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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단도
작품등록일 :
2024.08.25 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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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8 1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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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25 0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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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남무지회(2)

DUMMY

다음날, 아침.


오늘도 이른 새벽부터 천운봉을 뛰어 다녀온 도결이 아침이 되어서야 진경각의 문을 열고 들어섰다.


“스승님, 다녀왔습니다.”


현명은 그의 모습을 확인하곤 다소 밝은 표정으로 말했다.


“좋은 소식이 있다.”


“예? 좋은 소식이라면······. 드디어 창고의 서책들을 다른 곳으로 옮길 수 있게 된 것입니까?”


현재 진경각은 오랜 세월에 쌓인 서책들로 발디딜 틈도 없이 좁았다.


“크흠··· 그건 아직 소식이 없구나.”


도결은 스승의 말에 고개를 갸웃거리며 답했다.


“그럼······ 좋은 소식이랄게 없지 않습니까···.”


“다름이 아니라, 이번에 열리는 남무지회 선별전에 너도 참가 할 수 있게 되었구나.”


“예? 그냥 나가면 되는거 아니였습니까····?”


“끄응······.”


현명은 자신의 제자에게 남무지회에 나가기 위한 과정을 설명해 주었다.


사실 도결이 비무를 벌일 경우의 수가 없다고 판단했기에, 무당파의 외부 행사에 대해서는 그에게 말해 준적이 없었다.


자신의 기준으로 도결을 재단하였던 스스로가 원망스러웠다.


“사질들의 비무대회에 나가야 되는데 괜찮겠느냐?”


“상관없습니다. 남무지회에 나갈 수만 있다면.”


구김없는 도결의 한마디, 한마디가 현명의 가슴을 더욱 옥죄어 왔다.


‘그동안 스승으로서 못해 준게 너무나 많구나····, 몸에 난 상처는 아물겠지만 마음만은 다치지 않았으면······. ’


현명은 자신의 제자가 염려스러웠지만, 그 또한 내색하지 않기로 결심했다.


“그래, 힘내거라.”


“예, 스승님!”


도결은 어김없이 오후가 되자, 산 중턱의 빈 공터에서 변함없이 검을 뽑았다가 다시 집어넣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팟-


팟-


이윽고 해가 저물어 가자 그날도 역시나 연무장에서 수련을 마친 23대 제자들은 청풍각(靑風閣)으로 돌아가던 중 도결의 모습을 확인했다.


도결의 발검소리가 고요한 공터에 울려 퍼졌다.


팟-


팟-


“와~ 오늘도 저기에서 검을 빼었다 넣었다만 하고 있네······.”


“신경쓰지 말거라. 괜히 저자와 엮여 피곤한 일 만들지 말고.”


하지만, 호기심을 참지 못한 은서령(殷書玲)이 그를 향해 뚜벅뚜벅 다가갔다.


“서령 사매! 사형 말씀 못들었어? 괜한 일에 엮이지 말라고 하시잖아!”


하지만 은서령은 호기심을 참지 못하는 성격이었다.


“대사형께서 궁금한건 확인해보라고 하셨으니, 전 지금 사형의 가르침에 따르는것 뿐이라구요! 히히”


하율(河律)은 그녀가 자신의 말을 듣지 않고 도결에게 다가가려 하자, 이를 제지하려 하였지만 진혁(眞赫)은 오히려 그를 말렸다.


“그냥 두거라.”


“하지만, 사형! 지금 사매가······.”


“별 일이야 있으려고, 여긴 무당이고 저자 또한 엄연히 사숙들과 같은 배분이지 않느냐. 비록, 이름뿐이겠지만.”


“그래도······.”


사매의 행동이 못마땅했던 하율은 반박하려 입술을 떼었지만, 진혁의 매서운 눈빛에 입을 굳게 다물었다.


도결에게 다가간 은서령은 그를 향해 밝은 목소리로 인사를 건넸다.


