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방무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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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미
작품등록일 :
2024.08.24 1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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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06 0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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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화-낯선 방문객

DUMMY

“...무슨?”


악화결이 놀라 말을 잇지 못했다. 아무리 여러 가지 무공을 개방한 숭협련이라고는 해도 실상은 구전으로 전해지는 비기나 요결 따위는 자신이 선택한 이에게만 전수하는 것이 보통이었다.


그런 숭협련에서 나고 자란 악화결 역시 그 점을 모를 수가 없기에 지금의 상황은 당황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놀랄 것 없어. 어차피 지금에 이르러선 이 무공의 가치는 땅에 떨어진 거나 다름없으니까.”


“...??”


악화결이 의아한 얼굴로 양은월을 쳐다보았다.


“...한때는 강호에선 일절로도 통했지만, 마교에게 완전히 깨져버린 지금. 아무래도 좋은 무공이다. 뭐. 제대로 배워놓는다면 마교의 손이 제대로 미치지 않는 시골구석에서는 꽤나 행세할 수는 있겠군.”


“...”


악화결은 양은월의 행동에 이해가 가지 않아 여전히 의아한 표정이었다.


“그런 얼굴 할 것 없어. 그냥...내가 그러고 싶을 뿐이다. 지쳤거든...가문의 유지를 붙들고 있는 것도. 나도 실감하지 못한 옛 영광을 되새기기엔...현실은 너무 힘들어.”


“...”


악화결은 그녀의 말을 잠자코 들었다. 그녀에 대해서 제대로 알지도 못하는 자신이 답하기엔 너무나 무거운 무게를 담고 있었기에.


“너에겐 잘난 척 과거를 잊은 자만이 마을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고 말하긴 했지만, 가장 과거를 잊지 못한 것은 나일지도 모르겠군. 아니...어쩌면 이 마을 자체가 과거와 함께 썩어버리는 자들의 모임일지도.”


“...”


“넌 내...아니...우리처럼 되지 마라.”


“전 당신이 생각하는 그런 사람이 아닙니다.”


“...응?”


“저 또한...저 역시...”


악화결은 과거를 떠올리자 말을 잇지 못했다. 근골이 떨어진다는 이유만으로 모든 것을 잃어버린 자신 역시 과거에 집착하는 자가 아니겠는가.


“...너에게도 무슨 사정이 있기에 여기까지 온 거겠지. 하지만 너는 아무것도 포기하지 않았어. 허나 마을에 있는 낭인들은 모두...과거를 내려놓았다고는 하지만 실제로는 내려놓지도 못하면서 그저 현실을 포기한 이들이 대부분이야. 이 마을의 모두는... 거창한 이유가 있어 살아가는 것이 아냐. 그저 죽지 못해, 하루하루 낭인일을 하면서 살아갈 뿐이지. 그저 과거라는 무덤 속에서 뛰쳐나온 망령.”


‘내가...포기하지 않았다고?’


그랬던가? 악화결은 그녀의 말에 자신의 마음을 다시금 헤아렸다.


“그런 점에서 너는 달라. 절대로 포기하지 않을 그 눈빛이...어떻게 보면 부러우면서도 화가 나기도 해.”


‘내가...부럽다고?’


그녀의 말에 악화결은 무어라 답해야 할지 모르겠다. 자신에게 씐 굴레가 무엇인줄 알고 저런 말을 한단 말인가.


“저야말로 당신이 부럽습니다만.”

‘내가 평범한 근골만이라도 얻는 것을 얼마나 소망하는지 당신은 모를 겁니다.’


“하.”


양은월이 코웃음을 쳤다.


“그야말로 동상이몽이군.”


그녀가 가볍게 말하고는 발걸음을 밖으로 옮기기 시작했다. 그녀가 가옥을 나가기 직전 다시 입을 열었다.


“무리하지마라. 그 다리 치료하는데 꽤나 걸릴 것 같으니까.”


“...”


그녀는 말을 내뱉고는 바로 가옥 밖으로 사라졌다.


“칫!!”


악화결은 양은월이 제 할 말만 하고 사라지자 분한 마음에 침상을 내려쳤다. 나무로 된 침상은 삐걱 소리와 함께 흔들거렸고 위에 있던 책이 떨어져 내렸다.


“.,,”


악화결은 손을 뻗어 그것을 들어올렸다.


‘무흔무영보라...’


무인으로서의 어쩔 수 없는 호기심과 욕심이 악화결의 몸을 움직였다.


사락.


가옥 안에서 비급이 한 장, 한 장씩 넘어가기 시작했다.




***



“그 녀석...지금쯤 어떠려나.”


양은월은 맡은 일거리를 위해 마을 밖으로 나가는 도중 악화결을 떠올렸다.


