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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단도
작품등록일 :
2024.08.25 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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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25 0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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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남무지회(1)

DUMMY

호북성에 위치한 무당산은 험준한 지형과 깊은 계곡들이 펼쳐져 있는 곳이다.


무당산의 깊은 곳에는 구름에 가려진 봉우리들이 솟아 있었으며, 그곳에는 무당파의 고수들이 수련하는 도관과 사원이 자리하고 있었다.


무당산의 정기는 온화하면서도 강력하여, 이곳에서 수련하는 무당파의 무공은 마치 흐르는 물과 같으면서도 그 힘은 산을 가를 만큼 강력하다고 전해지는 곳이었다.


그리고 산속 깊숙한 곳에 있는 비밀스러운 도장은 오랜 세월 동안 외부의 침입을 허락하지 않았으며, 오직 선택된 자만이 그 문을 통과할 수 있다고 전해졌다.


무당파의 장서(藏書)인 진경각(眞境閣)에는 그곳의 각주(閣主) 주현명(朱玄明)과 그의 제자가 거처하고 있었다.


진경각은 무당파의 모든 경서와 비급, 그리고 무공의 정수가 담긴 신비로운 장소로, 오직 장문인과 장로, 그리고 특별히 허락받은 제자들만이 출입할 수 있었다.


이곳은 단순한 서고(書庫)가 아닌, 무당파의 정신과 혼이 깃든 성지(聖地)와도 같은 곳이었지만, 그 누구도 이곳에 특별한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진경각의 각주인 주현명은 장문인, 장로들과 같은 배분임에도, 어린 시절부터 몸이 약해 무공을 제대로 익히지 못하고, 결국 이곳을 관리하는 장서각주로 머물게 되었다.


무당파는 무위(武威)의 높고 낮음보다는 배분을 우선시하는 문파였지만, 이곳을 지키는 주현명과 그의 제자 백도결(白道決)은 예외였다.


그들의 존재는 무당파에는 없는 것이었다.


“껄껄, 오늘 아침에도 수련을 하고 온게냐?”


현명은 자신의 제자라는 이유만으로 백도결이 문파 내에서 마치 없는 사람처럼 여겨지는 것이 늘 안쓰러웠다.


그가 배운 무공이라고는 무당파에서 가장 기초적인 발검술인 무취섬화(無翠閃火)와 태허심법(太虛心法)뿐이었다.


특히, 무취섬화는 무당파의 외문제자들에게도 조차 더이상 가르치지 않는 무공이 되었다.


발검술이라 불리지만, 사실상 이동하며 다치지 않게 검을 뽑아내는 단순한 동작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무취섬화(無翠閃火)라······.


그림자 없는 푸른 섬광의 불꽃.


의례 작은 움직임에도 거창한 이름을 붙여대는 게 명문정파라는 곳이었다.


“예, 스승님. 조금만 더 하면 두시진(二時辰)안에 천운봉(天雲峯)을 오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백도결은 직계제자 중 두번째로 배분이 높은 “도(道)”자의 돌림자를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부모도 형제도 없던 그는 단지 진경각을 관리하는 주현명의 제자로 받아들여졌을 뿐이었다.


단지, 스승의 배분이 높아서 자신의 배분도 높을 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현명은 자신이 알고 있는 무취섬화(無翠閃火)와 태허심법(太虛心法).


단 하나의 검술과, 단 하나의 기본 심법만을 백도결에서 전수 할 수 있었다.


“호오······ 두시진안에? 너무 무리는 하지 말거라··· 몸 상할라······.”


“예, 스승님. 너무 염려치 마십시요. 제자가 몸 하나는 튼튼하지 않습니까! 헤헤”


도결은 새벽에는 천운봉을 오르내리고, 오전 동안에는 진경각의 청소를 했다.


그리고 오후가 되면 무당파의 수련장이 아닌 산 속의 빈 공터에서 무취섬화와 태허심법을 연마했다.


그는 똑같은 일과를 단 하루도 거르지 않았다.


칠년동안.


어느 덧 그도 어엿한 청년이 되어 약관의 나이를 앞두고 있었다.


팟-


도결은 몸의 중심을 낮추어 검집에서 검을 빼어드는 이 단순한 동작을 멈추지 않았다.


엄연히 무취섬화는 이동하며 검을 빼어드는 동작이었기에 보법까지 겸비한 검술이었다.


팟-


팟-


아무도 그를 눈여겨보지 않았고, 그 또한 누구에게도 관심을 두지 않았다.


남무지회(南武之會)가 보름 앞으로 다가오면서, 무당파의 23대 제자들은 연무장에서 수련에 매진하고 있었다.


그들은 이 대회에서 자신의 실력을 증명하고, 문파의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밤낮으로 고된 훈련을 이어갔다.


그날도 역시나 연무장에서 수련을 마친 제자들은 저마다 지친 몸을 이끌고 청풍각(靑風閣)으로 돌아가던 중이었다.


