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농했는데 다 고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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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26 15: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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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26 1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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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화 : 설마 이것도 고쳐지나?

DUMMY

2화






“허억! 헉! 헉!”


자전거를 탄 남자가 시골길을 달리고 있었다.


거친 숨소리가 연신 터져 나왔지만, 그는 멈출 생각이 전혀 없었다.


그렇게 한참을 달린 끝에 드디어 속도가 줄었다.


마을 어귀의 나무 그늘에 자전거를 세운 남자.


“이쯤 어디였는데?”


선글라스를 벗으니, 잘생긴 눈매가 드러났다.


이 사람의 정체는 사이클 선수 고일영.


한때 올림픽 금메달감이라는 소리를 종종 들을 정도로 실력이 뛰어났다.


물론 지금은 그런 기대감이 싹 사라진 상태였다.


영구적으로 손상된 무릎 때문에 기량이 확 떨어졌으니까.


그래서 그런지, 고일영의 표정은 언제나 어두웠다.


하지만 지금은 자신감 넘치는 표정이었다.


“와! 여기까지 왔는데도 멀쩡하다고?”


스마트 워치를 슬쩍 보자, 150km라는 숫자가 찍혀 있었다.


그는 놀란 눈빛으로 왼쪽 다리를 내려다보았다.


지난 3년간 지긋지긋하게 괴롭혔던 부상이 말끔하게 사라졌다.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이를 악물고 재활 훈련을 해도 변화가 없던 무릎인데 말이다.


이게 다 모동 마을에서부터 시작된 일이었다.


“파란 대문 집. 파란 대문······. 어? 여기다!”


자전거를 끌고 이동하던 고일영은 눈을 부릅떴다.


사고가 났던 바로 그 장소를 찾아냈으니까.


그리고 그 앞은 자신의 은인이 사는 곳이었다.


그는 집 앞으로 다가가 조심스럽게 문을 두드렸다.


“계십니까?”


* * *


우리 집 앞에서 다리를 다쳤던 자전거 탄 남자.


혹시나 해서 스마트폰으로 검색해 보니, 꽤 이름 있는 사람이었다.


올림픽 금메달을 딸지도 모른다는 유망주 고일영.


물론 3년 전의 이야기일 뿐이었다.


지금은 무릎 부상으로 퇴물 소리를 듣고 있었으니까.


한데, 그 남자가 스마트폰 속에서 미친 듯이 달리는 중이었다.


올림픽 남자 도로 경주.


“와! 아슬아슬하네.”


놀랍게도 고일영은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2등하고의 격차가 1초밖에 나지 않았다.


까딱 실수했다간 순위가 확 내려갈지도 모르는 상황.


그런 와중에도 고일영은 1등으로 결승선을 통과했다.


양손을 번쩍 든 채 포효하는데, 중계진들도 난리가 났다.


대한민국 최초로 사이클 금메달을 땄다면서 말이다.


‘정말 회귀 치유술이 효과가 있었던 걸까?’


고일영의 왼쪽 무릎은 멀쩡해 보였다.


예전 영상을 찾아보면, 자전거를 탈 때마다 심하게 부어 있었는데 말이다.


지금은 절뚝거리기는커녕 펄쩍펄쩍 뛰어도 괜찮은 것 같았다.


나는 멍하니 화면을 바라보았다.


그러다 피식 웃음이 나왔다.


“부럽네.”


영혼까지 불태운 열정.


한계를 넘어섰을 때의 짜릿함.


그런 긍정적인 감정들이 전달되는 것 같았다.


그렇다고 열등감 같은 걸 느끼진 않았다.


저 사람과 나는 사는 세계가 아예 다르니까.


시기와 질투는 비슷한 놈들 사이에서나 생기는 거거든.


‘내 일이나 하자.’


배추를 심으려면 미리 토양을 만들어 둬야 했다.


대규모로 경작하는 농부들은 몇 주 또는 한 달 전부터 퇴비를 뿌려둔다.


미생물 분해 과정에서 가스가 발생하기 때문이었다.


보통은 미숙분을 쓰는데, 나는 시간이 부족해서 완숙으로 샀다.


“이거 손으로 하다간 며칠이 지나도 안 되겠는데?”


아버지가 농사짓던 땅은 이제 밭이라고 할 수가 없는 상태였다.


바닥이 굳어진 데다가 풀도 상당히 자라 있었다.


나는 곧장 임대사업소로 향했다.


“안녕하세요? 농기계를 빌리러 왔는데요.”

“어떤 종류가 필요하시죠?”

“밭 갈고, 퇴비 좀 뿌리려 합니다.”

“트랙터 한 대에 외쟁기랑 퇴비살포기 부착해서 쓰시면 되겠네요. 언제 필요하세요?”

“혹시 오늘 가능할까요?”

“잠시만요.”


컴퓨터를 두드려대는 주무관.


이윽고 프린터에서 종이 몇 장이 나왔다.


“오늘 되겠네요. 여기 계약서에 사인해 주시고, 임대료 내시면 됩니다.”

“아, 네.”

