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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단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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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25 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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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04 16: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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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무지회(13)

DUMMY

감숙성 변방의 작은 부락.


이곳은 늘 강바람이 불고, 사람들은 그 바람에 삶을 실었다.


그러나 꼬마였던 어자(漁子)에게 그 바람은 차가운 절망으로 느껴졌다.


그의 부모는 매일같이 강으로 나가 고기를 잡는 어부였고, 그들의 가난은 그의 어린 여동생과 자신을 방치하게 만들었다.


그러던 어느 날, 마을에 비단옷을 차려입은 무리가 나타났다.


그들은 허름한 어자(漁子)의 집을 침입하듯 들어와, 하나뿐인 여동생을 끌어갔다.


"크크, 이쁘장한 게 첩으로 두면 딱이겠군."


어자(漁子)의 부모는 그들에게 은자 한 냥을 받고 여동생을 팔았다.


어자(漁子)는 분노했지만, 어린 나이에 할 수 있는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곧이어 어자(漁子) 자신 또한 지나가던 종남파의 누군가에게 은자 두 냥에 팔려갔다.


운명은 그를 더 깊은 고통으로 끌어들였다.


처음에는 운이 좋다고 생각했다.


최소한 부호(富豪)의 개가 되진 않았으니.


그러나 처음 그곳에서의 그의 삶은 보잘것없었다.


그저 청소나 하는 잡부에 불과했으니.


그러나 어느 날, 그에게 새로운 운명의 문이 열렸다.


종남파의 옷을 깔끔하게 차려입은 사내, 진령우가 그에게 다가왔다.


“네놈 이름이 무엇이냐?” 진령우가 물었다.


“이름은 없습니다. 마을에서는 그냥 저를 어자(漁子)라 불렀습니다.”


어자(漁子).


단순했다. 어부의 아들, 어자.


진령우는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네놈 무공을 배워보겠느냐?"


어자는 눈을 이리저리 굴렸다.


종남파는 말 한마디로 목숨이 달아날 수 있는 곳이라 들었다.


그러나 진령우의 제안은 너무도 달콤했다.


“제가 그래도 되는지요?”


진령우는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내가 된다 하면 되는 것이지."


어자는 더 이상 망설이지 않았다.


아무리 생각해도 죽는 건 매한가지.


그러니 차라리 무공이라도 배워보자.


“예. 무공을 배우고 싶습니다.”


“그래, 오늘부터 너는 진령우의 제자 남해성이다. 알겠느냐?”


어자는 그를 향해 땅바닥에 머리를 찧으며 말했다.


“예, 저는 오늘부터 남해성입니다. 나으리·····.”


그렇게 그는 어자에서 남해성으로 다시 태어났다.


가장 소중한 것을 잃은 뒤에야 모든 것을 얻었다.


약관이 되자, 남해성은 어엿한 종남파의 21대 제자가 되었다.


이제 두려울 것이 없었다.


남해성은 그동안 찾고자 했던 하나뿐인 여동생을 백방으로 수소문했다.


그러나 그녀의 행방은 묘연했다.


그녀가 죽었는지, 살았는지조차.


어느 날, 사천성의 번화한 거리에서 그는 한 소녀를 마주쳤다.


‘내 누이가 살아있다면, 저 정도 나이가 되었겠지·····’


그녀는 그의 시선을 느끼고 다가와 팔짱을 끼며 말을 걸었다.


“공자, 오늘 밤 저와 함께 취해보시겠습니까?꺄르르.”


남해성은 조용히 그녀의 팔을 풀었다.


"관심 없소."


그러나 소녀는 끈질기게 그에게 다시 팔짱을 끼며 유혹했다.


“에이~ 그러지 마시고····· 표정이 어두워 보이시는데, 오늘밤은 이 소녀가 공자의 기분을 좋게 해드리겠습니다~ 꺄르르.”


남해성의 눈이 차갑게 빛났다.


“이 자리에서 죽고 싶은가? 관심 없다고 하지 않았나.”


그의 말에 소녀의 눈가에는 눈물이 맺혔다.


“죄송합니다, 나으리·····”


나으리라.


