품고 있어 다음의 동작이 전혀 예상되지 않았다. 악화결이 그나마 서문휘와의 초반 싸움에서 승기를 잡은 것은 기세뿐만이 아니라 그의 빠른 눈 덕분이었으나 지금 그러한 이점을 전혀 누릴 수 없었다.


방금 전의 싸움을 복기하려 해도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는 움직임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양은월이 펼치는 무공은 한 때 강호의 일절로서 이름 높았던 무흔무영보(無痕無影)였다.


통상의 보법들은 그저 빠르기에 중점을 두었으나 이 보법의 창시자는 달랐다.


그는 그야말로 일대종사라는 말이 어울리는 이였고 그가 보는 무학과 무론 또한 굉장히 특이했다. 그저 남들이 더한 빠르기만을 추구할 때 그는 당하는 자의 입장에 입각해 무공을 만들어낸 것이다.


무인의 눈은 빠르다. 안법 수련이 끝난 무인의 눈은 그야말로 빛조차도 포착해낼 수 있다. 몸의 감각과 반응까지 빠르면 그야말로 상대의 눈을 빠르기로 현혹하는 것은 지극히 어려운 일. 그런 착안점에서 시작되어 만들어진 것이 무흔무영보(無痕無影)였다.


무흔무영보가 무서운 것은 그 빠르기만으로 강호의 일절이라 칭할만한데 그 움직임이 전혀 예상하지 못하는데 있었다. 다리, 무릎, 발목 그 모든 움직임에 환의 요결을 섞어 말 그대로 상대에게 착시를 일으키는 보법이었다.


특히나 안법 수련으로 부분보다는 전체를 보게 되는 무인들과는 상극의 보법이라 할 수 있었다.


그렇기에 아무리 악화결이 아무리 양은월의 움직임을 복기해서 떠올리려고 해도 제대로 떠올릴 수 없는 것은 당연했다.


신체의 움직임 대부분에 환의 요결이 섞여 어느 것이 진짜 동작인지도 정확히 분간을 하지 못했는데 그것을 떠올려봐야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양은월의 동작을 떠올리는 악화결의 눈이 깊게 가라앉았다. 그는 결코 생각을 멈추지 않았다. 생각 없이 싸운다면 진다는 무인의 본분을 떠나, 그렇게 생각에 잠긴 그때에 비로소 자신이 살아있음을 느끼고 있었기 때문이다.


비록 세상에 혼자 내쳐진 몸이지만 자신은 지금 이렇게 살아 숨쉬고 있다는 그 느낌과 충족감에 악화결은 머릿속으로 끊임없이 싸움에 파고들었다.



***


둘째 날, 셋째 날에도 악화결과 양은월의 싸움양상은 전혀 달라지지 않았다. 가옥이 아니라 밖에서 펼쳐진 양은월의 보법은 훨씬 더 변화무쌍했고 그 빠르기도 더욱 빨라 악화결은 따라가기 급급했다.


“슬슬 이 곳에서 나가 어떻게 살지 정도는 생각해 두는 편이 낫지 않겠어?”


양은월이 악화결을 제압한 후 입을 열었다.


“...아직. 아직 칠일이나 남았소.”


“칠 일이라...그래 어떻게 보면 길다고도 할 수 있는 시간이겠지. 하지만 너도 알 텐데. 무공은 결코 일조일석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님을.”


“...”


“네 기도나 초식들이 너의 출신은 결코 밑바닥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려주고 있어. 하지만 그렇기에 더욱 잘 알거라 생각한다. 지금의 네가, 아니 네가 나의 십초를 버틴다는 것은 결코 불가능 하다는 것을 말이다.”


“하고 싶은 말이 뭐요.”


“뻔히 보이는 길을 굳이 갈 필요가 있냐는 얘기지.”


“...뻔한지 아닌지는 당신의 입이 결정하는 게 아니지.”


“...”


“결정하는 것은 무공이라고.”


“흠.”


양은월이 고개를 기울였다.


“적어도 상황을 볼 줄 아는 애송이라고 생각했는데 말이지.”


“그런 말은 다 끝나고 나서 말하시오.”


악화결이 차갑게 내뱉고 발걸음을 옮겼다.


“후우...”


양은월의 입에서 깊은 한숨이 흘러나왔다.


싫은 소리를 들으면 포기하리라 생각했다. 아니...포기하길 바랬다. 하지만 한편으로 포기하지 않기를 바라기도 했다.


그녀의 오빠가 그러했던 것처럼.


‘정말로 닮았어.’


양은월은 이제는 잘 기억나지도 않는 오빠와의 몇 안 되는 추억을 떠올리고자 했다. 지난 과거들이 머릿속에 떠오르자 그녀는 마음을 굳혔다.


악화결의 근맥을 상하게 해서라도 내보내려는 마음을 말이다. 자신이 집에서 데리고 있을까도 생각해봤지만 한낱 낭인인 자신이 악화결을 평생 먹여 살릴 수는 없는 법.


