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농했는데 다 고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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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05 1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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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12화 : 의사 아님

DUMMY

12화






집으로 돌아온 나는 홀로그램 메시지를 유심히 살펴보았다.


하지만 도저히 알 수가 없었다.


“어째서 10이 된 걸까?”


정종우의 어깨를 원래대로 돌렸는데도 카르마가 좀 남았다.


한참을 생각해 보자, 어느 정도 해답이 나왔다.


‘아직 5천만 원을 안 돌려줘서 그런 건가?’


아무래도 그럴 가능성이 컸다.


그 사람을 치료해 준 대가로 받은 돈이니까.


그것도 원래대로 돌려놔야 업보가 상쇄되는 거겠지.


솔직히 그러고 싶진 않았다.


하지만 분명 정종우는 날 찾아올 것이다.


“해코지할지도 모르지.”


미리 방책을 세워두는 게 좋을 것 같았다.


어쨌든 그놈은 그놈이고.


일단 일을 해야지.


나는 곧장 읍내 약국으로 가서 상비약을 종류별로 구매했다.


구급상자까지 여러 개 사 가자, 양사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이렇게나 많이 필요하세요?”


“근처 사는 사람들 것까지 다 사는 거예요. 미리 쟁여두고 쓰면, 안 귀찮고 좋잖아요.”


“그렇긴 하죠.”


하도 자주 겪다 보니, 이제 둘러대는 솜씨가 예술이 되어 버렸다.


의약품을 잔뜩 구매한 나는 간단하게 장을 봤다.


이번에는 도시락을 싸볼 작정이었다.


‘차원문 너머에서 먹을 게 없단 말이지.’


물론 거기도 음식점이 있긴 했다.


마을 유일의 여관에 가면, 맛있는 스튜를 사 먹을 수 있을 거다.


하지만 위생 걱정을 안 할 수가 없었다.


중세 사람들은 관념 자체가 지금과 다르니까.


아침이를 몰고 집으로 돌아갔는데, 못 보던 차가 한 대 있었다.


‘설마 벌써?’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


대문 앞에서 서성거리는 두 남자가 보였다.


실루엣만 봐도 누군지 알 것 같았다.


고일영과 정종우겠지.


나는 최대한 태연한 표정으로 다가가 말을 걸었다.


“연락도 없이 어쩐 일이십니까?”


“아, 은인님! 죄송합니다. 워낙 급하게 내려오다 보니, 배터리 확인을 못 했네요. 차에 충전기가 없어서 실례를 범하게 되었습니다.”


정중하게 고개를 숙이는 고일영 선수.


반면에 정종우는 심각한 표정으로 멀뚱멀뚱 서 있기만 했다.


내가 쳐다보자, 그제야 고개를 까딱거렸다.


이윽고 약간 험악한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부상이 도졌습니다. 며칠 멀쩡하더니, 갑자기 예전으로 돌아가 버리더군요.”


“그래요? 어디 좀 봅시다.”


나는 괜히 정종우의 어깨를 살폈다.


민소매를 입고 있어서 보라색 손자국이 선명하게 보였다.


하지만 짐짓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혹시 무리하셨습니까?”


“예? 꼭 그렇진 않았습니다만.”


“무슨 소립니까? 활동량이 일주일 전보다 수십 배는 늘었는데요.”


약간 호통치듯 말하자, 정종우의 표정이 이지러졌다.


당연한 반응이었다.


정곡을 찔렸을 거거든.


‘몇 번을 휘둘러도 팔팔했을 테니, 신이 나서 훈련에 임했겠지.’


예전에는 아파서 제대로 움직이지도 못했을 것이고.


활동량에서 차이가 날 수밖에 없었다.


그 점을 꼬집자, 따지고 들려던 기색이 싹 사라져 버렸다.


“제가 분명 처음에는 조심해야 한다고 했을 겁니다. 기억 나시죠?”


“······예.”


힘없이 대답하는 정종우.


나는 이때다 싶어서 거세게 몰아붙였다.


“간신히 고친 걸 이렇게 망쳐 놓으면 어떡합니까?”


“죄송하지만, 한 번만 더 해주시면 안 될까요?”


“안 됩니다.”


“예? 이, 이번에는 더 많은 돈을 마련하겠습니다.”


“돈이 문제가 아닙니다. 회복도 어느 정도라야지 가능한 거죠. 이렇게 완전히 끊어져 버리면, 더 이상 손을 쓸 수가 없습니다.”


나는 뻔뻔하게 말을 이었다.


마치 무당이나 재야의 고수처럼 말이다.


그러자 고일영 선수가 입을 열었다.


“저 또한 훈련량이 늘었지만, 다시 아프거나 하진 않았습니다. 어떤 차이가 있는 겁니까?”


“애초부터 정종우 선수의 기운이 훨씬 좋지 않았습니다. 위태위태한 수준이었죠.”


“그때와 다르게 느껴지시나 보군요.”


“아예 까맣습니다. 이젠 아무것도 보이지 않네요.”


“아······.”


고일영과 정종우는 한숨을 푹 쉬었다.


