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농했는데 다 고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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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02 1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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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9화 : 승승장구 대장장이

DUMMY

9화






영주성 내부는 바깥과 분위기가 완전히 달랐다.


벽면과 구조는 투박했지만, 신경을 많이 쓴 티가 났다.


고풍스러운 느낌이 물씬 풍긴다고 해야 하나?


정신없이 구경하고 있으니, 패슨 씨가 팔을 툭 건드렸다.


“절은 할 줄 아나?”


“예?”


“귀족에게 하는 예법 말일세.”


“모르는데요.”


“평민은 어려운 것까지 할 필요 없어. 그냥 만날 때나 헤어질 때, 이렇게만 하면 되네.”


양손을 가슴에 포개 올리고, 바닥에 닿을 듯 고개를 숙이는 모습.


조선 시대 노비의 인사법과 비슷한 느낌이었다.


단순하지만 약간의 거부감이 느껴졌다.


90도 인사는 한 번도 해 본 적이 없었으니까.


‘좀 과한 것 같은데.’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반대편 문이 열렸다.


패슨 씨를 비롯한 병사들이 한쪽 무릎을 꿇었다.


가슴에 한쪽 손을 올린 채로 말이다.


아마 저게 군례인 듯했다.


나는 패슨 씨가 알려준 대로 허리를 접었다.


“고개를 들라.”


“예.”


“그대가 도개교를 고친 대장장이인가.”


“그렇습니다.”


영주는 화려한 갑옷을 걸치고 있었다.


짧게 자른 금발에 날렵한 인상.


왠지 모르게 눈빛이 고압적으로 느껴졌다.


딱히 나를 업신여긴다기보단 기본적으로 특권 의식이 깔린 듯했다.


“실력이 좋다고 들었는데, 이것도 고칠 수 있겠나?”


의자에 털썩 주저앉은 영주는 오른발을 내밀었다.


갑옷은 원래 온몸을 빈틈없이 감싸야 정상이었다.


한데, 부츠 부분이 없었다.


상처가 난 걸 보아하니, 육중한 뭔가에 발을 찧은 모양이었다.


갑옷이 부서지는 바람에 전장에서 이탈했겠지.


“원래 갑옷은 어디에 있습니까?”


“급히 후퇴하느라 챙기지 못했다.”


“으음······.”


원본이 있다면, 어렵지 않을 수도 있었다.


부서진 판금만 똑같이 만들어서 교체하면 되니까.


만약 그게 안 될 땐 용접도 괜찮을 것이다.


하지만 처음부터 만드는 건 아예 다른 이야기였다.


‘어쩌지? 이런 걸 살 수도 있나?’


인터넷을 뒤져보면, 착용이 가능한 갑옷을 팔지도 몰랐다.


머릿속이 복잡해지는 그때.


문득 눈앞에 홀로그램 글귀가 떠올랐다.


<서브 퀘스트>

목표 : 페이레스 영주가 만족할 만한 부츠를 제공하십시오.

보상 : 500p


‘어?’


난데없이 등장한 서브 퀘스트.


무려 영주의 의뢰니, 그럴 만도 하다고 생각했다.


한데, 보상이 무려 5백 포인트나 되었다.


나는 휘둥그레 떴다.


‘이건 무조건 해야 해.’


단번에 원격 파괴술을 익힐 수 있으니까.


돈이 얼마나 들든 까짓것 그냥 사 버리지 뭐.


그렇게 생각하며 고개를 끄덕이던 찰나.


문득 뇌리를 스치는 무언가가 있었다.


‘이 사람, 전공에 혈안이 되었다고 했지?’


깡촌 영지로 만족하지 못한다는 소문이 주민들 사이에 팽배했다.


디자인 따윈 별로 신경 쓰지 않을 수도 있다는 말 아니겠나.


나는 최대한 공손한 어조로 질문을 던져 보았다.


“영주님.”


“말하라.”