그녀의 두려운 눈빛을 본 남해성은 어린 시절 어자(漁子)의 모습을 떠올렸다.


그리고 다시 소녀를 보았다.


‘묘하게 닮았구나····· 살아는 있는 것이냐?’


그날 밤, 그는 결국 소녀와 함께 기루에서 밤을 보냈다.


비극의 아침.


다음 날 아침, 소녀는 천천히 벗어두었던 옷을 주섬주섬 챙겨 입으며 남해성에게 말했다.


“공자, 다음에도 또 볼 수 있겠지요?”


그녀는 옷을 입으며 협탁에 놓인 팔찌를 착용했다.


나무로 만든, 소박한 팔찌였다.


팔찌를 본 남해성이 눈을 크게 떴다.


“자, 잠깐만!”


그녀가 놀란 듯 그를 바라보았다.


“왜 그러십니까? 혹시····· 제가 마음에 드는 겁니까? 꺄르르.”


남해성은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이 팔찌... 어디서 났소?”


그녀는 미간을 찌푸리며 대답했다.


“어렸을 적, 오라비가 저에게 준 선물입니다.”


그 말에 남해성의 온몸이 떨리기 시작했다. 눈물이 눈가에 고였다.


그러나 그는 겨우 떨리는 입술을 움직이며 말했다.


“별것 아닙니다. 그냥···· 신기해서 물어본 겁니다.”


그녀는 해맑게 웃으며 말했다.


“꺄르르, 다음에 또 찾아주세요, 공자.”


그녀가 문을 열고 나가자, 남해성은 끝내 억누르지 못한 눈물을 터뜨렸다.


‘이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장난이란 말인가... 정녕 하늘이 나를 저버린 것이냐.’


그는 그 자리에 무릎을 꿇고 울부짖었다.


하늘은 그에게 가장 소중한 것을 빼앗고, 가장 끔찍한 방식으로 되돌려 주었다.


****


비무관이 우렁차게 승자의 이름을 알렸다.


“승자, 백(白) 무당파 22대 제자 백도결!”


연무장은 다시금 술렁였다.


경기의 시작을 알리자마자 남해성의 몸이 연무장을 구르며 파열음이 울렸음에도, 대부분의 관중은 남해성에게 시선을 고정한 채 옆사람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렇기에 장내의 종남파 제자들과 장로들은 아무도 도결이 어떻게 승리했는지 보지 못했다.


단 한 순간도.


그러나 무당파의 장로들과 제자들만큼은 그 순간을 똑똑히 목격했다.


그의 푸른색 섬광을.


“뭐야? 시작하자마자 끝난 거라고?”


“비무관이 분명 무당파의 승리라고 했는데····, 나도 남해성을 보고 있다가 아무것도 못 봤다네······.”


그들의 표정에는 어리둥절함과 놀라움이 가득했다.


단상에 있던 종남 장로들의 표정이 급격하게 어두워졌다.


무슨일인 것이냐······.


아무리 방심하였기로서니······.


종남의 신풍이 이리도 허무하게 진다는게 말이 되는 것인가!


단상에 있던 두 문파의 장로들과 관계자들은 연무장의 모습에 아무도 입을 열지 않았다.


그저, 무당의 장로들은 희미한 미소와 함께 희망을 품고 있을 뿐이었다.


침묵을 깨고 무당의 현권장로가 말했다.


“크흐흐, 잡담은 비무가 끝난뒤에 하시지요~”


어느덧 그의 말엔 자신감이 묻어있었다.


기고만장하기는.


우리에겐 아직 해준이가 남아있다!


“예, 아무래도 그러는게 좋을 듯 합니다~ 껄껄”


연무장에서 때아닌 파열음이 들려왔다.


크드득, 콰앙-


콰과가앙-


무시무시한 살기와 검기가 뒤섞이며, 쓰러져 있던 해성의 몸을 휘감기 시작했다.


그의 눈동자는 초점없이 풀려있었다.


해성은 부러진 검을 손에 쥐고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그의 온몸에서 피어오르는 검기는 마치 불타오르듯 패도적인 기운을 내뿜었다.


