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농했는데 다 고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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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26 15: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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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26 1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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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화 : 시공의 선택

DUMMY

1화






부모님의 시골집은 전원주택과 거리가 멀었다.


담벼락부터 마당까지 오래된 흔적만 가득했으니까.


심지어 요즘엔 쓰지도 않는 슬레이트 지붕이었다.


파손된 절단면으로 석면 분진이 유출되면 인체에 치명적이다.


‘위자료 받은 거로 집수리나 할까?’


앞으로 이곳에서 쭉 살아가려면, 최소한의 준비는 해둬야 할 것 같았다.


주변을 둘러보는데, 어릴 적 기억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동네 친구들과 뛰어놀던 들판과 논밭.


딱 이곳만 시간이 정지된 것만 같았다.


맑은 공기와 물씬 풍기는 풀냄새.


그리고······.


집안 곳곳에 가득한 거미줄과 처마 밑에 떡하니 달린 말벌 집까지.


“일단 저것들부터 치워야겠네.”


나는 곧장 읍내로 나가서 살충제와 제초제를 잔뜩 샀다.


사실 초등학생 시절을 제외하곤 여기서 살아 본 적이 없었다.


주변에 아무것도 없는 깡촌에서의 삶을 극도로 혐오했으니까.


울고불고 떼를 쓴 끝에 중학교 때부턴 학교 기숙사에서 지낼 수 있었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왜 그랬나 싶었다.


부모님이 살아 계실 때, 조금이라도 추억을 쌓아 둘걸.


치이이이익!


제초제와 살충제를 잔뜩 뿌려둔 뒤, 홀연히 자리를 떴다.


몇 시간 있다가 오면, 풀이든 벌이든 깡그리 박살 나 있을 것이다.


집 주변을 거니는데, 문득 뒷마당 쪽의 창고가 눈에 들어왔다.


“저길 되게 무서워했는데.”


사실 별거 없는 건물이었다.


아버지가 쓰시던 농기구와 낡은 경운기 한 대가 보관된 곳.


단지 그뿐이었지만, 희한한 먼지 냄새와 음침한 분위기가 싫었다.


아무래도 사람이 잘 드나들지 않아서 그랬던 것 같았다.


덜컥! 끼이익!


‘여기도 고쳐야겠네.’


슬쩍 문을 건드리자, 경첩이 요란한 소리를 냈다.


살짝 기운 걸 보아하니, 바람이라도 불면 휙 날아갈 듯했다.


괜히 사고 나기 전에 바꿔 버려야지.


“여전하구나.”


이제 농기구와 경운기는 없지만, 특유의 먼지 냄새는 어릴 적과 같았다.


부모님도 이상하게 생각하셨다.


혼자만 왜 그리 민감하게 반응하냐면서 말이다.


‘그나저나 아무것도 없어서 어떡하지?’


농사를 맨손으로 지을 순 없는 노릇 아닌가.


이런 준비도 안 해놨으면서 무작정 귀농이라니.


피식.


불현듯 입술을 비집고 실소가 터졌다.


너무도 허술한 내 모습에 자조적인 웃음이 나온 것이다.


“일단 좀 나갔다 오자.”


오래된 경차, 아침이에 시동을 걸었다.


읍내는 바로 옆이었지만, 물건을 들고 걸어오긴 힘드니까.


어지간한 물건은 철물점에 다 있는 법.


간단한 농기구 정도야 쉽게 구매할 수 있었다.


그런데 철물점 사장님이 눈을 가늘게 뜨고 말했다.


“뭐, 그쪽도 귀농인가 뭔가 하러 온 거요?”


불편한 표정과 퉁명스러운 말투.


도시 사람들은 이웃에게 관심이 없다.


반면에 농촌은 시시콜콜한 것까지 참견하곤 했다.


어찌 보면 관심이고 약간의 오지랖이었다.


하지만 그게 과해지면, 텃세가 된다.