필히 자신이 먼저 죽으리라.


그렇기에 그녀는 마음을 굳혔다. 마지막 날 악화결에게 독하게 손을 쓰기로 말이다.



***



십초의 겨루기가 시작된 지 오 일이 지났다.


여전히 변한 것은 없었다. 무흔무영보의 전설은 결코 쉽게 깨어지지 않았다. 조금이나마 변한 것이 있다면 악화결의 시선이 아래로 향했다는 것뿐이었다.



팔일 째.


악화결의 양은월의 손에서 간신히 삼초를 버티었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삼초와 십초의 차이. 결코 넘을 수 없는 터울이 있음을 다시 한 번 확인했을 그뿐인 일.



그리고 구일 째가 되어도 악화결은 삼초 이상을 버티지는 못했다. 그저 악화결의 도전시간이 하루의 대부분을 채우게 됐다는 것 정도가 달라졌을 뿐이다.



***



“오늘로써 마지막이다.”


양은월 역시 마음을 굳혔는지 평소 엷게 미소가 감돌고 있던 표정은 온데간데없고 그저 차갑기 그지없는 표정이었다.


“...”


“이초에서 삼초에서 늘어난 것 정도로 내가 인정해줄 것이라 생각하는 것은 아니겠지?”


“...그럴 생각은 추호도 없소.”


“그래?”


그녀가 차갑게 웃었다.


“혹시나 싶어 말해 두겠는데, 네가 오늘 십초를 버티지 못해낸다면 나는 네 손의 근맥을 자를 것이다.”


“...”


서늘한 살기가 악화결의 몸을 파고들었다. 악화결은 순간 질식할 것만 같았다. 그 정도로 농밀하고 차가운 살기였다.


“알고 있소.”


“...마지막으로 묻지. 지금이라도 네 스스로 포기한다면 근맥을 자르는 것만은 그만두지. 어떠냐?”


그녀가 희망을 담아 물었다.


“승부는 아직 시작도 안 했소.”


“후우...”


바보다. 정말로 바보였다. 그녀의 오빠도 그러했다. 바보였기에 결코 포기하지 않았고, 그렇기에 목숨을 잃었다.


두 번이나 있어서는 안 되는 일이었다. 그녀는 다시 한 번 마음을 다지고 기를 끌어올렸다.


“그럼 시작하지.”


쉬익!


그녀의 움직임이 어찌나 표홀했는지 바람을 가르는 소리마저 들려왔다. 악화결은 무슨 생각인지 아예 그녀의 발목 아래만을 주시하고 있었다.


‘이제야 포기한 건가? 그래 편하게 해주마.“


악화결이 숫제 고개를 숙이자 양은월이 방심한 채 달려들었다. 손에 꺼내든 단도의 검집을 풀지도 않은 채 그대로 악화결의 목덜미로 찔러 들어갔다.


그 순간이었다. 악화결이 움직인 것은. 목덜미를 찔리기 직전, 발만을 보고 있던 악화결이 움직인 것은.


“흡!”


양은월은 자신의 일격이 빗나가자 한숨을 토했다.


‘...? 뭐지?’


마치 자신의 공격을 예상했다는 듯이 피한 악화결의 모습에 양은월이 경각심을 느꼈다.


“일초.”


“...그래. 구 초다.”


양은월이 양 손목을 풀었다.


“후우...”


‘우연이겠지.’


그렇게 자신을 타일렀지만 불길한 예감이 스쳐지나가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양은월이 긴장을 풀고 다시 공격에 나섰다.


이번에야말로 끝내기 위해 그녀는 연환식을 사용했다. 사람 팔뚝 길의 정도의 단도가 공중에서 춤추었다. 그녀의 성명절기라고도 할 수 있는 승룡삼교수(昇龍三攪水)였다.


그 어느 때보다도 빠른 승룡삼교수가 악화결의 상반신을 노리고 날아 들어왔다.


그 순간 악화결의 눈에 기광이 번쩍였다. 그리고 바로 악화결의 신형이 선회하며 물러났다. 승룡삼교수는 그 움직임 덕분에 그저 허공에서 춤출 뿐이었다.


“후욱!!”


악화결의 입에서 거친 호흡이 흘러나왔다. 또한 몸에서도 땀이 흘렀다. 순식간에 펼쳐진 연환초식을 피하는데 상당한 체력소모가 있었기 때문이다.


“...!!”


양은월의 움직임이 일순 멈추었다.


‘어떻게...?’


“이제 사초가 지나갔소.”


그녀의 귓가에 악화결의 목소리가 흘러 들어왔다.


“이럴 리가...이럴 리...이럴 수가 없는데.”


“남은 육초 준비하시오.”


양은월의 사정은 아무래도 좋다는 듯이 악화결이 말했다.


작가의말

재밌게 보셨다면 선작 추천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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