가슴에서 흘러내리는 피는 그의 옷을 적시고 있었지만, 그는 전혀 아랑곳하지 않았다.


“아직 끝나지 않았다.”


해성이 중얼거렸지만, 아무도 듣지 못했다.


그의 부러진 검에서 검기가 일렁이며 살기와 뒤섞여 모여들기 시작했다.


크지지직-


이 모습을 지켜보던 종남의 장로들은 다급히 진령우에게 눈빛을 보냈다.


‘막아야 한다.’


저건 종남의 무공이 아니다!


아직 주화입마에 완전히 빠지기 전이다.

더 늦기 전에 저놈을 막아야 한다!!!


해성의 풀린 동공이 도결을 향해 고정됐다.


하늘은 참으로 잔인하지 않나.


가진 자에겐 한없이 너그럽고, 가지지 못한 자에겐 끝없는 고통을 주며 조롱하는구나.


크하하하······.


차라리.


다 죽여버리는 게 어떻겠나.


모두 죽여버리면.


그때는 공평해지겠지.


하늘도, 더 이상 아무에게도 미소 짓지 못할 테니까.


도결은 해성을 똑바로 응시했다.


그가 뿜어내는 기운은 여지껏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것이었다.


위험하다.


여기서 베어 내지 않으면, 사질들이 다칠 것이다.


도결의 오른쪽 허벅지가 급격하게 핏줄을 세우며 팽창했다.


그의 몸에서 흘러내리는 땀과 크게 몰아 내쉬고 있는 한숨은, 푸른색의 불꽃으로 기화되기 시작했다.


한편, 어느새 령우는 해성의 바로 뒤에 접근해 있었다.


‘다행이다, 이제 되었다!’


무당의 제자가 해성이에게 먼저 손을 쓴다면 걷잡을 수 없게 될 것이다.


거리는 충분했다.


해성과 도결은 연무장의 끝과 끝에 위치해 있었고, 령우는 그런 해성의 바로 한발자국 뒤였기에.


진령우는 왼손으로 해성의 목 뒤 풍부혈을 겨냥해 점혈을 시도하면서, 오른손에는 검을 들고 도결의 검로를 막으려 준비했다.


그 순간, 진령우의 눈에 푸른 섬광이 보였다.


‘빠르다.’


그러나 자신이 먼저 움직였다고 생각했다.


거센 바람이 그들의 주위를 휘감으며 머리카락이 흩날렸다.


진령우는 잠시 안도했다.


‘때 아닌 돌풍인가?’


그렇다기엔 그들의 몸을 스치는 바람은 너무 이질적이었다.


점혈을 끝낸 진령우는 고개를 들어 도결을 향해 검을 뻗었다.


그러나 그의 눈앞에 펼쳐진 광경은 믿기지 않는 것이었다.


······.


도결은 이미 해성의 목에 검을 겨누고 있었다.


파직-

파지직-


그의 검에서 괴이한 소리가 들려왔다.


‘뇌전인가···? 어찌 이리 빨리···.’


후우, 조금만 늦었어도······.


하지만 이상했다.


진령우는 자신의 검을 유심히 내려다보았다


하지만 그곳에는 어떠한 감촉도, 저항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의 검보다 먼저 해성의 목에 닿아있는 도결의 검이 그저 사실을 증명하고 있을 뿐이었다.


그럴 리 없다.


저만큼 거리차이가 났음에도 내가 먼저 움직였는데, 이자가 내 검보다 먼저 닿았다니······.


‘대체 이 자의 정체는 무엇이란 말인가···’


진령우는 도결을 향해 한 걸음 다가서며 말했다


“실례가 많았소, 종남의 일이니 검은 거두어 주시지요.”


도결은 여전히 해성을 응시하며 차갑게 되물었다.


“여긴 무당입니다.”


진령우는 침착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예, 맞습니다. 하지만 이놈은 종남의 제자요. 종남의 일이니 제가 책임지고 데려가겠습니다.”


해성을 향한 도결의 눈빛이 더욱 날카로워졌다.


“믿어도 되겠습니까?”


“예, 책임지고 제가 데려가····”


그의 말에 도결의 시선이 해성에게서 진령우에게 옮겨졌다.