“그런데요.”


“저 윗동네 귀촌 마을 사는 사람인가 보구먼. 내가 그쪽 인간들 때문에 밤잠을 설쳐요.”


“왜죠?”


“그야 기껏 키워 놓은 걸 몰래 와서 뽑아 가니까!”


농산물 서리는 상당히 큰 문제였다.


감시의 눈초리가 적은 만큼 빈번하게 일어나니까.


아무래도 누군가가 철물점 아저씨의 밭을 털어간 모양이었다.


그러니 저토록 화를 내는 것이리라.


나는 어깨를 으쓱거리며 말했다.


“귀촌 마을 사람 아닙니다. 저쪽 언덕 너머에 살아요. 파란 대문 집이요.”


“잠깐만, 거기 몇 년 넘게 버려진 곳 아닌가? 용철이네가 그렇게 된 이후로······. 어? 어라?”


순간적으로 철물점 아저씨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내가 누군지 알아본 모양이었다.


“너 혹시 이용철이 아들 아니냐?”


“예, 맞습니다. 이진희라고 합니다.”


“아이고! 그 친구 얼굴이 있네. 있어. 나이 드니까 제 아버지를 쏙 빼닮았구나.”


“하, 하하.”


어색한 웃음이 절로 나왔다.


솔직히 말하자면 이 사람이 누군지 정확히 기억 나지 않았다.


중학교 때부터는 외지에서만 살았으니까.


그렇게 웃고만 있자, 철물점 아저씨가 살갑게 웃었다.


“나는 용철이하고 형님 동생 하던 사이야. 그냥 정씨 아저씨라든가, 규철이 삼촌이라고 해.”


“아, 네.”


“뭐 심을지는 정했나?”


“일단 배추 정도 가볍게 해볼 생각입니다.”


“8월 말이니 딱 좋을 때구먼. 경영체 등록은 했고?”


“아뇨.”


“하긴 여기 사니까 필요 없을 거야. 임대사업소 가면 농기계도 빌릴 수 있어. 한번 열심히 해 봐.”


“예, 감사합니다.”


규철이 아저씨 덕분에 몰랐던 사실을 알게 되었다.


농기계를 사야 하나 고민이 많았거든.


그게 있으면 인력을 확 줄일 수 있으니까.


요즘 누가 무식하게 손으로 직접 다 하나.


큼직한 것들은 기계의 힘을 빌려야지.


‘잘됐네.’


머릿속으로 생각을 정리한 나는 종묘사로 향했다.


지금 시기면 씨앗보다는 모종을 사는 게 나았다.


판에서 조금 더 기른 다음에 9월 초쯤 옮겨 심으면 된다.


이유는 잘 모르지만, 아버지께서 하시던 방식이 떠올랐다.


하기 싫은 티 팍팍 내면서도 농사일을 돕곤 했으니까.


“완전히 잊은 줄 알았는데.”


모종과 완숙 퇴비를 사서 집으로 돌아가자, 벌써 늦은 저녁이 되어 있었다.


나는 모종판을 넣어두고 식사를 준비하려 했다.


종일 돌아다녔더니 배가 심하게 고팠다.


‘입맛이라는 게 완전히 사라진 줄 알았건만.’


이혼과 귀농 과정에서 몸무게가 무려 10kg이 빠졌다.


극심한 스트레스 때문인지, 머리칼도 듬성듬성.


꽤 심각한 상태였다.


아마 병원에 가면, 탈모가 진행 중이라고 할 것이다.


약으로 막을 수 있다지만, 지금 와서 그게 무슨 소용인가.


‘이제 봐 줄 사람도 없는데.’


어차피 대머리가 될 거란 사실은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반쯤 포기한 상태였다.


덜컥! 끼이이이익!


창고 문이 귀신 소리를 내며 열렸다.


모종판과 농기구들을 정리하고, 내부를 꼼꼼하게 점검했다.


