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농했는데 다 고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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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29 1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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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화 : 대장장이는 아니지만 잘 고침

DUMMY

5화






모든 사람이 그렇지 않겠나.


누구나 큰돈에는 혹할 수밖에 없다.


하물며 고일영 선수가 증여세까지 깔끔하게 해결해 준다고 했다.


굳이 거절할 이유를 찾지 못했기에, 잠깐 약속을 미뤘다.


나도 준비가 되어야 고치든 말든 할 수 있으니까.


‘아직 16시간이나 남았네.’


복귀한 이후로 하루 동안은 차원문을 이용할 수 없었다.


어차피 못 가는 동안, 나는 다른 일들을 해놓기로 했다.


일단은 밭부터 둘러봐야지.


“그대로구나.”


이제 막 퇴비를 뿌려두었으니, 가스가 빠질 때까지 내버려두면 된다.


나는 곧장 읍내 알뜰 매장에 방문했다.


여기선 주방 물품이나 가전, 가구 등을 중고로 싸게 구매할 수 있었다.


이곳에 온 이유는 간단했다.


집에 멀쩡한 게 하나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고일영 선수가 준 한우를 먹으면서 느꼈는데, 냉장고가 영 시원찮았다.


고작 하루밖에 안 지났는데도 고기의 신선도가 떨어졌으니까.


‘몇 년 동안 방치되었으니, 그럴 만도 하지.’


새 물건을 사기엔 받기까지 시간이 오래 걸렸다.


게다가 헌 집이니, 쓸만한 중고면 충분할 터.


안으로 들어가자 상당히 괜찮아 보이는 물건이 가득했다.


‘다 필요하네.’


어제는 대충 먹었지만, 밥솥도 영 별로였다.


그냥 하나부터 열까지 전부 사면 될 것 같았다.


내가 이것저것을 막 고르자, 사장님이 주문서를 빠르게 작성했다.


“냉장고, 전자레인지, 전기밥솥, 가스레인지······. 근데 거기 가스는 있어요?”


“아뇨.”


“전기랑 물은 나와요?”


“그건 됩니다.”


“가스는 LPG 배달시켜야 해요.”


“아, 네.”


문득 생각이 났다.


버너를 쓰는 게 불편해서 레인지를 샀는데, 정작 중요한 가스가 없었다.


이게 다 서울에서 오래 산 부작용이다.


거긴 도시가스가 나오는 게 당연하니까.


‘컴퓨터도 사둬야 하는데.’


어지간한 건 스마트폰으로 다 할 수 있지만, 그래도 불편한 건 사실이었다.


화면이 작은 데다가, 시골이라 통신 속도도 제대로 안 나오고.


나는 알뜰 매장 사장님에게 주소를 알려주고, 이곳저곳에 전화를 걸었다.


가스와 인터넷을 설치하기 위함이었다.


그리고 컴퓨터는 좀 좋은 걸로 살 작정이었다.


결혼 생활 중에는 눈치가 보여서 집에 들여놓질 못했거든.


‘혼자가 되니까, 이런 건 좋네.’


굳이 허락을 구하지 않아도 된다.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숨통이 트이는 것 같았다.


표독스러운 전처의 얼굴이 떠오르자, 저절로 진저리가 쳐졌다.


집에 돌아와 있자, 알뜰 매장 사장님이 물건을 차에 싣고 왔다.


“도와드릴게요.”


“아이고! 그래 주시면 고맙죠.”


워낙 무거운 것들이라, 혼자서 옮기기엔 무리가 있었다.


고작 몇 번 오갔지만, 그것도 노동이라고 땀이 쭉 났다.


“냉장고는 서너 시간 뒤에 코드 꽂아요.”


“꼭 그래야 하나요?”


“옮긴다고 기울였잖아요. 컴프레서 오일이 자리 잡아야 하니까, 나중에 켜세요.”


“네, 알겠습니다.”


처음 듣는 이야기지만, 조심해서 나쁠 건 없었다.