그러나 그와 동시에,


쉐에엑-


검이 공기를 가르는 소리와 함께 진령우의 목에 붉은 선이 그어졌다.


그의 목이 몸에서 분리되며 힘없이 지면으로 향해 떨어졌다.


······!!


남해성은 어느새 진령우를 향해 검을 휘두른 뒤, 그 자리에 힘없이 무너져 내렸다.


자신의 손으로 스승의 목을 베어낸 해성의 눈은 여전히 공허하게 풀려 있었다.


축 늘어진 그의 입에서 나지막한 중얼거림이 흘러나왔다.


“하늘은 공평하지 않다······.”


단상에 있던 종남의 장로들과 이 모습을 지켜보던 종남의 20대 제자들이 일제히 연무장으로 쏘아져 나왔다.


큰일이다!


종남의 역사에 기록될 리 없는 사변.


“이, 미... 미친 놈이!”


장로들의 얼굴은 일순간 하얗게 질려갔다.


무당의 성역(聖域)에서 스승의 목을 베어낸 제자.


그건 종남의 수치이자, 문파의 치욕이었다.


종남의 제자들은 두려움과 분노로 가득 찬 눈빛으로 기절한 남해성의 몰골을 바라보았다.


단상에 남아있던 종남의 대장로 목천운이 무겁게 입을 열었다.


“실례가 많았습니다. 이번 지회는 여기서 그만 끝내도록 하지요······.”


정중했으나, 그의 목소리에는 거친 떨림이 가득했다.


“예, 그러는 것이 옳겠습니다······.”


무당의 장로들 역시 이 참극을 마주하며 마음이 무거웠다.


결코 일어나서는 안될 일.


그것은 종남만의 일이 아니었다.


훗날, 남해성은 스승을 죽인 죄로 쇠사슬에 묶인 채, 참회동(懺悔洞)에 유배되었다.


그러나 그 천재성을 아까워한 종남의 장로들은 그의 단전만은 파하지 않았다.


결국, 남해성은 참회동에서 채 이년을 버티지 못하고 쇠사슬을 끊고 사라졌다.


참사색마(斬師色魔) 남해성(南海星).


스승을 벤 죄로 타락한 색마.


한때 종남의 신풍이라 불리던 남해성은 훗날 무림공적에 그 이름을 올렸다.


떠도는 풍문으로는 남해성의 누이 백화는 이듬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전해졌다.


종남의 신풍이라 불리던 남해성은 그렇게 사라졌다.


훗날 참사색마(斬師色魔) 남해성은 다시 마주한 백도결을 향해 읊조렸다.


“이제서야 하늘이 공평해졌구나. 크크크”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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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무당산의 패륜아(8) 24.09.17 77 4 12쪽
20 무당산의 패륜아(7) 24.09.17 114 4 13쪽
19 무당산의 패륜아(6) 24.09.12 140 4 14쪽
18 무당산의 패륜아(5) 24.09.11 128 4 14쪽
17 무당산의 패륜아(4) 24.09.10 136 3 13쪽
16 무당산의 패륜아(3) 24.09.09 149 4 14쪽
15 무당산의 패륜아(2) 24.09.08 136 3 12쪽
14 무당산의 패륜아(1) 24.09.06 162 5 13쪽
» 남무지회(13) 24.09.04 185 6 12쪽
12 남무지회(12) 24.09.04 172 5 12쪽
11 남무지회(11) 24.09.02 175 4 13쪽
10 남무지회(10) 24.09.01 178 4 12쪽
9 남무지회(9) 24.08.30 197 5 12쪽
8 남무지회(8) 24.08.30 202 7 12쪽
7 남무지회(7) 24.08.29 206 6 13쪽
6 남무지회(6) 24.08.28 222 6 12쪽
5 남무지회(5) 24.08.27 229 6 14쪽
4 남무지회(4) 24.08.27 239 6 12쪽
3 남무지회(3) 24.08.25 239 6 12쪽
2 남무지회(2) 24.08.25 269 8 12쪽
1 남무지회(1) 24.08.25 367 8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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