혹시나 구멍이 있어서 쥐가 드나들면 곤란하니까.


모종이 갉아 먹힐 걸 생각하니, 저절로 진저리가 쳐졌다.


‘별문제 없네.’


그렇게 창고를 확인하고 돌아서려던 순간이었다.


문득 느껴진 이상한 먼지 냄새.


바깥으로 나가려다 뒤를 돌아보자, 갑자기 위화감이 느껴졌다.


왠지 좀 더 살펴보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았다.


그래서 다시금 창고 안쪽으로 들어갔는데······.


퍼석!


“음?”


기묘한 소리와 함께 발이 푹 빠져버리는 게 아닌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시멘트로 된 바닥이 모래처럼 변해 버렸으니까.


이게 뭔 상황인지 몰라서 고개를 갸웃하고 있을 때.


다시금 기묘한 소리가 들려왔다.


퍼석! 와르르르!


“으아악!”


곧이어 내 몸은 아래로 확 떨어져 내렸다.


엉덩방아를 심하게 찧었는데, 다행히 큰 통증은 없었다.


아무래도 모래가 부드럽게 받쳐줬기 때문인 듯했다.


안 아픈 거야 다행이지만, 눈앞이 깜깜해졌다.


난데없이 집에 싱크홀이 생길 게 뭐란 말인가.


‘수리비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겠는데?’


물론 엄밀히 말하면 집은 아니었다.


창고 바닥이 무너졌을 뿐이니까.


그러나 앞으로 농사를 계속한다면, 여길 계속 써야 할 터.


수리는 불가피한 일이었다.


“에이, 내가 그러면 그렇지 뭐.”


운이라고는 쥐뿔도 없는 놈 아닌가.


가는 회사마다 부도가 나고, 자영업을 하자마자 코로나가 터졌다.


이렇게 재수 없는 인생이 어디 있을까?


20대와 30대의 대부분을 몸이 부서지게 일했지만, 남은 건 하나도 없었다.


‘그나마 빚이 없는 걸 다행이라 여겨야 하나?’


그렇게 생각하며 몸을 일으키는데, 이상한 광경이 눈에 들어왔다.


창고 아래의 공간 구석에 보라색 빛무리가 보이는 게 아닌가.


마치 정육면체 블록을 기반으로 한 채광 및 제작 게임의 지옥문을 보는 듯했다.


“허! 우리 집 창고 지하에 이런 게 있었어?”


나는 그 보랏빛 광채를 흥미롭게 바라보았다.


연기처럼 몽글거리는 빛무리가 정확하게 직사각형을 이룬다니.


아마 세상 어딜 가도 이런 건 볼 수 없을 터였다.


게다가 시선을 두고 있으니, 저절로 빨려 들어갈 것만 같았다.


그렇게 점점 고개를 가까이 들이미는 순간.


쉬이이익!


“으어엇?”


난데없이 엄청난 인력이 발생하면서 머리가 빛무리와 충돌했다.


곧이어 눈앞이 시커멓게 변하면서 어떤 글귀가 떠올랐다.


「당신은 시공(時空)의 선택을 받았습니다」


「‘회귀 치유술’을 얻었습니다」


* * *


얼마나 기절했을까.


부스스 눈을 떴는데, 나는 여전히 싱크홀 속에 있었다.


“으으!”


극심한 두통이 느껴졌다.


머리를 붙잡고 일어나니, 내 이마와 충돌했던 지옥문이 그대로 있었다.


그리고······.


허공에 뜬 이상한 글귀는 여전히 남은 상태였다.


물론 회귀 치유술이니 뭐니 하는 내용은 아니었다.


그저 ‘1’이라는 숫자 하나만 덩그러니 쓰여 있을 뿐.


시선을 어디로 돌리든 계속 따라오는데, 그렇게 불편하지는 않았다.


의식하지 않으면 있는 줄도 모를 정도로 작았으니까.


‘이게 대체 뭐지?’