내 말에 수긍한 모양이었다.


정종우의 부상 부위도 맞혔으니, 이건 속을 수밖에 없었다.


“안타깝지만 해드릴 수 있는 게 없군요. 재활 비용은 돌려드리겠습니다.”


나는 이참에 남은 카르마도 털어버리고자 했다.


5천만 원이 아깝지 않냐고?


사실 그 정도야 없어도 되는 돈이었다.


선량한 사람만 고쳐도 그보다 훨씬 많이 벌 수 있으니까.


하지만 고일영 선수가 양손을 휘저으며 말렸다.


“아뇨. 아닙니다! 이 친구가 잘못해서 벌어진 일인데, 그럴 수는 없죠.”


“······이만 돌아가겠습니다.”


정종우는 터덜터덜 발길을 돌렸다.


잔뜩 풀 죽은 얼굴이 너무도 불쌍해 보였다.


하지만 나는 저자의 진면모를 잘 안다.


‘악질 소시오패스.’


정종우 때문에 운동을 그만둔 후배들은 하나같이 평가가 좋았다.


자신보다 뛰어나니까 괴롭힌 것이다.


주저앉히기 위해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은 자의 전형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럼 다음에 뵙겠습니다. 나쁜 소식만 가져와서 죄송스럽네요.”


“아닙니다. 언제든 편하게 들러 주세요.”


“예, 그럼.”


인사를 나누는 동안, 정종우는 내게 시선도 주지 않았다.


이윽고 고일영 선수의 차가 출발했다.


자투리 카르마를 청산하진 못했으나, 나름 괜찮은 결과였다.


앞으로 정종우가 해코지할 일은 없을 테니까.


나는 한결 가벼워진 마음으로 식사를 준비했다.


저녁은 간단하게 먹을 작정이었다.


농부로 살다 보니, 일찍 일어나는 게 버릇이 되어 버렸거든.


‘내일부턴 더 바쁘겠네.’


팔자에도 없는 검술 수련을 하게 생겼으니까.


그나저나 검은 어떡하지?


아무래도 신상우한테 하나 만들어 달라고 해야 할 것 같았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보니, 벌써 9시가 넘었다.


이불을 깔고 드러눕기 무섭게 졸음이 쏟아졌다.


* * *


점점 날이 시원해지는 것 같았다.


종이컵을 제거하고 나자, 농사를 제대로 짓는 느낌이 들었다.


무너진 두둑을 보수하고 물을 쫙 뿌렸다.


이리저리 돌아다니다 보니, 벌써 머리 위에 해가 떠 있었다.


역시 더울 때는 페이레스에 가 있는 게 최고지.


‘구급상자랑 약품 챙기고······. 도시락도 오케이.’


사실 뭐, 대단한 건 아니었다.


그냥 주먹밥에 불과했으니까.


그래도 나름 신경은 썼다.


잘게 부순 조미김을 붙이고, 안에 참치마요를 잔뜩 넣어 뒀거든.


타다다닷! 찌이이잉!


나는 대차를 밀면서 차원문으로 뛰어들었다.


이윽고 익숙한 광경이 눈에 들어왔다.


평소와 다름없는 모습이었다.


그런데 문득 문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쿵쿵쿵!


“안에 있는가?”


“예!”


대답과 함께 얼른 자물쇠를 풀었다.


그러고 바깥에 나가 보았는데, 마을 주민 몇 명이 와 있었다.


“무슨 일이세요?”


“필요한 물건이 있어서 와 봤는데, 거의 닫혀 있더군. 너무 짧게 여는 것 아닌가?”


“아······.”


페이레스 사람들은 대부분 농부였다.


밤에 불을 밝히기가 어려우니, 다들 일찍 잠들 터였다.


내가 밭일을 마치고 오면, 늦을 수밖에 없었다.


아무래도 이곳에 상주할 점원 한 명을 구해야 할 것 같았다.


‘근데 여기서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이 있나?’


페이레스에 정착한 지, 열흘 정도밖에 안 됐다.


믿을만한 사람을 만들기에는 너무도 짧은 시간이었다.


아무래도 당분간은 인재 물색에 투자를 좀 해야 할 것 같았다.


“새로운 물건을 만드느라 좀 바빴습니다. 얼른 들어오시죠.”


“너무 마음에 담아두진 마시게. 자꾸 헛걸음을 하니까 답답해서 한 말일세.”


“그럼 앞으로는 울타리에 표식을 달겠습니다. 자리에 있을 때만 깃발을 꽂아두죠.”


“그거 좋은 생각이군!”


나는 수첩에 간단히 메모를 해두었다.


손님들이 가고 나자, 잠깐 짬이 생겼다.


이제 슬슬 영주성에 방문할 때가 되었다.


언덕길을 올라가자, 익숙한 성벽이 나타났다.


“오! 왔는가.”


“잘 지내시죠?”


“그럼. 자네 덕분에 얼마나 편해졌는지 몰라. 텃밭 가꾸는 아내가 기뻐하더군.”


“잘 쓰고 계신다니 다행입니다.”


