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든 자들은 다 죽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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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렉디마
작품등록일 :
2024.08.27 2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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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3 0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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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01 1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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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나는 달 (7)

DUMMY

***


<여기까지 이해할 수 있겠니?>

<네.>

<와······ 우리 동생 똑똑한걸.>


날마다 화월의 천재성을 실감해갔다.

고작 두 살에 천자문이니 소학이니, 내 아비가 필사해둔 서책을 읽기 시작했다.

또래와 비교도 안 되게 신체 감각이 뛰어났다.


못난 생각이지만 열 살이나 차이가 나서 다행이었다.

나야 애당초 한문에 능통했으며 생활 전반으로 아이를 이끌어줄 수준은 됐기에.


찬란한 재능은 갈고닦는 만큼 빛을 머금었다.

시기상조인가 고민하면서도 욕심이 생겼다.

화월에게 내공을 가르치자고.


<오늘은 재밌는 숨쉬기를 배울까?>


언젠가는 제 비밀을 알아야 할 아이다.

북경에 가길 택한다면 풍파를 겪을까 걱정스러웠다.

어느 정도 무공을 익히는 편이 낫고, 건강에도 득이니까.

한데 뜻밖의 문제가 드러났다.


<조금씩 가라앉혀서 기운을 모으면 돼. 어때?>

<들어왔다가 도로 나갔어요.>


축기(蓄氣)가 불가능한 체질.

혈도에는 이상이 없건만 단전으로서 기능하지 않았다.


능력이 부족하여 해결책을 찾아주진 못했다.

절맥증과 같이 치명적인 병은 아니라 안도할 뿐이었다.

그즈음부터 더욱 단련에 힘썼다.


<하아, 하아······.>


빨리 나아가고 싶어.

세상 무엇도 너를 해치지 못하도록 강해질게.


저잣거리의 흔한 무공서 몇 권.

과거 입문했던, 어찌 본다면 기연인 당금 무학과 궤를 달리하는 공부.

둘을 나란히 쌓아 부족하나마 성과를 거뒀다.


화월을 키우면서 사 년.

열다섯 살인 나는 일류고수가 되어 있었다.

스무 살엔 마을을 떠나리라.


이 외진 지역에선 동생이 누구였는지, 이젠 안전할지 알 수 없었다.

풍문으론 내가 옥가락지를 맡을 무렵 황도에 소란이 일었다던데 직접 조사해야 확실할 터.


다만 화월이 어리고 나도 미숙하니 오 년은 기다려야 했다.

강기(罡氣)를 구현하는 절정지경이 보일 때까지.


하루, 또 하루가 흘렀다.

불안함은 떨치고 화월의 밝은 미래를 그리며 노력했다.

넌 지금보다도 훨씬 진심으로 웃을 수 있어.

그리고 초가을 중추절이 왔다.


<짜안- 이게 뭘까요?>


해가 저물어서야 귀가한 나는 밭일을 도와주고 받은 품삯을 꺼냈다.

먹음직스러운 별미 요리들과 월병, 과일, 당과와 떡.

음식이야 어떻든 내가 들뜨니 호응하는 화월이 물었다.


<저희 탄일이라고 주신 거예요?>

<응, 너무 챙겨주셔서 오히려 사양했는걸.>


중추절은 마을에서 가장 큰 축제였다.

다들 형편이 넉넉해 아낌없이 준비하는데 우리 남매는 또한 탄일이라 베푸는 마음이었다.


<맛있게 먹고 밤엔 달구경을 나가자꾸나.>

<좋아요.>


저녁상을 차리며 문득 노래를 흥얼거렸다.



명월기시유(明月幾時有)

밝은 달아 언제부터 떴니


파주문청천(把酒問靑天)

술잔 들고 파아란 하늘에 묻지


부지천상궁궐(不知天上宮闕)

하늘 궁궐에서는


금석시하년(今夕是何年)

이 밤이 어느 해려나



오늘은 특히 즐거워 부른 곡조였다.

소동파는 멀리 지내는 아우 소철이 그리웠으나 나는 함께인 동생을 아끼면서.

마지막 구절에만 잔잔한 꿈을 담았다.



단원인장구(但願人長久)

다만 우리 오래오래 살면서


천리공선연(千里共嬋娟)

천 리를 떨어져도 고운 달빛은 함께하기를



화월이 신분을 되찾으면 그리될지도 모른다.

선택은 본인 몫이나 일찍이 각오해뒀다.

황실이나 명문의 자식으로 누렸을 생이 있으니 우리는 떨어져야 할까.