기다리는 동안, 스마트폰으로 물건을 주문하려 했다.


페이레스에서 철제 농기구를 팔아야 하니까.


철물점에 가서 사도 되지만, 아마 이상하게 생각할 것이다.


혼자 농사짓는데, 뭐가 그리 많이 필요하냐면서 말이지.


‘다양하게 사보자. 작업 방석도 있으면 좋겠지?’


엉덩이에 딱 붙은 형태의 쿠션.


앉았다 일어났다 수백 번 반복하게 되면, 허리와 무릎에 무리가 간다.


아마 페이레스 사람들에게 잘 팔릴 것이다.


판타지 세계라고 농사가 크게 다르겠나.


사람 사는 데가 다 똑같지.


“싸네.”


하나에 4천 원밖에 안 하는 가격.


일단 한 백 개 정도만 주문해 볼까?


각종 도구도 그만큼 샀으니, 이 정도면 될 것 같았다.


순식간에 몇백만 원을 썼지만, 별 감흥도 없었다.


앞으로 들어올 돈이 많아서 그런 듯했다.


역시 사람은 비빌 언덕이 있어야 한다니까.


‘거기도 집을 좀 손봐야 하는데.’


워낙 허술해서 걱정이었다.


만약 내가 자리를 비운다면, 누군가 훔쳐 갈지도 모르잖아.


CCTV가 단 한 대도 없는 세상이니, 도둑놈이 판을 칠 것이다.


나는 철물점에 들러서 몇 가지 물건을 샀다.


큼지막한 자물쇠 몇 개와 두꺼운 판자, 기다란 못 따위였다.


이걸로 입구를 잠그고, 구멍 난 부분은 죄다 막아 버릴 작정이었다.


“이런 건 뭣 하러 사?”


“창고가 영 허술해서요. 거기다 모종을 넣어놨거든요.”


“아, 그래?”


“또 올게요.”


“처음부터 너무 무리하지 마. 노지 배추는 원래 어려우니까.”


“예예.”


둘러댄 내용이 적절했는지, 규철이 아저씨는 별말이 없었다.


종일 돌아다녔더니, 벌써 날이 저물려 했다.


하나로마트에 들러서 먹을 만한 게 있나 둘러보았다.


‘갈치가 튼실해 보이네.’


무랑 대파를 넣고 고춧가루를 뿌려서 조리면 맛있을 것 같았다.


스마트폰으로 검색해서 필요한 재료를 싹 담았다.


솔직히 별로 자신은 없었다.


내가 요리를 잘 한다고 생각하진 않았으니까.


그래도 콧노래가 절로 났다.


‘예전에는 이런 재미를 왜 모르고 살았을까?’


스스로에게 던진 질문이었다.


하나, 답은 이미 알고 있었다.


그땐 여유가 없었거든.


지금은 과거를 훌훌 털어버리고 새출발 중이잖아.


고향집 지하에서 희한한 능력도 얻었다.


덕분에 무려 2천만 원이 거저 생겼지.


거기다 조만간 더 큰돈이 들어올 예정이기도 했고.


녹이 잔뜩 슨 파란 대문을 보자, 왠지 모를 반가움이 느껴졌다.


“돌아온 지 며칠밖에 안 됐는데, 벌써 정이 들었냐.”


냉장고에 재료를 집어넣고, 갈치조림을 해보았다.


처음 하는 거였지만, 그리 어렵지는 않았다.


내가 가장 잘하는 일 중 하나가 정해진 대로 하는 거니까.


쓸데없는 자아는 빼고, 요리법을 철저히 지켰다.


정확한 중량과 시간.


이대로만 하면 실패할 리가 없었다.


후릅!


“오! 괜찮은걸?”


국물을 떠먹어 봤는데, 절로 눈이 휘둥그레졌다.


내가 한 게 맞나 싶을 정도로 맛있었으니까.


전날 마트에서 사 온 나물을 반찬으로 깔아두고, 거나하게 밥을 먹었다.


