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든 자들은 다 죽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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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렉디마
작품등록일 :
2024.08.27 22:57
최근연재일 :
2024.09.13 0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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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29 1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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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나는 달 (3)

DUMMY

***


천인위전 이틀 차.

나는 화월과 함께 장원을 둘러싼 숲을 거닐고 있었다.

내기를 불어넣은 돌과 나뭇잎을 곳곳에 내려두니 아이가 쪼그리고 앉는다.


“이게 뭐예요?”

“간단한 진법이라고 하면 되려나?”


실은 간단하지 않다.

자연물에 실린 기운은 바람이 흘러가듯 계속해 다른 곳으로 이동하며 일정 범위의 결계를 형성한다.

누군가 침입하면 내게 전해지고, 오감을 흐려 단 하나의 생로만을 찾도록.


“평소에 드나드는 길 있지? 그쪽으로밖에 못 올 거야.”

“진법서에선 본 적이 없는데 성주님께 배우셨어요?”

“으응, 따로 공부했지.”


나야 무황성에 오기 전부터 익혀왔으나 강호의 누구도 모를 기술이다.

신기해하며 돌을 만지작거리던 화월이 재차 물었다.


“아예 침입이 안 되게 닫아버리진 못할까요?”

“할 수는 있지만, 그러면 약해지거든.”


기운을 순환하는 과정이 부재하니 되려 허술한 구조다.

한 곳만 지키는 정도로도 충분해.


정오 무렵 결계를 완성하곤 집으로 돌아왔다.

점심을 먹고, 마주 보면서 화월의 얼굴을 어루만졌다.


“됐다. 감쪽같지?”

“와아······.”


동경에 비친 제 모습을 본 화월이 감탄한다.

본디 흰색 소담한 꽃처럼 해사하던 용모가 중성적인 소녀의 인상으로 바뀌어 있다.


“흐름은 읽었어요. 혈도로 기운을 느꼈거든요.”


내공이 없음에도 단번에 깨우쳤다는 말이다.

못내 드는 아쉬움을 감추며 역용술을 풀어준 내가 일렀다.


“목소리나 체격까지 바꾸면 피곤할 수도 있어. 오늘은 이만하고 다른 걸 알려줘야겠네.”


마당으로 나와서 화월에게 단검을 건넸다.

여태까지도 이따금 가르치고 배우며 보낸 시간이었다.

무림에 나서는 것과 별개로 기본적인 호신 무술은 익혀두는 편이 좋으니.

다만 이번엔 더 깊이 들어갈 생각이다.


“이렇게, 검을 비스듬히 세워서 누르는 거야. 찌른다기보단 살갗에 대고.”

“······이렇게요?”


두 번의 가르침으로 족했다.

설명해주고, 손을 포개서 움직여주고.


쉬운 동작이 아니었는데.

상대가 주의하지 않는다면 이류 급의 무인에게도 통할 구명절초인데.


근골도, 이해력도, 동체시력과 여타 감각도 극히 뛰어나다.

실로 하늘이 내린 무재.

하지만 결정적으로 단전에 기운을 모을 수 없다.

그것이 안타까워 나는 묻고 말았다.


“무림인이 되고 싶니?”


지금까진 꺼내지 않은 이야기다.

내공을 갖지 못하는 아이니까.

내가 지켜주면 된다고 여겼기에.


분명 이후로도 그리할 테지만.

온 힘을 다하겠지만.

그런데도 걱정을 떨치지는 못해서 물었다.


“아니요, 이대로가 좋아요.”


화월이 답했다.

맑고 편안한 눈빛을 응시하며 나는 다짐한다.

네 소원을 들어줄 거야.


***


“같이 자는 건 오랜만이네.”


해시(오후 9시~오후 11시) 초.

둘로 나란히 펴둔 이부자리에 누워 말했다.


그러고 보니 몇 년은 됐지.

화월이 여덟 살쯤 되고부턴 방을 구분했으니까.


내심 반가운 마음이라 팔을 뻗었다.

부드러운 머리칼이 매만져짐에 쓰다듬어본다.

싫어하는 기색은 없길래 장난기를 담아 물었다.


“잠이 안 오면 자장가를 불러줄까?”

“방금 누웠고, 어리광 부릴 나이는 지났잖아요.”


부끄러운 게 아니라 단순히 사실을 일러주는 목소리.

