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든 자들은 다 죽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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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렉디마
작품등록일 :
2024.08.27 2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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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3 0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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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28 1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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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나는 달 (1)

DUMMY

천인위전(千人位戰)이 열렸다.

하늘에 달이 사라질 오늘부터 보름, 강호제일세 무황성(武皇城)의 모든 후기지수가 칼과 피로 경쟁한다.

내 스승이자 천하제일인 무황 이소청의 명이었다.


“어떠한 수단도 용인하겠다. 위에 서라.”


열여섯 제자를 다 불러선 그녀가 지껄였다.

열다섯 쌍의 시선이 같은 곳을 향했다.


소림사, 무당파, 화산파, 아미파, 곤륜파.

종남파, 공동파, 점창파, 청성파, 개방.

남궁세가, 사천당가, 하북팽가, 모용세가, 제갈세가.


구파일방과 오대세가.

정도 십오문이라 불리는 명문대파에서 사부가 한 명씩 거둔 기재들이다.


그들이 응시한다.

팔 년 전에 사부와 처음으로 배사지례를 맺은, 아무 배경도 없는 대제자인 나를.


나는 천치들을 신경 쓰지 않았다.

따라둔 술잔을 들어 입으로 가져갔다.

천천히 기울이며 사부를 바라봤다.


무황 이소청.

무조(武祖) 이래 천 년 무림사에 가장 고강할 초인.

태산처럼 망양한 기운을 마주하여 말했다.


“하기 싫습니다. 저는 사양하지요.”

“불가(不可).”

“파문하십시오. 단전을 폐하고, 사지 근맥까지 잘라서 성을 나가겠나이다.”

“허하지 않노라. 너는 살아서나 죽어서나 이 이소청의 으뜸가는 칼일지어다.”

“하하! 사부께서 정녕 제자의 명줄을 끊으시려나 보오.”


째앵!

내던진 잔이 청석 바닥에 산산이 부서졌다.

천인위전이란 본디 삼 년마다 일신 무공을 겨루는 비무대회일진대.

해서 육 년 전에도, 삼 년 전에도 나는 대제자였는데.

마침내 이소청이 공언했다.


“중추절(仲秋節, 음력 8월 15일 보름) 서천의 목을 가져온 아이가 다음 대 무황성주다.”


서천(曙天, 새벽 하늘)은 그녀가 지어준 내 자(字)다.

정도 십오문으로 하여금 나를 죽이라는 뜻이다.

저들 딴엔 문파의 보배인 천치들은 물론이거니와 갖은 수를 써서라도.


“야박하십니다. 제게도 살길 한 자락쯤은 터주시지요.”

“버리거라.”


그 말을 끝으로 이소청은 자리를 떠났다.

당황하면서도 열망이 스민 침묵만이 좌중에 남았다.

술을 마시려다 방금 잔을 깨버렸음을 떠올린 나는 여상스레 일렀다.


“사제들은 알아서 처신하게. 비무에는 살수를 쓰지 않을 터이나 뒷배를 달고 온다면 각오해야지. 흘릴 피는 적을수록 좋으니 신중히 덤비시게나.”

“오호라, 재미난 일이올시다. 서천께서 허장성세를 부리시다니요.”


듣기 언짢은 목소리가 조소했다.

화려한 녹색 무복을 입은 사내가 일어서며 손뼉을 친다.


모용세가 직계 모용인.

사부의 열한째 제자로서 지난 천인위전 서열은 8위였다.


청홍안(靑紅眼)이라는 별호대로 놈의 두 눈은 푸르고 붉다.

왼쪽 청안은 무공, 오른쪽 홍안은 풍류를 본다 자처하나 가당찮다.

성씨가 모용이 아니었다면, 한 줌도 안 될 알량한 무재나마 얻지 못했다면 저따위 행실이었을까.


여인을 꾀는 것도 모자라서 남색을 탐한다는 소문이 있으니 내겐 더욱이 역한 작자다.

번들거리는 눈빛이 기분 나빠.


“이리 다감한 성품인 줄 몰랐구려. 사제라 불러주시니 모용 모가 감읍하기 그지없소이다.”


과장되게 공수(拱手)한 놈이 탄식한다.


“참으로 애달픕니다. 어린 동생을 걱정해 천하 날카로운 그 칼도 휘두르지 못하니.”


참았다.


“하기야 일전에 보길 무척 예쁘게 자랐더군요. 올해 열셋이던가? 비무만 간청하신 마음이 이해됩니다. 애지중지 아낄 미색임을 보증하지요.”


참았다.

모용인이 멀리 성 동쪽의 외곽을 내다본다.

이내 게슴츠레하게 나를 훑고는 탐심을 드러내어 말했다.


“염려치 마시오. 남매가 함께 출중한 자태거늘 목숨은 살려둬야지. 나란히 아양을 떠는 꼬락서니가 필시 절경일- 큭!”


참지 않았다.

출수하지 못할 거라 예상해 모욕을 줄 저의면서도 대비하던 놈이 막았으나 늦었다.


쩌억!

검날이 어깻죽지를 갈랐다.

몇 걸음 물러나 지혈하는 버러지에게 다가서며 평했다.


“심계는 얕고 실력은 하찮구나.”


그저 참기보단 격장지계에 칼끝이 무뎌지길 바랐을 터.

애초에 통하지도 않았고, 설령 통했다 한들 네 기량으로 소용이 있었을까.

담담한 선고만을 일렀다.


“천인위전의 율법에 따라 검월(劍月) 은서천(殷曙天)이 청홍안 모용인에게 비무를 청한다. 천하 지존이 하명하신 바 패자는 생살여탈권을 내놓으리라.”