“혹시 모양이 기존과 조금 차이가 나도 괜찮겠습니까?”


“크게 이상하지만 않으면 상관없다.”


하마터면 크게 쾌재를 부를 뻔했다.


굳이 판금 갑옷이 아니어도 된다면, 선택지야 많고 많지.


나는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만족하실 만한 물건을 가져오겠습니다. 그 전에 치수를 좀 재도 될까요?”


“얼마든지.”


“언제까지 만들어드리면 되겠습니까?”


“내 발이 회복되기 전에 가져와라. 한 사흘쯤 걸릴 것이다.”


“예.”


줄자를 들이대자, 280mm가 나왔다.


나랑 똑같은 길이다.


발볼도 비슷한 것 같아서, 내 기준에 맞춰도 될 듯했다.


이윽고 나는 패슨 씨가 가르쳐준 대로 절하며 조심조심 물러났다.


“이만 가보겠습니다. 영주님.”


“그래. 수고하도록.”


* * *


영주와의 만남은 성공적이었다.


최소한 미운털은 박히지 않았으니까.


퀘스트를 완료하면, 호감도가 오를지도 몰랐다.


그럼 이 세상에서 살아가는 데 어떤 이점이 있겠지.


그래서 뭘 갖다줄 거냐고?


“갑자기 안전화는 왜 사러 온 거야?”


불현듯 들어온 질문.


오랜만에 만난 동생, 하승호가 한 말이었다.


뜬금없이 등산복 매장에 가자고 하니, 살짝 당황했겠지.


“농기계 몰다가 다치면 안 되잖아.”


“틀린 소린 아닌데, 그렇게까지 하는 사람은 없을걸?”


“대비해 둬서 나쁠 건 없지. 이게 딱 좋겠네.”


나는 8인치짜리 중 작업용 안전화를 샀다.


안쪽에 지퍼가 달려서 신기가 편했으니까.


영주의 판금 갑옷 부츠가 어땠는진 모르지만, 이거보다 좋을 리는 없었다.


‘방어력은 나도 잘 모르겠네.’


밑창과 발등 부분에 철판이 있긴 했다.


하지만 발목을 공격당한다면?


거기까지 생각이 닿았는데, 아마 괜찮을 것 같았다.


어차피 부츠 말고 따로 정강이받이를 착용하잖아.


영주가 상처 입은 부위도 딱 발등이고.


‘밑창도 넉넉히 샀으니, 당분간은 괜찮겠지.’


나는 승호와 함께 집으로 돌아왔다.


마트에 들러서 쌈 채소와 곁들여 먹을 것도 좀 사고.


“농사짓는 사람이 상추를 뭐 그리 많이 사?”


“배추만 하잖아. 게다가 아직 심지도 못했다고.”


“옆집에서 좀 얻어오면 되지.”


“내가 이 동네에 아는 사람이 어디 있냐? 규철이 삼촌도 간신히 알아보시더라.”


“하긴 형이 좀 오래 떠나 있긴 했지.”


“그나저나 넌 좀 어떠냐? 요즘 뭐 해?”


“그냥 이것저것······.”


승호는 말꼬리를 흐렸다.


아무래도 누군가에게 내세울 만큼 떳떳한 직장이 없는 듯했다.


나도 한창 구직과 실직을 반복할 때 저랬거든.


“너 혹시 예전에 그거 아직 하냐?”


“하도 하던 게 많아서 뭐 말하는지 모르겠는데? 뭐, 사채? 채권 추심? 이제 불법적인 건 안 해.”


“아니, 흥신소 말이야.”


“에이, 요즘에 누가 그렇게 불러? 탐정 사무소라고 해.”


“어쨌든 그거.”


“하긴 하지. 근데 동업자가 돈 들고 날랐어. 그 새끼 찾기 전까진 잠정 중단이야.”


“근데 오늘은 어떻게 왔어?”


“뒤쫓으려고 해도 돈이 있어야지. 나 지금 개털이야.”