“점검표 드릴게요. 기계 확인하고 나서 사인하세요.”


나는 종이를 받아 들고 바깥으로 나갔다.


이윽고 창고에 있던 직원이 이런저런 설명을 해주었다.


농기계는 따로 면허가 필요하지 않아서 그냥 써도 된단다.


‘그렇게 어렵진 않네.’


계획을 세우고 여기까지 오는데, 아무런 문제도 없었다.


이렇게까지 일이 잘 풀려도 되나 싶었다.


매사에 재수 더럽게 없는 내가 말이다.


트랙터를 몰고 조심조심 밭으로 이동했다.


처음에는 어색했지만, 설명대로 하니까 의외로 할만했다.


다소 육중하다는 차이점만 있을 뿐.


그냥 느리게 운전하는 느낌이었으니까.


“시작부터 여길 다 하는 건 무리겠지?”


당장 농사로 먹고살 것도 아니고, 올해는 살짝 맛만 보려 했다.


부모님처럼 1만 평을 다 하는 건 무리였다.


당장 사람 쓸 돈도 없고.


아무래도 한 절반 정도만 하는 게 괜찮겠지.


‘이것도 좀 과한가? 전부 나 혼자 해야 하는데.’


그래도 기왕 농기계를 빌렸으니, 열심히 써먹을 작정이었다.


밭을 갈아엎고 퇴비도 뿌리고 나자, 벌써 저녁이 되었다.


아직 무더운 날씨라 그런지, 온몸이 땀범벅이었다.


밀짚모자를 안 썼다면, 얼굴이 시뻘겋게 익었을 것이다.


“오늘은 여기까지만 하자.”


나는 깔끔해진 밭을 가만히 응시했다.


왠지 모를 뿌듯함이 가슴속을 가득 채웠다.


무너진 마음을 하나하나 정리하고 새로 쌓아 나가는 느낌이었다.


‘과거는 잊자. 난 이제 농부다. 조금씩 다시 꾸려나가면 돼.’


농기계를 반납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하나로마트에서 소포장 된 반찬과 쌀을 좀 샀다.


평범하지만 익숙한 느낌.


‘나물 몇 종류에 고추장, 참기름만 있으면 되겠네.’


오늘은 비빔밥이 딱 좋을 것 같았다.


달걀까지 구워서 올리면 끝장이지.


한데, 누군가가 문득 대문을 두드렸다.


쿵쿵쿵!


“계십니까?”


뜻밖의 손님에 나는 사뭇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어? 고일영 선수?”

“하하! 이번에는 알아보시는군요. 하긴 제가 최근에 갑자기 유명해지긴 했죠.”


나는 눈을 껌뻑거리며 상대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아니, 프랑스에 계셔야 할 분이 대체 왜 여기 있는 겁니까?”


머릿속에 물음표가 수십 개쯤 떠오르는 것 같았다.


이윽고 고일영 씨가 빙그레 웃으며 설명해 주었다.


“생방송으로 안 보셨나 보네요. 경기는 며칠 전에 끝났습니다.”

“아······.”


그럴 수도 있겠다 싶었다.


나는 TV가 아니라 유튭에서 경기를 봤으니까.


근데 그게 며칠이나 지났을 줄이야.


배추 농사한다고 워낙 정신없게 살아서 그랬나 보다.


“어쨌거나 축하드립니다. 부상에서 회복되셨다면서요.”

“이게 다 은인님 덕분입니다.”

“어어? 왜 이러세요?”


갑자기 90도로 고개를 숙이는 고일영.


나는 당황한 목소리로 상대의 어깨를 붙잡았다.


이대로 뒀다간 큰절이라도 할 기세였으니까.


난데없이 이게 무슨 일이란 말인가.


“저는 그냥 119에 신고만 해드렸을 뿐입니다.”

“아뇨. 저는 확신합니다. 은인님께서 제 무릎을 고쳐주셨다는 사실을요.”

“예?”

“여길 이렇게 딱 짚으셨잖습니까? 그때 느껴졌습니다. 엄청나게 시원하더라고요.”


이 사람이 뭘 말하는 건지는 나도 잘 알았다.


‘회귀 치유술.’


창고 지하에서 시공의 선택을 받으며 얻었던 능력.


바로 그것 때문에 망가진 무릎이 고쳐졌겠지.


사실 얼떨떨할 수밖에 없었다.


이게 정신 착란이 아니라, 진짜로 되는 거였단 말인가.


‘말이 돼?’


그냥 손 한 번 댄 것뿐이었다.


한데, 고질적인 부상이 단번에 완쾌되었다.


뭐 이런 기적 같은 일이 다 있나 싶었다.


“이후로 평소처럼 훈련하는데, 성적이 대번에 좋아졌습니다. 통증 없이 자전거를 타는 기분이 참······.”


어느새 고일영은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지난 3년 간의 고생이 문득 떠오른 모양이었다.


얼마나 고통스러웠겠나.


아픔을 참아가며 스스로 채찍질하는데, 마음만큼 성적은 안 나왔을 테고.


