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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단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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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25 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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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25 1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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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남무지회(3)

DUMMY

연무장에서 벌어진 첫번째 비무.


온전히 본 이는 오직, 도결.


자신 뿐이었다.


약, 일각(一刻)의 휴식시간이 주어진 후 두번째 비무가 바로 시작되었다.


첫번째 비무때와 달리, 연무장에 모인 문파의 사람들은 도결의 모습을 확인하려는 듯 모두의 이목이 그를 향해 집중됐다.


그리고 또 한사람, 무학당주(武學堂主) 장현권.


그는 도결의 모습을 놓치지 않으려, 한시도 그에게서 눈을 떼지 않았다.


우연이겠지.


그럴리가 없다.


흑(黑) 백도결(白道決)

백(白) 천명지(天明志)


이번에도 비무관(比武官)이 흑백의 이름을 호명하며, 팔을 들어 올려보였다.


두번째 비무였다.


보통 중원의 정문 명파 제자라면, 응당 비무가 시작되기 전에 허리를 꼿꼿이 세우고 발검하는 것이 당연한 일이었다.


어느새 무(武)에 미(美)가 가미된 것 이었다.


그리고 그들은 그걸 예(禮)라고 포장했다.


비무관이 팔을 들어 올리기 전, 도결은 허리를 세우는 대신 왼쪽 무릎을 굽히며 무게중심을 머리에 두었다.


그리고 엄지발가락의 대돈혈(大敦穴).


두번째 발가락의 여백혈(厲兌穴).


단전의 모든 내공을 자신의 오른쪽 발가락 끝에 집중했다.


비무관의 팔이 서서히 올라가기 시작하자 도결의 오른쪽 허벅지가 급격하게 핏줄을 세우며 팽창했다.


이윽고 비무관의 팔이 완벽하게 하늘을 향하자 발검소리가 들려왔다.


팟-


아니, 그의 발검소리는 백(白) 천명지(天明志)가 쓰러지고 난 후에야 들려왔다.


분명 연무장 내의 모든 시선은 도결을 향해 있었다.


그럼에도 그가 검을 빼어든 동작을 제대로 본 이는, 소수의 22대 제자들과 장로들 뿐이었다.


비무관이 우렁차게 승자의 이름을 알렸다.


“승자, 흑(黑) 백도결(白道決)!”


너무 찰나의 시간이라, 천명지가 쓰러진 후부터 비무관의 외침이 있기 전까지의 시간이 길게 느껴질 정도였다.


다시한번 장내가 술렁였다.


“백도결?도(道)?그럼 우리의 사숙되는 배분이 아니더냐·····?”


“사, 사형······ 이 곳에 듣는이가 많습니다.”


“크, 크흠. 내가 실수를 하였구나. 그런데, 어찌하여 사숙님께서 사질들의 비무대회에 참가하신거지?”


“저도, 잘······ 그나저나 사형! 저분께서 사용하시는 무공이 무엇인지 알고 계십니까?”


“글쎄, 나도 처음보는 검법이었다. 아마도 우리보다 배분이 높으니 문파의 비전검법을 배운게 분명하다!”


장내의 외문제자들이 무취섬화(無翠閃火)를 알리 없었다.


물론 장문인을 비롯한 장로들.


즉, 21대 현(玄)자의 배분을 가진 이를 제외한다면 22대, 23대의 제자들은 무취섬화라는 검법의 이름조차 생소했다.


그리고 지금, 이곳에 있는 21대 현(玄)자의 배분의 장문인을 비롯해 장로들까지도.


도결의 검법을 알아보는 이는 극소수였다.


그리고 무취섬화라고 알고 있던 현권장로마저 도결을 의심했다.


·····저게 무취섬화라고?


이 사제놈과 사질놈이 작당하고 나를 속였구나.


진경각에서 비전검법이 적힌 비급이라도 발견한 겐가?


진작 말을 하지.


걱정하지 않았느냐.


세번째 비무가 시작되기 전까지 또, 일각(一刻)의 휴식시간이 주어졌다.