그러던 중, 23대 제자들의 시선은 언제나처럼 공터에 홀로 서 있는 한 사내에게로 향했다.


어두운 하늘 아래에서 그는 변함없이 검을 뽑았다가 다시 집어넣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저 사람은 누구지? 매번 저기에서 검을 빼었다 넣었다만 하고 있잖아?”


한 제자가 의문스럽다는 듯 물었다.


“백도결(白道决)이라고 하던데··· 들어본 적 없어? 배분으로 보면 사숙인데···. 저렇게 혼자서 검을 다루는 걸 보니, 대체 뭘 하려는 건지 모르겠네.”


다른 제자가 눈을 가늘게 뜨며 대답했다.


그러나 아무도 그에게 다가가려 하지 않았다.


그저 도결은 그들에게 태극의 정수를 잇는자도, 사숙도 아닌 풍경같은 존재였다.


그들은 그저 일년에 한번 있는 무당파와 종남파의 비무대회인 남무지회를 향해 앞만 보고 달리기에도 바빴다.


백도결 따위는 누군지 중요한게 아니었다.


“늦겠다! 사형께 혼나기 전에 서둘러 가자.”


“어우······. 오늘도 늦으면 진무 대사형께 불효령이 떨어질걸요?”


주변의 인기척이 사라지자 도결은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 여기서 수련한다고 혼날까봐 조마조마 했네······.”


달빛이 깊어진 축시(丑時)가 되서야 그는 검을 완벽하게 검집에 집어 넣고는 진경각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도결이 진경각의 문을 열고 들어서자 현명은 읽던 서책을 덮어두며 그에게 말을 건넸다.


“오늘은 유난히 늦었구나.”


새벽까지 자신때문에 아직 잠을 청하지 않은 것 같아 도결은 머리를 긁적이며 조용히 답했다.


“아직 깨어 있으셨습니까···· 오늘 따라 달빛이 유난히 밝아서 저도 모르게 그만····. 헤헤.”


“껄껄. 무공을 수련하는게 그토록 즐겁더냐?”


도결은 진지한 눈빛으로 대답했다.


“예, 검을 쥐는 매순간이 제겐···· 마치 살아있음을 느끼게 해줍니다.”


현명은 고개를 끄덕이며 그의 열정을 이해한 듯 말했다.


“네 몸과 마음이 상하지 않도록, 쉬는 것도 중요하다는 걸 기억하거라.”


“명심하겠습니다. 스승님!”


해맑은 제자의 대답에 현명은 못내 이 상황이 불편했다.


도결의 현재는 자신이 만들어 낸 결과였기에.


“도결아~”


“예? 시키실 일이라도····.”


현명은 무언가를 고민을 하는듯 눈을 지긋이 감았다 뜨며 말했다.


“내일 무학당주(武學堂主)님게 다녀와야 겠다.”


“예? 사백님은 무슨 일로·····?”


무학당주는 무당파의 무학을 가르치는 학당의 책임자이자 유일하게 이곳에 관심을 가져주는 현명의 사형이었다.


“네가 무당파의 무공을 전수 받을 수 있도록 사형께 부탁드려 볼 참이다.”


하지만, 도결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단호하게 말했다.


“스승님, 제자가 미천하여 배우지 못한것입니다. 스승님께 그 짐을 지울 수는 없습니다.”


현명은 그의 결연한 태도에 잠시 말을 잇지 못하다가, 진심 어린 목소리로 말했다.


“하지만 도결아, 네 재능이 빛을 발할 기회도 있어야 한다. 나는 네가 더 큰 무인의 길을 걸을 자격이 있·····.”


그의 말이 미처 끝을 맺기도 전에 도결은 단호하게 고개를 가로 저었다.


현명의 입장을 누구보다 잘 이해하고 있는 사람은 다름아닌 그의 제자인 도결이었다.


오늘따라 더 처져보이는 스승의 어깨를 보며, 도결은 그에게 뜻밖의 선언을 했다.


“스승님! 저, 남무지회에 나가야겠습니다!”


제자의 선언에 놀란 현명은 눈을 크게 뜨며 되물었다.


“나, 남무지회에······?”


“예! 남무지회에!”


이 곳에 자신의 제자로 들어온지 7년.


자신의 제자는 한번도 허튼 말을 한 적 없었기에.


현명의 놀란 가슴은 제자에 대한 걱정으로 물들어갔다.


더 큰 상처를 안길까봐.


“갑자기 그게 무슨 소리더냐······?”


“예! 말 그대로, 남무지회에 출전해야겠습니다! 무당파의 대표로!”


지독하게도 고집 쎈 제자였지만, 말릴 수도 없었다.


그 것 또한 큰 상처가 될 것 이기에.


현명은 고개를 끄덕이며 그의 선택을 존중할 수밖에 없었다.


“대신, 다치지 않도록 조심하거라.”


“감사합니다, 스승님. 저 또한 스승님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얼굴에 미소를 지으며 대답하는 제자의 모습에, 더욱 가슴이 아려오는 현명이었다.


다음 날, 아침.


