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든 자들은 다 죽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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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렉디마
작품등록일 :
2024.08.27 2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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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3 0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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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02 0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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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나는 달 (8)

DUMMY

강호와 동떨어진 마을인들 그리 드높은 위명을 몰라볼까.

부러웠고, 자책했다.

존재만으로 만검(萬劍)에 군림하는 압도적인 무력.

저만큼 강해진다면 온 세상이 적이라도 동생을 지킬 텐데.


<하하! 고고하신 무황성주께서 본좌를 벌하러 멀리 산서 땅까지 납셨는가? 영광이외다.>


잘린 오른팔을 지혈한 절명마도가 허세를 부렸다.

밤하늘을 밟고 선 이소청은 한마디만 물었다.


<너는 무엇이냐.>

<······!>


의도치 않았건만 심한 모욕이었다.

네가 누구인지, 왜 여기 있는지, 일말의 관심도 없이 왱왱대는 벌레일 뿐이라고.

격분해 파르르 떠는 마두였으나 다음 판단은 빨랐다.


<그렇다면 나는 떠나겠소!>


단숨에 땅을 박찬 절명마도가 십여 장 밖으로 달아났다.

이소청이 저와 무관하게 왔음을 깨달은 바 목숨을 부지하는 최선의 수였다.

그러나 이미 늦었다.


<보았으니 죽어라.>


나직한 선언.

화살같이 날아간 신검 무극(無極)이 광채를 머금었다.


사아아아-

천지 사방으로 빛무리가 흘렀다.

일 장, 오 장, 계속해서 팽창해 외부와 단절되는 공간을 이루고 절명마도를 가뒀다.

어디로도 나가지 못한 놈이 허탈해하며 경외했다.


<상천현계(上天現界)······.>


백회를 열어 상단전을 운용하는 입신경 절대고수를 달리 상천(上天: 하늘에 오른 자)이라 일컫는다.

상천현계란 하늘을 보았기에 그들이 제각기 얻은 초능을 말함이었다.

어검·능공허도·이형환위 등의 경지와는 별개로 일생 무공과 영육혼백이 깃든 정수.


따라서 상천현계는 저마다 하나씩 고유하다.

사도련주도, 북해빙궁주도, 현존하는 어느 무인이라도.


오로지 이소청만이 예외다.

천여 년 전 하계를 피로 물들였다는 신선들의 세상을 끝낸, 또한 내공이라는 업을 창시해 모든 무인의 아버지라 칭송받는 무조(武祖)처럼 상천현계를 여럿 소유한 절대자.


알려지길 그녀의 상천현계는 최소한 셋이다.

하나로 입신을 공언했고, 둘로 강호 정점에 등극했으며, 셋으로 고금제일마저 비견했다.

그중에서도 특히 유명한 것이라면 세 번째겠지.


단신으로 천산에 올라 전대 천마의 상천현계 겁화지옥을 지웠다는 신기.

어쩌면 무황 이소청은 신을 엿보는 입신경을 넘어, 무조 백은이 그러했듯 오롯한 신 자체로 화하는 신화경(神化境)에 도달하리란 찬사를 자아낸······.


소혼원(小混元, 작은 우주).

무림사를 통틀어 최강을 다툴 상천현계가 제 영역의 생명을 무(無)로 되돌렸다.


휘오오오!

빛이 사그라든 자리에 절명마도는 없었다.

아름다운 검 한 자루가 주인을 기다리며 머무를 뿐이었다.

이내 하강해 무극검을 회수한 이소청이 내게 다가왔다.


<자미(紫微)로 핏빛이 들어 와보았거늘 묘하다. 명운이 엮여 자미도 되고, 천살(天殺)도 되겠구나.>


돌이켜 헤아리면 고민이었다.

당장 죽일지, 살려서 지켜볼지.

그녀의 선택은 후자였다.


<배사(拜師)하여라. 내 너를 가장 날카로운 칼, 강호를 수호하는 신장(神將)으로 벼릴지니.>

<조건이 있습니다.>


무황이 명하는데 세간의 관점에선 태도가 불손했을까.

이소청은 무감한 표정이었다.

드넓어 망망대해와 같은 시선을 나는 피하지 않았다.

동생을 품에 감싸 양보할 수 없는 청을 내걸었다.


<아이와 함께여야만 가겠나이다.>

<······.>


짧은 침묵이 영겁처럼 느렸다.

화월에겐 눈길도 주지 않은 그녀가 입을 뗐다.


<뜻대로 하거라.>

<감사합니다.>


세 번의 절을 올림으로써 사제지연을 맺었다.

그제야 사부가 확인했다.