나는 모른 척하며 흥얼거렸다.


“자장, 자장-”


이불을 토닥이면서 생각한다.

하기야 제법 세월이 지났다.

이소청의 제자가 되고 무황성에서 팔 년.


동생은 어느덧 열세 살이다.

내가 입성했을 적보다 고작 두 살이 어리다.


그때 난 널 지키려고 필사적이었지만.

고통을 참고 피를 토하면서 수련했지만.

너는 그래야 할 필요가 없어.


앞으로도 쭉.

언제까지라도.


***


천인위전 사흘 차.

나는 화월과 한시도 떨어지지 않았다.


가까이서 자고, 씻을 때조차 서로 문 옆에서 기다렸다.

호신술을 두엇 가르치고, 결계를 점검하고, 낮이 흘러갔다.

그리고 문득 기척이 감지됐다.


숲 외곽이다.

십여 명이 흩어져서 주변을 오가며 염탐한다.


“무슨 일 있으세요?”

“아무것도 아니야.”


한동안 침묵하고 있으니 의아해하는 화월에게 답했다.

거짓이지만 또한 진실이기도 하다.

아무리 궁리한들 결계를 돌파하진 못하니까.


당대 강호의 무학과는 구성 원리부터 다른 기술이다.

적어도 중추절까진 파훼하기 어려울 테고 정면으로 오는 것 외엔 방법이 없겠지.

놈들은 그렇게 했다.


자정을 넘겨 천인위전 나흘 차.

손끝으로 떨린 기운에 몸을 일으켰다.


일단의 무리가 숲을 내달리고 있었다.

수가 많았다.

어림잡아도 백 명.


채비를 갖추고 나가려는데 화월이 어렴풋이 눈을 떴다.

나는 작은 목소리로 일렀다.


“자고 있어도 돼. 이건 가지고만 있으렴.”

“······.”


대답 없이 단검을 받은 화월이 옅게 웃으며 눈을 감는다.

안심해도 된다는 말을 믿어주는 마음일까.

넘칠 만큼 고마운 응원이다.


저벅, 저벅-

검 한 자루를 차고 숲길로 나아갔다.

희미하게 뜬 초승달이 밤을 보듬듯 흘러내렸다.

그 빛에 저만치서 걸어오는 자들이 보인다.


붉은색 무복을 입은 무인들이다.

푸른색과 연녹색 도포를 입은 도사들이다.

회색 가사를 입은 비구니들이다.


당가, 청성파, 점창파, 아미파.

정도 십오문 중 사천 네 문파의 후기지수들이었다.


오 장가량 떨어진 거리.

적막한 긴장감이 감도는 공간에서 나는 검을 뽑았다.


“셋으로 나누마.”


내게 비무를 청하는 자.

보름 동안 일어나지 못할 것이다.


합공하여 생사를 논할 자들.

팔을 자르고 단전을 폐하겠다.


그리고 마지막.

고개를 살짝 돌려서 지나온 숲을 바라보곤 말을 이었다.


“비무도, 합공도 마다하고 저 너머를 노리는 자.”


스아앗!

아름다운 은광을 검날에 깃들이며 선언했다.


“반드시 죽이겠노라.”


***


아미파(峨嵋派).

예로부터 사천 아미산에서 불교와 도교의 가르침을 함께 수양하는 명문이다.


문파 전원이 여인이며 불가 중심이기에 승복을 입지만 머리칼은 깎지 않는다.

근래에는 널리 속가를 받아들여 더욱 세가 드높은 곳이기도 했다.


그리고 천인위전이 나흘째로 접어든 자시(오후 11시~오전 1시) 무렵.

아미파 속가 제자 장소운은 어두운 숲을 달리면서 회의감을 품고 있었다.


‘옳은 일일까?’


서천의 목을 베어내는 제자가 차대 성주임을 무황께서 공표하셨다.

천하제일인(天下第一人), 천하제일문(天下第一門).

그 찬란한 미래에 정도 십오문이 사활을 걸었다.


첫 번째로 싸운 모용은 패퇴했다.

청홍안이 죽고 소가주마저 팔을 잃어서 물러났다.


두 번째가 지금이었다.

아미파·당가·청성파와, 본디 운남이 근거지였으나 사천에서 활동하는 점창파까지 연합한 것이다.

누가 무황성주든 넷이 무림을 이끌어나가자고.