이 녀석도 상황이 별로 안 좋은 모양이었다.


그러니 고향에 내려올 생각을 했겠지.


나는 모종판을 승호에게 넘기며 파종기를 잡았다.


자세한 이야기는 일하면서 꺼낼 작정이었다.


날씨가 살짝 선선해지긴 했지만, 그래도 낮에는 더우니까.


그 전에 최대한 많이 해둬야지.


푹! 푹! 푹!


파종기로 비닐을 뚫으며 이동하길 한참.


나는 슬쩍 운을 띄워 보았다.


“혹시 다시 일해볼 생각 있냐?”


“뭐? 흥신소?”


“아깐 탐정이라며.”


“아, 그래. 어쨌든. 무슨 일 맡길 건데?”


“조사를 해 보고 싶은 사람이 있어. 얼마쯤 드냐?”


“어떤 걸 파헤쳐야 하는지에 따라서 다르지.”


“그냥 그 사람 평판과 평소 인성을 좀 알고 싶어.”


“진면모를 까발리자?”


“응.”


“누군데?”


“배구 선수야. 정종우라고.”


“어? 잠깐만.”


승호는 갑자기 모종판을 내려놓더니,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렸다.


그러다 이내 뭘 찾았는지, 내게 화면을 보여주었다.


“공교롭게도 이전에 조사해 둔 게 있네. 유명해.”


“뭐로?”


“바람둥이.”


“아······.”


훤칠하니 잘생긴 사람이긴 했다.


알파메일의 표본이라고나 할까?


“불륜이라는 거지?”


“명확하게 말하자면 불륜은 아니야.”


“어?”


“결혼을 안 했잖아. 그냥 다리가 여러 개인 쓰레기 정도?”


사실 좀 약하게 느껴졌다.


물론 나쁜 사람이긴 하지.


근데 카르마가 쌓일 만큼 그렇게 악인인가?


암만 생각해도 그건 아닌 듯했다.


아무래도 좀 더 조사가 필요할 것 같았다.


“아마 이보다 더 센 게 있을 거야. 알아봐 줄 수 있어?”


“물론이지. 이름이 좀 알려진 사람의 경우엔 500이야. 근데 형이니까 400에 해줄게.”


“그래.”


“진짜 돈 줄 거야?”


“계약금은 얼만데?”


“100.”


“오늘 일당이랑 같이 보내줄 테니까, 바로 일 시작해.”


“오케이!”


승호는 신난 표정으로 모종판을 집어 들었다.


그러곤 알 수 없는 노래를 흥얼거리며 손을 놀렸다.


‘제발 뭐라도 걸려라. 그래야 나도 죄책감이 덜하지.’


멀쩡한 사람 어깨를 다시 조져 놓는 일이다.


아무것도 모르고 행동하기엔 무게감이 있었다.


* * *


배추 모종을 심은 다음 날.


나는 종이컵이 잘 덮여 있는지부터 확인했다.


날이 아직은 더워서 배추가 말라 죽을 수도 있거든.


당분간은 저렇게 햇볕을 좀 차단할 작정이었다.


물뿌리개를 싹 돌리고 난 뒤, 나는 안전화를 챙겼다.


일부러 거무튀튀한 걸로 샀다.


영주의 갑옷과 잘 어울릴 것 같았거든.


‘가자.’


오늘은 갖고 갈 짐이 별로 없었지만, 그래도 대차는 챙겼다.


혹시나 쓸 일이 있을지도 모르니까.


찌이이잉!


차원문을 넘어서자, 익숙한 대장간의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뭐 고민할 게 있나.


빨리 가서 퀘스트 완료하고 포인트부터 받아야지.


그렇게 대문을 나서려는데, 문득 누군가가 말을 걸었다.


“대장장이님!”


고개를 돌려 보니, 일단의 무리가 몰려 와 있었다.


갑자기 왜 이렇게 많은 사람이 날 찾는 거지?