비무대회에 참가한 23대 제자들은 도결을 힐끗 처다보며 수근거렸다.


“이건 반칙이야. 혼자서만 비전검법을 배운 사숙이 사질들의 비무대회에 참가하다니!”


“우와······, 저도 언젠가는 저 검법을 배우고 싶습니다. 베는 모습을 보지도 못했습니다····.”


사실상 이 비무대회는 무당파 23대 제자들 중 대사형인 진무(眞武)를 제외한 옥석을 가리는 자리였다.


그만큼 이 자리는 무당파에서 단순한 비무대회 이상의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


이 대회를 통해 제자들의 재능과 잠재력을 가늠할 수 있었으며, 그들의 미래를 엿볼 수 있는 중요한 행사였다.


그래서 거의 모든 장로들이 자리를 지켰고, 장문인인 소현청(蕭玄淸)까지 이 자리에 참석하여 제자들의 실력을 직접 확인하고자 했다.


무당파의 운명을 이어갈 인재들을 선별하는 순간인 만큼, 이들의 시선은 하나같이 날카로웠고, 그 안에서 23대 제자들은 더욱 긴장된 마음으로 연무장에 올랐다.


이윽고 세번째와 네번째의 비무가 끝났음에도 여전히 그곳에 서있는 자는 도결이었다.


네번째까지의 비무는 도결의 단 일합(一合)이 전부였다.


단지, 네번째 비무에서는 도결의 검법이 다소 느려진 듯 보였다.


도결의 모습을 염려한 현권장로는 비무관에게 다가가 일각(一刻)이 아닌 이각(二刻)의 휴식을 명했다.


현권장로가 그의 상태를 확인하려 다가갔다.


이미 충분했다.


다치거나 재차 비무를 벌여 모욕을 당한다면 오히려 도결에겐 득보단, 실이 많을 터였기에.


그를 말리려 함이었다.


흡족한 듯, 얼굴에 한가득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사질놈아, 이쯤하면 되었다. 이 사백은 너의 모습을 다시 보았으니 이만 하자구나.”


현권장로의 물음에 도결은 또다시 특유의 멍청한 표정을 지어보이며 입을 열었다.


“무슨 소리이십니까?”


“그 정도면 네놈을 더 이상 무시하는 이들은 없을게다. 하니, 이쯤에서 물러남이 어떠하냐?”


하지만, 도결의 눈동자에는 여전히 투지가 새어 나오고 있었다.


정말 그 스승에 그 제자였다.


고집불통.


이윽고 도결의 입에서 예상했던 답이 흘러나왔다.


“사백님, 그 말씀은 못들은걸로 하겠습니다.”


“끄응······.”


“그리고···· 한가지 청이 있습니다.”


좀 처럼 부탁이라는걸 하지 않는 도결이었다. 그의 스승처럼.


“말해보거라.”


도결은 그에게 남는 가죽이나 천을 부탁했다.


그의 청을 들은 현권장로는 사슴가죽으로 검집을 대신하고 있던 도결의 왼손을 바라보았다.


아뿔사.


그 곳엔 이미 너덜너덜해진 가죽과 함께 그의 왼손에선 선혈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미처 생각치 못했다. 설마 네번의 발검으로 가죽이 넝마가 되어있을줄은······.’


그것도 진검이 아닌, 날도 서있지 않은 가검이었기에.


그렇다고 자신의 독단으로 가죽을 내어줄 순 없었다.


마음같아서는 자신의 검이라도 주고 싶었다.


하지만 이 곳은 엄연히 같은 문파 제자들끼리의 비무대회.


즉, 형평성의 문제였다.


“잠시, 기다리거라.”


현권장로는 빠르게 연무장의 계단위에 있던 단상으로 돌아가 장문인, 그리고 장로들과 이 일에 대해 논의했다.


얼마의 시간이 지나지 않아 현권장로는 도결을 향해 고개를 끄덕여 보이곤, 종전까지 쓰던 사슴가죽보다 훨씬 질긴 악어 가죽을 가져다 주었다.


악어 가죽은 매우 귀한 가죽이었다.