<나를 아느냐?>

<무황이십니다.>

<날이 밝으면 인편을 보낼 터이니 성으로 오라. 새벽녘까지 치울 것은 치워둬야 할 게야.>


아마도 눈치챘다.

우리 남매가 벽지에서 평범히 자란 아이들은 아니며 사연이 있으리라고.


가벼이 발을 구른 그녀가 상공에 올라섰다.

조언처럼, 경고처럼 이르곤 자취를 감추었다.


<미혹이 깊고 진하다. 장차 버려라.>


백여 구 시체가 널브러진 마을엔 나와 화월만 남았다.

옷깃으로 힘주어 닦아도 핏자국이 씻기지 않는 손을 잡아준 동생이 사과했다.


<죄송해요.>

<뭐가?>

<기다리라고 하셨는데 나와서요.>

<으응, 괜찮아.>


나는 아이를 끌어안았다.

머리를 쓰다듬고 등을 토닥이며 맹세했다.


<강해질게.>


자미, 천살, 무황의 제자, 강호를 수호하는 칼.

전부 중요하지 않았다.

다시는 너를 위험에 빠뜨리기 싫어.


<아······.>


문득 올려다본 만월이 예뻤다.

사부가 날 염두에 두고 일부러 시전했을, 천하 으뜸인 상천현계 소혼원이 떠올랐다.


자그마한 우주에 빛나는 달.

그날 정했다.

너를 지키기 위한 일념으로 만들어갈 내 독문무공의 이름을 월광무(月光武)라 짓겠다고.


***


무황성으로 가는 여정은 순탄했다.

산서 동북부에서 하남까지 팔백 리 길이었으며 마차로 하루 오십여 리를 이동해 보름.


첫날은 바빴다.

화월을 재우고, 산에 준비한 탈출로와 집 안의 지하 공간을 정리하고, 죽은 사람들을 묻어주려던 즈음 호위대가 왔다.


<무황 일맥을 뵙습니다.>


이소청의 명을 받든 그들은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시신과 전투 흔적을 수습해주고서 극진한 예로 우리 남매를 모셨다.

다만 입성한 직후부턴 소동이 일었다.


<차대 천하제일이군.>

<아직은 모르지. 성주께서 처음 거두신 제자라 범상치는 않겠으나······.>

<한데 저 아이는 동생인가? 우애가 돈독해 보이는구먼.>


종종 듣는 수군거림이었다.

갑작스레 나타난 무황의 제자.

일 년이나 성을 떠나 사마외도를 단죄한 그녀가 수하들에게 지시해 데려왔단 정보 외에는 불명.


워낙 의문스러워 여러 곳에서 조사했다지만 잘해야 내 출신 정도나 알았을까.

호구 등록도 미진하던 마을이 절멸해 나와 화월이 친남매가 아님을 증언해줄 사람은 없었다.


그리고 열여섯 살의 정월 초하루.

이소청이 공표했다.


<네게 서천이란 자(字)를 내리노라.>


어스름한 새벽 하늘빛이 전각을 비췄다.

일천 무인이 자리하여 엄숙히 읍했다.


그들이 짐작하기엔 강호를 이끌어갈 후계의 증표였으리라.

당사자인 나로선 매몰찬 종용이었다.


너는 무림을 다스릴 자미성(紫微星)이라고.

미혹으로 물든 천살(天殺) 따윈 불허한다고.


이소청은 관대하고도 냉혹한 스승이었다.

내가 배우고 익힌, 당대 무림의 것이 아닌 공부를 알아봤을 터건만 일절 언급하지 않았다.


그저 자신과 가까이 지내도록 거처를 마련해줬다.

하루에 두 번 아침저녁마다 무공을 봐주었다.

천고 영약을 비롯한 갖은 지원이 뒤따랐다.


크나큰 은혜이자 목적을 두고 기르는 개돼지 대우였다.

불쾌함이나 분노는 없었다.

그녀의 발걸음과 손짓, 말과 호흡에서 훔칠 수 있는 것들을 모조리 훔쳐내며 수련했다.


성에 와서 일 년이 지났다.

나는 절정고수가 되었다.


<여즉 못 버렸도다.>


검신에 서린 은빛 강기를 본 이소청이 읊조렸다.

다음날부턴 정도 십오문을 찾아 제자를 들이기 시작했다.


우연이 아니겠지.

날 견제하고, 언젠가는 처단할 칼잡이들이다.

내심 불안하면서도 가소로웠다.


<사제들에게 짐이 무겁습니다.>

<안다면 버리거라.>


너무도 고절한 경지여서 사람의 정이 희미하나 사부는 분명 나를 아꼈다.

돌이키지 못할 파국은 피하고자 했다.

그 마음을 알기에 물어봤다.