혼자 사는데 이 정도면, 진수성찬이지.


식사를 마치고 잠깐 산책한 뒤, 눈을 붙였다.


짹짹짹!


문득 산새 지저귀는 소리가 들려왔다.


‘허! 잠깐 감았다 뜬 것 같은데, 벌써 아침이네.’


그래도 몸이 가뿐하고 상쾌한 느낌이 들었다.


일어나자마자 이를 닦는 건 내 아침 루틴.


그런데 화장실에 들어서는 순간, 뭔가 위화감이 느껴졌다.


없어야 할 게 있는 느낌이랄까?


가만히 거울을 바라보니, 뭐가 바뀌었는지 알 것 같았다.


대략 5mm 정도 돋아난 머리칼.


“와! 고작 하루 만에 이만큼 자란다고?”


탈모에 시달렸던 과거를 보상하기라도 하듯, 빽빽한 모습이었다.


손바닥에 스치는 까끌까끌함이 기분 좋게 느껴졌다.


‘빨리 퀘스트부터 밀자. 이번에 고쳐주면 5천이다. 5천!’


만날 간당간당한 마이너스 통장에 마음 졸이던 때가 언제였던가.


당장 1년 전만 해도 그렇게 아등바등 살고 있었다.


한데, 이토록 극적인 변화라니.


고향집에 돌아오고 난 이후로는 모든 게 잘 풀리는 것 같았다.


일단은 배추밭부터 살피러 나갔다.


“여긴 아무 문제 없고.”


나는 곧장 라이딩 슈트를 입었다.


이번에는 망치와 도끼, 쇠스랑을 들고 갈 작정이었다.


당연히 어제 사뒀던 판자와 못, 청소 도구도 챙겼다.


혹시 몰라서 줄자도 주머니에 넣었는데, 쓸 일이 있겠나 싶었다.


“서브 퀘스트를 또 주려나?”


어제와 똑같다면 다소 아쉬울 것 같았다.


그래도 별 상관없었다.


메인 퀘스트를 해결하면, 분명 다른 게 뜰 테니까.


‘가자.’


나는 농기구들을 움켜쥔 채, 차원문으로 몸을 밀어 넣었다.


츠츠츠츠! 팟-!


감았던 눈을 뜨자, 익숙한 광경이 보였다.


복귀를 선택했던 통나무집 뒤편의 공터.


어제 봤던 것과 변함없는 모습이었다.


“청소부터 할까?”


일단은 집 내부를 치우는 게 우선이었다.


큼지막한 것들을 꺼내고 나니, 그나마 공간이 확보되었다.


그런데 이게 다 쓰레기가 아니라, 아무렇게나 놓여있던 가구였다.


선반이랑 탁자 같은 게 쓰러진 채로 방치된 모양이었다.


어쨌거나 당장 이것들을 쓸 수는 없을 것 같았다.


워낙 많이 삭아 버렸거든.


‘보증금이 없는 걸 위안 삼아야 하나?’


서기관이 돈을 더 요구했다면, 진심으로 화가 났을 것이다.


빗자루로 바닥을 싹 쓰니까, 왠지 살만한 느낌이었다.


마지막으로 나는 판자를 덧대서 부실한 부분을 보수했다.


그러고 있으니, 누군가가 불쑥 말을 걸었다.


“여, 대장장이 청년.”


“안녕하세요? 메르겐 씨.”


어제 서툰 말솜씨로 구워삶았던 병사였다.


철제 농기구를 11리르에 주기로 했었지.


“오! 내 이름을 기억하는군. 벌써 이만큼 치워 놓았나? 되게 빠른데.”


“일 미루면 귀찮아지니까 얼른 해둬야죠.”


“좋은 자세일세. 한데, 그건 뭔가?”


메르겐은 한쪽 구석에 세워둔 쇠스랑과 도끼를 눈여겨보는 것 같았다.


역시 이쪽 세계에서는 잘 먹히는 상품이었다.