‘아미타불이시여······.’


부모의 권유로 입문했을 뿐 불도엔 조예가 없음에도 부처를 찾을 만큼 참담한 심정이었다.

사마외도라면 수긍할 테지만 어찌 그분을 해하려는가.


열일곱 살에 이미 강호제일기재.

스무 살엔 단 한 번의 강호행으로 백도십절.

민초를 대할 때 자애롭고, 따르지 못할 기품과 호방한 협의지심이니 세상이 우러른다.


‘신주(神州), 대공-’


멀리 걸어오는 인영의 영명을 채 끝맺지도 못하고 장소운은 멍하니 바라봤다.

달빛을 받은 모습이 하늘 사람처럼 아름다움에 저도 모르게 홀릴 것만 같았다.


검월 은서천.

일백의 무인을 마주하고도 당당하여 천하를 담을 그릇이 선언한다.


“셋으로 나누마.”


비무라면 제압하리라.

합공이라면 무공을 거두리라.

그조차 마다하고 혈육을 위협한다면······.


“반드시 죽이겠노라.”


장소운은 심한 부끄러움을 느꼈다.

무황성 후기지수가 서천을 떠올린다면 대개 동경과 질시 중 하나이며 그녀는 전자다.

지금이라도 용서를 빌고 싶건만-


“천것아, 말을 가려서 하거라.”


각오가 부족하여 머뭇거리는 사이 누군가 쏘아붙였다.

붉은 궁장 차림에 뛰어난 미색인데 언뜻 표독스러운 인상이 엿보인다.

사천당가 소가주, 화중독접(花中毒蝶) 당하옥이었다.


성 내에서 서천을 적대하기로는 한 손에 꼽힐 자.

쉬쉬하며 말을 아끼나 장소운을 비롯해 모두가 짐작한다.


‘닿지 못하니 미운 거야.’


여인으로서 다음 대 당가의 주인이라는 지위와 그에 걸맞은 자질로도 이룰 수 없으니까.

차라리 치워버리고자 하는 추악함이다.

당하옥에게 눈길도 주지 않고 서천이 재촉했다.


“어서 택하라. 비무인가 합공인가.”

“빈도가 정중히 청하리다.”


푸른 도포를 입은 도사가 나섰다.

일찍이 사천의 검동이라 불린 청성파 명진자다.


“패배를 인정하여 스스로 무공을 폐해주시길 바라오. 이 자리에서 맹세하노니 그대와 어린 동생의 안위를 보장하지요.”


낭랑한 목소리며 섬뜩한 겁박이었다.

피식 웃은 서천이 답한다.


“사제는 기다리시게나. 무엄하게 아월(兒月)을 거론한 혀를 자르겠네.”

“굳이 관을 볼 작정이라면 어쩔 수 없지.”


점창일룡 헌원평의 독백이 살기를 띠고 아미파 보선은 굳은 표정으로 입술을 깨물었다.

그즈음 거의 동시에 네 사람이 뛰쳐나왔다.


“서천과 무를 겨루다니 영광이외다.”


당가와 아미, 점창과 청성의 무인들이다.

각자 자파의 내로라하는 인재라 양보하지 않자 서천이 무미건조하게 한쪽을 가리켰다.


“자네부터 오게.”

“하아앗!”


청성파 제자가 기합성을 내고 선공했다.

능히 일류의 완숙한 경지이며 본산 장로들도 칭찬해줄 만한 무위다.

하지만 장소운은 문득 깨달았다.


‘거리가······.’


검을 겨누지 않은 서천은 피하고만 있는데 왜 가까워질까.

한 걸음, 또 한 걸음, 공격하는 청성파 제자가 되려 궁지에 몰리듯이.

그리고 열네 초식째.


서천이 발길을 내디뎠다.

별안간 상대 지척까지 이르러 명치로 손을 댄다.


“커헉!”


퍼억!

북이 터지는 듯한 소리가 울리더니 적이 나가떨어졌다.

상당한 내상을 입었는지 피를 토하곤 혼절했다.


단지 기다려줬을 따름이며 월광무를 꺼낼 필요조차 없이 일초지적(一招之敵).

충격적인 결과에 침묵하는 이들을 향해 서천이 일렀다.


“다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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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서 (序) 24.08.28 556 5 10쪽
1 정천리격문 (訂天理檄文) 24.08.28 651 7 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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