의아한 눈으로 응시하자, 누군가가 앞으로 나섰다.


그나마 안면이 있는 목수 아저씨였다.


“안녕하세요? 마틴 씨.”


“하하! 알아봐 주시는군요.”


“대장간에 들르신 분이 몇 없었으니까요. 그나저나 무슨 일인가요?”


“아, 그게 말이죠.”


마틴 씨는 불편한 표정으로 뒤를 돌아보았다.


그곳에는 꽤 질 좋은 옷을 걸친 남자들이 서 있었다.


내가 페이레스에서 산 지는 얼마 안 됐지만, 처음 보는 얼굴들이었다.


“다른 영지에서 온 상인입니다.”


“아, 오늘이 장날인가 보군요.”


“그렇습니다. 한데, 저분들이 대장장이님을 좀 뵙고 싶다고 해서요.”


“저를요? 왜요?”


의아한 표정으로 묻자, 상인 중 한 사람이 앞으로 나섰다.


“자네가 만들었다던 철제 농기구 때문일세. 정말 그걸 15리르에 팔고 있는가?”


“······.”


나는 약간 멍한 눈으로 그 사람을 바라보았다.


단순히 물어보는 거야 그럴 수 있지.


물건 가격을 알아야 거래가 가능할 테니까.


‘근데 뭐 이리 싹수가 노래?’


굉장히 거슬리는 말투였다.


이를테면 우리 영주님보다 훨씬 고압적이라고나 할까?


저 사람이 귀족이라면, 그럴 수도 있겠다 싶었다.


하지만 상식적으로 그럴 리는 없지 않겠나.


그렇게 신분 높은 사람이 이런 깡촌 영지까지 와서 장사를 왜 해?


그래서 그런지, 내 입에서 나가는 말도 그리 곱지는 않았다.


“그렇다면요?”


“아니, 그런 물건을 왜 그런 헐값에 파나? 재고가 있다면, 다 내게 넘기게나. 하나에 25리르는 쳐줌세.”


내가 기존에 팔던 것보다 10리르나 많은 금액이었다.


근데 왜 이렇게 꼴 보기가 싫을까?


아마 저자는 페이레스 마을 사람들과 다퉜을 것이다.


별로 좋지도 않은 철제 농기구를 비싼 값에 팔려 했겠지.


하지만 이제 이곳 사람들은 그럴 필요가 없었다.


내가 정착했으니까.


‘웃기는 놈이네. 좋은 물건이라면서 고작 그것밖에 안 쳐줘?’


쟤들이 파는 식칼이 얼마더라.


30리르였지.


근데 그보다 훨씬 좋은 농기구를 25리르에 납품받는다?


거의 뭐, 뒤통수를 오함마로 후리는 수준이었다.


나는 콧방귀를 뀌며 이렇게 말했다.


“싫은데요?”


“뭐, 뭐라고? 잘 생각해 보게나. 무려 10리르나 이득일세.”


“아뇨. 당신들한테는 50리르에 팔 겁니다.”


“아니, 마을 주민들에겐 15리르에 팔지 않았나?”


“그야 내 마음이죠.”


“······.”


상인은 말문이 막힌 듯, 입만 어물거렸다.


나는 비릿한 미소를 지으며 마지막 일격을 꽂았다.


“왜 어이없어하는 겁니까? 당신들이 했던 그대로 하는 건데요.”


바로 그 순간.


마을 사람들 사이에서 환호성이 터졌다.


“와아아아!”


곧이어 반가운 알림이 불쑥 떠올랐다.


「메인 퀘스트를 완료했습니다」


바로 이거지!


노림수를 적중시킨 나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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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14화 : 전설의 알바생 24.09.10 326 18 11쪽
14 13화 : 유능한 약장수 24.09.09 327 2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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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11화 : 업보 청산 24.09.04 343 19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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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8화 : 5천만 원의 대가 24.09.01 380 18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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