현명은 아침 일찍부터 무학당에 있었다.


“사제가 무슨일로 무학당을··· 별일이군.”


평소 특별한 일이 없으면 진경각을 벗어나지 않는 현명이었다.


“사형께 간만에 문안 인사나 드릴 겸·····.”


“네가? 흥, 그렇게 진경각 밖으로 나오라고 할 땐 듣는 시늉도 않더니.”


현명은 대답 대신 어설픈 미소를 지어보였다.


“그래, 바쁘고 바쁘신 우리 사제님께서 무학당엔 어인일로···?”


“부탁드릴 것이······.”


“에엥? 아쉬울거 하나 없는 사제님께서 보잘 것 없는 내게 부탁을···?”


현명이 이곳에서 유일하게 부탁을 할 수 있는 이는 현권, 한명 뿐이었다.


“사형, 농이 지나치십니다.”


“크큭···· 알겠다. 좀 더 하면 또 진경각에 숨어버릴 듯 하니······.”


현명은 민망함에 헛기침을 내뱉은 후 말을 이었다.


“크흠······ 다름이 아니라····.”


“답답하구나. 다름이 아니라··· 다음엔?”


“도결이가 남무지회에 나가겠다고 합니다······.”


그의 갑자스런 말에 이번엔 현권이 당황해하며 눈을 크게 떴다.


“뭐, 뭐라고······? 도결이 놈이 남무지회에?”


“예, 남무지회에······.”


이 곳 무당파의 무학당주이자, 장로를 겸하고 있는 현권이었기에 현명은 그를 찾아가 조언을 구하려 했던 것이었다.


현권은 수염을 쓰다듬으며 생각에 잠기었다.


“도결이는 22대가 아니더냐? 남무지회에 나갈 22대 제자는 이미 내정되어 있는데······.”


편견없는 현권이었다.


22대의 문제가 아닌 도결의 무위를 먼저 걱정해야 했다.


하지만, 그런 현권이었기에 흔쾌히 답을 내주었다.


“흐음, 사제. 기분나빠하지 말고 듣게나.”


현명이 고개를 끄덕여 보이자 현권은 말을 이어갔다.


“도결이는 사제의 제자라는 이유만으로 22대의 배분이라네. 하지만, 나이로는 23대 제자들과 동년배란 말이지······.”


“그렇지요.”


현권은 자신의 수염이 뜯겨나갈 정도로 수염을 손가락으로 돌돌말기 시작했다.


기어코 몇가닥의 수염이 자신의 손에 의해 뜯겨져 나갔다.


“정녕 방도가 없겠습니까······? 무리한 부탁인건 알고 있습니다······.”


“크흐으음······.”


“적어도 남무지회에 나설 제자를 선별하는 비무대회에 참가라도 할 수 있어야···· 도결이도 납득하고 단념할게 아닙니까······.”


“글쎄, 22대 제자들은 이미 내정이····”


현명의 말을 꼽씹어보던 현권(玄權)이 자신의 무릎을 치며 말했다.


“그래! 그렇게 하면 되겠구나! 사제 말처럼 하면····!”


“그게 무슨····?”


“어차피 도결이의 나이는 23대 제자들과 비슷하다. 아니, 오히려 도결이보다 나이가 많은 23대 제자도 있지!”


현명은 자신의 사형이 하는 말의 의미를 이해할 수 없었다.


그리고 연이어 나오는 현권의 말에 현명은 자신의 사형을 영영 이해할 수 없게 되었다.


“무슨 말씀이신지 알아듣게······.”


“크하하하! 도결이를 23대 제자들의 비무대회에 내보내면 되질 않겠느냐?!”


현명은 자신의 관자놀이에 손을 가져다대며 한숨을 내쉬었다.


“사형, 그게 가능한 일입니까······?”


현권은 자신의 묘안에 만족한 듯, 폭소를 터뜨리며 외쳤다.


“그렇게 하면 안된다는 무당의 규율이 있더냐? 진경각주인 네놈도 모르는걸 누가 알겠느냐?크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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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무당산의 패륜아(5) 24.09.11 129 4 14쪽
17 무당산의 패륜아(4) 24.09.10 137 3 13쪽
16 무당산의 패륜아(3) 24.09.09 151 4 14쪽
15 무당산의 패륜아(2) 24.09.08 138 3 12쪽
14 무당산의 패륜아(1) 24.09.06 163 5 13쪽
13 남무지회(13) 24.09.04 186 6 12쪽
12 남무지회(12) 24.09.04 172 5 12쪽
11 남무지회(11) 24.09.02 176 4 13쪽
10 남무지회(10) 24.09.01 179 4 12쪽
9 남무지회(9) 24.08.30 198 5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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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남무지회(7) 24.08.29 207 6 13쪽
6 남무지회(6) 24.08.28 222 6 12쪽
5 남무지회(5) 24.08.27 231 6 14쪽
4 남무지회(4) 24.08.27 241 6 12쪽
3 남무지회(3) 24.08.25 241 6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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