“사숙님께, 처음으로 인사올립니다. 사숙님의 사저이신 도화(道華) 스승님의 제자 은서령(殷書玲)이라 합니다.”


도결은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소녀를 보곤 새파랗게 질려갔다.


단, 한번도 없었다. 비슷한 연배의 이성과 말을 섞어본 기억이.


“······예?”


은서령은 다시한번 큰 목소리로 또박또박 소리쳤다.


“사.숙.님.께! 처.음.으.로! 인.사.올.립.니.다! 은서령!이라 합니다!”


“······아, 네에······. 그, 그런데요······?”


도결의 반문에 그녀는 잠시 할말을 잃은 듯 눈동자가 미세하게 흔들렸다.


“궁금한게 있어서요!”


“····아?! 네?”


은서령은 어버버 대는 도결에게 호기심 가득한 눈빛으로 물었다.


“지금 뭐하고 계신거에요?”


도결의 귓가에 환청이 들렸다.


무당파에 입문한지 어언 7년.


자신의 스승과 사백인 현철을 제외하곤 누군가가 자신에게 말을 걸어온건 처음이었다.


그것도 여인이.


“·····예?”


똑같은 대답을 반복하는 도결이 답답했던 은서령은 더욱 그의 곁에 가까이 다가가 소리쳤다.


“지.금.뭐.하.고.계.신.거.에.요?”


그녀가 더욱 자신에게 가까이 다가오자 도결은 얼굴을 붉게 상기 시킨채 고개를 숙여 버렸다.


은서령은 더이상 그의 대답을 들을 수 없다는걸 확신했다.


그녀는 아쉬운 듯 입맛을 다시며 마지막 말을 그에게 남겼다.


“오늘은 여기까지! 내일 또 뵈요! 사숙!”


은서령이 돌아가자 도결은 다리에 힘이 풀려버렸다.


‘사숙이라니····· 내가·····?’


도결은 고개를 좌우로 세차게 흔들며 무취섬화에 집중했다.


그러려 했지만, 귓가에 또다시 환청이 들려왔다.


내일 또 뵈요! 사숙!


내일? 또? 사숙?!


도결은 이대로는 집중을 할 수 없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건, 말로만 듣던 심마에 빠진 것인가?!’


그는 심마에 빠진 자신을 구휼하기 위해 검을 빼어들었다 집어넣었다를 반복하는 대신.


그 자리에 앉아 가부좌를 틀고 태허심법의 구결을 떠올렸다.


心無掛礙(심무괘애) 마음이 걸림이 없으면

性自虛明(성자허명) 성품이 스스로 밝아지고

無念無住(무념무주) 생각 없이 머무르지 않으면

本然清靜(본연청정) 본래의 청정함을 드러내리라.


자시(子時)를 훌쩍 넘겨 일출이 시작되는 묘시(卯時)가 되어서야 정신을 차린 도결은 한숨의 잠도 청하지 못한 채, 다시 천운봉을 올랐다.


‘오늘부턴 다른 이들의 눈에 띄지 않게 다른 곳에서 수련해야겠다······.’


도결은 결연한 마음으로 천운봉 정상에 서서 무당산의 전경을 바라보았다.


심마(心魔)로다. 심마.


일주일 후, 그의 사백인 현권장로가 도결을 비무대회에 참가시키기 위해 진경각으로 찾아왔다.


현권장로는 자신의 사제인 현명이나 사질인 도결이나, 비무대회가 열리는 날 조차 모를것을 확신하고 이 곳까지 온 것이었다.


“쯧쯧, 내 이럴 줄 알았느니라······ 에혀······.”


도결은 태연한 얼굴로 현권장로를 맞이했다.


“사백님, 그간 평안하셨습니까. 어인 일로 발걸음 하셨는지요·····?”


“그 사제에, 그 사질이네····· 이놈아 오늘 비무대회인건 알고 있는게냐?”


현권장로의 말에 놀란 도결은 눈을 크게 떴다.


“그게 오늘이었습니까?······”


네. 그게 바로 오늘입니다. 이 사질놈아!