구하기가 매우 어려워, 극소량의 면적으로 장식품을 만들때나 사용하는 것 이었지만 현권장로는 기꺼이 자신이 선물받았던 악어 가죽을 그에게 내주었다.


이 깟 악어 가죽보단 사질의 왼손이 염려되었기에.


“감사합니다. 그런데····제가 쓰면 이 귀한 가죽이 또 넝마가 될텐데 괜찮겠습니까? 전 천조가리도 상관없습니다.”


내가 상관이 있다. 이놈아!


사슴가죽으로도 안되는걸 천조가리를 댄들.


“개념치 말거라. 그깟 거 널리고 널렸으니.”


“예 사백님, 다녀오겠습니다.”


뒤돌아 다시 연무장의 단상으로 돌아가려던 현권장로의 귀에 비무관의 외침이 들렸다.


흑(黑) 백도결(白道決)

백(白) 운진혁(雲眞赫)


운진혁?


하필 다섯번째 상대가 진혁(眞赫)인 것이냐.


하아,


그러게 그만 하자고 할때 그만 두면 될 것을.


현권장로는 진혁에게 호되게 당할 도결이 걱정되어, 단상으로 가지 않고 연무장의 바로 앞에 자리했다.


진혁은 23대 제자중 두번째로 높은 서열의 제자였다.


비록 진무(眞武)보다는 깨달음이 부족하다는 평이 있었지만, 나이차를 고려했을 때는 유력한 차기 무당검의 후보 중 한명이었다.


아이고.


미치겠다.


산 넘어 산이라더니.


연무장의 단상에 있던 장문인과 장로들은 이번엔 도결이 아닌 진혁의 모습을 주시했다.


“저 아이가 도청(道淸)의 제자인 진혁인가?”


“예, 장문인. 진무와 함께 23대 제자들을 이끌고 있는 진혁이 맞습니다.”


“끌끌, 늙어 노안이 왔나. 면식이 있는데도 자꾸 깜박하는구나······.”


“그런 말씀을····· 그나저나 저희 무당파의 미래가 밝습니다.”


현우장로(玄雨)의 말에 장로들은 일제히 진혁의 모습을 눈여겨 보려는 듯 더욱 날카로운 눈빛으로 그를 지켜봤다.


하지만, 무당의 장문인 소현청(蕭玄淸)은 진혁에서 도결로 시선을 옮기며 조용히 말했다.


“끌끌, 기대가 되는 아이로구나.”


그러지 말았어야 했다.


비무관이 팔을 들어 비무의 시작을 알리자, 현권장로는 진혁에게 전음을 날렸다.


[몸 상하게 하진 말거라.]


비무가 시작되자, 여지없이 도결의 입에서 검법의 이름이 흘러나왔다.


“무취섬화(無翠閃火)”


이놈이!


내가 이리 가까이 있는데도 다른 검법의 이름을 말해?


나중에 따끔하게 혼을 내줄테다! 이 괘씸한 사질놈아!


네번째 비무에서 이미 내공이 다하였거나, 육신이 의지를 따라오지 않았음을 확신한 현권장로는 기대없는 눈빛으로 도결을 바라봤다.


다치지만 말거라.


이렇게 가까이에서 도결의 검법을 보았다.


도결은 네번째 비무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빠르게 검을 빼어들었다.


팟-


이번에도 역시 도결이 자신의 왼손에 검을 집어넣고서야 발검소리가 들려왔다.


‘어떻게 된거지·····? 종전보다 더 빨라졌다. 내 눈으로도 분간해 내기 어려울 정도로·····.’


아, 가죽이 문제였던 것인가?


그도 그럴것이 사슴가죽은 이미 넝마가 된 채 였다.


거의 맨손으로 검날의 마찰력을 받아내려면 아무래도 제 힘을 발휘하지 못했겠지.


새삼 도결을 다시 보는 현권장로였다.


‘정말이지 미친놈이 따로없군. 종전까지는 원래 힘을 발휘하지 못했던 것인가?끄응···.’


하지만, 이번엔 비무관의 외침이 들려오지 않았다.


하긴, 다른 제자도 아니고 진혁인데.