설마하니 악화결이 무흔무영보를 하루 만에 익히리라고는 그녀 자신 역시 추호도 생각하지 않았지만, 그저 비급이 악화결에게 도움이 되기를 바랄 뿐이었다.


그녀는 악화결을 보고 있으면 머릿속에서 자연스럽게 한 명이 떠오르곤 했다. 이미 세상을 떠난 그녀의 오빠가 말이다.


‘오빠...나 잘한 거겠지?’


그녀는 결코 대답이 돌아오지 않을 질문을 그저 마음속으로 던지고 있었지만 그녀에게는 마치 하늘 위의 구름 속에서 대답이 들려오는 것만 같았다.


‘그래’


라는 오빠의 대답이 말이다.


‘후우...’


하늘을 올려다보던 양은월이 짧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녀는 오늘밤 오랜만에 푹 잠들 수 있을 것 같았다.




그 순간에 악화결은.


“씨발!!”


욕을 내뱉고 있었다. 그도 그럴 만한 것이


“무공비급을 받아봐야 입문조차도 못하는데 이게 무슨 소용이 있는데!!!”


라는 상황이었다.



일정 수준 이상의 무공에서는 보통 어느 정도의 내공을 필요로 할 수밖에 없고 무흔무영보 또한 그러했다.


무흔무영보를 익히는데 최소한의 기준. 다리를 타고 흐르는 내력을 집중해 발바닥의 용천혈(湧泉穴)에 일다경 이상 집중시킬 수 있는 것이 그 최소한이었다.


악화결로선 당연히 불가능한 이야기였다. 경맥 대부분이 막힌 그로서는 일다경이 아니라 그 반의 시간 동안 내력을 유지하는 것 자체도 힘들기 때문이었다. 이것은 비급은 준 양은월도 미처 생각하지 못한 상황이었다.


악화결의 뇌리 속에서 비급 제일 앞부분의 구절이 스쳐지나갔다.


-용천혈에 기가 모이지 않은 채로 무흔무영보의 움직임을 펼친다는 것은 그저 의미없는 몸부림에 지나지 않는 것이니 연자(緣者)는 이를 꼭 유념하길 바란다.


“젠장...”


악화결은 들고 있던 비급을 땅바닥에 내던졌다.


“뭐라도 있어야 쌓아올리기라도 해보지...”


악화결은 아직도 쩔뚝거리는 자신의 다리를 쳐다보았다. 이것 또한 그 지긋지긋한 체질 때문이었다.


전신에 제대로 기가 돌지 않으니 일반인 아니 그 이상으로 회복이 느릴 수밖에 없었다. 숭협련 시절에야 다치더라도 가문의 보약이나 영약을 먹으며 치료했기에 그나마 어느 정도 빨랐으나 그런 게 없는 지금은 회복이 느릴 수밖에 없었다.


이미 가옥에서 혼자 지낸 것도 이 주. 차도는 전혀 보이지 않고, 일량지사를 치르기는커녕 언제 다시 걸을 수 있는지조차 보이지 않는 상황에 악화결은 마음이 어지러웠다.


“후우...”


간신히 마음을 진정시킨 악화결이 악가에 전해지는 호흡법, 즉 운공을 시작했다.


“...”


구결을 외우며 어떻게든 내기를 움직이려 했지만, 어떻게 된 일인지 오늘따라 자신의 좁쌀만한 내기도 잘 움직이지 않았다.


“...젠장.”


‘정말이지 빌어먹을 신체다. 도대체 뭘 어떻게-’


“멍청한 놈이군.”


“!!!읏??!!!”


기척도 없이 등장한 누군가의 목소리에 악화결이 놀랐다. 악화결의 고개가 목소리의 발원지로 급하게 돌아갔다.


‘...누구지.’


아직 중년이 되지 않은 이가 실실거리며 웃고 있었다.


악화결이 처음 보는 얼굴이었다. 숭협련에서 멀리 떨어진 이곳에서 아는 이가 있겠냐마는 전혀 짐작도 가지 않는 이였다. 창을 썼던 고수도 아니었고 서문휘도 아니었다.


도대체 왜? 이런 고수가 자신을 찾아왔단 말인가?


“그놈, 눈깔 돌아가는 꼬라지 하고는. 암만 생각해봐도 네 머리론 답도 내지 못할 테니 친히 알려주마. 나는...음...네 사숙 아니지. 예비 사숙이라고 해야 되려나?”


“...그게 무슨???”


“하...척하면 척 몰라? 너 사형한테 무공 가르쳐 달라고 했다며? 물론 아직 사숙은 아니니 당연히 예비 사숙인 거지. 아 물론 사숙이 안 될 수도 있고.”


‘아.’


악화결은 그제야 상황이 이해가 갔다. 헌데 그렇다면. 눈앞의 사내는 왜 자신을 찾아온 것일까.