‘주변의 기대 또한 무너졌겠지.’


왠지 모르게 예전의 내 모습과 겹쳐 보였다.


차디찬 사회에서 살아 남기 위해 발버둥 치던 그 시절 말이다.


“너무 못난 모습을 보였군요.”

“아닙니다. 충분히 이해해요. 저도 그런 때가 있었거든요.”

“감사합니다. 아, 그리고 이건 제가 준비한 작은 선물입니다.”


고일영은 배낭에서 뭔가를 꺼냈다.


아이스팩이 잔뜩 든 한우 선물 세트였다.


“아니, 뭐 이런 걸 다.”


보통은 방금 같은 말을 하면서 챙기는 게 정석이었다.


하지만 나는 진심으로 거절하고 있었다.


그저 손만 한 번 댔을 뿐인데, 이렇게 비싼 선물을 받다니.


아무리 생각해도 너무 과한 것 같았다.


“받은 은혜와 비교하면 작은 보답입니다.”

“정말 별로 한 일이 없는데요.”

“저한테는 매우 소중한 기적이었습니다. 그럼 이만 가보겠습니다.”

“마실 거라도 한잔하고 가시죠.”

“자전거를 타고 와서요. 해 지기 전에 돌아가려면 서둘러야 합니다.”

“제가 차로 모셔다드릴게요.”

“아닙니다. 훈련하는 셈 치고 가려고요. 그럼 부디 건강 하시길 빌겠습니다.”


고일영은 꾸벅 인사를 한 뒤, 잽싸게 대문을 나섰다.


그러곤 자전거를 타고 휙 가 버렸다.


‘왜 저렇게 서두르는 거지?’


나는 고개를 갸웃하며 한우 선물 세트를 뜯었다.


아이스팩을 빼고 냉장고에 넣어둘 요량이었다.


한데, 고기 밑에 누런 지폐 뭉치가 들어 있는 게 아닌가.


“어?”


5만 원권 네 묶음.


무려 2천만 원이었다.


황당한 광경에 벌어진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이렇게 큰 금액을 받다니, 너무도 얼떨떨했다.


나는 황급히 대문 밖으로 뛰쳐나가 보았다.


하지만 고일영은 이미 사라진 뒤였다.


얼른 아침이를 끌고 나가봤는데, 아무리 찾아도 보이지 않았다.


그새 샛길로 빠져나간 모양이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너무 큰데?”


고작 손 한 번 대주고 2천만 원이라니.


뭐 이런 초고수익 알바가 다 있나 싶었다.


‘이래도 되는 건가?’


고일영 선수의 부상을 치료했으니, 무면허 의료행위 아닌가?


근데 또 어떻게 보면 범위가 좀 모호하기도 했다.


나는 그저 손만 댔을 뿐, 그 외에 다른 행동은 하지 않았으니까.


이걸 의료행위라고 할 수가 있나?


문제가 된다면 거금을 받았다는 것뿐.


“아, 몰라. 어떻게든 되겠지.”


처음에는 돌려줘야겠다는 마음이 강하게 들었다.


하지만 고일영을 찾을 수 없게 되자, 금방 현실에 순응하게 되었다.


돈 준다는데 싫어할 사람이 어디 있겠나.


나는 얼른 밥을 안치고, 유튭을 보며 기다렸다.


큼지막한 냉면 그릇에 반찬을 다 때려 넣고 만든 비빔밥.


공돈이 생겨서 그런지, 진짜 꿀맛이었다.


바닥까지 싹싹 긁어 먹고 난 뒤에 바로 설거지를 시작했다.


그러곤 짤막하게 농사 계획을 세웠다.


“일주일만 놔뒀다가 관리기를 빌려오자.”


무너진 밭두렁을 복구해야 하니까.


검색을 해보니 트랙터에 부착하는 형식의 관리기가 있었다.


비닐 멀칭도 가능한 녀석이라, 한 번에 싹 다 끝내면 될 듯했다.


양치하며 생각에 잠겼는데, 문득 거울에 비친 내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세월을 정통으로 맞아서 그런지, 약간 늙수그레해진 인상.


아직 얼굴은 괜찮았지만, 머리카락이 문제였다.


‘신경 안 쓰고 싶었는데.’


아무래도 고일영 선수 때문인 듯했다.


반짝반짝 빛나는 그 사람을 보고 있자니, 멀끔하게 다니고 싶었다.


나도 그런 시절이 있었으니까.


그런데 바로 그때.


듬성듬성한 머리에 연보랏빛 손자국이 생겨났다.


“어? 잠깐만. 이거 탈모도 복구할 수 있는 건가?”


두근! 두근!


심장이 터질 듯이 요동쳤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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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16화 : 돈 벌기 쉽네 24.09.12 389 19 12쪽
16 15화 : 강철 몸뚱이 24.09.11 415 22 12쪽
15 14화 : 전설의 알바생 24.09.10 423 20 11쪽
14 13화 : 유능한 약장수 24.09.09 427 23 12쪽
13 12화 : 의사 아님 24.09.05 455 24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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