연무장의 중앙에는 검이 산산조각 난 채 진혁이 멀뚱히 서 있었다.


진혁은 비무관을 향해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죄송합니다. 검에 금이 가있던 걸 미처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비무관은 그의 산산조각난 검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 곳 연무장에 자신의 사조이자 무학당주가 자리하고 있음에.


진혁은 도결을 향해 정중하게 포권하며 말을 건넸다.


“사숙님, 죄송합니다. 미처 검의 상태를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도결은 진혁이 말을 건넸음에도, 여전히 왼쪽 무릎을 굽힌 채 그를 응시하고 있었다.


진혁은 그런 도결이 고까웠다.


비록 무학당주가 있어 차린 예였지만, 대답조차 하지 않다니.


새로운 검을 건네받은 진혁은 눈동자를 차갑게 빛내며 자세를 취했다.


허리를 꼿꼿이 세운 채.


반면 여전히 왼쪽 무릎을 굽히고 허리를 지면에 가깝게 숙이고 있는 도결의 모습과 대조되었다.


‘놀라긴 했지만, 정말 배운게 없는 사숙인 모양이군.’


비무관이 재차 팔을 들어 비무의 재개를 알렸다.


팟-


진혁의 눈동자는 더이상 차갑지 않았다.


아니, 그럴 수 없었다.


그의 눈동자는 경악에서 서서히 분노로 바뀌어갔다.


이번에도 역시 진혁의 검이 산산조각 났다.


술렁거리는 장내.


“뭐, 뭐야? 또 금이 간 검을 집어드신거야?”


“그러게, 진혁 사형 오늘 일진이 사납네····.”


비무관은 진혁의 검상태를 바라보곤 오히려 그에게 사과를 건넸다.


“이번엔 내가 미처 확인하지 못했나 보네. 잠시만 기다리시게.”


“예.”


다섯번째 비무가 세번째 재개되었다.


팟-


또 다시 진혁의 검은 산산조각 났다.


그리고 여전히 도결은 자세를 풀지 않은 채 그를 응시하고 있었다.


다섯번째 비무가 네번째 재개되었다.


현권장로는 이상함을 느꼈다.


마치 진혁이 다치지 않도록 도결이 배려하고 있다는 이질적인 감각.


이번에 도결은 종전보다 조금 더 뜸을 들였다.


그의 오른쪽 허벅지가 급격하게 핏줄을 세우며 팽창하기 시작했다.


왼손에는 검을 집어 넣은 채.


그의 오른발이 힘차게 지면을 내딛자 연무장의 바닥이 갈라지며 파열음을 냈다.


쿠궁-


콰지직-


괴랄한 소리에 장내는 일순간 고요해졌다.


이윽고 진중하고, 간결한.


도결의 중얼거림이 바람을 타고 현권장로의 귓가에 뒤늦게 들려왔다.


“섬광보다, 빠르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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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무당산의 패륜아(6) 24.09.12 141 4 14쪽
18 무당산의 패륜아(5) 24.09.11 128 4 14쪽
17 무당산의 패륜아(4) 24.09.10 137 3 13쪽
16 무당산의 패륜아(3) 24.09.09 149 4 14쪽
15 무당산의 패륜아(2) 24.09.08 136 3 12쪽
14 무당산의 패륜아(1) 24.09.06 163 5 13쪽
13 남무지회(13) 24.09.04 185 6 12쪽
12 남무지회(12) 24.09.04 172 5 12쪽
11 남무지회(11) 24.09.02 175 4 13쪽
10 남무지회(10) 24.09.01 178 4 12쪽
9 남무지회(9) 24.08.30 197 5 12쪽
8 남무지회(8) 24.08.30 202 7 12쪽
7 남무지회(7) 24.08.29 206 6 13쪽
6 남무지회(6) 24.08.28 222 6 12쪽
5 남무지회(5) 24.08.27 229 6 14쪽
4 남무지회(4) 24.08.27 240 6 12쪽
» 남무지회(3) 24.08.25 241 6 12쪽
2 남무지회(2) 24.08.25 269 8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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