하지만 천 리 밖에서도 같은 달빛이야.

서운하고, 자주 만나지 못해도 참아야겠지.


그리고 그날.

은원은커녕 아무런 곡절 없이.

단지 지나치다 눈길이 닿았다는 이유만으로.


<이리 오너라!>


사도칠마 중 하나라는 절명마도가 수하들을 이끌고 마을 어귀에 나타났다.

혈겁의 도래였다.


***


<아아아아악-!>

<크하핫!>


사람이 죽었다.

아주 많이 죽었다.

들뜬 웃음소리와, 구슬픈 비명과, 붉은 핏줄기가 한 곳에서 어우러졌다.


황군을 대비한 산의 탈출로로 갈 여유는 없었다.

집을 태워 파헤치지 않고선 모를 지하 공간에 화월을 두고, 아이 물건과 식량까지 숨긴 나는 당부했다.


<절대로 나오면 안 돼. 금방 올 테니까 기다려야 한다?>

<안 오시면요?>

<한참 지나서······ 배가 고프고 조용해지면 달아나렴.>


담담히 묻는 화월에게 올바른 답이었을까.

접근해온 기척에 문을 나섰다.


시산혈해(屍山血海).

이웃보단 친척에 가깝던 마을 사람들이 모두 죽어 있었다.

팔이 잘리고, 배가 뚫리고, 머리가 터져서.


<햐······.>


피범벅인 마졸 무리가 날 보곤 탄성을 내며 다가왔다.

앞장선 놈이 기대하듯 킬킬 웃었다.

나는 검을 휘둘렀다.


<컥!>


서걱-

목에서 핏줄기가 울컥 샘솟은 놈이 절명했다.

내 검엔 어느새 푸른빛이 서려 있었다.


검기(劍氣).

일류고수의 상징.

잠시 당황하던 마졸 무리가 덤벼들었다.


<어르신들이 고분고분 버릇을 고쳐주마!>


열다섯 생애 첫 실전이었다.

나와 실력이 비슷한 셋을 상대하건만 버틸 만했다.


강호의 무공과는 다른, 아마도 더 효율적인 움직임 덕분에.

또한 놈들이 날 죽이지 않고 사로잡으려 들기에.


<이야앗!>


검격이 왼편 마졸의 어깨를 갈라냈다.

그제야 놈들이 험악하게 눈빛을 굳혔다.

긴장감에 호흡을 다스리며 나는 가늠했다.


마을에 쳐들어온 수가 도합 열서넛이었지.

다섯으로 줄이자마자 산을 넘는다.

추격해온들 이 근방 지리는 익숙하니 따돌릴 수 있고, 몰래 돌아와서 화월과 도망치면 돼.


어렵지만 실현치 못할 계획은 아니리라 여겼다.

멀리서 감탄한 목소리가 울리기 전까진.


<드문 재목이로다.>


공격하던 자들이 즉시 멈췄다.

느긋이 걸어온, 적의 수장인 듯한 중년인이 내게 물었다.


<검세가 기이한데 누구를 사사했느냐.>

<글쎄.>


싸늘하면서 거짓 없는 대꾸였다.

나 자신도 연원을 모르니까.


<군문(軍門)은 논외. 닮았으나 한층 더 기량에 좌우됨이야. 이를테면 무의 근원만으로, 사실상 백지에서······ 설마 스스로 쌓아 올렸는가?>


혼잣말을 중얼거리던 놈이 돌연 추궁했다.

내가 침묵하자 광소가 터져 나왔다.


<으하하하! 기재! 천고의 기재였구나! 아이야, 내 제자가 되려무나. 나는 천수광이라 한다. 강호에서는 칠마 일좌로, 절명마도라고도 불리노라.>


세를 이루지는 않되 사파 무인들을 거느리고 살육을 일삼는다는 절정고수.

거절하자 놈이 고개를 저었다.


<안 된다. 내가 결정했으니 너는 마땅히 따르거라.>


나는 도망쳤다.

다섯 걸음을 못 가서 가로막혔고, 검기를 날려도 전부 허무하게 흩어졌다.

예상한 결과에 내심 안도했다.


이대로 달아나는 척하며 자연스레 마을을 나서자.

놈들이 다시 오지 않는다면 화월은 살 수 있어.

절명마도가 입꼬리를 올렸다.


<부모는 없고 동생을 돌보더냐?>

<······!>


어떻게 알아챘을까.

경악하는 순간 도기가 번쩍였다.