<달리 길이 있으리까.>

<입신에 올라서야 시도나 해보겠구나.>


상천이 되어 그녀와 나란히 짊어지면 감당할지도 모른다.

한 줄기 희망을 품고 필사적으로 연마했다.

결단코 버리지 않아.


성에 와서 이 년이 지났다.

나는 천인위전에서 우승해 강호제일 후기지수라 불리었다.


오 년이 지났다.

제자 열여섯이 다 모인 천인위전에서 우승한 나는 강호행을 나섰다.

백도십절이 되었고, 비밀리에 추렸다.

화월의 부모일 가능성이 있는 자들.


후보는 여럿이었다.

권력가와 역적, 죽은 자와 산 자.

당금 황제와의 연관도 배제할 수 없었다.


섣불리 움직여선 안 되는 일인지라 후일을 기약하며 성으로 돌아왔다.

이젠 숲에 장원을 지어 따로 살았지만 제자로서 이소청에게 문안을 드렸다.

조용히 나를 살피던 그녀가 칭찬했다.


<제법 날을 벼렸구나.>

<입신은 얼마나 남았겠나이까.>

<내일이라도 될 것이고, 백 년 후라도 안 되리라.>


요컨대 운이며 깨달음이다.

재능이나 노력만으론 닿기 어려운 하늘의 뜻이다.

애써 조바심을 가다듬은 내게 사부가 부언했다.


<여유가 길지 않다.>


복합적인 의미였으며 특히 그녀 자신을 이른 말이겠지.

머잖아 신화경이 보이리라고.

본디 사람으로 태어났으나 사람이 아니게 되어 우리를 살릴 필요성도 못 느끼리라고.


그보다 먼저 성과를 거두어야 했는데.

결국 늦어버린 걸까.


성에 와서 팔 년.

지금의 무황 이소청에게 대제자 은서천은 고작 등선을 가로막는 걸림돌일까.


<야박하십니다. 제게도 살길 한 자락쯤은 터주시지요.>

<버리거라.>


위전이 열린 날을 기억한다.

그나마 베푼 인정이자 사부가 건네주는 유일한 생로였다.


버린다면 산다.

따라서 고려할 가치조차 없다.

힘껏 붙들어 앞으로도 동생과 살아갈 거야.


“잘 잤어?”

“네.”


잠에서 깬 화월이 싱긋 웃었다.

맑은 미소가 고맙고 사랑스러워 나도 마주 웃었다.


***


천인위전 닷새 차.

하남 소림사와 호북 제갈세가, 무황성 입성.


천인위전 엿새 차.

섬서 화산파와 하북 팽가도문, 무황성 입성.


천인위전 이레 차.

호북 무당파와 섬서 종남파, 무황성 입성.


천인위전 여드레 차.

안휘 남궁세가와 감숙 공동파, 무황성 입성.

청해 곤륜파와 하남 개방, 최종적으로 불참 표명.


천인위전 아흐레 차.

모용·당가·아미·청성·점창, 곤륜·개방을 제외한 정도 십오문 팔 개 문파 대회의.

만장일치로 서천검월 척살 결의.

무황 이소청은 칩거하며 사실상 묵인.


천인위전 열흘 차.

검월 은서천, 월광무 어검 발현으로 무인 삼십여 명을 살상하고 무황성 탈출.

도주 경로를 통해 예측한 목적지는 황도 북경.


“······너무 대충인가?”


나름대로 깨끗이 빨래하는, 그러나 어쩔 수 없이 낡은 거적때기를 입은 여인이 붓을 쥐고 혼잣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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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빛나는 달 (17) 24.09.11 89 1 12쪽
18 빛나는 달 (16) 24.09.10 102 1 12쪽
17 빛나는 달 (15) 24.09.09 110 0 10쪽
16 빛나는 달 (14) 24.09.08 115 0 10쪽
15 빛나는 달 (13) 24.09.07 130 0 9쪽
14 빛나는 달 (12) 24.09.06 132 1 10쪽
13 빛나는 달 (11) 24.09.05 145 1 11쪽
12 빛나는 달 (10) 24.09.04 156 1 20쪽
11 빛나는 달 (9) 24.09.03 163 1 15쪽
» 빛나는 달 (8) 24.09.02 179 0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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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빛나는 달 (5) 24.08.31 203 0 9쪽
6 빛나는 달 (4) 24.08.30 203 0 7쪽
5 빛나는 달 (3) 24.08.29 230 1 10쪽
4 빛나는 달 (2) 24.08.28 299 3 9쪽
3 빛나는 달 (1) 24.08.28 350 2 9쪽
2 서 (序) 24.08.28 556 5 10쪽
1 정천리격문 (訂天理檄文) 24.08.28 650 7 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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