거절하지 못한다.

어떠한 수단도 용인한다고 사부가 말했으니까.

결과 역시 승자가 정한다는 의미니까.


“이야압!”


놈의 검이 현란히 번뜩였다.

모용가 절기 산형추혼(散形追魂)의 묘리다.

전반부 일곱 초식으로 상대의 이지를 흩뜨리고 후반부 다섯 초식으로 기습하는 것이 정석일 터.


스아아아- 파앗!

열두 초식은 벌써 끝났건만 환검과 쾌검이 자유자재로 전환되며 공세가 이어진다.

이소청에게 배웠는지 무극(無極)의 변칙이 섞여 있었다.

모용인이 득의양양하게 외쳤다.


“검월이라 으스대더니 허명인가? 살가죽을 벗겨 귀여운 동생에게 입혀주마!”


기고만장한 말과 달리 동작이 정교하다.

무공을 본다는 좌청안으로 시린 한기가 깃들었다.

풍류를 본다는 우홍안은 검격에 유려함을 더한다.


타앙!

이만하면 충분하다 판단한 나는 뒤로 도약했다.

지난번 서열 8위가 제법 성장하여 익힌 공부를 봤다.

나머지 천치들의 수준도 가늠된다.


“받아봐라!”


기합성을 지른 모용인이 검을 그었다.

일곱 갈래의 투로, 전부 허초이며 실초다.

가히 장관이라 일컬을 무위에 내 대응은 단출했다.


“동롱(朣朧, 달이 떠오르며 밝아지는 모양).”


사아아아-

은광(銀光)이 허공을 수놓았다.

처음엔 옅었으나 점차 아름다운 빛무리로 화해 들이닥친 검격을 지웠다.


“······!”


경악해 떨리는 표정.

우뚝 멈춰선 손발.

나는 이미 모용인의 지척에 있었다.


“조(朓, 그믐달).”


서걱!

예리하게 가늘어진 은광이 오른손 다섯 손가락을 끊었다.

검마저 떨어뜨린 놈이 고통스러워함에 연격을 이었다.

왼쪽 어깨와 두 다리의 힘줄부터 베고 단전을 걷어찼다.


“쿨럭, 커헉!”


쓰러져 누운 모용인이 검은 핏덩어리를 토했다.

다른 상처가 아니더라도 기혈이 진탕되어 당분간 운신할 수 없겠지.

나는 허리춤의 단검을 뽑았다.


“그 눈, 진즉에 거슬렸도다.”

“무슨- 끄아아악!”


악공의 연주처럼 비명이 흘러나온 가운데 피로 젖은 홍안을 아무렇게나 내버렸다.

손가락을 잃어 반쯤 외팔이에 애꾸가 된 모용인을 일별하고 뒤돌아봤다.

긴장한 듯이, 혹은 흥미롭다는 듯이 관망하던 열네 명의 사제들에게 일렀다.


“예의를 모르면 이리된다네. 잘 새기어 내 집에까지 소란을 끌어들이진 않도록 하세나.”

“끄윽······ 아아아악! 갚아주겠다. 훗날 반드시- 커억!”


드러누워 복수를 다짐하던 버러지가 헛숨을 냈다.

어깨에 단검을 꽂아 일어나지 못하게 고정하고서 나는 놈을 바라봤다.

머리칼을 잡아 비스듬히 들어 올리고, 핏줄 터진 청안을 응시하며 선고했다.


“안타깝게도 사제에겐 그럴 기회가 없을 게야.”


햇빛에 환한 검으로 미래를 직감했을까.

모용인이 사력을 다해 소리쳤다.


“미쳤구나! 가문도 없고 세력도 없는 네가 모용가의 직계를 해하겠느냐!”

“착각이 지나치면 독이야. 고작 자네 때문에 모용명이 나와 척질 줄 알았다면 오판일세.”

“서천······ 은서처어언-!”

“그래, 내가 은서천이다.”


썩둑!

몸통에서 떨어져 나간 머리가 땅을 굴렀다.

사부가 마련해둔 탁자로 걸어간 나는 얼마 마시지도 않아서 넉넉히 찰랑이는 술병을 쥐었다.

검과 양손에 묻은 피를 씻어내는데 뒤늦게 당도한 무인들이 대경실색했다.


“이게 대체······ 이공자께서······.”

“가주께 전해주시게. 그대의 아들이 나와 내 혈육의 안위를 위협하려 들기에 단죄했다. 이것으로 백도십절(白道十絶) 서천검월(曙天劍月)이 모용과의 은원을 잊겠노라고.”


본보기를 보였으니 사흘은 벌었을까.

내심 헤아리며 걸음을 옮겼다.


우물가에서 다시 핏자국을 지우고 성 내의 저잣거리에 들러 간식도 조금 산 나는 아담한 장원에 이르렀다.

문을 열자마자 화월(華月)이 달려와 반겼다.


“일찍 오셨네요.”

“응, 우리 동생 기다릴까 봐 서둘러 왔지? 이건 놔두었다가 저녁에 먹자꾸나.”

“······연회에서 무슨 일이 있으셨나요?”


내게서 꾸러미를 받아든 화월이 문득 고개를 갸웃했다.

나는 부드러이 웃으며 답했다.


“별일 없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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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빛나는 달 (4) 24.08.30 203 0 7쪽
5 빛나는 달 (3) 24.08.29 231 1 10쪽
4 빛나는 달 (2) 24.08.28 299 3 9쪽
» 빛나는 달 (1) 24.08.28 351 2 9쪽
2 서 (序) 24.08.28 556 5 10쪽
1 정천리격문 (訂天理檄文) 24.08.28 651 7 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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