“너야 그렇다 치고, 현명이는 대체 뭐하길게 제자 비무일을 알려주지 않은게야?”


“스승님께선, 새벽 일찍 동트기 전에 마을에 다녀오신다고······.”


현권장로는 고개를 가로 저었다.


자신이 문파내에서 가장 이타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다고 늘 자부했지만, 현명과 도결의 앞에만 서면 겸손해 지는 현권장로였다.


“늦었으니, 어서 출발하자.”


도결은 머리를 긁적이며 부랴부랴 자신의 녹슨 검을 집어 들었다.


“이놈아! 같은 문파 제자끼리 그 녹슨검으로 베기라도 할 참이더냐?”


“예? 그럼····· 저는 무얼 들고 싸워야 합니까·····?”


현권장로의 한숨소리가 진경각의 밖까지 울려퍼졌다.


하아.


“연무장에 가면, 날이 없는 가검을 줄것이다. 그리고 싸우는게 아니고! 비무! 서로의 경지를 가늠해 보는 시간이다! 알겠느냐?”


하긴, 배운 무공이라고는 무취섬화(無翠閃火) 하나일 뿐일텐데······.


괜히 도결의 처지를 생각하니 자신의 마음까지 아려오는 현권장로였다.


그들이 진경각의 문을 나서려 하자, 현명이 헐레벌떡 뛰어오며 도결에게 손바닥만한 가죽을 건넸다.


가죽이라니? 가검에 맞아 다칠 곳에 미리 덧대기라도 하려는 심산인건가?


현명은 잠시 숨을 고르곤 도결을 향해 말했다.


“사슴 가죽이니라! 같은 문파 제자의 비무에선 가검을 쓴다고 하더라. 가검엔 검집이 없고······.”


그제서야 현명이 마을까지 내려가 사슴 가죽을 구해온 이유가 밝혀졌다.


하지만, 정작 도결은 그 이유를 모르겠다는 듯 고개를 계속 갸웃거렸다.


“스승님, 사슴 가죽은 왜······?”


하아.


다시한번 현권장로의 한숨소리가 진경각의 밖까지 울려퍼졌다.


“네놈이 펼칠 무공이 무엇이더냐?”


“그야 물론, 무취섬화(無翠閃火) 입니다.”


발검술인데! 검집이 없으면! 응?!


뒤늦게 현명이 사슴 가죽을 구해 자신에게 건넨 스승의 의도를 알아차린 도결은 눈물을 글썽이기까지 했다.


현명은 차마 자신의 제자가 얻어 맞는 장면은 보기 힘들다며 그대로 진경각에 남았다.


무당파 내문의 연무장.


내문제자 11여명과 외문제자 6명, 총 17명이 오늘 비무대회에 참가했다.


참가자 중 23대 제자들의 대사형인 진무(眞武)는 장로회의 승인을 거쳐 부전승으로 결승에 직행했다.


무당파의 비무대회는 특이하게도 승자연승제였기에 순번이 가장 중요했다.


그말인 즉, 첫번째에 뽑히면 16명을 이겨야 이 비무대회에서 당당하게 우승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중 최종 우승자를 제외한 나머지 4명의 제자는 장로회와 장문인의 논의를 거쳐 최종적으로 남무지회(南武之會)에 참가할 자격이 주어지는 것이었다.


순번뽑기가 시작되었다.


현권장로는 도결의 순번이 열여섯번째이길 간절하게 소망했다.


사질들 속에서 홀로 22대 제자의 배분으로 참가하였기에 최소한 가장 늦은 순번을 뽑아 그의 마음에 새겨질 상처가 크지 않기를 바랬다.


제발.


간절하게 소망하면 이루어진다.


라고 누가 말하였는가.


도결은 덤덤한 표정을 지으며 당당하게 일(一)이라고 적힌 순번표를 뽑아들었다.


젠장.


최악이었다.


한편, 내문의 직계제자들 사이에선 이미 그들의 스승들로부터 한가지 사항이 전달되었다.