“이제 이해는 한 것 같군. 그럼 다시 이야기를 본론으로 돌리자고.”

“...?”


“왜 그런 멍청한 짓을 하고 있냐?”


“...멍청한 짓이라 하시면?”


“캬아...이거야말로 목불식정(目不識丁)이로구나. 도대체 무공을 어떻게 배운 건지 모르겠군. 아니 무공이 뭔지도 모르고 있어.”


으드득.


자신의 신체를 보고 하는 말로 받아들인 악화결이 분노를 참지 못하고 이를 악물었다.


사내는 감정을 숨기지 못하는 악화결을 보며 혀를 찼다.


“쯧쯧. 기지도 못하는 놈이 왜 날려고 하냐?”


“...무슨 뜻입니까?”


악화결은 무언가 뜻이 담긴 사내의 말에 분노를 억누르고 되물었다.


“무공이 무엇이냐. 기본적으로 천지자연에 존재하는 기를 느낀 후 자신의 기를 끊임없이 닦는 것이 무공이라 할 수 있지. 헌데 지금 너는 기지도 못하면서 날려고 하고 있잖아.”


사내의 말에 악화결의 눈이 무흔무영보로 향했다.


“쯧쯧. 한때나마 강호의 전설이라고도 불렸던 무영보거늘. 감히 네놈같은 몸뚱아리로 지니고도 저런 비급을 목도라도 한다는 게 말이 되냐? 세상이 어찌 되려고...아 이미 뒤집히긴 했군.”


“무슨 말을 하고 싶은-”


분을 참지 못하고 터트린 악화결의 목소리가 도중에 끊겼다. 사내의 발차기가 악화결의 명치를 스치고 지나갔기 때문이었다.


“커...커헉.”


악화결이 배를 잡고 쓰러졌다.


“그놈 참. 감히 사숙 되실 분에게 소리 지르기는.”


“크으윽.”


악화결의 입에서 침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뭔가 오해하나 본데 기지도 못한다는 말은 네가 무영보를 익히려고 해서 한 말이 아니야. 그 이전의 문제라고.”


“.,,?”


무릎 꿇은 악화결의 고개와 눈이 사내에게로 향했다.


“무림인들이 왜 어릴 때부터 내공심법에 입문한다고 생각하는 거냐.”


“...”


“탁기가 쌓이기 전, 깨끗한 혈도와 경맥으로 인해 발전 속도가 빠르기 때문에 어릴 적부터 입문을 하는 거다. 헌데 너는 어떻지?”


‘내 경맥은...’


“최소한 무공을 닦을만한 몸의 상태를 만드는 것이 먼저란 말이다. 이 멍청한 놈아.”


“그...그 말씀은...”


“몸을 단련해라.”


“다...단련?”


“혈도와 경맥은 물론 체력이라도 되어야 최소한의 기공을 닦을 수 있지 않겠냐?”


“아...!”


그 순간 악화결은 마치 법열(法悅)이라도 느낀 것처럼 몸을 떨었다.


“외공(外功)을 닦아라. 죽기 직전까지. 아니지. 그냥 그 썩은 몸뚱아리가 죽고 다시 태어날 때까지 말이다. 그러면 그 하찮은 몸뚱이에도 기께서 제대로 자리를 틀고 앉지 않겠냐?”


지금 악화결에게 사내의 말은 금과옥조(金科玉條)처럼 느껴졌다. 자신이 가야할 길에 한순간 서광이 번쩍인 듯한 느낌이었다.


“아...알겠-”


악화결이 대답하던 순간 사내의 모습이 방안에서 사라졌다. 그 순간 전음이 들려왔다.


-세 달 후에 다시 보자.


‘큭!!’


귀를 찌르는 듯한 전음에 악화결이 인상을 찡그렸다. 허나 사내는 그런 것에 아랑곳 하지 않고 계속해서 전음을 보냈다.


-다른 사형제들과 달리 나는 다소나마 너에게 기대하고 있다. 세달 후, 그 때 정도면 최소한 몸에서 구정물 냄새정도는 빠져있기를 바란다.


“세 달이라고?”


악화결은 말하는 것과 동시에 주먹을 으스러질 정도로 꽉 움켜쥐었다. 떨리는 주먹에 담긴 것은 적어도 지금까지처럼 절망이 아니었다.


작가의말

늦어져서 죄송합니다. 일을 마치고 글을 적다가 계속 뻗어버리는 바람에 늦어졌습니다. 


가능하면 매일 연재하려고 하는데 좀 힘겹네요. 좀 더 노력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재밌게 보셨다면 추천 선작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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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7화-십초지적 24.09.01 132 2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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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5화-승리 24.08.27 180 4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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