암만 머리를 굴려 봐도 이해할 수가 없었다.


내가 알아낸 사실은 딱 하나뿐이었다.


“여기서 나는 거였구나.”


지옥문에서 풍겨오는 특유의 향.


어릴 적부터 맡아왔던 바로 그 냄새였다.


희한한 느낌이었다.


정체불명의 보랏빛 광채가 추억을 끌고 오는 것 같았다.


‘일단 나가자.’


저게 뭔지 궁금했지만, 그건 내가 할 일이 아니었다.


경매에 내놓으면 흥미 있는 누군가가 사가서 알아보겠지.


반쯤 무너진 창고 수리비나 나올지 모르겠다.


나는 삐걱거리는 문을 열고 나갔다.


한데, 깜짝 놀라고 말았다.


“허! 벌써 아침이야?”


동쪽 산등성이 위로 빼꼼 올라온 태양.


아무래도 내가 기절한 시간이 꽤 길었나 보다.


지옥문을 들이받은 충격이 꽤 컸던 모양이었다.


아니면 되게 피곤했던지.


꼬르륵!


생각해 보니, 24시간이 넘도록 아무것도 못 먹었다.


안 그래도 살이 빠져서 볼품없어졌는데, 몰골이 더욱 비루할 것 같았다.


아니나 다를까,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은 처참했다.


‘먼지 때문에 그럴 거야. 일단 좀 씻자.’


나는 얼른 화장실로 들어갔다.


물을 한참 끼얹고 나자, 그나마 봐줄 만한 상태가 되었다.


“청소도 해야겠네.”


집안은 개판이었다.


다행히 살충제 냄새는 어느 정도 빠졌다.


하지만 말벌 집의 잔해는 여전히 남아 있었다.


바닥을 싹 쓸고 나자, 이제야 좀 사람 사는 곳 같았다.


꼬르르륵!


다시금 뱃속이 요동쳤다.


“휴! 아, 맞다. 밥 먹으려다 이게 뭔 짓이냐?”


이건 가짜 배고픔이 아니다.


손까지 떨리는 걸 보아하니, 뭐라도 입에 집어넣어야 할 것 같았다.


그런데 바로 그때였다.


쿵!


대문 밖에서 묵직한 소리가 들려왔다.


얼른 나가 보니, 자전거와 함께 웬 남자가 쓰러져 있었다.


‘장비가 본격적인데?’


사이클 선수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였다.


게다가 허벅지가 무슨 말 같았다.


가녀린 내 다리와는 차원이 다른 굵기.


쫙쫙 갈라진 근육이 너무도 멋있었다.


“괜찮으세요?”


“으으으으! 시, 신고 좀······.”


말도 제대로 못 하는 걸 보니, 상태가 심각한 모양이었다.


나는 곧장 휴대전화를 들었다.


뚜르르! 달칵!


-예, 119입니다.


“사람이 다쳐서요. 여기가······.”


안전신고센터에 주소와 환자 상태를 알려주었다.


그러곤 우산을 들고 와서 일단 햇빛부터 가렸다.


다쳐서 아픈데 덥기까지 하면 얼마나 힘들겠나.


“고맙습니다.”


“별말씀을요.”


마지막으로 생수병을 건네주곤 물러서려 했다.


내가 해줄 수 있는 건 여기까지니까.


근데 남자의 왼쪽 무릎이 눈에 들어왔다.


피부에 난 연보랏빛 손자국.


모양이 내 왼손과 딱 맞을 것 같았다.


‘뭐지? 분명 방금까진 없었는데?’


나는 마치 홀린 듯 남자의 왼쪽 무릎을 짚었다.


바로 그 순간이었다.


『회귀 치유술 실행』


피이이잉!


찬란한 빛줄기가 터져 나오더니, 지독하게 따라다니던 숫자가 변했다.


1에서 0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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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13화 : 유능한 약장수 24.09.09 327 2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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