백도결의 몸을 상하게 하진 말것.


비록 그들사이에선 없는 존재였지만, 엄연히 이곳은 무당.


배분으로 나뉜 철저한 수직관계가 존재했다.


이 곳에 출전한 23대 제자들에겐 사숙이며, 그들의 스승들에겐 엄연한 사제였다.


그리고 가장 주요하게 작용한 입김은 바로, 무학당주(武學堂主)이자 장로 장현권(張玄權)의 존재였다.


현권장로는 그의 사제와 사질들에게 대놓고 엄포를 했었다.


무당의 검법 하나 제대로 배우지 못한 사숙에게, 사질들이 모욕을 줘도 되겠느냐며.


그렇다고 일부로 져줄수는 없는 노릇이었기에, 도결의 몸이 상하지 않는 선에서 끝내자는 암묵적인 협의였다.


도결아, 도결아.


뽑아도 하필 일(一)번을 뽑느냐.


현권장로는 몰려오는 두통에 손을 관자놀이에 가져다 대었다.


흑(黑) 백도결(白道決)

백(白) 설풍연(雪風燕)


비무관(比武官)이 흑백의 이름을 호명하며, 팔을 들어 올려보였다.


첫번째 비무였다.


현권장로는 비무관이 팔을 들어올리자, 차마 도결의 모습을 보지 못하겠다는 듯 고개를 돌려 시선을 회피해버렸다.


‘도결아, 사백이 되어서 사질에게 해줄 수 있는게 아무것도 없구나.’


어렴풋이 도결의 외침이 들리는 것 같았다.


“무취섬화(無翠閃火)”


에휴,


그놈의 무취섬화, 그냥 검뽑아 내는 동작일 뿐인데.


진작에 현명에게 그럴듯한 검법이라도 하나 전수해 줄 걸.


일각(一刻)도 아닌 말한마디 내뱉을 시간조차 지나지 않았다.


비무관이 우렁차게 승자의 이름을 알렸다.


“승자, 흑(黑) 백도결(白道決)!”


잘못들은 것인가? 환청이겠지.


장내는 술렁이기 시작했다.


“뭐야? 방금봤어?”


“아니? 무슨일이 벌어진건데? 잠깐 고개돌렸는데 설풍연이 쓰러져 있네?”


“···· 비무대회 준비한다고 너무 무리한거 아니야? 그냥 혼자 쓰러진 것 같은데······.”


“아냐, 보고 있었는데··· 뭔가 번쩍이긴 했어······.”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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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무당산의 패륜아(8) 24.09.17 77 4 12쪽
20 무당산의 패륜아(7) 24.09.17 114 4 13쪽
19 무당산의 패륜아(6) 24.09.12 142 4 14쪽
18 무당산의 패륜아(5) 24.09.11 129 4 14쪽
17 무당산의 패륜아(4) 24.09.10 137 3 13쪽
16 무당산의 패륜아(3) 24.09.09 151 4 14쪽
15 무당산의 패륜아(2) 24.09.08 138 3 12쪽
14 무당산의 패륜아(1) 24.09.06 163 5 13쪽
13 남무지회(13) 24.09.04 186 6 12쪽
12 남무지회(12) 24.09.04 172 5 12쪽
11 남무지회(11) 24.09.02 176 4 13쪽
10 남무지회(10) 24.09.01 179 4 12쪽
9 남무지회(9) 24.08.30 197 5 12쪽
8 남무지회(8) 24.08.30 203 7 12쪽
7 남무지회(7) 24.08.29 207 6 13쪽
6 남무지회(6) 24.08.28 222 6 12쪽
5 남무지회(5) 24.08.27 231 6 14쪽
4 남무지회(4) 24.08.27 241 6 12쪽
3 남무지회(3) 24.08.25 241 6 12쪽
» 남무지회(2) 24.08.25 270 8 12쪽
1 남무지회(1) 24.08.25 367 8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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