“영주님께서 기다리고 계시네. 얼른 가세나.”


“네.”


오늘은 메르겐 씨가 근무를 서고 있었다.


지난번에 사 간 쇠스랑이 제 역할을 톡톡히 하나 보다.


그러니 저런 반응이 나오는 거겠지.


나는 익숙한 복도를 따라 발걸음을 옮겼다.


한데, 오늘은 조금 다른 곳으로 안내되었다.


아무래도 여기는 영주의 침실인 듯했다.


“영주님을 뵙습니다.”


나는 패슨 씨가 가르쳐준 자세를 잊지 않았다.


꾸벅 인사를 하자, 침대에 누워 있던 영주가 슬쩍 고개를 들었다.


“왔느냐?”


벌써 점심이 훌쩍 지난 시간이었다.


그런데도 저러고 있다?


상세가 좋지 않음을 의미하는 것 같았다.


“연고를 가져왔습니다.”


“어디 한번 발라보아라.”


아니나 다를까, 발의 상태는 매우 나빠 보였다.


찍힌 상처 주위의 피부가 시커멓게 죽어 있었다.


염증이 심한 모양인지, 고름이 줄줄 샜다.


벌써 몇 번째 붕대를 갈았는데도 잔뜩 묻어나오는 중이었다.


‘상처 자체는 그리 크지 않아. 뼈도 부러지지 않은 것 같고, 출혈도 없군.’


단순히 관리를 잘못한 결과였다.


아마 저 상태로 꽤 오랫동안 돌아다녔을 것이다.


비위생적인 환경에 계속 노출되었겠지.


나는 얼른 구급상자를 꺼냈다.


“깨끗한 물 좀 부탁드립니다.”


“얼마나 필요한가.”


“한 잔만요. 큰 그릇도 가져다주세요.”


“그러지.”


메르겐 씨는 잽싸게 발걸음을 옮겼다.


저 사람이 보기에도 상처가 심상치 않은 모양이었다.


‘그래도 양호한 편이다. 처치만 잘하면 괜찮아질 거야.’


의료인은 아니지만, 이 정도는 충분히 할 수 있었다.


이윽고 메르겐 씨가 물을 떠 왔다.


나는 소염진통제 두 알을 까서 영주의 입에 넣어 주었다.


“물과 함께 삼키십시오.”


“이건 뭔가?”


“염증을 이겨내는 약입니다.”


“음······.”


영주는 표정을 일그러뜨리며 물을 들이켰다.


그러더니 흥미롭다는 듯이 내가 하는 양을 지켜보았다.


일단은 식염수로 고름을 씻어내기로 했다.


메르겐 씨가 가져온 그릇을 밑에 받쳐 놓았으니, 흐를 리는 없을 거다.


고름을 제거한 다음에는 포비돈 요오드를 발랐다.


“조금 따갑습니다.”


“으윽!”


신음이 흘러나왔지만, 영주는 크게 움직이지 않았다.


아프지만 이게 참을 만은 하거든.


“잠깐만 기다리겠습니다.”


나는 빨간약이 마르길 기다렸다가 습윤밴드를 붙였다.


두꺼운 폼 타입이라, 깊은 상처에 효과가 있을 거다.


사실 이 이상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근데 이걸로도 충분했다.


상처가 깨끗하게 유지만 된다면, 금방 나을 테니까.


“제가 매일 와서 상세를 살펴 드리겠습니다. 그리고 이건 오늘 저녁 식후에 꼭 드십시오.”


나는 소염진통제 두 알을 탁자 위에 올려두려 했다.


그런데 이미 영주는 곯아떨어진 뒤였다.


의아한 눈으로 돌아보자, 메르겐 씨가 손짓했다.


“쉬잇! 통증 때문에 잠을 통 못 주무셨네. 한데, 이제 좀 편해지셨나 보군.”


아직 약기운이 돌려면 멀었다.


아마 내가 한 처치가 꽤 효과를 본 모양이었다.


하긴 심각하게 곪아가는 중이었으니, 얼마나 아팠겠나.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침실을 나섰다.


그런데 메르겐 씨가 갑자기 손을 붙잡는 게 아닌가.


“정말 고맙네. 자넨 정말 우리 영지의 보물일세.”


“하하! 별말씀을 다 하십니다.”


너무 과한 칭찬에 얼굴이 화끈거렸다.


내가 한 일이라곤 빨간약 바르고 밴드 붙인 것밖에 없으니까.


멋쩍게 웃으며 발길을 돌리려는데, 메르겐 씨가 손을 놓지 않았다.


왜 이러시지?


“그······. 혹시 우리 딸아이도 좀 고쳐줄 수 있겠나? 내 대가는 뭐든 치름세.”


아니, 잠깐만요.


저는 의사가 아니라니까요?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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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14화 : 전설의 알바생 24.09.10 326 18 11쪽
14 13화 : 유능한 약장수 24.09.09 327 20 12쪽
» 12화 : 의사 아님 24.09.05 353 22 12쪽
12 11화 : 업보 청산 24.09.04 342 19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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