일격에 검이 잘리고 나는 저만치 나가떨어졌다.

집을 수색하라 지시한 절명마도가 일렀다.


<부모가 없고 동생이 있으니 절절하다. 그런 아이들은 그런 표정을 짓는 법이니라.>


퍼걱!

마졸들이 집을 부쉈다.

심장이 터져버릴 것처럼 뛰었다.

사력을 다해 일어선 나는 반쪽만 남은 검으로, 악을 쓰면서 달려갔다.


다른 생각은 없었다.

저자를 쓰러뜨리고 화월을 지켜줘야 했다.


<으아아아앗!>


검을 그었다.

절명마도는 간단히 피했다.

그 직후 부러진 검신에서 뻗은 빛무리가 놈의 팔을 베었다.


<뭣!?>


외마디 소리를 낸 적이 물러섰다.

나는 얼떨떨한 심경으로 이미 빛이 사라진 검을 바라봤다.

단순한 검기가 아니었다.

한순간이지만 분명히 실체가 존재했다.


지금이라면 안다.

이기성강(以氣成罡).

사람이 무로서 이룰 최고봉이라는 절정고수의 상징.

당시에는 깨닫지 못했고, 절명마도가 장탄식을 내쉬었다.


<아쉽구나······! 감히 본좌가 감당해낼 그릇이 아니니, 너는 죽어야겠다.>


콰앙!

시뻘건 기운이 일렁였다.

맞받아칠 수 없는 경지임을 직감했다.

그리고 화월이 대문에서 걸어 나왔다.


<아월······?>


신비로운 광경이었다.

다섯 살 어린아이가 피로 물든 언덕을 내려온다.

무서워하지 않고 평온한 발걸음이다.

마졸들은 어째선지 아이를 막지 못한 채 멍하니 쳐다보고만 있었다.


화월이 내 곁으로 섰다.

무표정하나 머뭇거리는 변명처럼, 짧은 말을 꺼냈다.


<싫어요.>


그러고 보니 대답을 못 들었다.

한참 지나서 배가 고프고 조용해지면 도망치랬는데.

동생은 싫단다.


뭐라 꾸중할 수 있었을까.

죽음을 확신함으로써 나와 함께하려는 아이를 그저 꼭 끌어안았다.


<괜찮아, 괜찮아······.>


혼내거나 미워하지 않아.

고맙고, 미안하고, 의젓해서 기특해.


<잠깐만 여기 있어?>


화월을 등 뒤로 보호하며 나는 검을 겨누었다.

싸워야 했다.

내가 죽더라도 너만은 살리고 싶어.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옥가락지와 사 년 전의 일을 거론해 위협해서라도.


그대로 맞섰다면 어땠을까.

무의식중에 발현했던 검강을 깨우쳐 이겼으려나.

황족 살해죄를 두려워한 놈들이 피했을 수도 있고, 나와 화월은 그날 죽었을지도 모르지.

이따금 궁금하지만 영영 못 풀어낼 의문이다.


<어린 연놈들이 살려뒀다간 화를 부르리다. 사이좋게 저세상으로 보내- 크윽!>


슈아악!

어디선가 내려온 검이 절명마도를 급습했다.

반사적으로 대처한 놈의 오른팔만 자르곤 방향을 틀어 마졸들에게 날아갔다.


——!

단말마도 지르지 못한 목 없는 시체들이 땅에 누웠다.

이어서 검이 솟구치니 왼팔로만 도를 움켜쥔 절명마도가 그곳을 노려봤다.

놈이 망연자실한 말을 흘렸다.


<이소청······.>


둥근 보름달이 뜬 밤하늘에 천상 선녀처럼 아름다운 여인이 있었다.

그녀의 옆에 시립한 검이 주인을 찬미하듯 빛났다.

꿈결 같은 자태를 나는 가만히 새겼다.


강호제일세 무황성의 주인.

당대 천하제일인이자 천하제일미.

무극검천무황(無極劍天武皇) 이소청(李韶淸).

나를 구해준, 이제는 죽이고자 하는 사부와 처음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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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빛나는 달 (15) 24.09.09 110 0 10쪽
16 빛나는 달 (14) 24.09.08 115 0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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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빛나는 달 (5) 24.08.31 204 0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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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빛나는 달 (2) 24.08.28 299 3 9쪽
3 빛나는 달 (1) 24.08.28 351 2 9쪽
2 서 (序) 24.08.28 556 5 10쪽
1 정천리격문 (訂天理檄文) 24.08.28 651 7 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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