병사 급료로는 입에 풀칠할 수가 없으니까.


아마 메르겐의 집에서도 따로 농사를 짓고 있을 것이다.


그러니 철제 농기구에 시선을 빼앗긴 것이겠지.


“그것도 파는 겁니다.”


“그런가? 역시 도끼보단 쇠스랑이 탐나는군. 나는 나무꾼이 아니라서 말이야.”


“사신다면 11리르에 해드리지요. 어제 약속한 대로요.”


“좋네. 사실 뭘 사러 온 건 아니었는데, 이건 못 참지.”


메르겐은 주섬주섬 허리춤의 주머니를 풀더니, 은화를 내밀었다.


나는 곧장 쇠스랑 한 자루를 건네주었다.


“근데 뭘 사러 온 게 아니라니요? 그게 무슨 말씀이죠?”


“아, 경비대장님께서 물건을 주문하셨어. 도개교에 들어가는 부품이 깨져서 제대로 돌아가지 않거든.”


“그, 그렇군요.”


약간 당황스러운 이야기였다.


나는 대장장이가 아니니까.


그냥 물건 떼다 파는 상인에 불과하지.


그렇다고 거절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분명 메인 퀘스트와 관련이 있는 일일 거야.’


페이레스 사람들의 인정을 받는 것 말이다.


상당히 곤란했지만, 나는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진짜 대장장이가 아니면 어떤가.


그냥 문제만 해결하면 그만이지.


“알겠습니다. 어떻게 생긴 건지 알 수 있을까요?”


“여기 설계도일세. 실제로 보고 싶다면, 도개교에 가도 돼.”


“감사합니다.”


설계도는 서기관 켄드릭이 준 지도만큼 조악하기 짝이 없었다.


그래도 종이의 질만 나쁠 뿐, 필요한 수치는 다 적혀 있었다.


문제는 내가 이 동네의 길이와 무게 단위를 모른다는 거지.


‘줄자를 챙겨오길 잘했네.’


아무래도 직접 가서 확인해 봐야 할 것 같았다.


“언제까지 만들어드리면 될까요?”


“빠르면 빠를수록 좋네. 예전에 있던 대장장이는 2주 정도 걸리더군.”


“최대한 기일에 맞춰 보겠습니다. 대금은 얼마죠?”


“으음······. 재료비까지 해서 100리르 어떤가.”


“에이, 재료비만 그만큼 들 것 같은데요?”


“크흠흠! 그럼 150리르로 하세.”


“그럴 바에야 그냥 괭이 열 자루 팔고 맙니다. 패슨 씨가 얼마에 사 갔는지 아시죠?”


“젠장, 200리르. 나도 이 이상은 안 돼. 이보다 높게 불렀다간 예산 초과했다고 욕먹을 판이야.”


솔직히 얼마를 받든 별 상관은 없었다.


내 목적은 퀘스트를 완수하는 거였으니까.


그래도 호구 당할 수는 없다는 생각에 질러 봤는데······.


‘뭐야. 진짜 후려치려고 했나 보네.’


생각해 보니, 여기서 정가라는 걸 본 적이 없었다.


죄다 흥정으로 가격이 들쑥날쑥했지.


어쨌거나 협상은 제대로 된 것 같았다.


나는 빙그레 미소를 지으며 손을 내밀었다.


“알겠습니다. 그렇게 하죠.”


그러자 메르겐이 무심코 악수하려 했다.


하지만 손목을 털어서 그게 아니라는 의미를 전했다.


“뭐 하세요?”


“악수하자는 거 아니었나?”


“계약서부터 써야죠. 영지청에서 집행하는 거니까 인장 가져오세요.”


“······.”


메르겐은 멍한 표정으로 나를 가만히 바라보기만 했다.


이렇게 나올 줄은 상상도 못 한 모양이었다.


‘이거 왜 이래? 내가 사기꾼을 얼마나 많이 본 줄 알아?’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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